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더라 - 노재봉의 노태우 변호(3)

세대교체론과 관련된 오해

―지난해 봄 강경대군 폭행 치사사건으로 국무총리를 그만두실 때의 과정을 보니, 처음에는 야당에서 이야기가 나오다가 언론이 여기에 편승하고 나중에는 민자당이 요구하는 식이 되었지요. 언론이 이를 기정 사실화해서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압력을 가하고….

{일단은 제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합니다만 오해가 많았습니다. 당시에 저보고 젊은 총리라고 했지만 제가 젊은 것은 아닙니다. 지도자들의 나이에 비해 그렇다는 뜻이었지요. 그 문제는 세대교체론과 연결되어 오해를 샀습니다. 그리고 총리가 된 후 큰 사건이 몇 가지 있었지요. 의원 뇌물 외유사건 그리고 수서 사건 등이 있었는데,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 잡혀 들어가는 사태가 벌어지자 기성 정치권을 바꾸기 위한 전초전으로 오해를 했습니다. 기초의회 선거 때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당시 盧대통령이 선거혁명을 주장했었지요. 제가 그 명을 받아 하위선거부터 잘 잡지 않으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행정을 믿고 정치를 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면서 위반자들을 다 검거했는데 여당 쪽에서 더 많이 잡혔습니다. 그것이 또 긴장을 유발시켰지요}

―국무총리가 되셨을 때 내각제 개헌이니 기성 정치권의 개혁과 같은 임무를 부여받으셨습니까.

{행정을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慮대통령이 한마디 던져준 의무였습니다. 비서실장을 하다가 총리를 했기 때문에 이미 많은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행정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비서실장을 할 때 보니 청와대 비서실이 행정부의 업무를 너무 많이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기 힘들지요. 그래서 행정부의 일은 행정부로 넘겨주는 재조정 작업이 필요하다는 보고를 했는데 그것이 제가 실장으로 마지막 한 보고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통령의 설득권력

―1990년 초에 재벌의 부동산 투기가 이슈가 되어 盧대통령과 재벌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이것도 민주화 과정의 일환이었습니까. 아니면 응급조치였습니까.

{당시 주택문제가 상당히 심각해 그 해결방법을 찾느라고 고심 중이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검토를 해보니 숫자상으로 5공 때 생긴 흑자가 다 땅투기에 들어가 있었어요. 6공 들어 해준 은행융자도 그렇고…. 기업결산을 살펴보니 기업활동을 통해 얻은 이윤보다 기업 외적 활동을 통해 얻은 이윤이 세 배나 많았습니다. 투기는 시장경제에 치명적인 현상입니다. 자유시장경제의 3대 문제는 투기적인 지하경제와 정치 스캔들 그리고 저속한 문화입니다. 투기로 인해 시장경제가 왜곡돼 있는데 그것을 정상으로 되돌리자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진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경제체제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에 모두 찬성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고나니 마구 반대를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왜곡된 상황 속에서도 체질화된 것이 있어 그것을 변경하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이 혁명보다 더 힘들다]고 느꼈지요. 비판이 많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재벌소유토지의 처리문제를 놓고 정부가 법에도 없는 일을 한다고 비난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헌정의 테두리 안에서 보면 대통령의 권리중 하나인 설득권력을 사용한 것입니다. 합법이니 위법이니 하는 것을 따질 차원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 그리고 재벌과의 전쟁을 통해 범죄율도 낮아지고 아파트 가격도 떨어졌는데 언론이 그 점을 제대로 부각시켜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추진방법을 정부 주도로 하지 않고 민간주도로 해서 조용히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론도, 글쎄요. 언론은 보통 사건을 대상으로 해요. 사건은 보통 잘못된 일을 가리키는 것 아닙니까. 그것으로 센세이셔널리즘을 팔지요. 무언가 개선되어가는 것을 추적하는 것은 뉴스가 아니라고 보는 듯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적 의미에서 전통을 만드는 일에 인색합니다. 되돌아보면, 모두들 정부가 잘못했다고 했지만 결과를 보세요. 우리나라가 전 세계 1백60여개 국가 중에서 상위권을 차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잘된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의도 없어요}

