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당 金大中총재의 의중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2년의 한국정치 변화를 예상하는 방향이 결정된다. 특히 민자당은 金총재의 진로를 기준 하여서만 자신의 정권유지전략을 짤 수 있게 돼 있다. 그런 점에서 金총재는 한국정치의 고삐를 잡고 있는 격이며, 복잡한 방정식처럼 얽혀 있는 정치판의 역학관계를 정리할 수 있게 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 이 취재의 마무리를 위해 기자는 1월13일 오전8시에 金총재를 찾아가 한 시간 반 동안 이런 질문들을 던졌다.
―요즈음 각종 여론 조사에서 평민당과 金총재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데 그 요인을 어떻게 분석하십니까?
『기대보다 못합니다. 그것 가지고는 안됩니다. 지난 1년간 우리 당은 민자당과 쩌?가두투쟁 없이 「지자제실시」를 얻어냈습니다. 「거여야소」정국?「거여강야」정국으로 전환시켜 민자당과 1대1로 겨룰 수 있게 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지요. 어느 농촌에 가든지 이제는 평민당이 농민들을 위해서 일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영남·강원도 사람들도 평민당의노력을 인정하고 있고, 충남 등 중부권에서는 적극적인 지지로 돌 것으로 기대합니다』
―金총재께서 언젠가는 내각제개헌을 받아湧?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내각제에 대한 국민지지가 미미합니다. 저는 내각제가 한국의 현실에는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군부에 대한 통수권이 필연적으로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서 분열됩니다. 5·16때같이 말입니다. 일본처럼 전문경영인이 지배하는 재벌도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하물며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만지는 오너체제의 우리 재벌은 정치를 농락하고 말 것입니다. 저는 노대통령이 지금도 임기 중에 내각제개헌을 하고 싶어한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14대 총선에 당당하게 내각제개헌공약을 내걸고 국민 심판을 받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부통령제 및 대통령선거의 결선투표제 신설을 공약으로 내걸 것입니다』
―그 부통령은 실권이 있습니까?
『국무회의 부의장을 겸하게 하는 등 실권을 줄 생각입니다.(개헌이 안돼도) 전당대회 때는 법적인 대통령 후보와 함께 정치적인 부통령후보를 지명하도록 하겠습니다.
―金총재께서는 89년 4월에 내각제개헌논의를 수용할 뜻을 밝힌 적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때 저는 국민이 개헌을 원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 논의를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마치 개헌을 수용할 뜻이 있는 것처럼 보도돼 곤혹스러웠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승부
―지금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각제개헌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고, 특히 호남에서는 내각제지지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제지지가 60%로 나타나지 않습니까. 여론조사가 곧 민의는 아니니까 14대 총선에서 당당히 민의를 묻자는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 원칙을 양보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1980년에 유진오 박사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자신은 평생 내각제를 소신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국민들이 대통령직선제를 바라니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합디다. 국민이 압도적으로 내각제를 바란다면 따라가야지요. 그러나…』
―金총재께서는 지역감정의 기본구도가 영호남 대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본적으로는 그렇지요』
―그러나 지난 대통령선거 이후에 현실적으로는 호남 대 비호남으로 더욱 악화된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도록 조장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심지어 전남과 전북을 갈라서 「전북 홀로서기」라는 말을 만들어 내고 있지 않습니까.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金총재로서는 마지막 시도가 되는 것이지요?
『제가 직접 간여하는 것으로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단식 후에 체중이 많이 주신 것 같은데 건강은 괜찮습니까?
『체중이 더 줄어야 합니다』
―몇 시간 주무십니까?
『여섯 시간 자고, 낮에는 차중에서 5분, 10분씩 토막잠을 자서 피로가 축적되지 않도록 신경쓰지요』
―지자제 협상에서 중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관철시키지 못했는데...
『중선거구제는 민정당이 89년에 주장하던 것인데 3당 통합이 되니까 못한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비례대표제를 주장한 것은 행정 능력은 있지만 선거 능력이 약한 행정경험자와 여성들을 지방자치에 참여시키려는 뜻에서였습니다. 지금 국회에 여성의원이 6명인데 전부 전국구의원이잖습니까. 지역감정 해소에도 중선거구제가 좋습니다. 호남의회에서 민자당이 한 40% 차지하고 우리는 영남에 조금 진출하면 좋지 않습니까. 우리 주장을 고집하면 지자제가 깨질 것 같아서 솔로몬왕의 지혜에 따랐습니다』
―민자당에서는 金총재께서 비호남권에 교두보를 확보하려 한다고 판단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평민당을 코너로 몰려고 그런 것이지요』
―지방의회 선거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우리로서는 힘이 듭니다. 인물부족이고, 선거자금이 모자라고. 호남에서는 압승, 서울에서는 과반수 획득이 가능하다고 보며 경기·인천에서는 제1당을 목표로 하고 있고, 대전·충남에서는 상당한 진출을 기대하며 충북, 강원도, 영남은 어렵습니다. 영남에서도 부산, 창원, 울산, 포항 등 큰 도시에선 기대할 수 있겠지요. 전국적으로 농촌지역에서는 많이 진출할 것 같습니다. 영남 등지에서는 당선이 어렵다고 해도 득표율은 오를 것입니다. 평민당, 민자당, 무소속의 3대 세력권으로 나누어지겠지요. 민주당은 어렵다고 봅니다』
―단식하실 때 金泳三대표가 병원에 찾아와서 두 분이 밀담을 나누셨는데,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습니까?
