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부터 느닷없이 대한항공 폭파범 金賢姬를 가짜로 몰려는 세력들이 한 방향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기기묘묘하고 허황되고 가소롭고 가증스러운 의혹들이 기자, 聖職者(성직자)라는 직업을 가진 집단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MBC, SBS, KBS, 일부 유가족들, 일부 신부들, 일부 親정부 좌경매체들, 의혹제기전문가들이 이 '마녀사냥' 분위기를 주도하였다. 김현희씨는 사는 집이 MBC-PD 수첩에 노출되자 피신하였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은 대체로 親정부 좌경 조직이었다. 마녀사냥의 분위기를 활용한 국정원은 2004년에 대한항공 폭파사건을 의혹사건으로 규정, 재조사 항목에 넣었다. 국정원은 김현희를 불러 신문하려고 집요하게 압박하였으나 金씨 부부는 이를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국정원은 의혹제기자를 조사관으로 채용하고, 많은 국가예산을 낭비한 끝에 2007년에 대한항공 폭파 사건의 진실은 변함이 없다는 발표를 하였다. 그 뒤 지금까지도 진실화해위원회는 또 다시 이 사건을 의혹사건으로 규정, 김현희씨를 조사하려 하고 있다. 김현희씨에게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김씨 부부에겐 아직 정권이 교체되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李東馥 전 국회의원, 月刊朝鮮, 그리고 일본의 NHK가 金씨의 기구한 사정을 알리고 李明博 대통령이 관심을 표명하자 韓日 정부의 합의로 김현희-다구치 야에코(리은혜) 아들의 만남이 성사될 것 같다. 노무현 좌경깽판 정권하에서 기고만장하였던 의혹제기자들은 국가예산을 낭비하게 하고 국민들의 머리를 어지럽힌 代價를 치러야 하고, 치르게 하여야 한다.
예컨대 2003년 12월18일자 오마이뉴스(인터넷매체)에는 <'잠적한 김현희, 현상금 29만원에 긴급수배'. KAL가족들, 19일 낮 연희동 전 전대통령 집앞 골목시위 예정>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필자는 정지환 기자이다.
[KAL858기가족회(회장 차옥정)와 KAL858기사건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위원장 김병상 인천교구 신부)가 12월19일 오전 11시30분 전씨의 자택이 있는 연희동 골목길 입구에서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국민 길거리 홍보전'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연다는 예고기사였다. 故박명규 기장의 부인이자 KAL가족회 회장인 차옥정씨는 '대국민 홍보전'을 준비하게 된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고 한다.
'다양하면서도 입체적인 방식의 홍보전을 펼치면서 서명운동과 모금운동을 병행해, 진상규명과 의혹해소를 염원하고 촉구하는 국민여론을 조성해 나갈 것이다. 서울시내 중심가에서 합법적 방식으로 지속적인 홍보전을 펼쳐나가되 필요할 경우에는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과 KAL 청사는 물론이고 정형근, 최병렬 의원 등 이 사건과 관련된 정치인들의 자택이나 사무실 앞에서 기습적인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여론을 환기시키는 충격요법도 활용할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따라서 김현희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으면서 진상규명의 발목을 잡았던 '남자들'은 당분간 꿈자리가 어수선해질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실제로 KAL가족회 관계자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KAL기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주사파'라고 매도했던 정형근 의원만은 끝까지 쫓아가 책임을 묻는 한편 115명의 원혼의 이름으로 다음 총선에서 반드시 심판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다(상자기사 '김현희와 남자들' 참조)>고 보도하였다.
정지환씨는 <'MBC 'PD수첩'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공중파 방송의 시사프로에서 잇따라 이 사건의 전말과 의혹을 용기있게 보도한 이후 적지 않은 국민들이 전두환 독재정권의 정보기관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이 사건을 조작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을 하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고 썼다. <시민대책위의 한 실무자는 12월 19일 시위대가 '살인마 전두환은 잠적한 김현희 내놔라' '긴급수배 김현희, 현상금은 29만원' '정권초기 광주학살, 정권말기 KAL기학살' 등의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이 담긴 현수막과 피켓을 준비하는 한편 전두환과 정형근씨가 도망자 김현희씨를 감싸고도는 퍼포먼스도 연출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아래와 같은 엄청난 왜곡을 하였다.
<예컨대 김현희가 '북한 출신 공작원'이 분명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결정적 증거라며 안기부가 자신있게 공개했던 '꽃을 든 소녀' 사진도, 김현희의 아버지라고 발표했던 김원석의 직책인 앙골라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수산대표도, 김현희가 유럽에서 북한 공작원 아지트와 연락하기 위해 점자식으로 암호화했다는 전화번호도 거의 모두 가짜였음이 외국 정부와 언론의 추적에 의해 밝혀졌다>
안기부가 최초에 공개한 사진은 잘못 되었으나 그것을 계기로 사진찾기에 나선 일본언론에 의하여 2003년 현재 김현희가 꽃을 들고 있다가 찍힌 사진은 이미 확정된 사실이었다.
이 기자는 名文을 쓰려고 한다.
< '큰 침묵의 바다를 건너왔다.' 지난 11월 29일 열린 16주기 추모식에서 차옥정 가족회 회장이 했던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큰 침묵의 바다' 건너편에서 '큰 진실의 언덕'과 만날 수 있을까. 오는 12월 1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택이 있는 연희동 골목길에서 우리는 그 가능성의 일단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만난 것은 '진실의 언덕'은 맞는데, 그 진실은 의혹제기자들과 오마이뉴스를 어둠의 바다에서 난파시켜버리는 진실이었다. '꿈자리가 어수선해질 각오를 해야 할' 사람은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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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유족들, 北에 11억5000만 달러 배상 요구해야
-팬암機 폭파 사건 때 리비아가 사망자 1인당 1000만 달러 배상. 일부 유족들이 김현희를 가짜로 몰아 북한정권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려는 것은 장래의 보상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종의 自害행위이다.
