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은 하루하루의 성실한 삶의 축적이었다}면서 {TK란 터지고 깨진다는 뜻이라더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더니 {언론이 공인을 지나친 선입감으로 보는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1992년 2월 월간조선>
논리정연한 답변월간조선은 박철언(朴哲彦)의원(민자당)과 첫 인터뷰를 가졌다. 마침 인터뷰를 한 시점이 盧泰愚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정치일정을 밝힌 다음날이어서 자연히 질문은 연두기자회견 내용으로 시작되었다.
朴哲彦의원만큼 4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각광]을 받은 정치인도, 또 언론으로부터 [십자포화(十字砲火)]를 맞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북방정책의 밀사]로 국민들에게 다가온 이후 그는 [대권주자], [反YS진영의 기수]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언론의 관심권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의 갑작스런 부상과 영향력의 원천을 두고, 그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은 {막후 권력{盧대통령}이 없어지면 힘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애써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을 보여왔던 게 사실이었다. 따라서 6공 이후의 그의 정치적 운명은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1월 11일 오전 9시 30분 의원회관 102호실에서 있은 이날 인터뷰에는 朴의원측에서 4명이나 배석하는 등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약 2시간30분 가량 계속된 장시간의 집중인터뷰에서 朴의원은 어떤 질문에도 자신에 넘친 태도로 답변을 했으며 논리 또한 정연했다. 그가 하는 말을 그대로 적기만 하면 완벽한 문장이 될 정도였다. 말씨는 약간 느린 편에 속했으나 정확한 용어를 구사하려는 노력을 읽을 수 있었다. 朴의원은 시종 차분한 태도로 일관했는데 [능력 시비]에 관련된 질문에서는 다소 흥분했고 목소리 또한 높아仄竪?했다. 그는 {반드시 선거를 통해 뽑힌 정치인만이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庸?{20년간의 공직생활에서의 성실한 태도가 모신 분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YS에 관련된 물음에는 가급적 망을 삼가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朴의원은 총선 후 민자당 경선에 나설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한번도 특정자리를 위해 준비해 본 적이 없었고,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그런 얘길 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라고 답했다. 그는 또 {언론이 특정인에 대해 선입견이나 부정적 시각을 갖고 보도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한다}고 말해 자신이 그동안 언론으로부터 [상당한 공격]의 대상이 되었음을 완곡하게 내비쳤다.
{연기조치 위법은 아니다}
―盧泰愚대통령의 기자회견과 관련하여 듣고 싶습니다. 朴의원의 소감을 먼저 듣고 싶습니다.
{대통령께서 연두 기자회견에서 밝히신 올해 정치일정에 대해 저는 그것이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하여 오랜 고심 끝에 조화점을 찾으신 것이라 생각하여 환영하였습니다. 대통령선거 문제는 너무 일찍 거론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임기 5년의 단임제 하에서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되기에는 1년 이상이 남은 시점부터 벌써 차기대통령선거 운운한다면 사실상 1년 이상 현직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저해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갈등, 남북문제를 풀어가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연두 기자회견의 내용 중 지자제 단체장 선거를 1, 2년 연기하겠다고 제의하신 것에 대해서는 저도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위법 여부의 논란이 있는 듯합니다만,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국정의 제반 여건을 참석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률 개정을 제안할 수 있기 때문에 단체장 선거의 연기조치가 결코 위법은 아니라 봅니다}
[密約]은 6·29 정신에 위배
―어제의 기자회견에 대해 金泳三대표도 별다른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승복한다, 믿는다}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걸로 봐서는 전날 대통령과 세 최고위원의 회동에서 사실은 어떤 깊은 얘기가 오고간 것 같습니다. 밀약은 아닐지 모르지만 차기 대통령후보와 관련하여 깊은 얘기는 있었을 것이다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글쎄요. 네 분이 모여서 한 세 시간 동안 만찬을 나누면서 서로의 입장에 대한 자세한 얘기가 오고갔겠지요. 또 그전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세 분의 의견, 주장, 그리고 최후의 양보선에 대해 직·간접으로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그날 네 분이 마지막으로 만나 충분한 의견 개진이 있었다고 봐요. 그러나 막후에 특별한 밀약이 있었다고 보진 않습니다.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 선출의 시기와 방법은 대단히 중요하고 또 본질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이에 대해 대통령께서 자세하고 구체적인 원칙을 명백히 밝힌 이상 이에 반(反)하는 개인적인 막후 밀약은 있을 수도 없거니와, 또 그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켜지기도 어려운 성격이 아니냐는 생각을 합니다. 설령 그런 유의 밀약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공개된 원칙을 저해하는 그런 내용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민주·개방화시대의 개막을 선언한 6·29 이전과 이후는 명백히 시대가 변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엄청나게 민주화가 진전되지 않았습니까. 더욱이 盧대통령이 임기를 마감해 가는 시점에서 6·29선언의 정신과 정면으로 상반되는 그러한 밀약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밀약 같은 것이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지켜질 수 없다는 말씀인데요. 대통령이 전국민을 상대로 밝힌 [경선을 통한 후보선출]방법이 상당한 구속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밀약이 있다고 하더라도]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닙니다. 가정법으로도 그런 것이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지도 않으리라고 믿고 있지만은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공개된 원칙을 무너뜨릴 수는 결코 없다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현직대통령이 후보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말 그대로 구경꾼의 입장에 서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언론에서 후보가시화라는 용어를 [위로부터의 가시화]라는 뜻으로 사용해왔는데 [밑으로부터의 가시화], 즉 대통령이 의원이나 당원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YS(金대표) 쪽으로 미는 그런 방법 말입니다.
