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을 유명하게 하는 것은 히말라야(셀파)와 함께 부처 구르카이다. 석가모니는 인도가 아니라 네팔의 룸비니에서 났다. 구르카는 용맹하기로 스위스 傭兵(용병)과 함께 세계 최강이다. 1815년 영국이 구르카 용병을 모집, 독립된 부대를 만든 이후 구르카는 영국, 인도, 싱가포르, 브루네이 등에 傭兵으로 고용되어 화려한 戰績을 남겼다. 지금도 영국엔 구르카 여단이 있다. 약3600명. 인도군에는 40개 대대 약10만 명이, 싱가포르와 브루네이에도 각 2000명이 근무중이다. 영국군 소속으로 제1, 2차 대전에서 싸웠다. 2차 대전에는 약25만 명이 참전, 3만 명의 戰死傷者를 냈다. 1차 대전 때는 20만이 참전, 2만 명이 죽었다. 오스만 터키의 갈리폴리 전투에서 영국은 苦戰하다가 철수하였는데, 구르카는 가장 먼저 상륙하였고 가장 뒤에 철수한 부대였다. 구르카 부대는 어디서 싸우든지 훈장을 가장 많이 받는 부대이기도 하다.
구르카 용병이 참전한 전쟁은 많다. 인도 주둔 영국군 소속으로는 시크 교도와 싸웠고, 아프간 전쟁에도 투입되었다, 영국군의 일원으로 두 차례 세계전쟁에서 활약하였고, 대전 이후 말레이시아 정글에서 공산 게릴라를 토벌하는 데 앞장섰다(태평양 전쟁 때도 정글에서 잘 싸운다는 일본군을 누른 것이 구르카이다). 1980년대 포클랜드 전쟁에도 참여하였다. 유엔의 평화유지군에 연인원 10만 명을 파병, 이라크, 시에라 레온, 소말리아 등 여러 곳에서 전투 및 평화 유지 임무를 맡아왔다. 한국전에 투입되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회수로 최근 200년간 가장 많은 전투에 참여한 군대는 구르카일 것이다.
구르카는 네팔의 산악 지역이다. 이 종족은 몽골계 티베트인들이다. 고산 지대에서 살아 폐활량이 크고 인내심이 강하며 상관에 대한 복종심은 절대적이다. 지금도 바티칸을 지키는 스위스 용병처럼 역경에서 끝까지 목숨 바쳐 싸우는 게 특징이고 자랑이다.
구르카 왕국은 18세기에 네팔을 통일, 2008년까지 다스린다. 이 王朝의 종족적 뿌리를 캐면 몽골계인 훈족으로 이어진다. 구르카의 尙武정신은 북방 유목 민족의 군사적 전통과 이어져 있는 듯하다. 네팔은 인도와 중국 사이에서 한 번도 식민지가 된 적이 없다. 영국의 침략도 격퇴하였다. 19세기 초, 구르카 왕국과 싸워본 영국인들은 이들의 용감성에 탄복하여 용병으로 쓰게 되었다.
구르카의 상징은 쿠쿨리라 불리는 還刀(환도)이다. 무게 900g, 길이 50cm 정도이다. 구르카 용병은 이 칼을 반드시 차고 다닌다. 총을 들어도 칼은 놓지 않는다. 백병전에서 이 칼을 잘 쓴다. 구르카 군의 전과 보고에는 이런 식의 글이 자주 나온다고 한다.
<적군 10명 죽임, 아군 피해 無(무), 탄약 사용량 無(무).>
총을 쓰지 않고 칼로 죽였다는 이야기이다.
2010년 아프간에 파견된 영국군 소속 구르카 병사 한 명은 혼자서 부대를 지키다가 습격한 30명의 탈레반을 상대로 싸워 전원 사살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해 인도에선 인도군 소속의 구르카 부대에서 전역한 비수뉴 슈레스타라는 사람이 열차를 공격하는 강도단 10명과 맞서 쿠쿨리 칼로 3명을 쳐 죽이고 나머지를 쫓아냈다.