趙甲濟(조갑제닷컴)
1987년 11월29일 김정일의 지령을 받은 金勝一(김승일)-金賢姬(김현희)가 바그다드發 서울行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機를 공중폭파시켜 115명을 죽게 한 사건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김현희가 생포되어 범행 일체를 자백함으로써 북한정권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방해하려 하였던 서울올림픽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서울올림픽에 소련과 공산권 국가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평화무드를 확산시켜 그 이듬해 東歐(동구) 공산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미국은 북한정권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려 작년까지 제재를 계속하였다. 서울올림픽에 대응하여 북한이 주최한 1989년의 세계청년 축전은 약50억 달러의 낭비성 투자를 초래하여 북한경제가 망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이든 국가든 나쁜 마음을 먹으면 망한다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김현희는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리은혜라는 假名(가명)의 일본인 납치자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일본경찰은 리은혜가 다구치 야에코라는 여성임을 밝혀냈다. 이것을 계기로 일본인 납치문제가 공식화되었다. 1990년 일본 政界(정계)의 실력자 가네마루가 김일성을 찾아가 만나 日北(일북)수교 회담이 시작되었으나 리은혜 납치 문제가 등장, 중단되었다. 김정일은 日北(일북)수교로 100억 달러 정도의 자금을 조달하려고 2002년 9월 訪北(방북)한 고이즈미 수상에게 다구치 야에코를 비롯한 일본인 납치자의 명단을 공개하고 생존자 5명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일본의 언론과 여론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日北수교는 커녕 對北(대북)경제제재로 발전하였다. 김정일은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으로 스스로 판 구덩이에 더욱 깊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1987년 이후 북한정권이 아웅산-대한항공 폭파 같은 대규모 테러를 하지 않고 있는 것도 김현희의 폭로 덕분이다.
이런 정치, 외교적인 영향 이외에도 이 사건은 많은 교훈과 쟁점을 남겼다.
1. 김현희가 들고 다녔던 두 개의 폭탄은 플라스틱 폭약(C-4 추정)이 든 라디오 폭탄과 PLX 성분(추정)의 액체 폭탄(양주병으로 위장)이었다. 이 두 개의 고성능 폭탄은 공항 검색대의 엑스레이 투시기로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2. 1988년 영국 로커비 상공에서 발생한 미국의 팬암 소속 보잉 747 폭파사건(270명 사망)에서도 약300g의 플라스틱 폭약(Semtex)이 든 라디오 폭탄이 사용되었다.
3. 김승일-김현희는 일본인 父女로 위장하였으나 현지 안기부 직원, 서울 안기부 본부, 그리고 일본정부의 신속한 정보협력에 의하여 북한공작원으로 확인되어 폭파조가 현지를 이탈하기 직전에 체포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정부가 체포, 수사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4. 유럽의 북한공작 거점이 노출되었다.
5. 미국 CIA가 유럽의 조직망을 활용하여 안기부의 수사를 지원하였다. 한국정부와 맨첨 수교한 동구의 헝가리도 협조적이었다.
6. 안기부의 수사는 미국 등 관련국의 도움과 김현희의 정확한 증언에 의하여 거의 완벽하게 이뤄졌다. 이 덕분에 북한정권과 남한좌익들의 의혹제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김현희를 살려주기로 결정한 것도 적절한 조치였음이 증명되었다.
7. 1998년 이후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國情院의 성격이 변하고, 친북좌익들이 김정일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터무니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MBC KBS SBS가 이를 지원하였음에도 김현희가 잘 버티고 일반 국민들이 현혹되지 않았다.
8. 2008년에 부시 행정부가 北核 해결을 위하여 북한정권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해준 것은 좌파 정부와 언론이 이를 반대하는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유가족들은 북한정권에 대하여 책임자 처벌, 사과, 보상을 요구하였어야 했다. 2003년부터 좌파정권의 응원하에 친북좌익들이 본격적으로 제기하였던 'KAL기 폭파 사건 조작설'이 미국측에 '해제반대'를 요구할 분위기를 말살시킨 면도 있다.
9. 리비아는 팬암기 폭파사건으로 국제봉쇄를 당하자 犯人을 영국으로 인도하고 유족들에게 27억 달러를 배상하였다. 미국은 이에 대한 보상으로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리비아를 빼주고 단절되었던 國交를 정상화하였다.
10. 따라서 한국정부와 유족들은 남북한 관계의 정상화 과정에서 북한측에 적어도 11억5000만 달러(사망자 1인당 1000만 달러)의 배상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일부 유족들이 김현희를 가짜로 몰아 북한정권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려는 것은 장래의 보상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종의 自害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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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영웅
2007년 10월에 발표된 國情院 과거사 조사위원회의 대한항공 폭파사건에 대한 최종 보고서에는 범인 金勝一, 金賢姬를 신속하게 추적, 공항에서 아슬아슬하게 체포하도록 하였던 안기부 쿠웨이트 파견관의 활약상이 소개되어 있다. 이 사람이 없었더라면 두 테러리스트는 로마로 빠져나가 북한으로 귀환하였을 것이고, 이 사건은 영구 미제 사건이나 안기부의 自作劇으로 남아 한국 정부를 괴롭혔을 것이다. 음지에서 일하는 정보요원으로서 아직까기 그 이름이 공개되지 않고 있는 이 파견관은 우리들의 영웅이다. 그는 시간을 다투는 상황에서 기민하게 현지 기관들을 통제하여 일본인으로 위장한 두 북한공작원의 정체를 밝혀내도록 함으로써 김정일의 음모를 분쇄하였고, 결과적으로 서울올림픽을 보호하고 북한정권에 심대한 타격을 준 혁혁한 공을 세웠다. 國情院은 '匿名에의 정열'을 불태운 이 사람을 국민들에게 알림으로써 좌파정권 때 저질렀던 과오와 실추된 이미지를 조금이라고 씼어야 할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 파견관은 <1987.11.29 오후(현지시간, 이하 동일) UAE 두바이로 출장중 두바이 공항에서 KAL858기 실종 소식을 듣고, 직무 경험과 旣 입수했던 첩보에 근거해 同 사건이 폭탄 테러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아부다비의 한국대사관과 대한항공 지점에 전화를 걸어 중간 경유 승객의 신원 파악을 요청, 11.29 밤 대한항공 직원과 UAE한국대사관 직원이 아부다비에 내린 KAL858기 중간 경유 승객의 신원과 행적을 파악한 결과, '비엔나-베오그라드-바그다드-아부다비'를 거쳐 바레인으로 간 父女지간으로 보이는 신이치와 마유미를 발견>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11.30 오전 UAE 한국대사관에 도착한 안기부 쿠웨이트 파견관은 이전 일본에서의 근무 경험으로 신이치와 마유미가 일본 이름임을 바로 파악하고, 兩人의 수상한 旅程과 함께 입국 금지자 명단에 야카베 마유미가 등재돼 있는 점 등의 이유로, 대사관과 대한항공을 통해 본격적으로 兩人에 대한 추적을 개시, 11.30 오후 UAE 한국대사관은 UAE 일본대사관을 통해 兩人의 신원 파악을 의뢰하는 한편, KAL 바레인 지점은 兩人의 바레인 입국 사실과 Full name, 여권번호, 리젠시 호텔 투숙 사실 등을 파악했고 KAL 아부다비 지점은 이들의 이전 행적지 투숙 장소 등을 파악, 11.30. 21:30분경 駐바레인 한국대사관 대사대리는 兩人의 투숙 호텔 방을 방문, '하치야 신이치'와 필담을 나누는 등 거동수상 여부를 확인했으나 특이사항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한국의 대사대리는 誤判하였으나 <12.1 새벽 일본정부로부터 '하치야 신이치'의 여권이 위조된 것임을 통보받은 駐바레인 일본대사관은 바로 리젠시 호텔을 방문해 공항으로 향하는 兩人을 추적, 바레인 마나마 공항 경찰에 兩人의 출국을 제지해 줄 것을 요청, 兩人을 검문하는 도중 공항 로비에서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가 飮毒, '신이치'는 현장에서 사망, '마유미'는 응급조치 후 회생, 바레인 수사기관에 체포>되었다. 안기부 요원의 활약에 의하여 일본 정부가 개입하여 폭파組를 체포하게 하였던 것이다. 일본정부가 결정적으로 한국을 도왔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현희는 그 일본정부에 報恩이라도 하듯이 납치된 일본인 여성 '리은혜'에 대하여 진술하였다. 일본 경찰은 '리은혜'가 '다구치 야에코'임을 밝혀냄으로써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 한일관계史에 남을 만한 협력이었다. 일본인 납치문제로 인하여 對南공작기지인 조총련이 사망 일보 직전까지 몰려 있고, 日北 수교도 늦춰져 일본의 자금이 북한으로 들어가 김정일 정권을 강화시키는 것을 차단하였다.