{글쎄요, 그것은 어느 특정 개인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 후보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노력에 따라 가능한 문제라고 봅니다. 특정 후보자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87년 3월 당시 全斗煥 대통령은 盧대표에게 정국주도권을 일임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제 대통령이 {총선은 金대표를 중심으로 치러져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그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지 않습니까.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입장에서 총선을 직접 현장에서 지휘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나는 대통령께서 어떤 심정으로 말씀하셨쩝?정확히 읽을 수는 없지만 당 대표를 중심으로 두 최고위원이 합심해서 총선에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게 하라는 일반적인 당부의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YS는 對언론관계가 장점}
―YS 대통령후보론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법률이 정하는 일정한 요건만 충족된다면 누구라도 대통령후보가 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공당에서 당헌과 당규의 규정에 따라 민주적 절차에 의해 대통령후보가 선출될 경우 당원이라면 누구라도 승복하고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민주화를 위해 애써오셨고 정치경험이 많은 분이기 때문에 우리당의 후보 중에 한 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원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지요}
―방금 {YS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YS의 장점을 말한다면 어떤 겁니까.
{정치현장에서 오랜 실전 경험을 축적해서 정치감각이 상당히 탁월할 뿐 아니라 대(對)언론 관계의 원만함, 건강관리에 철저한 자세 등을 들 수 있겠지요}
―저는 YS의 정치행적으로 볼 때 역시 가장 큰 도박은 3당 통합이라고 봅니다. YS가 야당에서 여당으로 변신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6·29선언으로 민주화시대가 개막되어 저는 이제 우리 시대의 과제를 민주발전, 국민화합, 민족통합에 있다고 봅니다. 정치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서 그 시대의 공동선?추구하는 과정일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당시 金泳三 통일민주당 총재가 시대적 과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선 정치안정, 정국안정이 필요했고 그 실천방법으로 내각제 개헌의 당위성을 인식했던 것으로 압니다. 그같은 공감대 위에서 세 지도자가 구국적 결단으로 통합을 이뤄낸 것으로서 당시 저는 이런 결정을 환영하고 통합에 박수를 보낸 바 있습니다}
―3당 합당시 내각제를 하기로 합의했다가 안된 것에 대해 YS측에선 [사전에 공개되었기 때문에 추진이 불가능해졌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국적 결단으로 합당을 이뤄냈는데 그렇다면 합당의 목적을 국민 앞에 떳떳하게 밝히고 그 당위성을 설명함으로써 공감대를 넓혀 가는 과정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래야만 내각제 개헌을 위한 개혁적 정책이 국민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헌정체제의 개편작업이라는 엄청난 일을 어떻게 물밑에서 비밀리에 추진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런 문제를 공작적 차원에서 추진하던 시대는 지났지요. 3계파가 합당의 목적을 정당하게 밝히고 국민과 언론에 대해 대화를 시도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평민당과도 깊은 대화를 했어요. 개헌문제를 평민당과 협상을 통해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야당이나 국민이 모르는 가운데, 또 극구 반대하면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3당 합당 전에 金大中씨에게도 합당의사를 타진한 적이 있는지요.
{金大中씨의 핵심측근에게 의사를 타진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그쪽에서는 현 단계에서는 서로 건전한 여야관계를 지속시키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소극적인 반응이 있었을 뿐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니까 3당 합당은 합당이라는 [하드웨어]에는 성공했지만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내각제개헌이 실패했다는 점에서 처음의 구상이 빗나간 셈이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그것이 기본적으로 민자당 내분의 불씨가 되었는데, 朴의원은 내각제개헌이 14대 국회서 추진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어제 대통령께서 임기 중에 개헌을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의지를 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소신은 내각제가 정치권이나 국민 속에서 공감대가 확산되어 현실적인 제도로 가시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TK는 호사가의 造語}
―反TK, 反대통령 친인척 여론이 있습니다만.
