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는 프랑스의 전성기였다. 그 100년간 프랑스의 국토는 세 배로 늘었다. 필립 아우구스투스 왕은 노르만 왕조가 다스리던 플랜태저넷 제국의 프랑스 내 영토를 거의 흡수하였다. 프랑스의 라이벌들은 고전(苦戰)하고 있었다. 독일은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지금의 스페인 땅에선 아직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1300년 무렵 프랑스의 인구는 약 2000만 명이었다. 서유럽 인구의 약 3분의 1이 프랑스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臣民들이었다. 프랑스에서 건너간 노르만 전사(戰士)들이 정복한 잉글랜드 인구는 프랑스의 약 4분의 1이었다. 파리 인구는 23만. 유럽에서는 최대의 기독교 도시였다. 이슬람 세력이 다스리던 스페인의 코르도바가 인구 50만의 최대 도시였다. 파리에서 발전한 고딕 건축은 유럽 전역(全域)으로 퍼져나갔고(이 전성기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노트르담 성당이다), 파리 대학은 유럽 지성(知性)의 중심이었다. 프랑스어는 잉글랜드, 플랑더스, 나폴리, 시실리, 헝가리의 궁정에서 공용어였다.
14세기가 열렸을 때 유럽 문명의 중심으로서 프랑스의 미래는 경제, 군사, 종교, 예술 등 모든 면에서 창창하였다. 그 뒤 150년간 프랑스는 어떻게 되었는가? 서기 1400년 프랑스의 인구는 100년 전에 비하여 반으로 줄었다. 흑사병과 함께 100년 전쟁이 찾아온 것이다. 궁술(弓術)을 발전시킨 잉글랜드 군대는 프랑스 내의 실지(失地)를 되찾기 위하여 수시로 프랑스를 침공, 병력이 몇 배나 되는 기사군단을 상대로 연전연승(連戰連勝)하였다. 한때 프랑스는 수도가 점령당하고 왕은 포로가 되어 국가로서 존립이 의문시당하기도 하였다. 외침을 당하면 서로 싸우던 지배층이 단결하는 게 정상인데 프랑스는 분열하였다. 프랑스의 몰락을 분석한 피터 투르친은 《전쟁과 평화와 전쟁》이란 제목의 책에서 프랑스 몰락의 원인을 국가 단합력의 붕괴에서 찾았다.
<조지 푸텐함은 1589년에 이런 말을 하였다.
“평화는 풍요를 만든다. 풍요는 자존심을 키우고, 자존심은 분쟁을 부른다. 분쟁은 전쟁을 부르고 전쟁은 약탈을 부른다. 약탈은 가난을, 가난은 참을성을, 참을성은 평화를 부른다. 그리하여 평화는 전쟁을, 전쟁은 평화를 부른다.”>
장기간의 평화는 번영을 부르지만 이게 분쟁과 전쟁의 씨앗이 된다는 것이다. 토마스 칼라일은 《영웅 숭배론》의 서문에서 비슷한 관찰을 하였다.
<인간은 역경을 이기는 이가 100명이라면 풍요를 이기는 이는 하나도 안 된다.>
이븐 칼둔이라는 아랍 학자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역사(문명과 야만의 대결)를 관찰하고 국가의 흥망을 관통하는 원리로서 ‘아사비야(asabiya)’를 제시하였다. 아사비야는 공동체의 핵심그룹이 가진 단합력을 뜻한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하여 기꺼이 싸우고 죽겠다는 결의이다. 아사비야가 강한 쪽은 사막 거주 부족이다. 이들은 가혹한 자연 환경 때문에 단합력이 약하면 생존이 어렵다. 반면 농촌이나 도시 거주자는 아사비야가 약하다. 성벽으로 보호를 받고 생산성이 높은 농토를 가져 긴장감이 떨어진다.
가난하면서도 투지가 있는 쪽과 富者이면서도 단결력이 부족한 세력이 접경하면 전자(前者)가 후자(後者)를 친다. 인구는 적어도 군사적 동원력이 강한 前者가 이기는 경우가 많다. 세계사를 보면 전자(前者)에 해당하는 것이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족, 중동의 아랍족, 동아시아의 흉노·돌궐·몽골, 유럽의 게르만과 바이킹이다. 후자(後者)는 그리스, 로마, 중국의 한족(漢族) 국가 등일 것이다. 북방의 유목민족이 중국의 북부지방을 약탈한 5호16국 시절, 훈족과 게르만족의 로마 침공, 아라비아 사막에서 일어난 이슬람 세력의 대폭발, 바이킹의 유럽 침공, 몽골의 팽창, 여진족의 중국 점령 등이 문명과 야만의 대결에서 굶주린 군대가 배부른 군대를 누르고 정복 왕조로 군림한 예이다.
일단 문명국가를 정복한 야만 세력이 장기간 집권하면서 문명화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다가 서서히 아사비야를 잃게 된다. 풍요가 자존심을, 자존심이 분열을, 분열이 전쟁을 부르는 순환 과정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한반도에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핵무기를 가진 굶주린 군대와 미국에 의존하는 배부른 군대가 맞서고 있는 한반도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는 아사비야, 즉 지도층 내부 단결력의 존부(存否)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이다.
세계사에서 가난하면서도 단합이 잘 된 나라가 잘 살기 때문에 단합이 안 된 나라를 쳐서 이긴 경우는 너무나 많다. 가난한 신라가 잘 사는 백제를 쳐서 통일하고, 야만의 금(金)이 중국 역사상 가장 잘 살았던 북송(北宋)을 멸망시켰으며, 월남이 월맹에 먹혔다. 남과 북이 대결하면 거의가 북이 이기는 것도 추운 지방에서 단련된 민족의 단합력이 강했던 덕분이다.
오늘날 한국의 위기는 가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풍요에서 나온 것이다. 풍요에서 생긴 분열심, 이기심, 증오심이 국민정신을 타락시키는데 민족, 평화, 민주, 복지라는 달콤한 낱말들이 동원도었다. 1977년 김일성은 평양을 방문한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에서 예언적 이야기를 했다.
“남한에서 민주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환영합니다. 반공주의자가 정권을 잡더라도 노동자·농민들이 활동하기 편해지니까요.”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대남(對南) 공산화 공작의 핵심 전략은 ‘민족’과 ‘민주’의 가면을 쓰고 민주화 분위기를 역이용하여 한국의 권력구조를 내부로부터 장악, 반공자유민주체제를 껍데기로 만드는 것이었다. 최근의 사태는 한국인의 정신을 공략한 이 작전의 성공을 증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