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지도층과 조선 지도층의 차이

자주정신과 사대주의, 실용정신과 名分論의 차이.
1627년 음력 1월29일 남한산성에서 농성중이던 인조는 주화파 최명길을 淸軍 진영으로 보냈다. 최명길은 淸에 대한 강경론으로 병자호란을 부른 책임이 있는 오달제 윤집을 데리고 갔다. 청태종은 두 사람에게 '너희들은 무엇 때문에 두 나라 사이의 盟約을 깨뜨리게 했느냐'고 물었다.

오달제가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300년 동안 명나라를 섬겨왔소. 명 나라가 있다는 것만 알 뿐 청나라가 있다는 것은 모르오. 청국이 황제를 참칭하고 사신을 보내왔으니 諫官의 몸으로 어찌 화친을 배척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오.'라고 했다. 윤집은 '우리나라가 天朝(명나라)를 섬겨온 지 이미 300년이나 되어 의리는 임금과 신하요, 정은 아버지와 아들이오. 더 할 말이 없으니 속히 나를 죽여주시오'라고 말했다.

두 충신은 말은 기개가 있으나 답답하기 그지 없다. 漢族 나라 明에 대한 충성과 일편단심만 보일 뿐 그들이 불러들인 전쟁으로 죽어나가고 있던 백성들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망해가는 明에 대한 일편단심은 在野 선비가 해야 할 일이지 在朝의 관리가 할 일은 아니었다. 국제정세에 대한 무지, 외교와 군사에 대한 무지, 백성들에 대한 무관심만 보여주는 조선조 엘리트의 수준이다.

민족사의 극과 극을 이야기하라면 對唐 결전으로써 唐軍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민족통일국가를 완성한 문무왕, 김유신 등 7세기의 신라 지도부가 最上이다. 최악은 사대주의와 위선적인 명분론에 혼을 빼앗겨 할 필요가 없는 전쟁을 초대하여 王朝도 民生도 도탄으로 밀어넣었던 인조 시대의 집권세력이다.

신라 지도층과 인조 시절 지도층은, 같은 민족인데 어떻게 이처럼 다른 사람들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신라 지도층의 성격은 개방, 활달, 文武겸전, 풍류, 자주, 명예, 오기, 자존심, 품격으로 표현된다. 인조 지도층의 성격은 편협, 명분, 위선, 독선, 무능, 文弱으로 표현된다.

신라는 국가가 불교와 기능을 분담했다. 국가가 종교에 복종하지도 종교가 국가에 이용만 당하지도 않았다. 국가와 불교는 각기의 영역을 인정하면서 상호 협력하였다. 흔히 신라 불교를, 호국 불교라고 말하지만 통치 이데올로기화된 불교는 아니었다.

조선조 시대에는 주자학이 통치 이데올로기로 변했다. 정치가 주자학을, 주자학이 정치를 이용하면서 전례가 없는 守舊性과 명분성과 위선성을 보여주었다. 정치와 철학이 결탁하면 정치는 생동감을 잃고 철학은 흉기가 된다. 황장엽 선생이 개척한 인간중심의 철학이 정치와 결탁하니 인간말살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정치와 주자학적 명분론의 합작품이 병자호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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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淸으로 이름을 바꾼 後金은 조선에 大淸皇帝라고 불러줄 것을 요구했다. 조선조는 明에게 사대하고 있는 입장에서 의리상 그렇게 못하겠다고 버티었다.

이때 明은 이미 망해가고 있었고 大淸은 떠오르는 세력이었다. 광해군은 이런 국제정세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서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여 전쟁을 면했었다. 그런 광해군을 배신자라고 규정하여 쿠데타로 쫓아냈던 인조 조정은 明 황제 이외의 누구도 황제라 부를 수 없다는 명분론을 굽히지 않았다.

인조도 현실외교로써 淸과 화친하고싶었으나 명분론을 들고 나온 斥和派 신하들의 반발 때문에 淸과 대결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한 10개월간 계속된 인조 조정의 내부 노선 투쟁을 들여다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명분론은 청군의 침입을 부르는 초대장임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명분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전쟁 준비론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대사간 尹煌이 임금에게 전쟁준비를 건의하면 그 부하들인 사간원에서는 이런 건의를 올린다.

'요사이 병란의 기미가 이미 생겨 화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데, 하늘이 크게 재앙을 내려 수해와 旱災(한재)가 거듭 계속되니, 팔도의 생령이 모두 죽게 될 지경입니다. 그런데 전쟁까지 하게 된다면 국가가 반드시 망하게 될 것입니다.'

전쟁을 하지 않으려면 청이 요구하는대로 그들 황제를 大淸皇帝라고 불러주면 된다. 그렇게 하자는 주화파 崔鳴吉에겐 明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규탄해마지 않던 척화파가 자신들이 부른 전쟁에 대비하자고 하니 백성들의 고통 운운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대사간 윤황이 또 강화도의 무기와 전투식량을 평양으로 실어보내 평양에서 적을 막자고 건의한다. 비변사는 이 전쟁 준비 건의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가.
'그렇게 해야겠지만 民力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지 못한다. 억지로 일을 시키면 내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국가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人心 때문이다.'

할 필요도 없는 전쟁을, 시대착오적인 명분론을 앞세우다가 초대해놓고는 전쟁 준비를 하겠다니 '그러면 백성이 고생하니 하지 말자. 백성들을 혹사하면 내란을 일으킬지 모르겠다'고 하는 판이니 대책이 없다.

실제로 제대로 된 방어책이 없었던 仁祖 조정은 청군이 서울로 들어왔을 때에야 강화도로 달아나려고 했으나 길이 끊겨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인조로 하여금 그런 굴욕적 항복을 하도록 했더라면, 그리하여 수십만의 백성들이 淸으로 납치되어가는 비극을 불렀다면 신하들 중에 책임지고 자살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인데 아무도 없었다. 현실론을 앞세워 화친을 주장했던 최명길만 욕을 먹게 되었다.

전쟁을 모르는, 전쟁준비도 할 줄 모르는, 책임질 줄도 모르는 구제불능의 이런 타락한 지도층.

인조 때의 사대적 명분론과 요사이 한국 좌파의 민족공조론이 똑 같은 위선이다. 이 위선은 민족에게 참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망해가는 명의 정권에 대한 의리를 중하게 여기고 조선조 백성의 안전을 소홀히 여긴 점, 망해가는 북한 김정일 정권을 동족이라 착각하고 그에 대한 의리를 앞세우면서 우방인 미국을 배척함으로써 7천만 민족의 안전을 소홀히 하고 있는 점이 같지 않은가.

국제정세를 오판한 명분론으로 병자호란을 불러들인 척화파 선비들은 충신이 되고 현실적 판단에 따라 화친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배신자로 치부 된 것이 조선조의 또 다른 비극이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영웅으로 만들어버리니 진정한 반성도 책임규명도 불가능해지고 그런 과오의 메카니즘은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체질로 살아남아 조선조를 망하게 하는 데 일조했으며 지금은 한국을 망치지 않을까 걱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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