그런 점에서 안기부 쿠웨이트 파견관은 역사를 바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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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과거사 위원회의 조사 보고서 일부
Ⅳ 結論 및 意見
1. 사건의 실체
가. KAL858기 실종 경위
◦ 1987.11.28. 20:27(세계시간, 이하 동일) 바그다드 공항에서 승객 99명과 승무원 12명을 태운 KAL기(보잉707/HL7406기)는 20:42에 이륙, 동일 22:44에 중간 경유지인 UAE 아부다비에 도착
◦ 중간 경유 승객 15명(국적-이라크인 7, 팔레스타인 3, 미국인 2, 서독인 1, 일본인 2)과 승무원 9명이 내리고, 서울행 승객 11명과 승무원 17명 등 총 115명이 탑승 1987.11.29 아부다비 이륙
◦ KAL858기는 운항계획보다 2분 빨리 순항해 안다만 해상 위치통보 지점인 Tolis에서 1987.11.29. 04:31 인도 캘커타 관제소, 미얀마 랑군 관제소와 삼각교신, 04:59에 다음 위치통보지점인 Urdis에서 교신키로 랑군 관제소에 통보
◦ 04:59에 KAL858기로부터 교신이 오지 않자 랑군 관제소가 KAL858기를 호출해 05:02에 교신, KAL858기는 05:01에 Urdis를 지났고 05:22에 다음 위치통보지점인 Tavoy에서 교신하겠다고 통보했으나 이후 비상 신호도 없이 교신 두절되어 실종
나. 수색
◦ 실종 당시 미얀마의 레이더가 작동되지 않아 정확한 실종지점이 파악되지 않은 가운데, 당일 오후부터 미얀마는 예상비행지역(Urdis-Tavoy)의 해상 및 내륙을 수색하고, 태국은 미얀마와 태국 국경 산악지역인 칸차나부리 지역을 수색 및 탐문
◦ 11.29 밤부터 칸차나부리 지역 추락 풍문이 돌고, 11.30 아침 지역주민으로부터 추락 목격 신고가 들어와, 同 내용이 외신과 태국 정부를 통해 한국에 알려짐
◦ 11.29 심야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한 정부는 대한항공과 합동으로 관계기관 합동조사단을 구성 11.30. 07:20 대한항공 특별기편으로 방콕으로 출국
◦ 정부 조사단은 당시 추락 목격 신고가 들어온 칸차나부리 지역을 집중 수색했으나 발견에 실패, 수색이 장기화됨에 따라 정부 조사단은 현지 대사관과 대한항공에 수색작업을 인계한 뒤 12.10 철수
* 당시 추락목격 제보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으며, 同 허위제보들은 해당지역이 천둥, 번개를 동반한 스콜 현상이 잦고, 태국군의 사격 연습으로 인해 포성이 자주 울리던 지역으로서, 주민들의 착각에 의한 제보였던 것으로 추정됨
◦ 우리 정부의 수색 협조 요청에 따라 12.10 안다만海를 수색한 미군은 Narcondam 섬 주변에서 부유물을 발견, 한국과 인도, 미얀마가 비행기와 배를 동원 12.14-15간 그 해역을 수색했으나 수거에 실패
◦ 12.13 미얀마 랑군협동조합 소속 화물선 Dagon 1호가 KAL858기에 탑재돼 있었던 구명보트를 미얀마 남부 연안에서 인양하고 12.15 이 사실이 한국 측에 알려진 뒤, 대한항공과 한국 정부는 12.17 모든 수색을 종료
* 12.1 마유미가 체포된 뒤, 한국 정부와 대한항공의 수색 작업은 사고 원인 파악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폭발, 추락의 증거로서 KAL858기의 부장품을 찾는 것이 주목적이었기에 구명보트 수거 뒤 바로 수색을 종료했다는 판단임
다. 김승일·김현희 추적과 수사
◦ 1987.11.29 오후(현지시간, 이하 동일) UAE 두바이로 출장을 갔던 안기부 쿠웨이트 파견관은 두바이 공항에서 KAL858기 실종 소식을 듣고, 직무 경험과 旣 입수했던 첩보에 근거해 同 사건이 폭탄 테러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아부다비의 한국대사관과 대한항공 지점에 전화를 걸어 중간 경유 승객의 신원 파악을 요청
◦ 11.29 밤 대한항공 직원과 UAE한국대사관 직원이 아부다비에 내린 KAL858기 중간 경유 승객의 신원과 행적을 파악한 결과 '비엔나-베오그라드-바그다드-아부다비'를 거쳐 바레인으로 간 父女지간으로 보이는 신이치와 마유미를 발견
◦ 11.30 오전 UAE 한국대사관에 도착한 안기부 쿠웨이트 파견관은 이전 일본에서의 근무 경험으로 신이치와 마유미가 일본 이름임을 바로 파악하고, 兩人의 수상한 여정과 함께 입국 금지자 명단에 야카베 마유미가 등재돼 있는 점 등의 이유로, 대사관과 대한항공을 통해 본격적으로 兩人에 대한 추적을 개시
◦ 11.30 오후 UAE 한국대사관은 UAE 일본대사관을 통해 兩人의 신원 파악을 의뢰하는 한편, KAL 바레인 지점은 兩人의 바레인 입국 사실과 Full name, 여권번호, 리젠시 호텔 투숙 사실 등을 파악했고 KAL 아부다비 지점은 이들의 이전 행적지 투숙 장소 등을 파악◦ 11.30. 21:30분 경 駐바레인 한국대사관 대사대리는 兩人의 투숙 호텔 방을 방문, '하치야 신이치'와 필담을 나누는 등 거동수상 여부를 확인했으나 특이사항 없는 것으로 판단
◦ 12.1 새벽 일본정부로부터 '하치야 신이치'의 여권이 위조된 것임을 통보받은 駐바레인 일본대사관은 바로 리젠시 호텔을 방문해 공항으로 향하는 兩人을 추적, 바레인 마나마 공항 경찰에 兩人의 출국을 제지해 줄 것을 요청, 兩人을 검문하는 도중 공항 로비에서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가 飮毒, '신이치'는 현장에서 사망, '마유미'는 응급조치 후 회생, 바레인 수사기관에 체포됨
◦ '마유미'가 일본인이 아님을 확인한 일본은 사고기 등록국이자 최대피해국인 한국의 '마유미' 인수를 지원하는 방침을 정했고, 바레인 정부는 '마유미'를 직접 수사할 경우 발생할지도 모를 테러에 대한 우려와 한국 정부가 제시한 북한 테러 관련 증거 등의 이유로 한국 정부에 '마유미'를 인도키도 결정, 바레인 정부 사정으로 인해 두 차례에 걸친 인도 연기 끝에 1987.12.15 한국 정부에 '마유미' 인도
