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닷컴에 우경임 기자가 어제 쓴 기사의 제목은 ‘좌우 독설 공방 왜?’였다. 이런 대목이 있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등도 '자살을 왜 서거라 지칭하며 추모하는가'라는 요지의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인용문은 나의 글을 誤譯하고 있다. 내가 조갑제닷컴에 써올린 글은, 언론은 기사문에서 ‘노무현 자살’이라고 써야지 ‘노무현 서거’라고 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일반인들이 ‘서거’라고 부르면서 추모하는 것을 비판한 글은 아니었다. 우경임 기자는 ‘자살을 왜 서거라고 지칭하며 추모하는가’라는 잘못된 요약문으로써 내가 일반인들의 추모 자유까지 비판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렇게 하여 나의 주장을 ‘독설’의 범주에 집어넣었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는 표현은 誤報이다. 나의 주장에 찬동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찬동하는 사람들의 글은 대체로 논리적이고 온건하였다. 반대하는 이들의 글은 거의가 욕설이었다. 화장실 낙서보다 못한 수준의 욕설, 그것도 거의가 匿名의 욕설인데, 이것을 기자가 ‘여론(與論)’이라고 부를 수 있나? 이런 욕설을 해대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여론조사에서 포함시키지 않는 중, 고등학생들이었다.
내가 욕쟁이들로부터 뭇매를 맞은 것은 사실이다. 이를 ‘여론의 뭇매’라고 표현하는 것은 욕쟁이들을 성숙한 시민으로 격상(格上)시키고, 욕설을 ‘뭇매’라고 미화(美化)해주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사람은 기자이다. 기자의 임무는 사실을 정확한 용어로 알리는 것이다. 기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나, ‘서거’라고 미화하는 것이 맞나?
2001년 여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동아일보 회장 부인이 투신자살하였을 때 동아일보는 이를 ‘동아일보 회장 부인 투신 서거’라고 기사를 썼던가?
내가 기자들을 향하여 한 말(“사실은 사실대로 써야 한다, 용어가 계급적 차별에 이용되어선 안된다”)은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는 말처럼 언론계의 진리이다. 기자의 진실을 강조하였다고 기자가 뭇매를 때린다. 이런 자기부정이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위대한 민족지(民族紙) 동아일보가 어떻게 이런 기사를 실을 수 있나? 거기는 후배 기자들의 미숙성을 고쳐 주는 국장도, 부장도, 심의실도 없는가? 한 줄의 기사문에 이렇게 많은 편향과 부정확성이 들어 있다면 누가 동아일보를 신뢰하겠는가?
국가와 민족이 어려움에 처할 때 동아일보가 버티어낸 힘은 어디서 나왔던가. 돈인가? 총인가? 진실 아닌가? 진실은 정확한 낱말을 통하여서만 전달되지 않는가? 正名 사상은 언론의 출발점 아닌가?
나의 글은 毒說이 아니라 直說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서거'라고 부르지 않으면 敵으로 간주하는 전체주의적 공포 분위기를 만든 것은 방송이었고 여기에 동아일보 같은 보수신문까지 가담하고 있다면 상식 있는 국민들은 의지할 데가 없다.
나는 38년 전 수습기자 시절 선배 한 분으로부터 들은 말을 기자의 행동윤리로 삼았다.
'시청을 출입하는 기자는 시장을 대하는 태도와 수위를 대하는 태도가 같아야 한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험담에 자극을 받아 한강으로 투신한 南相國 대우건설 사장은 '자살'한 것이고, 기소 직전의 형사피의자가 자살한 것은 전직 대통령이므로 언론까지도 보도문에서조차 '서거'라고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자들이 과연 선배들의 피, 땀, 눈물이 만들어낸 이 언론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가?
동아일보의 訃告欄(부고란)에 등장하는 사람 이름은 한글 表記이다. 부모님들은 漢字로 이름을 지었는데, 이를 한글로 표기하면 이름은 아무 뜻도 없는 소리로 전락한다. 동아일보는 다른 신문들과 함께 한국어의 2대 表記수단인 漢字와 한글중 漢字를 버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韓國語를 써서 먹고 사는 신문기자들이 그 韓國語를 파괴하는 모범을 보인 것이 한국사회의 저질화와 국민 교양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신문들의 이런 자기부정과 우경임 기자의 자기부정 사이엔 아마도 관련성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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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서거'가 맞는 표현인가?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서거'라는 용어는 非언론적이고 非과학적이며 非민주적이다.
趙甲濟
언론이 '노무현 자살'을 '노무현 서거'로 표현하고 있다. '서거'는 '逝去'의 한글표기이다. 逝去는 국어사전에 따르면 '死去'의 높임말이다.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언론에서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元老나 前職 대통령이 죽었을 때 逝去(서거)라는 표현을 해왔다. 朴正熙 당시 대통령이 10.26 사건 때 김재규에 의하여 피살되었을 때도 언론은 '逝去'라고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법이 과연 옳은 것이지 검토해볼 만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서거'라고 표현하는 데 대하여 불만을 가진 이가 많다. 그의 죽음을 매도하여서가 아니다. '서거'라는 언론의 용어 선택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애도'를 강제하는 '유도성'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세력이 만든 '열린우리당'이란 黨名은 이 당의 黨員이 아닌 사람들에게까지도 '우리당'이라고 읽게 하는 일종의 사기적 作名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을 선택한 과정과 고민에 대하여는 同情하고 안타깝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 있어서 천재적인 노하우를 가진 친북좌익 세력들과 결정적인 순간에서 가끔 이성 잃는 증상이 있는 한국의 언론들이 합세하여 노무현씨의 죽음을, 증오와 갈등의 굿판으로 몰고가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언론이 일제히 '서거'라고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 그 전주곡이 될지도 모른다.