싱가포르에 등장한 구르카 용병은 경찰군 소속인데 주로 對테러 및 요인 경호가 임무이다. 네팔은 인력 수출과 관광이 2대 산업이다. 10만 명 이상이 용병으로 외국에 나가 있다. 구르카 용병의 월급은 약2000달러이다.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이 1000달러도 되지 않는 세계 최빈국이니 이는 대단한 돈벌이다. 용병 모집에 응하는 이들이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 엄격한 체력시험을 거쳐야 한다.
네팔 사람들은 순하지만 용감하다.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어도 정치 보복이 없으며, 인도가 수시로 국경을 봉쇄, 경제압박을 해도 정부를 중심으로 단결, 고통을 견딘다. 약1만6000명이 죽은 내전 끝에 王政이 타도되었지만 밀려난 왕은 카트만두에서 편하게 살고 있다. 용감하니 너그러울 수 있는 모양이다.
유럽에선 알프스에서 단련된 스위스 용병이 중세부터 武名을 떨쳤다. 특히 프랑스와 바티칸의 근위병으로 취직하여 죽음으로 主君을 지켰다. 히말라야의 구르카, 알프스의 스위스 용병, 역시 巨山이 勇士들의 보금자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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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이들은 와서 보고는 여러 번 놀란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 등 많은 도시들은 겨울에도 눈이 오지 않는다. 네팔이라고 하면 히말라야의 雪山을 떠올리게 되는데 춥지 않은 곳이다.
네팔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면적은 남한의 1.4배, 인구는 약3000만 명이나 된다. 국토의 84%가 山地라고 한다.
네팔에선 산이 삶의 중심이다. 산비탈은 계단식 밭으로 덮여 있고 능선엔 마을들이 있다. 평지의 삶에 익숙한 외국인들은 이게 신기해 보인다.
한국 등 대분의 나라가 수평국가라면 네팔은 수직국가이다. 한국에서 이동은 거의가 평야 지대에서 수평적으로 이뤄진다. 산이 삶터인 네팔에선 공간 이동이 上下로 이뤄진다. 20km의 수평 거리를 가는 데 서 너 시간이 걸리는 것은 길이 산과 계곡과 비탈을 오르락내리락 하기 때문이다. 기차선로가 없는 나라이다. 그 대신 공항과 항공노선은 많은데, 거의가 프로펠러 비행기이다.
해발 60m에서 8848m까지의 국토, 평균 해발은 약4000m이다. 그 이하는 산 취급을 하지 않는다. 산이라 부르지 않고 언덕이라 한다. 山村이 많아서 도로가 발달해 있다. 절벽 위의 마을까지 차가 들어간다. 물론 비포장의 둘레길 같은 도로이다. 기후도 수직으로 열대에서 寒帶까지 다양하다. 4계절이 年中 공존한다.
네팔은 한 번도 외세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다. 남쪽 인도와는 평야로 이어져 있어 인도 문화권이지만 인도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중국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와야 하는데 그렇게 하더라도 가져갈 게 별로 없는 나라이다.
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는 일본, 태국, 네팔 정도이다. 제국주의 국가의 東進 시대에 지도층의 주체성과 실용적 자세가 빛났던 나라이다. 식민지 지배의 경험이 없는 나라는 국민들이 가난하여도 착하고 용감하다. 네팔 사람들이 그런 인상을 주었다.
네팔은 동서 약600km, 남북 약250km의 사각형 나라이다. 북반부는 7000~8000m의 히말라야, 그 남쪽은 3000m 이하의 저지대(?)이다. 인구 약400만 명이 몰려 있는 카트만두가 이곳에 있는데 해발 1400m. 히말라야에 14개의 봉우리가 8000m 이상이다. 네팔엔 8개가 있다. 에베레스트, 칸젠중가, 로체, 마나슬루, 초오유,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순서이다. 히말라야 산맥 2500km 중 약 1500km가 네팔을 지난다. 히말라야는 나이가 1000만 년밖에 되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젊은 산맥이다. 인도 판이 티베트 판을 연간 5cm 속도로 밀어붙이니 바다 밑에 있던 지형이 융기하여 히말라야를 만든 것이다.