◦ 1987.12.23 '마유미'는 바레인 수사당국에서의 진술내용과 국내 압송 직후의 진술내용이 허위였음을 자백하고, 자신의 본명이 '김현희' 이고 북한공작원으로서 KAL858기 폭탄테러를 감행했다고 진술
◦ 안기부는 사고 원인과 범행 경위에 대한 초동수사가 미흡했음에도 주로 김현희 진술에 의존해 1988.1.15 수사내용 발표.
2. 결론
◦ KAL858기 폭파사건은 1988.1.15 안기부의 수사 결과 발표 직후부터 '안기부에 의해 기획된 자작극' 이라거나 '북한의 테러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저지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지속되어 왔음
◦ 이에 진실위는 지난 2005년 2월부터 이 사건과 관련 그동안 제기 되어 왔던 온갖 의혹에 대한 사실 여부를 규명하고자 국정원 등 관계기관의 존안 자료 분석과 관련자 면담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철저하고도 면밀한 조사 활동을 전개하였음
◦ 이 사건에 대한 조사는 김현희의 진술 외에 사건의 실체를 입증할 만한 증거물이 부족한 데다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된 북한에 대한 조사도 불가능해 조사에 어려움이 많았음
◦ 진실위는 이러한 열악한 조사 환경에도 불구하고
― KAL858기 실종 소식이 알려진 이후에 쿠웨이트, UAE와 바레인에 있던 안기부, 외교부 및 대한항공 직원들에 의해 사고기에 탑승했던 승객 중 유럽 행적이 특이한 두 金에 대한 추적이 시작되었고
― '기획된 자작극'의 당사자로 지목됐던 안기부는 두 金이 바레인 공항에서 음독자살을 기도한 이후 현지에 수사관을 파견하는 등 본격적으로 개입했음을 확인하였으며
― 특히 비록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를 직접 조사하지는 못했지만 하기와라 료가 1972.11.2 촬영한 花童사진 전량을 입수·분석하여 김현희가 북한 출신임을 확인하였고
― 이 사건의 배후에 북한의 對南 공작 조직이 있었으며, 그 조직의 공작원인 김승일과 김현희에 의해 자행된 사건임을 입증할 수 있는 정황과 근거들을 확인하였음
◦ 이에 따라 진실위는 이 사건의 실체가 북한에 의해 자행된 사건이며, 그 동안 제기되어 왔던 안기부의 '기획 조작'과 '사전 인지' 의혹 등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단서가 전혀 없는 점으로 보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
◦ 그러나 당시 안기부는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사건이 국가안보에 심대한 위협이 되는 사건이었음에도 김현희 진술에만 의존한 채 검증 없이 서둘러 발표함으로써 수사 결과에 일부 오류가 발생했고, 이것이 불필요한 의혹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었음
◦ 뿐만 아니라 당시 정부와 안기부는
―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사건을 여당 후보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선거 前에 김현희를 압송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으며
― 전국적인 '북괴 만행 규탄' 분위기 조성을 위해 내무부·안기부 등 10개 기관이 합동으로 'Task Force'를 운영하는 등 汎정부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 김현희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구제 활용방안을 검토하는 등 사건이 종결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사면을 추진했던 것으로 밝혀졌음.
― 한편 국정원은 2003년 이후 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여론이 다시 확산되자 2004년 범행 증거 확보와 추락 상황 재점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사건 관련 지역들에 직원을 보내 조사하는 출장을 가는 등 진상 규명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 이러한 국정원의 사건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한 지속적인 정보 수집 노력의 결과로 미얀마 안다만해 Heinze Bok 群島內 Taung-Pa-La섬 앞바다 해저에서 KAL858기 동체를 목격했다는 현지인의 증언을 청취하게 되었으며
― 비록 해양탐사 전문가를 동원한 두 차례에 걸친 정밀 탐사에도 불구하고 KAL858기 잔해를 발견하지는 못했으나, KAL858기가 그 해역에 추락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신빙성 있는 근거 자료들을 확보하게 되었음
― 그러나 KAL858기 잔해를 찾아내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유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큰 실망을 안겨 주게 된 점에 대해서는 정중한 사과의 말씀을 드림.
◦ 아울러 김현희가 십여 차례에 걸친 면담요청에도 불구하고 면담을 거부함으로써 김현희의 진술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의혹들과 함께 비행기 폭파에 사용된 폭발물 등 일부 사항들을 말끔하게 해명하지 못한 것은 진실위에 강제적 조사권이 없고, 또 일반적으로 비행기 폭파사건에 따르는 특성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남는 아쉬운 점이라 하겠음.
