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정치특보, 비서실장, 국무총리를 역임하면서 盧대통령을 지근에서 보좌했던 노재봉씨는 {정치는 현실이다. 현실에서 반 발을 떼기 어렵더라. 두 발을 모두 딛고 있으면 움직이지 못하고 다 떼버리면 허공의 정치가 돼 버린다}고 했다.
<1992년 12월 월간조선>
의식이 상황을 못 따르는 시대―盧의원께서 지금까지 대통령 정치특보와 비서실장 그리고 국무총리로 일하시면서 인터뷰한 기사들을 읽어보니 국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개 정치인들은 국민을 신성불가침의 존재인 것처럼 이야기해온 것에 비해서 盧의원께서는 [이제 시대가 바뀌고 대통령의 역할도 변했다. 그런데 국민들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대통령에게 해달라는 식으로 무리한 요구를 해서는 안된다]고 국민들을 비판하고 경고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朴正熙 대통령이 국민들을 계도하는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일은 있지만 그 이후 정치인으로서는 처음 하는 비판인 것 같은데…. 청와대로 들어가신 후에 그 입장에서 본 국민은 학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던 국민과 달랐습니까.
{문제는 객관적인 상황의 변화와 주관적인 인식간의 차이가 메워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국민들의 의식이라는 것이 지난 반세기 동안의 정치체제를 경험하면서 일정방향으로 체질화되었기 때문에 의식이 빨리 변하지 않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체제는 민주체제란 것인데, 이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 국민들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노력이 수반돼야 성공할 수 있는 체제입니다. 빠르게 그리고 정부가 다 맡아서 해달라면 그건 권위주의 체제를 원한다는 얘기가 되지요. 민주체제를 원한다면 국민이나 시민들이 엄청난 부담을 감당하겠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내가 해서 고통스러운 건 남이 해주기 바라고 좋은 건 내가 하겠다고 한다면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자율성은 어디서 찾겠습니까}
―의식의 변화는 상황의 변화보다 항상 늦습니까.
{사회학적으로 보면 일단 사람이 어떤 상황에 적응하게 되면 마음 속에 고정된 유형의 공식이 성립하게 됩니다. 그런데 일단 한번 성립된 공식이 변화되려면 그것을 둘러싼 모든 것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아주 느린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국민들이 [강력한 정부]를 원한다고 할 때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회에서 그런 정부의 개념은 각각 다른 것인 데도 마음속의 공식이 완전히 변하지 않으면 그것이 잘 파악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5년간의 盧대통령 집권기간은 그 공식을 바꾸는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타율에서 자율로 가는 시기였지요. 민주화라는 것은 모든 부문에서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킵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율은 어려운 거에요. 독재는 차라리 국민의 입장에서 편한 것입니다. 6공에 들어오면서 모든 사회집단이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경험 부족으로 인해 상호 관계 설정에 어려움이 많았고, 새로운 이익집단 내부의 원칙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盧대통령, 시대의 변화를 간파
―盧대통령은 변화한 시대 상황에 따라 통치 스타일도 변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정치특보가 됐을 때 처음 맡은 임무의 하나로 盧대통령이 민정당 국회의원들이 시대가 변한 것을 잘 모르고 있으니 그것을 잘 인식시켜달라고 해서, 국회의원들을 모아 함께 식사도 하면서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던 일이 있습니다. 盧대통령은 근본적인 체제변화를, 과거와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조그마한 상황변화로 인식하려는 경향에 부딛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여소야대가 되던 날, 盧대통령은 崔秉烈 당시 정무수석의 보고를 듣고 {차라리 잘됐다. 이런 바탕 위에서 민주화를 한번 해보자}라고 했다는데….
{그날 새벽 盧대통령이 崔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자, 낙담하지 말고…. 역사적인 변화를 시도하는데 일이 그렇게 쉽게 되겠느냐]고 하셨다고 합니다}
―여소야대가 아니었으면 盧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지금과는 달랐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盧대통령은 체제전환에 기여하는 대통령으로서 리더십의 형태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청와대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대통령을 모시고 관계장관과 수석들이 모여 회의를 한 일이 있었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다 들으시고 나서, [여보시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나보고 권위주의로 돌아가라는 거요] 하며 심하게 질책했던 일이 있습니다. 다들 그 순간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盧대통령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당대표를 하던 시절에 정치학자들과 모임을 가진 일이 있었는데 때가 처음입니다}
―6·29 선언을 전후해서 그와 관련된 충고를 하셨던 일이 있습니까.