석가의 탄생지는 인도가 아니고 네팔의 룸비니이다. 네팔 사람들의 약87%는 힌두교, 티베트 불교가 10%, 이슬람 4% 정도이다. 타종교를 탄압하지 않는 인도-힌두 문화권이다. 한국 선교사들도 마음 놓고 활동한다. 네팔 사람들의 인종적 분류는 크게 두 가지이다. 서양 사람들의 얼굴을 한 인도 아리안 계통과 몽골 인종이다. 前者가 더 많다. 워낙 인종, 언어, 종교가 다양하여 네팔 사람 하면 평균적 얼굴을 떠올리기 힘들다.
산악지방에 사람들이 많이 살기에 人力 수출이 큰 산업이다. 한국에도 약3만 명의 네팔 노동자가 들어 와 있다고 한다. 중동에 많이 나가 있고 이들의 送金이 경제에 큰 역할을 한다. 특히 용병으로 많이 나가 있다. 인도, 영국, 그리고 유엔평화유지군으로.
구르카 용병은 인도, 영국군 소속으로 용감하게 싸웠다. 영국군으로 한국전에도 참전하였다고 한다. 구르카는 부족 이름이다. 군인이 용감하다는 뜻은 체력보다는 명령에 잘 복종하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는 의미이다.
네팔은 1990년대부터 모택동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王政 타도를 노렸다. 이 내전으로 반란군과 진압군이 약1만6000명 죽었다. 1768년 이후 약240년 간 지속되던 왕정이 국민들의 시위와 투표로 11년 전에 종식되었지만(지금은 연방공화국) 퇴위한 왕은 감옥에 가지 않고 자유롭게 살면서 정치적 발언도 한다. 內戰 시기의 사건을 문제 삼아 보복을 주고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우리로서는 신기하다.
지금 집권세력은 마르크스-레닌-모택동 노선 추종자들이지만 ‘피의 숙청’을 하지 않고 선거를 통한 의회민주주의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사회민주주의에 가깝다. 공산주의가 어떤 역사적 토양과 맺어지는가에 따라서 행동 양식이 크게 다르다. 러시아의 차르 전제주의 전통과 결합된 소련 공산주의, 유교적 전통과 결합된 중국과 월남 공산주의, 유교 중에서도 극단적인 원리주의인 주자학적 전통과 결합된 북한식 공산주의, 그리고 서구 기독교 문명과 결합된 프랑스, 이탈리아 식 공산주의, 천황제와 무사지배의 전통에 移植된 일본 식 공산주의. 최악의 조합은 주자학과 만나 수령 지배체제를 이룬 북한일 것이다.
흔히 인도를 세계 최대의 민주국가라고 부른다. 수상이 암살 되고 인종 폭동이 일어나도 의회민주주의를 포기한 적이 없다. 제도를 중시하는 영국의 지배를 받은 이유도 있겠지만 힌두교가 민주주의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민주주의와 힌두교의 가장 큰 공통점은 다른 것들에 대한 관용이다.
여행 중 만난 현지 가이드들이 많은데 특히 인도와 네팔 사람들의 한국어 실력이 놀랍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와 언어 환경에서 살다가 보니 여러 언어를 이해하고 쓰게 되었고 생래적 언어능력으로 유전인자화된 듯하다. 단일민족이 아니면서 단일민족을 강조하고, 한자까지 배척하면서 한글전용으로 질주하는 한국인의 純血主義的 위선이 한국인의 외국어 습득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민주주의 발전에도 결정적 장애가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의 김일성주의와 남한의 주사파는 악마적 공산주의와 가짜 민족주의(純血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인종주의, 즉 racism이다. 이는 인류의 公敵이다.)가 교배하여 낳은 어둠의 자식들이다.
통계상 네팔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축에 든다. 명목상 1인당 국민소득은 824달러, 186개국 중 163등이다. 삶의 질과 평균 壽命도 최하층이다. 도시에선 이런 가난을 느끼기 어렵지만 山村의 삶은 한국의 50년대 수준이다.
히말라야는 엄청난 水量의 창고이다. 여기서 發源하는 인더스, 갠지스, 브라마푸트라 강은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를 거치면서 인도양으로 들어간다. 流域에 발달한 평야가 약17억의 인구를 부양하는 데 가장 큰 젖줄 역할을 한다. 히말라야는 관광이나 등산의 대상일 뿐 아니라 위대한 문명의 원천이다. 네팔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神처럼 받들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트럼프-김정은 경호병력으로 등장한 구르카 傭兵 이야기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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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06, 21: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