{TK라고 합니다만 이는 호사가가 만든 조어에 불과합니다. 실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불명확해요. 다만 어느 특정한 지역 출신이 적재적소, 기회균등과 공평의 원칙을 뛰어넘어 불합리하게 우대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라면 누가 동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합당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어느 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배제되어야 한다는 식이라면 그것은 대단히 비민주적이라 할 것입니다. 특정지역 출신은 된다, 안된다는 식의 주장은 또 다른 지역 감정을 선동하는 것으로 모두가 자제해야 한다고 봅니다. 반 친인척 여론이라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아무런 능력이나 자격을 못 가진 사람이 오직 친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능력 밖의 과분한 직책이나 지위를 차지한다면 당연히 문제가 되지요. 그러나 임명직이 아닌 선출직에 진출하고자 하는 것을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제한한다는 것은 반민주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20여년간 공직에서 봉사해 왔습니다. 제6공화국 정부 전에 이미 법조계, 청와대의 책임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하여 오히려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기성 정치권 일부에서 새로운 정치 세대의 등장을 억제하기 위하여 이를 정치적 공격의 족쇄로 활용해 온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현직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기 때문에 그런 것을 정치적 공격의 소재로 악용할 수도 없겠지요}
{터지고 깨지는 것이 TK}
―일부에선 TK라는 용어를 대구·경북출신으로 쓰고 있는데, 저는 경북고 출신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해야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경북고 출신으로 국한한다면, 오직 현직 대통령만이 경북고와 대구공고를 함께 다녔지요. 최근 20∼30년간 사실 경북고 출신이 중요한 자리서 일을 한 측면도 있습니다. 저는 나라의 중요한 직책은 적재적소의 원칙에 입각해 인물을 기용해야 하며 학연이나 지연을 중심으로 이뤄져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저 자신 지역감정이나 학연을 타파하기 위해 어려움과 오해를 무릅쓰고 실천적인 노력을 해왔습니다. 실례로 지난해 체육청소년부장관으로 있을 때 공보관, 생활체육국장, 총무과장에 호남 출신을 앉히기도 했습니다}
―朴의원은 TK시비에 대해 세론(世論)을 비판하셨는데, 그전에 경북고 출신의 자중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맞는 얘기지요. 요즘 우리끼리 만나면 [터지고 깨지는 것이 TK]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경우에 있어 정치공세의 소재로서 근거 없이 TK가 공격받고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대구·경북 출신 인사들이 한국 현대사에서 어떤 경위로든 중요한 자리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 비춰, 공(功)이 있다면 공에 대해, 또 과(過)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총체적인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에 조국근대화라는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정치 민주화를 착실하게 발전시켜 온 것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때문에 특정학교 출신이 중심이 되어 그같은 현대사가 기록되었다면 오히려 과(過)에 대한 질책보다는 그 노고(老苦)를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구·경북지역만을 놓고 보면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속도가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20∼30년 전의 다른 지역과 발전속도면에서 보면 늦고 있다는 것을 여러 통계가 뒷받침하고 있지요. 나라 전체의 발전을 위해 개발의 부진을 감수하면서까지 애써 왔는데 결과적으로 특정지역 출신이 중요한 자리에서 다소 많이 일했다고 해서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에 가슴이 아픕니다}
―TK시비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싶진 않지만, 대구·경북지역이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다는 주장을 하셨는데 이런 통계자료도 있습니다. 자동차, 냉장고 등 내구재 판매량은 1인당 전국 최고이며 백화점도 가장 잘 되고 있다는…. 저는 돈이 권력을 따라가 축적된 면이 있다고 봅니다.
{특정품목의 수요량만 가지고 대비하는 방법은 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시민생활 수준의 기본적인 척도인 도로망, 상하수도, 환경문제 등을 비교해야 된다는 얘기지요}
{가족모임 보도는 유감}
―정초의 청와대 가족모임에서 오고간 대화내용에 대해 가십으로 보도된 바 있는데 혹시 바로잡을 내용이나 확인해줄 것은 없습니까.
{1월1일 저녁에 청와대에서 가족모임이 있어서, 나도 가까운 가족이라곤 할 수 없지만 초대받아 참석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신년인사를 교환하고 덕담을 나누는 모임이었지 정치얘기, 특히 대권관련 얘기가 나올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일부에서 그런 억측보도를 한 것은 유감입니다}
―보도내용은 두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대통령이 YS 쪽으로 밀기로 했다는 ….