3. 위원회 의견
◦ 진실위는 이번 조사를 통해 'KAL858기 폭파사건'의 실체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벌어진 사건임을 확인하였음
◦ 따라서 앞으로는 이 사건의 실체와 관련해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란이 지속되지 않도록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중단하는 한편 관계 기관에서도 법적 공방 중단과 사건 관련 기록의 조속한 공개 등을 통해 그동안의 대립과 갈등이 종식되어 진정한 국민화합의 기틀이 마련되기를 희망함
◦ 또한 진실위는 정부가 김현희를 '역사의 산 증인'으로 활용할 목적 으로 특별 사면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당초 목적에 부합하는 진실위의 활동에 협조하지 않아 필요한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음을 고려하여 이에 대한 적절한 법적·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함
◦ 아울러 진실위가 나름대로 성실하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KAL858기 동체 발견에 실패하였으나 이후에도 관계기관에서 관심을 갖고 동체 잔해 등의 수색 노력을 지속해 주기를 요청함
◦ 국정원은 KAL858기 폭파사건’처럼 실체가 명백한 사건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경우 오히려 그 진정성이 훼손되고 사건의 실체에까지 불필요한 오해와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뼈아픈 교훈으로 새기고 다시는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어떠한 활동도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반성과 각오가 필요하며 나아가 국가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선진 정보기관으로서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분발할 것을 촉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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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국정원은 대한항공사건 재조사 보고서에서 김현희씨의 결혼, 은둔 생활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김현희의 결혼 및 은둔 생활 관련】
◦ 1990.6 안기부 작성. 김현희 사회 정착 관련 프로그램에 따르면
― 김현희가 아직까지 북한 및 국내 불순세력의 危害대상이라는 점을 고려, 1990.12까지 安家에 수용하고 91.1경부터 별도 주거지를 마련하여 시범적인 자율생활을 실시한 후
― 사회생활 익숙도 등에 따라 양부모 선정 또는 결혼 등 완전 단독 생활토록 처리하며, 結婚은 전적으로 김현희 희망을 존중한다는 방침을 마련
◦ 1997.5.10 안기부 수사관이 김현희를 보호 관리 중인 외고종조부 김○○(73세)를 접촉하고 보고한 문건에 따르면
― 외고종조부 김○○는 1995.4.1부터 김현희를 보호했으나, 김현희로 인해 정신적 건강(노출에 의한 불안, 내방자 경계, 경찰인원 배치 등)과 일상생활(親知 내방, 국내외 여행, 가족행사 등)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안기부가 데려가 재보호 조치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 이에 '1997.12월말까지 김현희의 완전 사회배출을 위한 방안을 마련토록 하겠음' 이라고 보고한 바 있음
◦ 1997.12.23 「김현희 결혼 관련 대책보고」에 의하면
― 김현희는 1965.5부터 前職 직원 정○○와 兩家(김현희는 외고종 조부 김○○)의 승낙 하에 결혼을 전제로 교제해 왔으며
― 추진 중인 手記 印稅(8억5000만원)의 KAL기 유족회 복지재단 출연을 12.25限 매듭짓고 유족들과 관계를 개선하는 한편
* 김현희는 강연 현장 등에서 수기 인세의 유족기금화를 공포한 바 있으며, 유가족회는 1996.3.24 안기부를 방문해 조기 유족기금화 등을 요구하였고, 1997.12.23 유가족 대표단 7명과 김현희측 변호인 등 참석 하에 手記 인세(8억5000만원)를 전달하고 김현희와 유족간 용서와 화해의 자리가 마련되었음.
― 외고종조부 김○○ 주도로 결혼·分家시키되, 유족과 국민들의 용서를 받을 수 있도록 반성하는 자세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혼 관련 대책을 검토
◦ 이에 따라 김현희는 1997.12.28 경북 경주시 소재 경주향교에서 兩家 가족 60여 명 참석리에 결혼식을 올렸음
◦ 김현희의 은둔 생활과 관련
― 1995.4 김현희에 대한 신병 보호 기관이 안기부에서 경찰에 이첩 되었고, 1997.12 결혼 후에는 실질적으로 안기부의 보호로부터 벗어난 것으로 파악되며
― 2003.11 「KAL기 사건」 16주기 당시 TV 방송사 등에서 거주지 및 시댁 등을 방문 취재하는 과정에서 신변 위협을 느끼고 피신 생활을 하고 있으며
― 진실위의 KAL858機 폭파사건 재조사와 관련 T/F(국정원) 및 진실위의 10여차에 걸친 면담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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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국정원은 대한항공사건 재조사 보고서에서 김현희씨의 결혼, 은둔 생활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김현희의 결혼 및 은둔 생활 관련】
◦ 1990.6 안기부 작성. 김현희 사회 정착 관련 프로그램에 따르면
― 김현희가 아직까지 북한 및 국내 불순세력의 危害대상이라는 점을 고려, 1990.12까지 安家에 수용하고 91.1경부터 별도 주거지를 마련하여 시범적인 자율생활을 실시한 후
― 사회생활 익숙도 등에 따라 양부모 선정 또는 결혼 등 완전 단독 생활토록 처리하며, 結婚은 전적으로 김현희 희망을 존중한다는 방침을 마련
◦ 1997.5.10 안기부 수사관이 김현희를 보호 관리 중인 외고종조부 김○○(73세)를 접촉하고 보고한 문건에 따르면
― 외고종조부 김○○는 1995.4.1부터 김현희를 보호했으나, 김현희로 인해 정신적 건강(노출에 의한 불안, 내방자 경계, 경찰인원 배치 등)과 일상생활(親知 내방, 국내외 여행, 가족행사 등)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안기부가 데려가 재보호 조치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 이에 '1997.12월말까지 김현희의 완전 사회배출을 위한 방안을 마련토록 하겠음' 이라고 보고한 바 있음
◦ 1997.12.23 「김현희 결혼 관련 대책보고」에 의하면
― 김현희는 1965.5부터 前職 직원 정○○와 兩家(김현희는 외고종 조부 김○○)의 승낙 하에 결혼을 전제로 교제해 왔으며
― 추진 중인 手記 印稅(8억5000만원)의 KAL기 유족회 복지재단 출연을 12.25限 매듭짓고 유족들과 관계를 개선하는 한편
* 김현희는 강연 현장 등에서 수기 인세의 유족기금화를 공포한 바 있으며, 유가족회는 1996.3.24 안기부를 방문해 조기 유족기금화 등을 요구하였고, 1997.12.23 유가족 대표단 7명과 김현희측 변호인 등 참석 하에 手記 인세(8억5000만원)를 전달하고 김현희와 유족간 용서와 화해의 자리가 마련되었음.