『내각제에 대해서 묻길래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지요. 그분이 마산에 내려가기 전에 측근을 통해서 또 타진해 오기에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김대표한테, 민자당에 들어갔으면 지자제 실시, 보안법 폐지, 안기부법 개정 등 개혁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했지요』
서울시장에 비호남인 공천고려
―요사이 동구공산체제가 무너지고, 북한의 한심한 실정이 드러나면서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통일할 수밖에 없다는 여론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金총재꼈??자신의 통일정책을 수정하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독일식통일 발상은 위험합니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은 흡수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독이 자신의 체제를 잘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동독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독일식통일 운운하면서 북한을 코너로 몰면 金日成을 중심으로 한 보수강경세력을 도와주는 것이 됩니다. 저쪽의 개방세력을 도와주려면 이솝우화대로 바람이 아니라 햇볕을 보내 녹여야 합니다. 그런 햇볕을 보낼 힘을 우리 남한이 먼저 갖추어야 하고요. 북측이 총리회담에서 교류와 불가침선언을 동시에 하자는 데까지 우리 주장을 수용했는데 왜 우리가 북측의 제의를 안 받아들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고朴正熙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박대통령이 하면 된다. 그러나 영구집권을 위해서 사회를 왜곡시킨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도시와 농촌, 지역과 지역, 노동자와 재벌 사이의 불균형을 조장하고 부정부패를 만연시킨 것이 박대통령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범죄 문제도 거기에 원인이 있는 것 아닙니까. 특히 역사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은 지역감정 조장입니다』
―朴대통령 한 사람에게 경제발전과 정치발전까지 동시에 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당위론으로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리가 아닙니까. 고르바초프의 예에서 보듯이. 경제발전은 朴대통령의 임무고, 정치발전은 金총재 같은 분의 역할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씀에는 공감하는 점도 있습니다만 두 가지를 동시에 추진하되 역점을 두는 부분이 있으면 되지요. 적어도 방향은 제시 했어야지요』
―요사이 지역감정의 직접적인 원인은 두분께서 지난 대통령선거에 동시출마한 때문이 아닙니까?
『호남인은 대통령에 출마해선 안된다는 이야기와 통하는데, 호남인이 4반세기를 참아왔지 않습니까. 1963년 대통령선거 때 박정희씨가 15만표 차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호남의 지지 덕분인데, 그 뒤에도 25년간 참으면서 지역차별이 해소되기를 기다리다가 그렇게 한 것을, 호남사람만 비난해선 안 됩니다』
지자제로 세상 달라진다
―서울시장에는 전라도 출신을 공천하실 생각입니까?
『서울시장 선거에는 우리가 가능성이 많은데, 될 수 있으면 비호남인을 밀 생각입니다』
―다음 총선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끝나면 평민당의 위상이 국정의 참여자로 바뀔 것 같습니다. 호남지방의 의회와 전남·북지사, 그리고 광주직할시장 자리를 장악할 것이고 잘하면 서울시장도 가능하니까요. 이제는 당의 체질이나 자세가 바뀌어야 하지 않습니까?
『좋은 일이지요. 여당과 당당한 관계가 되고 중앙정부와 서로 협력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 자연히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저는 국회의원시절부터 지금껏 30년간 지자제실시를 위해 싸워왔습니다. 이호 내무장관 시절에는 대, 여섯 시간을 혼자서 발언하면서 지자제실시의 당위성을 역설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 평민당이 제1야당이라지만 동회장 한 사람 임명할 수 있었습니까. 자연히 책임 있는 태도를 취하기 어려웠지요. 제가 박준규 국회의장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노대통령께 전했다고 하더군요.』
『지자제가 정국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지금은 대통령이 아무리 UN에서 연설해도 인기가 오르지 않는다. 지역주민들은 상수도가 잘못해도 군수 책임이고, 군수를 임명한 대통령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지자제하면 그런 비난이 대통령까지 가지 않는다. 그리고 민선군수끼리 서로 경쟁하니 지역발전 시키지 않을 수 없게 돈다. 서울에 와서 살려는 사람들도 줄어든다. 지방 문화도 발전하고…』
―다음 14대 총선의 의미를 어떻게 보십니까?
『3당합당에 대한 엄격한 심판이 있겠지요. 여야의 개헌입장에 대한 찬반성향도 나타나겠지요.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이기도 하고, 노대통령의 민생정책이 중점적으로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민자당이 단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것도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당이 과반수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다음 대통령선거에 자신이 있습니까?
『대통령은 하늘이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노력밖에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 동안 정부를 많이 비판했지만 한 번도 대안 없는 비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모든 문제에 대해서 다 전문지식을 갖추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데 대한 생각은 분명합니다. 노력해도 대통령이 못되면 어떻습니까. 저는 지금까지의 정치생활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컴퓨터 부정이 있었다고 지금도 믿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면 왜 재개표를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저보고 물러가라는 소리가 요란할 텐데 그런 말이 먹혔겠습니까』
金大中총재는 역시 프로 정치인이었다. 어떤 질문에도 대답을 사양하지 않았다. 가끔 용어선택의 과장, 논리의 비약은 있었지만 나름대로의 진지함이 있었고 의미심장한 복선도 있었다. 金총재는 완강하게 대통령중심제 고수를 선언했지만 『그러나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는 복선을 깔았다. 정치인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는 명분으로 내건 것에 못지 않게 그런 단서조항이 중요하다. 金총재는 자신의 염원이던 지자제를 실시하도록 한데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과 기대를 갖고 있는 듯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 진 가장 큰 원인은 지방자치체가 실시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는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는 지자제를 정권장악의 기초작업으로 활용할 준비를 단단히 해둔 것 같았다. 지방자치체가 몰고올 정치적·사회적 변화와 그것의 전략적 가치를 金총재는 꿰뚫어보고 있었다.
<1991년 2월 월간조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