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4일 보도가 나간 직후 KBS의 석혜원 기자는 KBS 인터넷뉴스에 <전쟁 통에 지도자는 망명 시도...선조와 이승만>이란 제목의 수필을 썼다.
날조된 정보를 사실로 믿고 상상의 나래를 편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고요한 한반도의 아침에 포성이 울려 퍼지고 불과 사흘 만에 서울이 점령당했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망명을 타진하고 있던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승만 정부의 망명시도보다 350여 년 앞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조선의 14대 왕 선조 역시‘파천’하면 빼놓을 수 없다. 1592년, 왜군이 밀려오자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개성으로, 평양으로, 또 의주로 도주한다. 그것도 모자라 선조는 명나라로 망명을 시도한다.
조선의 14대 왕 선조는 가장 무능한 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선조의 재위 기간동안 조정은 당쟁에 휘말리며 기강이 무너졌고, 왜군의 침입으로 사회는 무너져 내렸다.
KBS 주말드라마 '징비록' 속에서도 이같은 선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드라마 속 선조의 모습을 ‘중2병’에 비유하는 웃지 못할 패러디도 등장한다. 무엇보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왕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분노보다는 한숨이 앞선다.
이승만 정부의 망명 시도는 어떻게 됐을까. 다나카 야마구치 현 지사는 반대 의사를 밝혔으나, 미국 공문서보관소의 ‘미 군정 문서’를 보면 이 작전이 상당히 진행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략).
계획했던 ‘한국인 피난 캠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보다 350여 년 앞선 선조의 망명 시도 역시 실패다. 왜군의 공격 대상이 될 것을 두려워한 명나라는 선조의 요구를 거절한다. 그것도 모자라 원한다면 관전보(여진족과의 국경지대)의 빈 관아에서 머물라는 굴욕적인 이야기까지 전했다.
드라마 <징비록>에서 류성룡은 파천하는 왕을 향해 “한 번의 잘못으로 그의 생애가 부정되고 비난받을 수 있는 잘못도 있다”고 말한다.
선조의 답은 기가 차다 못해 기발하다. 이참에 아예 세자에게 양위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못난 과인은 이 나라와 백성의 중심에 설 자격이 없는 위인”이라며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
심약한 것은 죄가 아니다. 지도자의 자리를 감당하기에 당사자 역시 버거웠으리라. 하지만 그 결과는 고스란히 백성들이 떠안았다.>
기가 차는 쪽은 선조가 아니라 KBS 기자이다. 자신이 속한 회사의 이승만 일본 망명 요청 기사가 허위로 밝혀진 지가 열흘이 넘었는데도 이 소설 같은 글이 아직도 SNS를 통해 돌아다닌다. 기가 찰 일이다.
사실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기자가, 나라가 왜군과 공산군에 기습을 당하여 혼란에 빠진 절망적 상황에서 어떻게 하든지 국가와 민족을 구해내려고 몸부림 친 이승만과 선조를, 그 두 분의 성공적 전쟁 지도가 없었더라면 사라졌을 나라의 수도에 앉아서 한가하게 역사를 난도질을 하는 '거룩한' 모습에서 조선조의 사대부를 이어가는 '양반기자'의 그림자가 보인다. 안보를 포기한 정치가 추해지듯이 사실을 포기하고 논평에 주력하는 기자는 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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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국민의 알권리 증진이다. 특히 KBS는‘공영방송’의 지위를 유지하며 ‘국민방송임’을 자처한다. 공정한 보도와 사실 전달의 측면에서 그 책임감이 막중하다. 또한 ‘국민방송’을 자처하는 만큼 국민통합의 의무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바로 얼마 전 KBS에서 6.25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아 낸 기사는 다음의 내용이다. “전쟁 통에 지도자는 망명 시도…….선조와 이승만.” 석혜원 기자의 기사이다. 이 기사는 한국으로 치면 ‘면’에 해당하는 일본의 어느 지방의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을 근거로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 망명을 신청했다며 건국 대통령이 선조와 같은 ‘암왕’이었다고 말 하고 있다.
 