{정치적인 얘기는 없었다고 제가 하지 않았습니까}
―다른 하나는, 혹시 대통령이 朴의원을 꾸짖었다는….
{그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게 오해할 만한 얘기는 없었나요.
{상당히 장시간의 만남이었는데, 서너 시간 이상 머물렀을 겁니다. 주로 가족주변 얘기와 일반적인 사회상황에 대한 화제로 대화를 했어요. 마침 그날은 결혼한 2세부부들이 많이 왔어요. 거기서 무슨 대권문제를 논하고, 또 신년초에 특정인을 질책하겠습니까}
―가족모임 때 남자들끼리 따로 모이는 경우도 있을 텐데요.
{가끔 바깥분 들끼리 모여 칵테일을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날은 부부동반 모임으로 시종했지 따로 모이지는 않았어요}
{중앙의 자금지원 없다}
―朴의원이 직간접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월계수회, 한통협 등의 정치적 목적과 이념은 무엇입니까.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제가 직접 거느리거나 관장하는 전국조직은 없다는 점입니다. 다만 과거의 인연으로나 업무에 관련됐던 인사들이 어떤 모임을 갖고 저를 좋아하거나 지지하는 예는 있을 수 있겠지요. 아시다시피 나는 지난해 4월 고문직을 사퇴한 월계수회와는 현재 조직적인 연관이 없으며 월간조선 신년호에 실렸던 한민족통일중앙협의회(한통협)는 저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통일원 산하 등록된 법인단체입니다. 물론 월계수회나 한통협 등 관계인사들 중에는 과거 87년 대통령선거 당시부터 맺은 인연, 또는 그 이전부터 학교 선후배 관계 등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기회에 그동안 언론에서 많은 비판적 시각을 갖고 보도했던 월계수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월계수회는 87년 6·29선언 이후 경향 각지에서 6·29선언이 좋아 자발적으로 모여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盧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이를 성취시켰고, 그 이후 당시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여 조직체를 구성하고 맑고 밝은 사회 건설을 위해 미력이나마 盧대통령을 도와 각자가 노력하자는 뜻에서 그동안 봉사활동도 하고 친목도 도모하고 하는 차원에서 회를 유지해 왔습니다. 이 조직의 이념은 민주발전, 국민화합, 민족통합을 이룩하여 통일되고 고루 잘사는 위대한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이지요. 한가지 덧붙일 것은 이러한 조직을 유지하는 데 많은 자금이 소요될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그것은 이 조직의 성격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해입니다. 종래 우리 사회의 대부분 조직은 중앙에서 자금을 지원해서 하부조직이 움직이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 조직은 단위별로 자생력·자활력을 갖고 움직이는 것을 대전제로 하여 시작된 모임이기 때문에 중앙에서 이를 관리하는 자금이 소요되지 않는다는 것이 종래 조직과 다른 점이지요}
{鄭周永씨는 비상한 사람}
―朴의원은 鄭周永씨와 가까운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 며칠 전 鄭씨가 [불우이웃돕기성 정치자금]을 냈다고 폭로한 바 있습니다. 정치자금의 제공자가 스스로 그 사실을 폭로한 것도 세계정치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또 당사자인 대통령이 받은 사실을 시인한 것도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대한 朴의원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鄭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1988년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북방정책을 담당해온 것이 안기부특보 시절인 1985년부터였는데 鄭회장이 盧대통령과 면담하면서 북방·남북문제를 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대통령께서 그 문제는 저와 상의를 해보라고 했고, 鄭회장 쪽에서 [상의하자]라는 연락이 있어 따로 만나게 되었지요. 그때 소련과 북한 문제에 관한 여러 가지 깊숙한 얘기가 나누어졌던 걸로 기억합니다. 鄭회장이 고령임에도 종합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고 그 뒤 일을 추진해 나가는 것을 보고 능력이 비상한 사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일련의 일은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불우이웃돕기의 명목이든 어떤 다른 명목이든 간에 거액의 돈이 전달되었다는 사실은, 盧대통령의 지적대로 과거의 나쁜 관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와 같은 과거의 관행을 말끔히 없애고, 그야말로 권력운영과정에 있어서도 도덕성과 윤리성이 정립되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께서 솔직히 그 경위를 밝힌 것은, 앞으로 그런 일도 정경유착으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강력한 시정의지를 보인 것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朴의원은 이러한 답변을 한 뒤 {이 부분은 미묘한 문제이므로 잘못 쓰면 안된다}면서 {뒷부분까지 말한 그대로 적어주면 좋겠다}는 주문을 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