사람을 키우지 않는 사회분위기

―항상 나라가 당장 망할 것 같이 이야기를 해왔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제대로 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가는 혁명적인 변화는 엄청난 마찰을 야기시키고 많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불편이 생기고 대가를 지불해야 할 일이 생기는데, 그에 해당하는 사람은 항상 과장하기 마련 아닙니까. 6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산업화의 기반 위에서 민주화로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념의 차원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한국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달라졌지요. 그 과정에서 가장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각 분야의 지도자가 배양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우리 사회는 사람을 잘 키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너무 급격한 변화를 겪다보니 평균주의적인 인식이 너무 강해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남을 인정하고 장점만 취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 점에 대한 인식이 모자랍니다}

―우리나라의 역대 지도자들이 적어도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가지는 않았다는 것과 국민들이 그것을 잘 따라주었다는 점이 한국의 기적적인 발전에서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이외에 다른 요인으로는 어떤 점을 들 수 있을까요.

{흔히들 교육된 인력, 시장경제라는 바탕, 지도자의 의지, 국민의 호응도 등을 드는데 그 어느 것 하나가 빠져도 안되는 겁니다. 여기서 나오는 창조적인 요소를 살려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까지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만든 조직이나 행위 양태의 효용은 이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점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될 정도입니다. 그것을 대체해나가는 새로운 국가경영 전략의 모색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잘 하면 급성장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비서실장 하실 때 소련과 수교를 했는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와 했던 회담은 너무 어색한 모양새를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정상적인 국가간의 관계라면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대국가였던 관계로 서로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제한적인 요소가 많았습니다}

북방외교, 앞섰다는 점이 중요해

―盧대통령의 북방외교에 대해서는 안 해도 되는 것을 너무 서둘렀다는 비판이 있지 않습니까.

{뒤따라가는 것과 앞서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지요}

―구 소련에게 경협자금 30억 달러를 제공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습니까.

{합리적인 수준이었다고 봅니다. 당시 소련은 엄청난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는데, 만일 소련이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제 정치 전반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서방 국가들도 소련을 도와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소련도 자존심이 있는 나라고 워낙 자원 규모가 큰 나라 아닙니까. 문제는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약소국으로서 국제적인 역할을 별로 해본 일이 없다는 데도 있지요. 이제는 UN과 GATT에도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있으니 예전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국민들은 국내정치나 경제에 대해서 실감하고, 그 의미도 잘 파악하고 있는 데 비해 국방이나 외교에 대해서는 감을 잡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국제적인 역할을 해본 일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민족이라는 시각을 좀 더 넓혀야 합니다. 다른 나라들은 EC 통합의 경우처럼 이제 민족이라는 차원을 떠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민족국가의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습니다}

―盧대통령과 金日成의 정상회담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밑에서는 행정차원의 권한밖에는 행사할 수 없으니 교착상태에 빠지기 쉽지만, 정상끼리 만나면 타결이 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정상회담이 무턱대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盧―金 정상회담을 위해 합의각서 핵문제 등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 않습니까.

{양보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차원에서 받아들인 것이지요}

―盧대통령의 주된 관심사는 주로 어느 쪽입니까.

{특별히 우선 순위를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요. 대통령은 격무에 시달립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집무를 시작하는 것은 8시30분인데, 퇴청 후에도 서류를 가지고 가십니다. 저녁식사 후 9시부터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하지요. 취침시간은 대개 12시 이후입니다}

―盧대통령은 결단이 느리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단순사회가 아니니 어떤 결정을 내리면 그 결정이 야기하는 결과가 상당히 큽니다. 그러한 점을 고려하다가 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대에는 결단 그 자체보다 결단의 결과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더 큰 문제입니다. 권위주의적 결단과 민주주의적 결단의 차이에 대해 국민적인 이해가 좀 깊어졌으면 해요}

―대통령의 집무 스타일을 보면 朴대통령이 자기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것에 비해, 全대통령과 盧대통령은 매우 바쁘게 지내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은 한가하게 지내면서 중요한 일만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물론 중요한 결단이 필요할 땐 대통령 혼자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저녁시간을 완전히 비워두고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는데, 그것은 의전실에서 조정합니다}