― 외고종조부 김○○ 주도로 결혼·分家시키되, 유족과 국민들의 용서를 받을 수 있도록 반성하는 자세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혼 관련 대책을 검토
◦ 이에 따라 김현희는 1997.12.28 경북 경주시 소재 경주향교에서 兩家 가족 60여 명 참석리에 결혼식을 올렸음
◦ 김현희의 은둔 생활과 관련
― 1995.4 김현희에 대한 신병 보호 기관이 안기부에서 경찰에 이첩 되었고, 1997.12 결혼 후에는 실질적으로 안기부의 보호로부터 벗어난 것으로 파악되며
― 2003.11 「KAL기 사건」 16주기 당시 TV 방송사 등에서 거주지 및 시댁 등을 방문 취재하는 과정에서 신변 위협을 느끼고 피신 생활을 하고 있으며
― 진실위의 KAL858機 폭파사건 재조사와 관련 T/F(국정원) 및 진실위의 10여차에 걸친 면담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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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김현희는 말을 잘 하는가?
-북한에서 터득한 이념적 사고방식이 逆境에 처하였을 때 그를 강하게 하고, 사물의 핵심을 파악하게 하는 듯하다.
趙甲濟
대한항공 폭파범인 金賢姬의 미모를 언급하는 것은 이 사건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 그에 대한 어떤 형태의 칭찬도 115명을 죽게 한 사람이란 점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해야 한다. 김현희씨가 요사이 좌파정권 10년간 당한 점을 호소하는 것에 대하여 '너는 불평할 자격이 없어'라고 아예 입을 막아버리려는 사람도 있다. 김현희씨가 체포된 뒤 범행을 고백하고 수사에 협조하여 범행 지령자인 김정일의 음모를 폭로함으로써 결과적으론 더 큰 피해를 줄여준 점 또한 인정해야 한다. 김현희의 생존에 의하여, 대한항공 폭파 테러는 김정일의 가장 실패한 공작이 되었다.
金賢姬씨는 말을 잘한다. 말솜씨가 좋다는 뜻이 아니고 말의 내용이 좋다는 뜻이다. 그와 인터뷰하면 쓸 것이 많다. 나는 그를 세 차례 인터뷰한 적이 있다. 1989년, 1994년, 그리고 올해. 판매중인 月刊朝鮮 2월호에 실린 김현희 인터뷰 기사의 일부가 몇 차례 조선닷컴에 실렸다. 그때마다 접속자수가 30만 명 이상, 댓글도 500개를 넘었다. 김현희의 말이 가진 힘이었다.
김현희씨의 말에 실린 힘은 그가 받은 공작원 훈련에서 나오는 것 같다. 비록 공산주의 이념에 바탕을 둔 주체사상을 배웠지만 그런 훈련과 교육을 통하여 이념적 사고방식이 체질화된 덕분에 사물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고, 이런 본질적 思考가 그의 말을 힘 있게 한다. 그를 가짜로 모는 신부들에 대하여 김현희씨는 간단하게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가 飮毒쇼를 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 대하여는 '인간적으로 너무 한다'고 했다. 남북한의 차이점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한 것도 김현희씨였다.
'북한에선 히즈 스토리(His story)를 가르치고 남한에서는 히스토리(History)를 가르친다'
황장엽 선생도 항상 내용이 있는 말을 한다. 본질을 꿰뚫어보는 철학자의 말은 힘이 있다. 황장엽, 김현희, 두 사람은 좌파정권 시절 自我를 지키기 위하여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외롭게 버티었다. 남한 지식인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두 사람처럼 싸울 수 있었을지 의문이 간다. 나쁜 이념교육이라도 이념은 逆境에 처한 인간을 강하게 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이념은 이론화된 신념이다. 99%가 좇아가는 길이라도 신념에 맞지 않으면 따라가지 않게 하는 것이 이념의 힘이다. 불리한 상황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게 이념이다. 모든 정치 이념은 항상 낙관론을 깔고 있다.
황장엽, 김현희 두 사람은 공산주의 이념을 버린 지 오래이나 교육과 훈련으로 단련된 자세는 강점으로 남아 있다. 李明博 대통령이 유리한 조건에서도 좌익들에게 밀리는 것은 그가 너무 빨리 '이념의 힘'을 포기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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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두 가지 자료가 있다. 첫째는 KBS가 대한항공 폭파 사건 발표에 의문이 있다고 제기한 내용이다.
두번째는 이 의문에 대하여 국정원 과거사 위원회가 기술적으로 반박한 내용이다. 두 내용을 비교해보면 과학적인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상식적 수준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김현희를 가짜로 몰기 위하여 아마추어와 음모가들과 반역자들이 제기한 터무니 없는 의혹들을 국가기관이 일일이 조사하여 답변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 예산 낭비이다. 이렇게 성의를 다하여도 좌익들은 절대로 납득하지 않는다. '해는 서쪽에서 뜬다'고 우기는 사람을 설득할 방법은 없다. 알고도 그런 주장을 하든지 미쳤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에선 KBS, MBC와 같은 공영방송과 종교인, 변호사 등이 터무니 없는 의혹을 제기하는 데 앞장 섰다는 점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문명의 利器를 악용하여 거짓과 의혹을 퍼뜨리면 보통사람들은 넘어간다.
1. [KBS 스페셜 2004년 5월22일]
KAL858의 미스터리 제1편 폭파, 진실은 무엇인가
-책임프로듀서 이상요 / 프로듀서 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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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우리는 국가정보원에 사건당시 수거된 증거물에 대해서 취재요청을 했고 국가정보원은 언론의 취재요청에 응했다. 국가정보원은 구명보트 외에도 김현희와 김승일의 압수물품들도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폭파범들의 압수물품이 17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구명보트는 17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온전한 모습으로 깨끗하게 잘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KAL858기 구명보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명보트에는 일련번호가 있다. 확인된 일련번호는 6046373. 이 번호는 당시 사고기의 구명보트의 일련번호였다. 당시 사고기에는 총 8개의 구명보트가 실려 있었다. 발견된 구명보트 6046373번은 앞에서 두 번째에 실려 있던 25인승 구명보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구명보트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을 받았다. 당시 수사당국이 폭발물에 의한 폭파의 주요 근거로 발표한 수동펌프의 감정내용이다. 그런데 감정결과는 압축에 의해서 파손됐거나 변형됐다고 밝히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론을 종합하면 구명보트는 마모에 의한 손상흔적, 압축 충격에 의한 파손이고 폭발 파편 등에 의한 직접적인 변형 흔적이 식별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김현희와 김승일의 좌석은 7B,7D였고 김현희는 좌석 위 선반에 폭탄을 올려두었다고 진술했다. 사고기는 전체 길이 44m로 비교적 작은 비행기였다. 두 사람의 좌석은 일반석 두 번째로 비행기 날개 근처였다. 사고기에는 8개의 구명보트가 있었고 발견된 구명보트는 앞에서 두 번째 위치였다. 구명보트는 기체 중앙에 있었고 폭탄은 구명보트의 왼쪽 약간 아래쪽에 놓았다고 했다. 두 물체 사이의 거리는 불과 7~8m였다.
