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싸우다가 친해져버린 나라들

英佛, 獨佛, 덴마크-스웨덴에 비교하여 韓日은 전쟁이 매우 적었던 사이이다.
싸움 잘하는 덴마크 바이킹이 프랑스의 북쪽 해안지방 노르망디를 점령, 公國(공국)으로 다스리다가 1066년 윌리엄公이 영국으로 쳐들어가 지금까지 계속되는 王權을 확립한 사건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윌리엄公은 영국을 점령한 뒤 윌리엄 1세 정복왕이 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프랑스의 영유지 노르망디를 포기하지 않고 이를 발판으로 프랑스 전체를 통치하는 英佛 연합국을 꿈꾸었다.

이에 프랑스 왕국이 저항, 두 나라는 100년 전쟁이 끝나는 1453년까지 분쟁상태로 들어갔다. 1204년 프랑스는 노르망디를 점령한다. 1259년 영국의 헨리 3세는 필립 2세의 프랑스 王國에 노르망디 영유를 허용하는 파리 조약을 맺는다. 그러나 그 뒤 영국 왕들은 노르망디는 물론이고 보르도 지방(아키텐) 등을 점령하는 등 프랑스 공략에 나선다. 1337~1453년까지 계속된 100년 전쟁은 처음엔 영국이 유리하였다. 부르고뉴와 보르도, 노르망디 등 프랑스 영토의 약 3분의 1이 영국에 의하여 점령당하거나 동맹관계에 있었다. 영국왕 헨리 6세는 1430년대에 파리의 노틀담 성당에서 프랑스 王으로 즉위식을 갖기도 하였다. 이때 나타난 이가 잔다크이다. 이 소녀의 지휘하에 프랑스 군대는 반격을 개시하고 샤를르 7세가 프랑스 王位(왕위)에 오른다. 잔다크는 영국과 동맹한 부르고뉴 군에 포로가 되었다. 부르고뉴 軍은 잔다크를 영국군에 팔아넘겼다. 영국군은 잔다크를 프랑스측에 다시 넘겨 종교재판을 받게 하였다. 이 재판에서 잔다크는 魔女(마녀)의 혐의를 받고 火刑되었다.

1453년 영국군이 보르도 부근의 아키텐에서 프랑스군에 패배함으로써 英佛 100년 전쟁은 프랑스의 승리로 끝난다. 아키텐 지방은 1154년에서 1453년까지 300년간 영국지배를 받았다. 프랑스가 영국군을 自國 영토에서 몰아냄으로써 1066년부터 시작된 영국의 프랑스 정복사업은 수포로 귀결된 것이다. 유명 포도주의 2대 産地(산지)인 부르고뉴와 보르도 지방이 영국과 손을 잡고 프랑스에 대항한 점이 흥미롭다. 보르도에서 본격적으로 포도주 산업을 일으킨 이들도 영국인들이었다.

100년 전쟁 뒤에도 프랑스와 영국은 宿敵(숙적)관계였다. 특히 17세기에 루이 14세가 등장, 70여년 간 在位하면서 팽창정책을 쓰자 영국은 反프랑스 진영에 가세하였다. 두 나라는 北美대륙과 인도에서도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다. 미국의 독립전쟁을 프랑스가 지원, 영국을 무찌르게 한 것도 식민지 전쟁의 일환이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등장하여 국민군을 조직, 전쟁을 거듭하면서 유럽의 패권을 잡으려 하자 영국은 프러시아 및 합스부르크 왕조와 손을 잡고 反프랑스 통일전선을 구축하였다. 1815년 워털루 전투는 英佛의 마지막 대결이었다. 웰링턴이 지휘하는, 영국군을 主力으로 한 연합군이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 16년간 계속된 나폴레옹 시대를 끝장낸다.

19세기 영국은, 유럽대륙에서 프러시아가 普佛(보불)전쟁을 통하여 프랑스를 누르고 독일을 통일, 새로운 강자로 나서자 독일을 견제하기 위하여 프랑스와 동맹관계를 유지하였다. 英佛 동맹은 1·2차 대전 때도 독일과 대항하는 핵심이었다.

지난 1000년간 전쟁이 많은 유럽에서도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는 프랑스이다. 유럽의 한가운데 있어 영토나 영향력을 넓히려면 사방의 敵(적)을 상대로 한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접경하는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와 한 번 이상씩 싸운 것이 프랑스이다. 특히 루이 14세와 나폴레옹 1세 때 전쟁을 많이 하였다.

프랑스의 찬란한 예술과 문화는 평화시기가 아니라 전쟁의 한 가운데, 또는 전쟁과 전쟁 사이에서 꽃을 피웠다. 전쟁은 國力을 총동원하게 만들고 정신력을 高揚(고양)시킨다. 행정력, 군사, 과학, 기술이 발전한다. 유럽의 군사문화는 예술을 보호, 육성하였다.

나라가 발전단계에 있을 때 전쟁을 많이 하는 게 특징이다. 프랑스의 전성기는 루이 14세와 나폴레옹 시절인데 약 90년간 전쟁으로 寧日(영일)이 없었다. 1860년대부터 프러시아가 독일을 통일, 强國(강국)으로 부상하면서 독일이 전쟁을 많이 벌였다.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를 상대로 한 통일전쟁 이후 제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은 통일로 만들어진 에너지가 대외적으로 폭발한 측면이 있다. 중국은 1949년에 통일한 이후 한국전에 파병하고 월남을 침공하였으며 티벳을 점령하였다.

스웨덴은 126년간 北歐(북구)의 强國인 덴마크의 屬國(속국)으로 있다가 1523년 독립전쟁을 치른 뒤 독립을 쟁취, 강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덴마크는 失地(실지)를 회복하고 스웨덴을 종속시키기 위하여 1563~1679년의 115년 사이에 여섯 번이나 스웨덴을 상대로 전쟁을 하였다. 1657년 덴마크가 스웨덴을 공격하자 스웨덴은 반격에 나서 덴마크를 침공, 코펜하겐을 2년간 포위하기도 하였다.

한국과 일본 사이는 접경하고 있으면서도 전쟁을 많이 하지 않은 축에 든다. 몽골이 고려를 屬國으로 만든 13세기 두 번 元과 고려의 연합함대가 일본을 침공한 적이 있다. 그리고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친 임진왜란.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한 서기 676년 이후 1334년간 두 나라 사이에 소규모 충돌은 많았지만 國力을 총동원한 본격적인 전쟁은 세 번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유럽에 비교하여 사이가 크게 나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약 100년 사이에 여섯 번의 전쟁을 하고도 지금은 형제국처럼 친하다. 그렇게 지독하게 싸웠던 英佛, 獨佛도 친하다. 지난 200년간 독일과 프랑스는 大전쟁을 네 번 치렀다. 나폴레옹 전쟁, 普佛전쟁, 1·2차 세계大戰.

한국의 역사는 외국에 비교하여 전쟁이 매우 적은 편에 속한다. 局地的(국지적) 침공을 빼면 전쟁다운 전쟁을 한 것은 신라 통일 이후 열 번 내외이다. 같은 기간 프랑스는 아마도 100회가 넘을 것이다.

전쟁을 많이 한 나라가 산업을 발전시키고 문화예술을 꽃피우고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전쟁은 비참하지만 인간을 벼랑에 세움으로써 단련시키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이 없으면 국민국가는 없고, 혁명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없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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