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안트워프는 항구로 유명하다. 16세기 전성기엔 런던을 능가하는 유럽 최대의 무역항구였다. 지금도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 이어 유럽 제2위의 물동량을 자랑한다. 프랑스에서 발원한 스켈트 강이 이 도시를 거쳐 북해로 들어간다. 인구는 약 50만 명으로 브뤼셀 다음이지만 네덜란드어권의 중심으로 권위가 있다.
어제 이 도시를 다녀왔다. 안트워프는 1894년에 세계 박람회를, 1920년엔 하계올림픽을 주최했다. 16세기 알프스 북쪽에선 파리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그때 인구가 약 10만. 세계 무역의 약40%가 이곳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지난 약 1000년에 걸쳐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플랑더르 지역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화려한 시청, 길드 하우스, 성당이 있고, 다이어먼드 가공센터가 시내 중심에 있다.
이웃한 브뤼헤 항구가 토사로 막히는 바람에 그곳의 상인과 상사들이 안트워프로 옮긴 게 번영의 원인이었다. 브뤼헤와 안트워프는 국제 무역도시였다. 특히 포르투갈, 스페인이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인도로 진출, 향료 은 原糖 原鑛을 수입, 안트워프로 가져와 상품으로 만들어 독일, 영국, 프랑스 등으로 팔기 시작하면서 발전했다. 안트워프 브뤼헤 겐트는 오랫동안 모직 등 상공업이 발달한 플랑더르 지방에 속하여 식민지 개척에 따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제도와 인력이 있었다. 상공업을 뒷받침하는 은행업과 상품거래소(세계 최초), 법치와 자유가 있었다. 영국 베니스 제노바가 투자했고, 16세기엔 개신교도와 유대인들이 많이 몰려와 상공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안트워프가 속한 네덜란드 지역은, 16~17세기, 합스부르크 왕조의 스페인 지배를 받다가 펠리페 2세가 종교개혁을 탄압하자 80년 전쟁으로 불리는 독립운동의 대격변으로 휩쓸린다. 1576년 스페인 군대가 안트워프의 개신교 세력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7000명을 학살하고 800채의 집을 불태웠고, 1578년부터 7년간은 개신교도들이 이 도시를 장악, 노트르담 대성당의 예배를 금지시키고 예술품들을 약탈하기도 했다. 1585년 스페인 세력은 안트워프를 탈환, 개신교도들을 추방했다.
이들은 신생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이주, 안트워프는 쇠락하고 암스테르담이 세계무역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프랑스의 개신교도인 위그노도 비슷한 시기 구교세력의 탄압을 피하여 네덜란드로 피난, '더치 황금기'를 연다. 개신교도와 유대인들은 상공업에 특출한 능력이 있어 이들이 많이 사는 나라와 도시는 발전한다.
지금 안트워프는 세계 다이아먼드 가공 부문에서 단연 1등이다. 16세기, 아프리카 인도 등에서 포르투갈 상인들이 가져온 원광을 가공, 비싸게 팔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유대인 등 수만 명이 지금도 이 분야에 종사하고, 연간 거래액은 수백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
네덜란드 독립전쟁 80년을 정리하는 1648년 뮌스터 조약으로 안트워프는 북해로 난 스켈트 강의 사용이 금지되어 국제항구로선 쇠락한다. 지금 벨기에 지역은 네덜란드 지역과 함께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하다가 중도퇴장했다. 끝까지 싸워 공화국으로 독립한 네덜란드와 달리 스페인과 타협, 그 지배를 수용한 것이다. 그런 변절에 대한 보복을 받은 셈이다.
스페인에 이어 오스트리아 지배를 받던 벨기에 지역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로 넘어간다. 1792년 프랑스 국민군이 쳐들어와 병합한 것이다. 나폴레옹은 노트르담 성당에 있던 루벤스의 그림을 파리로 가져가는 한편 안트워프를 재건하여 런던과 대항하려고 도크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지금의 벨기에, 즉 안트워프를 포함한 프랑스 지배 지역은 1815년 이후 네덜란드에 병합되었다가 1830년의 벨기에 혁명으로 분리, 독립하여 벨기에 왕국이 되었다. 이때 네덜란드가 진압군을 보내려 했으나 프랑스가 벨기에 독립을 지지, 좌절되었다. 독립선언 이후 군대를 보냈으나 프랑스군이 막았다. 네덜란드는 안트워프 요새에는 군대를 배치, 도심을 감제하고 있었다. 1832년 프랑스 군은 이 요새를 포위, 네덜란드군의 항복을 받았다.
벨기에는 주민의 약 40%가 프랑스어를 쓰고, 약 60%는 네덜란드어를 쓴다. 프랑스의 영향이 큰 것은 독립을 도운 일과 관계 있다. 네덜란드가 벨기에 독립을 인정한 것은 1838년이었다.
벨기에는 독립 이후 중립을 선언했으나 1·2차 대전에서 프랑스를 점령하려는 독일군의 진격통로가 되어 공격과 지배를 받았다. 벨기에는 '유럽의 싸움터'로 불렸다. 그 교훈으로 중립을 포기, 2차 대전 이후 NATO와 EU에 적극적으로 가세, 지금은 두 기관의 본부가 브뤼셀에 있다.
16세기 세계 최대 무역항은 안트워프였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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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23, 0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