{6·29 선언에 직접 관련된 충고를 한 일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 상황 전반에 관한 견해를 밝힌 일은 있는데 그것이 盧대통령의 견해와 일치했다고 봅니다}
―당 대표 시절의 盧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정치나 미래에 패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계속 권위주의로 갈 수는 없고, 한국 정치가 사회 자체가 가진 힘을 그대로 노출시켜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봤습니다. 사회가 가진 힘을 누르고 있으면 그 사회는 약화됩니다. 자연적으로 발전되어온 힘을 그대로 현실화시키는 것이 사회를 강하게 만드는 방법이고 그것이 곧 정치의 밑바탕이 됩니다}
―사회가 가진 힘이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하고는 다릅니다. 구조변화에서 오는 부분들의 새로운 위상을 인정하는 것이라 할까요. 어린애가 시간이 가면 성인이 되는 경우 그에 대한 대접도 달라져야 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지요. 단순사회에서 복합사회로 가면서 관료가 통제하고 지도하는 데도 한계가 생겼습니다. 따라서 관료의 역할도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원사회의 자율적인 힘이 작동하도록 해주지 못하면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정치담당 특별 보좌관이 되셨을 때 盧대통령이 특별히 부탁한 어떤 역할이 있었습니까.
{학자로서 전반적인 상황을 관찰하고, 분명한 역사의식을 기반으로 분석해서 그 정치적 의미 등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조직 속에 묻혀서 일을 하다보면 전체를 보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특보는 그러한 일상에서 떠난 자리이므로 전체를 보고 보좌하라는 뜻이었습니다. 盧대통령과는 일주일에 한번씩 독대했고 수석 비서관회의에도 참석했습니다. 수석 비서관 회의를 할 때는 비서관들이 모두 발언하고 나서 실장이 마지막에 발언을 하는데 제가 그 직전에 발언하는 순서였습니다. 주로 대통령에 관계되는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규정된 역할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 스스로 정해야 했습니다}
―정치 특보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셨습니까.
{체제가 완전히 변화하는 과정에 있었으므로 그 과정에서 리더십의 발현방법이 문제였습니다. 국정 전반을 보면서 대통령의 리더십과 관련하여 순간순간 문제되는 게 무엇인가를 포착하는 것이었습니다}
―1989년은 매우 중요한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시위와 노사분규가 최고조에 달했었지만 학생운동권의 실수로 부산 동의대 사건이 터졌고 서경원 문익환 방북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보수세력이 반격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요. 그 이후에 우리 사회가 안정 기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되는데…. 그 당시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어떤 것을 들 수 있습니까.
부산 동의대 사건의 기억
{정말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거의 무정부 상태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지요. 경찰이 수행해야 하는 업무의 성격도 변했고 역할도 커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과거의 이미지 때문에 무력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민생치안 문제가 부각되었지요. [물대통령]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그 무렵입니다. 여론도 권위주의적인 과거에 향수를 느끼며 회귀하는 듯했습니다. 역사적인 체제변화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있게 마련인 변증법적인 반동이 심히 우려됐습니다. 대통령의 침묵에 담긴 고뇌는 이루 말할 수 없었고요.
그 때 저는 盧대통령에게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 역사적인 큰 흐름이 지나가는데 국민들이 강한 대통령을 원한다고 해서 그 흐름을 차단시키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큰 흐름이 지나가는데 어떻게 골을 잘 파서 정상적으로 흘러갈 수 있게 해주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국민들이 권력에 대해 갖고 있는 과거식의 [강력한] 통치력의 발휘는 자제해야 한다는 충고도 했습니다. 시민들이 질서를 위해 스스로 노력하자는 이야기를 할 때까지 참자고 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치안력이란 시민의 질서의식을 근간으로 하는 보조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로 그때 [물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대통령께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 치안을 일시에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좀더 기다리다가 계기를 잡자]고 했습니다.
부산 동의대 사건 때는 대통령을 비롯해 내무장관 수석 비서관들 모두 다 우울해했습니다. 盧대통령은 그 사건이 지금도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사건이 계기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힘을 잃지 말고 이 기회를 활용하자고 했지요. 당시에는 군이라도 나와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어요. 그러나 민주화라는 것은 이념이라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고…. 절대 후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군에 가서 강연을 한 일도 있습니다. 군은 이제 정치적 부담에서 해방됐으니 본연의 임무만 다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또 옛날과 달라서 군이 나온다고 해도 시민들이 바라는 정상적인 사회로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군부의 분위기가 격앙되어 있었지요.
