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바다 속에서 탄생한 나라 스웨덴

덴마크 왕이 저지른 '스톡홀름 학살'이 분노의 기폭제가 되다.
정치적 학살은 반대세력에 겁을 주기 위하여 이뤄지지만 오히려 반발을 불러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엔 거대한 王宮(왕궁)이 평온한 바다를 내려다 본다. 유럽에서 사용되고 있는 왕궁중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단조롭고 육중하게 보이는 왕궁의 방이 600개가 넘는다.

이 왕궁 정문 앞은 '스톡홀름의 피바다'(Stockholm Bloodbath)라고 불리는 사건이 난 곳인데 기념물이 있다. 이곳이야말로 스웨덴이란 나라의 탄생지이다. 국가가 피바다 한가운데서 태어난 경우이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14세기 말부터 덴마크를 중심으로 연방국가를 만들어 살아왔다. 덴마크 王家가 지배자였다. 16세기 초 스웨덴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귀족들이 중심이었다.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2세는 두 차례 진압군을 보냈으나 스웨덴 反軍(반군)에 밀렸다. 세 번째 진압군은 프랑스, 독일, 스코틀랜드 傭兵(용병)들을 포함한 大軍이었다. 스텐 스투레가 지휘하는 스웨덴 반군은 連敗(연패)하였다. 스투레도 부상당한 뒤 죽었다. 스웨덴의 귀족회의는 덴마크 왕이 책임자들에 대한 사면을 약속하면 다시 충성을 맹세하기로 결의하였다. 스투레의 부인이 지휘하는 反軍은 그 뒤에도 스톡홀름에서 抗戰(항전)을 계속하였다. 덴마크의 海軍이 나타나 바다와 육지에서 공격해들어오자 反軍은 사면의 약속을 받고 항복하였다. 1520년 9월7일이었다. 11월1일 스웨덴의 대표자들은 크리스티안 2세에 충성을 다짐하였다. 덴마크 왕이 스웨덴 王位를 세습하는 데도 동의하였다.

11월4일 크리스티안 왕은 트롤레 대주교가 집전한 스웨덴 왕위 즉위식을 올렸다. 그는 스웨덴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통하여서만 다스리겠다는 관례화된 선서도 하였다. 즉위 축하 행사도 사흘간 벌어졌다. 7일 크리스티안 왕은 스웨덴의 지도자들을 궁정의 저녁 회의에 초청하였다. 다음 날 저녁, 덴마크 군인들이 亂入(난입), 스웨덴 지도자들을 끌고 나가 감금하였다. 9일 트롤레 대주교가 주재하는 위원회가 지도자들에게 死刑을 선고하기 시작하였다. 스웨덴 지도자들은 수년 전 덴마크 王家 편인 트롤레 대주교를 쫓아내려는 모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음모자 명단을 가지고 보복에 나선 것이다.

死刑선고를 받은 이들 가운데는 反軍을 지원한 귀족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바깥으로 끌려나가 참수되거나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틀간 82명의 스웨덴 지도자들이 처형당했다. 크리스티안 왕은 反軍 지도자 스투레와 그의 어린 아들 무덤을 파헤지고 屍身(시신)을 꺼내 불태우게 했다. 이때 처형된 에릭 요한슨의 아들 구스타프 바사는 학살 소식을 듣고는 스웨덴의 북쪽 달라르나 지방으로 피신, 백성들을 상대로 학살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반란군을 조직, 독립전쟁을 일으켜 덴마크 군대를 쳐부순다.

구스타프 바사는 3년간의 전쟁 끝에 덴마크 군대를 무찌르고 1523년 6월24일 스톡홀름에 入城한다. 그 보름 전인 6월6일 그는 議會에서 왕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달아난 트롤레 대주교 자리에 다른 사람을 임명, 교황의 허락을 간청하였으나 교황은 트롤레를 재임명하라고 요구하였다. 이로써 비롯된 분쟁 끝에 구스타파 바사 왕은 가톨릭을 버리고 루터교를 國敎로 택한다. 1525년엔 新約 성경을 번역, 출판하였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그리고 영국의 헨리 8세는 거의 동시에 가톨릭을 버렸다.

재미 있는 것은 1523년, 크리스티안 2세를 몰아내고 王이 된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3세가 루터敎로 改宗하였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덴마크는 피비린내 나는 內戰을 벌인다. 이때 그리스티안 3세는 스웨덴의 구스타프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구스타프는 한때의 敵國이었던 덴마크 왕을 위하여 군대를 보내 新敎軍을 도와준다. 크리스티안 3세는 1521년 神聖로마제국 의회에 마르틴 루터가 나와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는 연설을 하는 것을 보고 감복한 사람이다. 王이 개종하면 국민들도 따라가야 한다. 이렇게 하여 덴마크, 노르웨이(덴마크 속국), 스웨덴(핀란드는 속국)이 비슷한 시기에 루터교를 國敎로 수용하였다.

스칸디나비아 4國이 상업활동과 민주주의를 권장하는 改新敎로 改宗한 것은 이 지역의 향후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스웨덴 노트

*스웨덴 출신의 저명 인사: 노벨, 아바, 잉그리드 버그만, 그레타 가르보, Borg(테니스 스타), 함마슐드

*면적은 45만 평방킬로미터로 유럽연합국 중 프랑스 스페인에 이어 3등이다.
*인구는 약1000만 명, 세계 4등의 경쟁력을 가진 경제구조, 세계 8등의 무기수출국, 세계 10위권에 항상 들어가는 삶의 질,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7위.
*1814년 이후 전쟁을 한 적이 없다. 1, 2차 전쟁 때는 중립이었다.
*한국전에 의료지원단을 파견, 병원을 운영하였다. 고아들을 많이 입양한 나라이다.
*바이킹 전성 시절 스웨덴 지역의 바이킹은 주로 동쪽 및 남쪽으로 진출하였다. 러시아의 출발점이 되는 키에프 공국은 스웨덴 바이킹이 세웠다. 러시아의 語源인 '루스'도 스웨덴 말이다. 12세기 스웨덴 왕국이 서고, 1397~1523년 사이엔 덴마크 중심의 카르말 연합왕국 소속이었다.
*1523년에 독립, 노르웨이와 핀란드 지역까지 다스리다가 1905년에 노르웨이가 독립하였다. 1809년엔 핀란드를 러시아에 빼앗겼다.
*전성기는 종교전쟁에 개신교 편에서 개입하였던 구스타프 아돌프 왕 시절이었다. 당시 스웨덴의 육군은 유럽 최강이었다. 영토도 러시아, 스페인에 이어 세번째였다.
18세기 초, 북유럽의 패권을 놓고 러시아의 표토르 대제와 싸워 패전함으로써 쇠퇴기에 들었다.
*국토의 60%가 森林이다. 스웨덴 소톡홀름 근해엔 약2만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있다. 인구당 요트 수가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공짜가 안 통한다. 호텔 화장실도 외래인이 공짜로 이용할 수 없다. 하지만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돕는 데는 용감하다. 대체로 냉정한 사람들이란 평이다.
*유럽연합에 들어갔지만 유로는 쓰지 않는다. 크로나를 쓴다.
*평양에 대사관이 있다. 미국의 이익을 대표한다.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이 나라에서 열릴지 모른다.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등을 석방하는 교섭을 스웨덴이 중계하는 경우가 많다.
*음악성이 뛰어나 음반수출액이 연간 8억 달러로서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라고 한다. 아바는 3억8000만 장의 음반을 판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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