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광화문 외교부 건물 뒤편에는 '종교 교회'가 있다. 무려 1908년에 설립된 이 교회 외벽에는 '종교 교회'라고 한글로 크게 써있는데, 일견 기독교나 불교, 힌두교 등의 신앙을 통틀어 지칭하는 '종교(宗敎)'가 떠오르지만 실은 다리 이름이다.
교회 이름이 된 '종교'란 명칭은 조선 중기 청백리 재상 형제 허종(許琮·1434~1494년), 허침(許沈·1444~1505년) 이름에서 유래한 '종침교(琮琛橋)'라는 다리 이름에서 왔다. 종침교는 내자동 71번지, 내자동과 적석동 사이를 흐르는 개울 위에 있었다. 그 다리가 있던 마을을 종침다릿골 또는 종침교를 줄여 종교동(琮橋洞)이라 일컬었고, 갑오개혁 때 동명(洞名)으로 사용됐음이 확인된다(한성부 서서 인달방 내수사계 종교·漢城府 西署 內需司契 宗橋). 이 '종교' 마을에 교회가 들어서면서 동명을 그대로 교회 이름으로 차용해 '종교 교회'가 된 것이다. 종교동은 일제시대 내자동과 적선동으로 분할 편입되며 사라졌다.
현재 종교 교회의 한자는 종침교에 쓰였던 옥홀 종(琮)이 아닌 마루 종(宗)으로 쓰고 있다. 이는 교회에서 임의로 바꾼 것이 아니라 갑오개혁 시기 확인되는 동명 종교에 쓰인 한자가 이미 마루 종으로 바뀌어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종침교와 관련된, 야사 한 토막. 허종, 허침 형제가 임금이 소집한 어전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때 형제의 누님이 하인을 보내 만나보기를 청했다. 형제를 만난 누님은 오늘 어전회의엔 불참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왜냐하면 성종이 폐비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형제는 종교동 다리를 건너다 말에서 일부러 떨어졌다. 낙상한 것을 빌미로 그날 회의에 불참했다. 훗날 연산군이 왕위에 올라 그 날 어전회의에 참석했던 신료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귀양 보냈다. 허씨 형제는 누님의 덕으로 아무런 화를 입지 않았다. 형제가 일부러 떨어져 다친 그 다리를 훗날 사람들이 종침교라 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