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30년 전쟁 이야기

스웨덴 군대는 독일에서 1500개의 도시, 1만8000개의 마을, 2000개의 城을 파괴하였다. 독일 전체의 약3분의 1을 부순 셈이다.
1618~1648년 사이 지금의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프랑스 동부지방, 네덜란드, 덴마크 등을 무대로 하여 벌어졌던 30년 전쟁은 흔히 종교전쟁으로 불린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불을 붙인 종교개혁은 유럽 기독교 문명을 舊敎(구교) 대 改新敎(개신교) 진영으로 분열시켰다. 거의 모든 유럽 국가에서 政變(정변), 혁명, 內戰(내전)을 불렀는데 그 총결산이 30년 전쟁이었다.

체코 프라하에서 발단이 된 이 전쟁엔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직간접으로 개입하였다.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 新敎 국가는 독일의 신교도 편을 들었다. 스페인과 지금의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한 합스부르그 王家가 주도한 神聖(신성)로마제국(독일 여러 영주국의 연합체)은 독일의 舊敎徒 편이었다. 독일의 수많은 公國과 영주국가들은 신교, 구교편으로 갈렸다.

프랑스는 舊敎 국가였는데, 스페인과 神聖로마제국을 경쟁자로 삼고 있었으므로 新敎 편을 들었다. 이 전쟁의 전반부에선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합스부르그)이, 중반부에선 스웨덴이, 종반부에선 프랑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648년 신구교 세력들이 웨스트팔리아 조약을 맺고 전쟁을 종결할 때 대체로 新敎가 유리한 결과를 얻었다.

이 전쟁은 제1, 2차 세계대전에 버금 가는 人命과 物的(물적) 파괴를 불렀다. 독일, 체코 인구의 약30%가 죽었다. 전염병이 만연하였다. 傭兵(용병)들의 학살, 약탈, 고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하였다.

이 전쟁에서 가장 맹활약한 군대는 구스타프 아돌프 대왕이 이끈 스웨덴軍이었다. 스웨덴 군대가 신교도 편을 들지 않았으면 이 전쟁은 구교도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 거의 패배한 신교도 세력을 구한 것이 스웨덴이었다. 스웨덴은 그 100년 전에 일찍암치 루터교를 받아들이는 종교개혁을 한 뒤였다. 한때 스웨덴 군대는 독일의 반을 점령하였다. 이 전쟁에서 스웨덴 군대는 독일에서 1500개의 도시, 1만8000개의 마을, 2000개의 城을 파괴하였다. 독일 전체의 약 3분의 1을 부순 셈이다.

30년 전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독일,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은 네덜란드 독립을 억압하려고 80년 전쟁을 벌였는데, 30년 전쟁의 종결 때 네덜란드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와 영국은 신교도 세력에 돈을 댔지만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종교 전쟁 이후 유럽에서 이 두 나라가 가장 잘 나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은 이 전쟁이 가져온 황폐로부터 회복하는 데 200년이 걸렸다.

30년 전쟁 이후 유럽에선 종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30년 전쟁은 유럽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누리는 종교의 자유는 피의 代價(대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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