 안타깝다. 우선 기자가, 그것도 시민기자들로 구성된 어느 인터넷 신문의 기자도 아닌 ‘공영방송 KBS의 기자’가 진실 여부의 확인은커녕, 출처의 신빈성에 대한 검토도 하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또한 6월 25일이라는 날짜가 주는 상징성에도 불구, 국민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 인식에 혼란을 주는 기사를 낸 것이 이차적으로 안타깝다. 이것이 공영방송 KBS의 역량이란 말인가. 6.25에 관한 자료들은 한국, 미국, 일본의 ‘정식 기록문서’에 모두 저장되어 있다. 누가 어떤 실수를 했고 어떤 과오가 있었는지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석혜원 기자는 사실여부 판단조차 무의미한, 그러나 본인이 보고 싶은 기록을 자료 근거로 삼아 섣부른 기사를 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암울한 사실은 석혜원 기자와 그 기사의 발행을 허가해준 KBS보도국의 역사인식 수준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생의 절반을 일본과의 싸움에, 나머지 절반은 공산·전체주의와의 싸움에 바쳤다.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의 ‘기만성’과 ‘잔혹성’을 폭로하고 ‘진주만 공습’을 예견한 저서 『JAPAN INSIDE OUT』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극일’과 ‘반공’을 기치로 대한민국을 건국했고 석혜원 기자는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한 이 대한민국 땅에서 ‘자유와 번영’을 공기처럼 누리고 살고 있다.
 6.25전쟁 발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75세 노령의 몸이었다. 그리고 건국 2년 차 대한민국에는 국가위기 해결을 위한 어떠한 국가안보시스템도, 매뉴얼도 없었다. 오늘날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중앙정보국도 없었으며 작전을 직접 지도하고 수행할 합동참모본부도 없었다. 스탈린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의 막강한 전투기와 전차에 맞설 전투기 한 대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발발 이후 사흘간 확전을 대비해 해군 구축함을 불러들였고, 미국을 압박해 필요한 무기와 장비, 그리고 전투기(F-15)를 지원받았다. 우리가 착각해서는 안 될 사실은 당시 한국과 미국은 동맹도 뭣도 아니었고 미국은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유민주국가들 간의 반(反)공산주의의식이 냉전 때만큼 큰 것도 아니었다. 당시 미국에게 소련은 ‘2차 대전을 함께 승리로 이끌었으나 견제해야 할 나라’ 수준이었다. 요약하자면 미국이 한국을 도와 줄 유인은 ‘굳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남침 직후 대통령으로서 국가원수로서 그리고 국군통수권자로서의 활동은 매우 적절했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적확히 해냈다.
 석혜원 기자의 기사는 전형적인 언론 포퓰리즘이다. 젊은 세대에게 왜곡된 인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그리고 언제나 국민들을 자극하기 좋은 친일 프레임. 이 두 가지가 잘 버무려진 기사는 6.25 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아 들불 번지듯 공유되며 퍼져나갔다. KBS는 문제가 되는 기사를 삭제했다. 그러나 “선동은 한 문장이면 충분하고 그 한 문장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열 줄의 문장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이미 국민들의 인식은 또 한 번 왜곡됐다. 석혜원 기자와 KBS 보도국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야 한다.
 광복 70주년으로 연초부터 갖가지 행사가 열렸다. 광복(光復). 빛을 되찾다. 라는 의미이다. 해방과 함께 우리 한민족은 빛을 되찾은 것일까? 모를 일이다. 한국대학생포럼은 건국 67주년, 해방 70주년을 기념하며, 전체주의 사이비 왕조 국가 북한에서 ‘자유’의 개념조차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민주화를 염원한다. 그리고 그 날이 왔을 때야 비로소 한민족이 ‘광복’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본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공영방송 KBS의 역사인식에 대해 매우 큰 우려를 표명하는 바이다.
 
 
 
한 국 대 학 생 포 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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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닷컴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틀 후인 27일 서울을 버리고 대전으로 피신했다. 이승만은 바로 이날 6만 명 규모의 망명정부를 야마구치현에 세우고 싶다는 뜻을 일본 정부에 타진했다고 한다. ‘서울사수’ ‘북한군 격퇴’ 공언(公言)이 메아리로 채 사라지기도 전 어투 느린 老대통령의 놀라우리만치 민첩한 행동이었다. 혼자 살겠다고 하는 리더의 도망은 ‘줄행랑’이란 속어조차 분에 넘치는, 딱히 표현할 길이 없는 망동이다. 도망도 도망 나름이다.>
  
  KBS가 망명 주장의 근거가 된 6월27일자 電報의 날조를 自認(자인)한 지금 영남일보는 어디로 36계 줄행랑을 칠 작정인가. 도망도 도망 나름이다.
  
  '서울의 소리'라는 인터넷 매체도, KBS의 날조 보도를 사실로 전제한 뒤 <이 같은 정권이므로 일본에 망명정부를 세울 계획까지 했다는 것은 새삼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땅 보수파라는 사람들은 이승만을 국부로 칭해야 한다는데 더 할 말이 없다>면서, <한국전쟁 발발 65년이 되기 전날 공영방송 KBS를 통해 전해진 이 뉴스는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에서 정부는 없고 민간만 있는 현재의 상황이 겹치면서 더욱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도록 하고 있다>고 썼다.
  
  영남일보와 '서울의 소리'는, KBS의 이승만 폄하용 날조 기사를 사실로 믿고 거짓을 확대재생산하는 한국 언론의 선동 구조, 그 한 斷面(단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