―대통령제의 문제는 결국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다 보면 정말 중요한 일을 놓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먼저 사회의 여러 분야가 자리를 잡아야 그런 방법이 가능합니다. 결국 사회의 자율성이 커져 스스로의 힘이 생겨야 하는데 그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대통령의 업무량이 많아지지요. 어느 정치인이 지금까지 노대통령만큼 냉엄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어떤 판단을 내릴 때 감정에 좌우되는 일이 없습니다}

통일, 낙관하되 자만하지 말아야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있다보면, 대통령만이 알 수 있는 정보와 통찰력이 생길텐데, 盧대통령은 남북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독일통일이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겪게 되는 통일의 의미를 중요시합니다. 낙관하되 교만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결국은 흡수통일방식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동질성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동질성이라면, 정치와 경제부문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합니까.

{오늘날의 국제사회에서 자급자족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북한도 개방이 될 겁니다. 거기에 도움이 되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두 개의 다른 체제가 통합될 수는 없습니다. 저쪽의 체질 변화를 유도하고, 구멍이 있으면 어디든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통일정책의 이중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대북한정책의 최대장애는 우리의 내부분열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지하에서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는데, 운동권이 시끄러우니까 기다리다 보면 북한이 배짱을 부리게 됩니다. 앞으로 시간을 갖고 내부결속을 다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통일은 국민결속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합니다. 독일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의미심장한 교훈은 상대방의 자존심을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기부의 역대 북한국장들을 인터뷰한 결과, 그 결론은 북한이 앞으로 자체붕괴할 것인가 아니면 도발을 할 것인가로 요약됩디다.

{북한에서는 한국이 북한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는 밑으로부터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권부 내에서 일어납니다}

―북한 권부의 변화를 유도하려면, 친남한세력을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10·26식의 권력층 내부 암투 가능성은 없다고 보십니까.

{지금 북한에서는 金日成에게 현 상황을 사실 그대로 보고하지도 못하는 실정입니다. 단편적인 것으로 金日成의 신경을 건드릴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나중에 한꺼번에 알게 된다면 모르지만….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니 金日成이 오판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金日成이 보고받지 못한 사실을 우연히, 하나 알게 돼 간부들을 모아놓고 호통을 친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사흘을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세금면에선 고대국가

―총리가 되신 후에는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와는 입장이 또 달라집니까.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비서실장은 간접 통제를 하지만 총리는 직접 통제를 합니다. 그 점이 차이지요. 저는 국무회의를 파격적으로 진행했습니다. 국무회의에 들어가기 전에는 비서실에서 사전준비를 해주는데 저는 그것을 가끔 무시하고 집행했습니다. 한번은 임금협상이 문제가 되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3월까지 5%로 끝내라고 지시했는데 3월 말이 되도록 지지부진하길래 이달 내로 끝내지 않으면 인사조치하겠다고 했더니 비서실에서 혼비백산했어요. 총리가 어떻게 인사문제를 가지고 운운할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나 총리에게는 각료제청권이 있습니다. 盧대통령도 그 이야기를 듣고 [총리에게 제청권이 있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라고 했지요}

―6공의 장관들이 너무 단명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정가의 체질이 바라정치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유리한 위치를 잡으려고 하고 또 여기에 언론이 같이 밀고 나오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행정개혁에 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관료에 대한 대우는 현실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총무처에서는 우리나라의 공무원 수가 적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공무원 수가 너무 많습니다. 그 수를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더라도 산업화에 적합한 새 기능에 맞게 재배치를 할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봉급인데, 우리 경제의 20%를 차지하고 있다는 지하경제를 세원으로 잡을 수 있으면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실 현대 국가의 기본은 국민개병제와 국민개세제 아닙니까. 세금 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고대국가나 다름 없습니다}

―앞으로 책을 쓰실 계획은 없습니까.

{생각중입니다. 우선 그 동안 공부하던 걸 계속하는 의미에서 학문적인 쪽의 글을 쓸 수도 있겠고, 현실정치에서 경험한 것을 이론화하는 작업도 있을 수 있겠지요}

〈정리·姜仁仙 월간조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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