{군은 의기소침한 상태였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군의 위상을 잡아가느냐 하는 것도 고민거리였고 또 이러다가 나라가 다 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경찰과 학생의 폭력이 같다니…}
―당시 盧대통령의 태도는 앞으로 쟁점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총장들을 모아놓고 이제는 당신들이 학생시위를 직접 막아라, 학교에서 요청하지 않으면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공권력 사용을 자제하면서 민주주의를 교육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또 한 편으로는 법치의 원칙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경찰력만으로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때는 노사분규가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지만, 경찰력을 투입할 경우 그 부작용이 엄청날 것이었습니다. 시위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무단 점거해도, 그것은 의당 경찰이 개입해야 할 성질의 것인데도 불구하고 경찰의 이미지가 워낙 나빴고 물리적으로도 한계가 있어서 모든 사건에 다 개입할 수 없었습니다. 대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이제는 타율이 아닌 자율의 시대다. 정부 역할도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린 것입니다. 1989년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야당은 국민들에게 자제를 요청하는 발언을 한 번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때 야당 3당 당수 합의 문서 중에 [경찰의 최루탄과 학생들의 폭력이 같은 종류의 폭력]이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나니 아연실색해서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고 절망도 했었습니다}
―1989년 전반기에는 중간 평가 연기가 결정되어 金泳三씨가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동해 선거 매수사건이 일어나 김영삼씨가 타격을 받았습니다. 또한 서경원씨가 방북을 하는 바람에 金大中씨도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부산 동의대 사건이 일어났고, 검찰과 안기부, 경찰은 공안합동수사본부를 만들었습니다. 1989년 5∼6월은 변혁세력과 보수 안정세력간의 대결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시는 4당체제가 움직이는 아주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정치적 자유주의의 가장 큰 위험은 같은 기반을 딛고 있는 정치세력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기 분열 현상입니다. 여소야대의 경우처럼 정치적으로 합리적인 결합구조를 결여한 상태에서는 헌정을 제대로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최소한의 수단은 행정수단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관계기관의 효율적인 공조를 위한 공안합동수사본부였습니다. 우리의 구질서에서 그와 유사한 기관을 보았던 경험이 있어서 우선 이름부터 거부감을 유발했던가 봅니다. 그러나 그것을 변혁세력과 보수안정세력의 대결로 보는 데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무정부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이상 정부로서는 당연히 민주체제를 옹호해야 할 의무를 지녔던 것입니다. 그걸 위해 만들어졌던 기관이 어떻게 달리 평가되어야 합니까.
그리고 그 기관도 정책의지의 수단인 것입니다. 그 의지는 바로 대통령의 의지며, 대통령은 민주화를 위한 확신에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갓 탄생한 새로운 민주체제를 교란시키려는 검은 세력에 대해 대처한다는 것은 표면상으로 흑백을 가리기 어려워서 고통도 많았습니다만 밑에서 일하던 우리들도 분별의식은 분명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바람정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요즘 간첩사건을 보면서 절감하게 됩니다. 그런 정치는 물론 세력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중간평가 포기의 논리
{13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 민정당 의원들을 모아놓고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구미 사회가 아닌 다른 나라의 대통령제 하에서 여소야대의 상황이 생겼을 때 쿠데타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이 된 예가 없다. 만일 13대 국회 기간이 쿠데타 없이 끝난다면 그것은 세계 헌정사상 최초의 일로 기록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중간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은데…. 정치, 사상적인 용어로 [치유]와 [예방]이란 게 있습니다. 당시 중간평가는 [치유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수술을 한다는 이야기인데 수술을 하다가 환자가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 나름대로 정리한 것은 이렇습니다.
[국민투표에서 대통령이 이기면 그때는 민주적 독재가 된다. 그러나 지면 물러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긴다고 해도 그 후에 어떤 조치를 할 수 있을지 불투명했습니다. 이기면 권위는 강화되겠지만 그것을 제도적으로 보완할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진다면 엄청난 혼란이 올 것이고 그것은 아무도 책임을 질 수 없는 사태가 됩니다. 그러나 일단 국민들이 잠잠해지도록 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어요. 문제는 이기든 지든 간에 상관없이 치러야 할 대가가 엄청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감수하더라도 중간평가는 하려고 했었습니다. 만일 야권의 의견이 일치 됐었더라면 했을 겁니다.
야권 내에도 이견이 있었고 그래서 중간평가는 후퇴하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상황은 나아진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이 [예방]방법으로서 [합당]이었습니다. 3당 합당을 하고 나서 배신이다 아니다 말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면 같은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 그룹의 결합이 헌정 중단의 위기를 막았고 그 결과 6공이 지금까지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89년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저도 잘 기억합니다만 여소야대가 지속되면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좀 과장된 인식 아닙니까.
{당시의 치안은 경찰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헌병을 동원해서 우범지대에 보내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었습니다. 그러나 직선제 대통령이라는 정당성이 워낙 큰 의미를 가진 것이어서 3년의 혼란을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1차 안전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부분적으로나마 군의 힘을 빌렸다고 해 봅시다. 힘의 속성이란 묘한 것이어서, 그렇게 했더라면 한 조직의 힘이 다른 조직으로 자연스레 이동해 갔을 겁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야심가의 쿠데타가 아니라 그런 자연스러운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3당 합당을 준비하는 과정에 참여하셨습니까.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치구조를 재편성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저는 이론적으로 그 의미를 보강하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합당] 이외에 [정책연합]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처음에는 [연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지요. 선진국의 경우에는 그런 상황이라면 으레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방향으로 가지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되질 않아요. 이유는 상당히 감정적인 것인데 우리나라의 정당이 워낙 감정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민정당과 공화당은 연립해도 과반수를 넘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쩐지 같은 세력들끼리 대동단결해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이미지를 주는 것 같아 피하기로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