앞에서 확인된 C4 컴포지션의 위력이라면 구명보트 6046373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한다. 미국 연방항공국의 폭파실험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폭탄 파편이나 불길이 구명보트를 비켜가서 구명보트가 손상을 입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취재진에게 의문이 더해진 것은 구명보트 안에 있는 수동펌프였다. 구명보트는 그렇게 파손되지 않았으나 그 속에 있던 수동펌프는 파괴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이 KAL858기에 탑재된 구명보트와 동일한 것이다. 내장품들은 보트 중앙에 들어있다. 구명보트 외부 손상은 적은데 내부에 있던 수동펌프는 파괴된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구명보트에 날카로운 물체에 찢긴 흔적이 있다고 밝혔다.
-국과수 관계자 (당시 잔해 감정): 예리한 물체에 찢겼다는 것은 그때 언급을 못했을 거야, 아마. 굳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조각들, 비행기 동체 날카로운 부분에 걸린 게 아닌가 싶어요.
-현준희 (KAL858기 가족회 간사): 수동펌프가 폭탄의 파편에 의해서 부서졌다고 하더라도
그 파편이 그 구명보트 안에 있는지, 아니면 이것이 다시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고 하는 경우 구명보트가 여러 겹으로 둘둘 말아져있기 때문에 수십 군데에 구멍이 나 있어야 됩니다. 과연 그 구명보트 안에 몇 개나 구멍이 나 있는지 한번 확인하고 싶습니다.
-내레이션: 구명보트는 펼쳐지지 않은 상태로 보관된다. 전문가들은 보통 파편이 구명보트를 뚫고 들어갔으면 보트 내부에 파편이 있거나, 펌프를 부수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면 말린 상태의 구명보트는 수십 군데 찢겨져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KAL858기가
폭파됐다는 증거로 제시된 구명보트는 더욱더 전문가의 정밀한 조사를 해야 하는 숙제를 남기고 있다.
*******************************
2. 국정원의 대한항공 사건 재조사 결과 최종보고서에서 뽑음.
의혹 내용
구명보트 탑재위치와 폭탄 탑재위치가 가까운데, 어떻게 구명보트의 겉이 멀쩡한가?
김현희가 폭탄을 두고 내렸다는 좌석 위치가 7B, 7C 좌석 상부의
관물대 이고, 1987년 12월13일에 발견된 구명보트(S/N: 6046373)의 탑재
위치가 비행기 조종실 후방 일등석 상단으로
-일반석이 6열부터 시작되는 점을 고려할 때, 김현희가 폭탄을
설치했다는 위치와 구명보트 탑재위치가 상호 인접한 부위임에도
불구하고
-구명보트의 표피에 화흔 또는 파편 관통흔이 없으므로 구명
보트는 KAL858기에 장착된 것이 아니거나, 김현희가 진술한
폭탄이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임
조사 결과
대한항공 자료를 확인한 결과
동 구명보트는 KAL기에 탑재되었던 8개의
구명보트중 하나로서 장착위치는 일등석 상단부
임이 항공일지 등 정비기록 문서에 의해 확인되었고
구명보트 팽창에 사용되는 질소통 두 개에는 대한항공 관리번호
(KAL-NO, L-, S-25)가 선명히 기재되어 있음을 확인
2006년3월8일 구명보트 실물을 펼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일련번호가
자료에 기재된 것과 일치하였으며 구명보트 표피에는 화흔 또는
절개흔이 발견되지 않았음
국방과학연구소에 1988년1월15일 안기부가 수사 발표한 폭탄의
폭발력을 문의한 결과, 최대 장착량으로 추정한 콤포지션 C-4 350g과 PLX 700cc가 동시 폭발할 경우, 폭풍 압력에 의한 피해를 반경 1m 내외로 분석하였음.
구명보트는 두께 17mm 뚜껑 위의 천정 격실에 보관돼 있으며,
김현희가 폭탄을 놔두었다는 7열 B, C석 선반과 구명보트 천정
격실간의 거리는 4.6-5.6M임.
판단
발견된 구명보트가 KAL858기의 탑재물임은 분명한 사실로 확인됨
구명보트 외피에 폭파흔이 없는 것은 구명보트 탑재위치가 김현희의
폭탄 설치 진술 위치에서 폭발로 인한 손상을 입을 수 있는
거리보다 멀리 장착돼 있었고, 비행기 내부 천정 칸막이가 완충재
역할을 함으로써 폭발로부터 구명보트가 1차 보호될 수 있을
가능성이 큰 점을 고려할 때
-구명보트에 폭파흔적이 없다는 이유로 폭탄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판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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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명보트내 수동펌프의 파손 이유에 대한 국정원 답변과 국과수 보고서에 차이가 나는 이유.
의혹 내용
미얀마 화물선 다곤호가 발견하여 미얀마 내무성이 대한항공 측에 인계해 준 KAL기 탑재 구명보트는 발견 당시 구명보트의 겉 고무부분은 멀쩡한데 내장품인 수동펌프가 불에 탄 흔적이 있다고 보도돼 거짓 물증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으며 국정원이 수동펌프의 파손 이유에 대해 공중폭발 시 생겨난 날카로운 파편이 통과하면서 공기압축펌프만 손상시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KAL기 가족회에 답변하였으나 국과수는 수동펌프의 파손 이유에 대해 '프라스틱 부분이
압축에 의하여 수 조각으로 파손되어 있으며 내부 원판형 강재가
압축에 의해 변형됨'이라고 감정하였고 2004.5.22 방송된 KBS 스페셜에 둘둘 말려 있었을 고무구명 보트의 다른 부분에 '파편이 통과한 흔적이 없다는 점이 지적돼 국정원이 구명보트와 관련해 은폐와 조작을 하고 있지 않느냐'라는 의혹임
조사 결과
국정원에 보관되어 있는 구명보트를 직접 펼쳐서 조사한 바
구명보트 중앙부의 구명대 보관주머니 부위에 산재된 절개흔은
지금까지 대책위나 가족회 측에서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구명대
보관주머니 내에 있던 여러 가지 물체 중 일부가 부서지면서 그
파편이 외부로 돌출, 보트 구명대 보관주머니 표피 일부를 통과
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판단하였고 구명보트의 다른 부분에 파편이 통과하며 만들었을 구멍이나 절개흔은 없음을 확인함.
