1945년생인 필자 세대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덴마크에 대하여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컸다. 지금도 달가스, 그룬드비히 같은 덴마크의 교육자와 농업운동가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덴마크가 19세기 후반에 프러시아한테 전쟁에서 진 후 어떻게 국민정신을 바로 세워 나라를 再建(재건)하였는가, 잘 사는 농촌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교사들이 열정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쳤다. 서울농대 柳達永(유달영) 교수 같은 분들이 덴마크 이야기를 책으로 써 소개하기도 하였다. 5·16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朴正熙 정부도 농촌 개발에 덴마크의 사례를 배우려 하였다.
그래서 덴마크는 농업국가, 평화로운 나라, 그러나 약한 나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덴마크라고 하면 ‘무서운 바이킹의 나라’란 인상이 강하다. 8세기 말에서 11세기 말까지의 약 300년 간 유럽 기독교 문명권을 강타한 海洋민족 바이킹族의 중심은 덴마크에 살던 바이킹이었다. 노르웨이 바이킹은 탐험과 개척, 덴마크 바이킹은 전쟁, 스웨덴 바이킹은 장사를 잘하였다.
노르웨이 바이킹은 아일랜드, 영국을 침공하더니 아이슬랜드, 그린랜드를 개척하고 지금의 캐나다 동해안까지 건너갔다. 이들은 소규모 부대를 海賊(해적)처럼 운영하였다.
덴마크 바이킹은 대부대를 조직, 정복에 나섰다. 한때 영국의 거의 전부를 정복, 수십 년 간 통치하였다. 프랑스 북쪽의 노르망디를 정복, 公國(공국)으로 다스린 것도 덴마크 바이킹이었다. 덴마크 바이킹은 싸움도 잘하였지만 통치술도 뛰어났다. 노르망디를 잘 다스려 프랑스에서 가장 번영하는 地域(지역)으로 만들었다.
이 노르망디의 領主(영주) 윌리엄 公(공)이 11세기 영국으로 쳐들어가 政權을 탈취하였다. 덴마크가 오늘날 영국의 한 母胎(모태)인 셈이다. 이 덴마크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전체도 통치하였다. 즉, 지금의 노르웨이와 스웨덴도 덴마크의 治下(치하)나 주도권 안에 들어갔다. 덴마크 바이킹은 11세기를 前後(전후)하여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문명화된다. 약 800년간 北歐(북구)의 강국은 덴마크였다. 코펜하겐의 덴마크 국립박물관에 가 보면 帝國이 아니면 모을 수 없는 미술품들이 많다. 스웨덴이 强盛(강성)해지면서 덴마크의 주도권이 흔들리더니 16세기에 들어서서 덴마크를 쳐부수고 노르웨이를 가져갔다.
17세기 유럽에서 스웨덴은 최강의 軍事力(군사력)을 보유하였다. 1618~48년 사이 독일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30년 종교전쟁(新舊敎 싸움)에서 新敎(신교) 편에 서서 개입하였던 스웨덴 군은 無敵이었다(바이킹 나라들은 16세기 종교개혁 때 일제히 루터교로 改宗하였다). 스웨덴은 전성기에 노르웨이와 핀란드도 통치하였다.
이 스웨덴의 北歐 覇權(패권)에 도전한 것이 러시아의 피터 大帝였다. ‘北歐大戰(북구대전)’에서 처음엔 러시아가 밀렸으나 인구가 많고 동원력이 강한 러시아가 최후의 勝者가 되었다. 18세기 초의 일이었다. 스웨덴은 19세기 초엔 러시아에 핀란드까지 빼앗겼다.
北歐의 覇者는 지난 1000년간 덴마크-스웨덴-러시아로 바뀌어왔다. 노르웨이와 핀란드는 3大 강국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였다.
러시아가 스웨덴을 꺾고 覇者가 된 것은 아들이 長成(장성)하여 아버지를 누른 격이다. 러시아라는 나라를 만든 것이 스웨덴 바이킹이었다.
노르웨이 바이킹이 아일랜드, 영국, 아이슬랜드, 그린랜드, 캐나다 방향(서북쪽)으로 뻗고, 덴마크는 영국, 서유럽 방향(서남쪽)으로 진출한 데 반하여 스웨덴 바이킹族은 러시아, 黑海(흑해), 비잔틴 제국 등 동남쪽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볼가 강을 타고 내려가 黑海에 이르고, 지금의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두었던 비잔틴 제국과 交易하는가 하면 일부는 바그다드까지 진출, 아랍 사람들과 장사를 했다.
스웨덴 사람들이 이때 세운 도시가 키에프이다. 키에프(우크라이나 수도)를 중심으로 발전해 간 나라가 러시아이고. 러시아라는 낱말은 스웨덴 바이킹의 말에서 나왔다. 러시아의 초기 지배층은 바이킹이었다.
바이킹이 살거나 정복하였거나 母胎(모태)가 된 나라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러시아, 아이슬란드, 시실리, 노르망디, 아일랜드, 그린랜드이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아이슬란드는 지금 一流(일류)국가로 평가된다. 시실리와 노르망디도 바이킹이 다스릴 때는 유럽의 一流였다.
싸움 잘 하고, 장사 잘 하는 민족이 商武정신을 바탕으로 과학과 기술과 경제를 발전시키며 이런 물질적 바탕에서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다. 글과 말로써 먹고 사는 文民 지배층이 좌지우지하던 나라가 一流가 된 곳은 하나도 없다. 민주주의의 바탕은 과학정신과 실용정신이다. 文民은 과학도, 實用도 만들 수 없다. 僞善的(위선적) 명분론이나 空虛(공허)한 관념론의 밭에선 자본주의도, 민주주의도 자랄 수 없다.
대한민국이 이 정도의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6·25 전쟁과 國軍의 건설, 군사문화의 확산, 朴正熙 같은 軍 엘리트의 국가경영이 밑거름이 되고 울타리가 되었던 덕분이다. 군대가 한국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민족성을 바꾼 것이다.
노르웨이의 탐험정신, 덴마크의 싸움기술, 스웨덴의 장사속
- 趙甲濟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10-05-19, 16: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