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議會는 아이슬란드의 바이킹 公會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議會(의회)는 바이킹이 만든 것이다. 노르웨이 바이킹들은 아이슬란드를 점령한 다음 서기 930년에 알싱이란 의회를 열었다. 36명의 추장과 12개의 小公會를 대표하는 측근들이 법을 만들고 재판을 하기 위하여 15일간의 會期(회기)를 가진 것이다. 사회를 본 사람은 법령을 기억하는 의무를 맡은 사람이었다. 한 독일사람은 이런 모임을 열어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을 보고 "그들은 왕이 없으나 법이 있다"고 말하였다.

기독교가 들어와 중앙집권적인 王이 등장하기 전 바이킹 사회에선 왕이 立法權(입법권)이나 司法權(사법권)이 없었다. 그런 권한은 公會에 있었다. 공회는 자유민들의 회의체인데, 부락, 지역 단위로 있었다. 이런 공회는 연간 한두 번 열렸다. 공개적으로, 민주적인 토론이 이뤄졌다. 재판도 이 공회가 맡았다. 기소된 사람은 자유롭게 자신을 변호할 수 있었다.

바이킹 사회는 노예와 부족장이 있긴 했으나 자유민이 주축이었다. 바이킹 자유민은 당대의 유럽 사람들보다 훨씬 큰 자유를 누렸다. 바이킹 사회의 평등성에 기반을 둔 민주성, 민주성에 근거한 力動性(역동성)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 스칸디나비아에서도 절대 왕조 시절이 있었으나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있는 專制者(전제자)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절대王權이 무너지고 立憲(입헌)군주제로 변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혁명이나 암살, 內戰도 별로 없거나 심하지 않았다.

오늘날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이 보여주는 평등, 자유, 복지의 모델은 바이킹 사회의 전통에 뿌리박고 있는 듯하다. 바이킹族은 가족애가 강하였다. 가족의 一員(일원)에 대한 모독은 가족 전체에 대한 것으로 간주되어 보복을 불렀다. 가족으로부터 추방당하는 것이 가장 가혹한 형벌이었다.

겨울이 길어 사람들은 집안에서 오랫동안 같이 살아야 했다. 바이킹들은 필요한 것을 집안에서 手工業的(수공업적)으로 만들었다. 집집마다 工具가 있고, 큰 집은 철공소를 운영하였다. 선박과 관련된 기술은 특정인의 專有物(전유물)이 아니었다.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긴 항해를 견디고 전투에서 이기기 위하여 그들은 비상한 '손재주'를 연마하였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의 바이킹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튼튼하고 정밀한 게 특징이다. 이런 실용주의 정신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이킹族은 항해, 무역, 전투가 特技(특기)였다. 프랑스와 독일처럼 한가하게 철학을 논할 여유가 없었다. 관념적 명분이 아니라 구체적 實利(실리)추구가 이들의 행동철학이었다. 바이킹과 노르만(프랑스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이 세운 여러 나라들은 거의가 一流국가가 되었다. 이들의 상무정신, 실용주의, 민주적 관습, 체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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