판단
공기압축 펌프수동펌프는 파손되어 있기는 하나 국정원 답변처럼
파편이 뚫고 지나가며 파손시킨 것이 아니라 국과수의 감정과
같이 폭발 당시 압력이나 바다에 떨어질 당시 충격에 의해 파손된
것으로 추정되며 구명보트의 기내 장착기록과 수거상황 등을 볼 때
구명 보트가 사건을 은폐 조작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 물증은 아니라는
판단임.
4. 발견된 기체조각들 중에는 김현희가 폭탄을 두었다는 지점
근처의 조각들도 있었는데 그 조각들에서도 폭발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김현희의 폭탄이 정말로 있었는가
판단: 해당 부위를 조사한 결과, 폭탄을 두었다고 하는 인접 부위 이내의 잔해는 없었음을 확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잔해 감정시 파편이 폭발중심 인접부가 아닌 경우 폭발물질의 폭발에 의한 직접적 파손형태나 폭발물질 등이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첨부한 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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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해명된 것도 의혹으로 제기
MBC식 의혹만들기
趙甲濟
제568회 16년간의 의혹, KAL폭파범 김현희의 진실-최진용 책임 프로듀서
이 프로는 수도 없이 해명된 바 있는 김현희의 단어 表記 문제를 또 다시 의혹의 항목에 집어넣었다.
<-내레이션: (중앙일보 1988년 1월15일자 화면) 당시 언론에는 김 씨의 친필 맹세문이 보도되었는데 석간신문에는 북한에서 사용하지 않는 단어인 ‘규율’로, (조선일보 1988년 1월16일자 화면)다음날 조간신문에는 ‘규률’로 적혀 있었습니다.
-심재환 변호사(KAL 858기 진상규명대책위원회): 다음날 그 자필 맹세문이 신문에 보도가 됐는데 거기에는 ‘규률’이라고 고쳐져 있어요. 이건 뭘 도대체 말하는 것입니까? 자필 맹세문이 하루 만에 고쳐져서 보도가 되거든요.
-취재기자: 혹시 두 번 작성을 했나요?
당시 안기부 수사관계자: 한번 썼죠.
취재기자: 한 번밖에 안 썼나요?
당시 안기부 수사관계자: 예, 한 번밖에 안 썼죠.
취재기자: 신문사 두 개에 틀린 부분이 있어서…
당시 안기부 수사관계자: 예, 그건 말입니다, 이게 두 개를 써가지고 조작이 아니냐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참 죄송한 말씀이지만 중앙일보에 가서 물어보셔야 돼요.
-중앙일보 사진기자: 안기부에서 나온 사진일 겁니다. 사진 자체가 어설플 거예요, 아마. 기자가 취재를 했으면, 자기가 찍은 것 같으면 이름이 들어갔거든요, 그 당시에도.>
국정원 과거사 조사위원회는 이미 해명된 바 있는 의혹에 대하여 MBC가 또 다시 의혹을 제기하니 또 친절하게 반박하였다. 2007년의 최종보고서 해당 부분을 소개한다.
<75. 김현희의 진술 중에 북한에서 안 쓰는 단어들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혹 내용
◦ 1988.1.15 석간 〈중앙일보〉에 실렸던 김현희 자필 맹세문의 ‘규율’이 다음날 조간 〈조선일보〉에 '규률'로 고쳐져서 실리고
◦ 북한 표기상 '암풀', '남조선 외교관' 등으로 표기돼야 할 단어들이 김현희 〈진술서〉에 각각 '암뿔', '한국외교관' 등으로 표기되었다는 주장 등을 근거로, 김현희는 북한 출신이 아니지 않느냐며 제기된 의혹임
조사 결과
◦ 검찰 송치서류를 조사한 결과, 同 맹세문이 두 부가 철해져 있었으며, 870쪽에 철해진 맹세문은 1988.1.16 〈조선일보〉에 실린 맹세문과 동일한 맹세문이고, 3010쪽에 철해진 맹세문은 어느 신문에도 공개된 적 없는 맹세문이었음
― 870쪽의 맹세문은 '규율'을 '규률'로 고친 흔적이 있으며, 3010쪽의 맹세문은 처음부터 '규률'로 작성돼 있음
◦ 김현희는 '규율'과 '규률'이 왜 다르냐는 국선변호인의 질문에
― '북과 여기의 표기가 서로 달라 여기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쓴 것이 있고 그곳 식으로 쓰기도 해서 그렇다'고 진술
◦ 김현희를 수사했던 고○○ 前 안기부 직원은
― 수사과정에서 '처음에는 '규률'로 썼는데 수사관이 '규율'로 고쳐 쓰라고 해서 김현희가 고쳐 썼다'고 하고
― '언론사마다 복사본이 아닌 맹세문 원본을 달라고 요구해와 김현희가 여러 종이에 작성하다보니 맹세문 종이와 '규율', '규률' 표현이 달라졌다'고 진술
◦ 同 의혹 관련 국정원은
― 1980.3 로동당 소환 이후 북한 사회의 외부와 단절된 가운데 진행된 공작원 교육과정에서, 일본인화, 중국인화, 영어교육까지 마친 후 18개월간 마카오, 중국 광주 등지에 파견되어 자본주의 현지 적응 훈련을 받은 자로
― 「해외 출입 및 외국인화 교육과정에서 북한 원주민보다는 상당히 순화된 언어를 구사한 것은 사실임」이라고 답변
◦ 검찰 송치서류에 있는 총 12 차례의 김현희 자필진술서에는 웽그리아(헝가리), 부따베슈트(부다페스트) 윈(비엔나 또는 빈) 등 북한식 지명 표기 등 상당수의 북한식 표기를 사용하였음을 확인하였음
판단
◦ 김현희 자필 맹세문의 '규률', '규율' 혼용은 수사 과정과 보도자료 배포 과정에서 빚어진 혼동으로 판단되며
◦ 김현희가 해외 적응 훈련 과정에서 각종 인쇄물, 영상물 등을 봤다는 점, 수사과정에서 수사관의 영향을 받아 표기 또는 표현을 바꾸었을 가능성, 그리고 검찰 송치서류 중 자필 진술서에 상당량의 북한식 표기, 표현들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1988.1.15 공개된〈진술서〉의 표기상의 차이를 김현희의 신원을 의심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됨>
MBC와 KBS가 새삼스럽게 김현희씨에 대하여 의혹을 제기하였을 때 그 의혹들은 거의가 그 전에 이미 해명된 것들이었다. 방송제작진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도 의혹을 제기하였던지, 모르고 했던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前者라면 나쁜 사람들이고, 後者라면 게으른 사람들이다.
"잠적 김현희, 29만원에 긴급수배"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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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2-13, 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