6년 전 鄭夢憲 전 현대그룹 회장이 對北송금 사건 수사를 받던 중 자살하였을 때 언론은 '정몽헌 회장 자살'이라고 보도하였지 '정몽헌 회장 서거'라고 쓰지는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험담을 듣고 자살한 전 대우건설 사장에 대하여 '南相國 서거'라고 보도하였던 적이 있는 언론이라면 '노무현 서거'라고 보도할 자격이 있다.
언론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평등한 용어를 써야 할 의무가 있다. '서거'를 전직 대통령 專用으로 하는 것은 계급적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정신과 맞지 않다. 1987년 이후 현직 대통령에게까지 '각하'라는 말을 쓰지 않도록 한 나라이다.
'노무현 자살'이 흠 잡을 데 없는 用法이다.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고 민주국가에선 달라야 한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서거'라는 용어는 非언론적이고 非과학적이며 非민주적이다.
'노무현 자살'이라고 써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하여 사람들이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로 서거'라고 쓰는 방법이 있는데 '자살'과 '서거' 사이가 잘 맞지 않는다.
조선일보 사설은 死去라는 표현을 했다. 別世라는 표현도 逝去보단 무리가 없다. 요컨대 死者의 신분에 따른 차등적 표현은 평등하지도 민주적이지도 않다는 이야기이다.
[ 2009-05-23, 17:31 ] 조회수 : 33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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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가 지난 주 게재를 거부하였던 국민행동본부의 광고문안
노사모와 언론은 自重(자중)하라!
국민장이란 국민이 다 弔問客이 된다는 의미인데, 상주측이 조문객들에게 봉변을 가하면서 무슨 국민장인가? 그들의 행동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하여 가졌던 순수한 마음까지 달라진다.
국민행동본부
1. 국민행동본부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反헌법적-反국가적 정책에 가장 치열하게 반대하고 투쟁하였던 단체이다. 그로 인하여 수많은 고발, 고소를 당하였다. 국민행동본부도 노무현 대통령의 在任시절 그를 내란-외환의 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다. 그럼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自殺이란 충격적 소식을 접하고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盧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2. 노무현 전 대통령이 遺書에서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라고 한 말에 留念한다. 국민행동본부를 비롯한 애국세력이 침묵하는 것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故人의 이 遺言대로 敵과 동지들이 自重自愛하면서 그의 죽음으로부터 값진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이다.
3. 이런 自重自愛는 노무현 지지자들(노사모)에게도 요구된다. 노무현 정권의 피해자라고 할 만한 李會昌 자유선진당 총재의 弔問까지 가로막고 계란을 던지는 지지자들은 故人을 두 번 죽이는 행패를 하고 있다. 국민장이란 국민이 다 弔問客이 된다는 의미인데, 조문객들에게 봉변을 가하면서 무슨 국민장인가? 그들의 행동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하여 가졌던 순수한 마음까지 달라진다.
4. 우리는 국민장에 대하여도 반대하는 생각을 가졌지만 침묵하였다. 刑事피의자가 수사를 받던 중에 자살한 것은 司法정의의 具顯을 불가능하게 만든 행위이다. 자살은 어떤 경우에도 美化될 수 없다. 특히 자살공화국이란 汚名을 들을 정도로 젊은이들의 자살이 속출하고 있는데 자살자를 ‘서거’니 ‘국민장’이니 하여 높여주면 자살을 유도할 가능성은 없는지 생각해봐야 했었다.
5. 그럼에도 정부가 국민장으로 결정한 지금 우리는 장례절차가 엄숙하게 거행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 방향으로 협조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서는 노무현 지지자들도 理性을 되찾아야 한다.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면 그 보다 더한 증오와 갈등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銘心하여야 할 것이다.
6. 지금 언론은 理性을 잃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를 표시하지 않으면 逆賊이나 되는 것처럼 일종의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기자들이 사실보도 기사문에서 ‘자살’이란 말을 빼고 ‘서거’라고 부르는 데 대하여 비판한 너무나 당연한 글까지 매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탄핵사태 때, 광우병 사태 때 KBS와 MBC가 얼마나 증오심과 갈등을 부추겨 國論을 분열시키고 법치를 파괴하였는지! ‘저주의 굿판’을 벌인 것은 항상 선동방송이었다. 언론은 自重自愛하라!
7. 歷代 대통령들이 下野-피살-투옥-自殺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데는 대통령중심제와 부패를 끼고 가는 정치문화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숭고한 것’으로 昇華시키는 길은 국가지도층이 제도적 개혁을 통하여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이 되지 말자!
8. 김정일 정권이 두번째 核실험을 하여 국가적 위기상황이 조성된 시점에 故人의 죽음을 악용하여 法질서를 파괴하려 한다면 우리는 헌법과 공동체 수호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할 것임을 밝혀둔다. 거듭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東亞日報에 어떻게 이런 기사가 실리나?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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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6-02, 10: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