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성/내가 나서서 직접 장관들을 챙길 때가 온 것 같다(4)

『국무회의 離席 거의 없다』

―李萬燮 국회의장과 국회에서 충돌한 적이 있었지요. 그후 李의장과 불편하지 않았습니까. 金鍾泌 대표가 두 분이 화해하도록 중재한 것으로 아는데요.

『그 일은 그 순간의 해프닝이었어요. 아무런 저의도 없는…. 여야가 격돌하게 되니 저로선 단상으로 나갈 수도 안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반면 이만섭(李萬燮) 의장은 격돌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보고 나오라 한 것이고요. 金鍾泌 대표께서 자리를 마련하셨는데 이심전심으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따로 화해가 필요 없는 뭐 그런 자리였습니다』

―총리실에서 행정부처를 조정하려면 수단이 있어야 합니다. 예산권이나 감사권 같은 것이 그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기능을 총리실에서 갖고 있지 못하니 조정하는 기능이 약한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국무회의도 있고 대북전략회의도 있고, 장관을 호출할 수도 있으니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이석(離席)이 많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장관들에 대한 통제가 잘 됩니까.

『그 기사는 잘못 쓴 것이에요. 장관들이 국무회의에 불참할 땐 사전에 모두 사유를 보고하기 때문에 이석은 거의 없어요. 국무회의 진행시간이 2∼3시간, 때론 4시간씩 걸리기도 하는데 대통령에게 보고하러 나간다든지 국회에 출석하러 나간다든지를 제외하곤 개인 사유로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어요』

―총리실에서 「행쇄위」를 끌고 나가니 장관들의 보고가 많아지고 통제가 되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장관이 자기 필요에 의해서 일상적인 부처 일을 보고하러 오는데요』

―차관회의는 기획원 차관이 주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총리실에 차관급인 행정조정실장이 있으니 행조실장이 차관회의를 주재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李興柱 제 1행정조정관 답변)『오래 전부터 그 문제는 깊게 논의되어 왔습니다.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월간조선에서는 작년에 메릴린치부사장을 하다가 일본 이즈모 시장이된 이와쿠니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이와쿠니 시장은 인구 8만의 이즈모시를 운영하면서 행정을 최대의 서비스산업으로 변환시켜, 민간단체가 주는 전국경영자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가장 경쟁력 있고, 소비자 즉 국민 중심의 사고를 할 수 있는 조직은 기업체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체 조직의 장점을 행정에 도입할 수 있는 연결고리는 없을까요.

『미국 군대가 기업 경영 기법을 도입했듯이 5·16 후 행정부에서 군의 행정제도를 도입했었는데 30여년을 지내고 행정조직이 침체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관에 있으면 아무래도 안주하려는 의식이 강해집니다. 공무원의 사고방식을 기업체 사람이 비즈니스하듯이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비즈니스 조직이 효율적이 된 것은 경쟁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행정조직은 말로는 다른 나라의 행정조직과 경쟁한다고 하지만 전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공무원에 대한 의식개혁은 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사고의식을 불어넣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별 공무원 교육에서는 자질교육보다는 전문분야 교육을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교육내용을 자질교육 위주로 바꾸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의 경쟁 마인드 도입해야

―일본의 경제부처에서는 공무원들을 종합상사에 파견 근무시킨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런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공직사회가 깨끗해지면 해볼 만하지요. 그 전에 했다간 공무원 경력의 중간단계에서부터 정경유착이 된다는 말이 나올 걸요. 지금은 그보다도 외국에 많이 나가 외국의 행정을 배워오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의 희망은 지방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엘리트 출신의 군수가 창조적인 발상을 갖고 주체적으로 일하는 것을 보면 감명을 받습니다. 일본 총리가 된 호소카와도 구마모토 현 지사를 할 때 잘 했기 때문에 총리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미래의 한국의 국가 지도자도 지방 지도자로서 능력과 자질을 인정받은 사람 중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제도적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가 꼭 필요한데 언제쯤 실시할 예정입니까.

『지방화시대 멀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지방자치가 많이 앞서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아시아나 항공 회장을 할 때 업무상 일본에 여러 번 갔었는데 현(縣) 지사들이 현 공항에 한국 항공사가 취항하면 국제공항이 된다며 저보다 더 적극성을 보였습니다. 현의 국제화에 노력하고 서울에 현(縣) 출장소까지 설치하는 것을 보면 일본의 현은 다른 나라의 정부 조직과 대등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대선 공약대로 95년에 할 예정입니다. 선거를 통해 등장하는 도지사나 군수들은 다음 번 당선을 위해서 더욱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지방자치를 실시해 행정에 경쟁을 도입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부정부패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게 하는 중요한 행정개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행정개혁을 제대로 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당길 수는 없을까요.

『다른 선거와도 시기를 조정해야 되는 것이니까, 95년에 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서울에 직판장을 개설하는 군(郡)이 많습니다. 군(郡)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알고 있는데 이 직판장들을 한 곳에 모아 주면 어떨까요.

『그것은 흩어놓는데 묘미가 있습니다. 경쟁이니까요』

지방단체장 선거는 95년

―한달 전쯤 金泳三 대통령이 우수 공무원 표창을 하면서 『소신없는 공무원은 그만 두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 말은 공무원들이 듣기에 기분 나쁜 것인데 왜 대통령이 그런 말을 직접 하게 되었을까요.

『우리 공무원들은 인사적체가 심각합니다. 보수도 민간기업은 물론 공사(公社)보다도 적은 편입니다. 여기에 사정바람을 일으키며 개혁을 밀고 나가니 보신주의가 생겨납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공무원의 사기를 어떻게 높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공무원들은 소신껏 일하라는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당정협의는 잘 되고 있습니까.

『잘 되고 있습니다. 장관들이 조용히 있을 날이 없을 정도로 자주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교문수석실에서 검토를 했고, 모 신문에서 같은 취지의 글을 싣기도 했습니다만 「공사중인 전쟁기념관 건물을 중앙박물관으로 함께 사용하겠다」는 당정협의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관련 부서인 국방부와 논의 없이 그런 발표가 나왔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식의 당정협의는 순서가 안맞는 것 아닙니까.

『다른 부처에서도 그 문제를 논의했었습니다. 당정협의는 당 분과위별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가 생겼던 모양인데, 대통령께서 이미 전쟁기념관 건물을 중앙박물관으로 전용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전쟁기념관을 서울 한복판 육군본부 자리에 세우는 것은 좋습니다. 문제는 경영이 잘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요.

『전쟁기념관은 지방에 있는 독립기념관과 달리 도심에 있어 위치가 아주 좋습니다. 아무래도 국가에서 지원해야겠지요. 오랫동안 나라를 유지해 왔다는 것은 전쟁을 하면서 나라를 지켜왔다는 것입니다. 전쟁기념관은 호전적 취지가 아니라 호국의 정신을 기리고 함양하자는 곳입니다. 6·25전쟁 때나 국난이 있을 때마다 목숨을 바치고 팔다리를 바친 분들이 명예와 보람을 찾을 수 있어야 그의 아들 형제가 또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쟁기념관이 왜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영국의 대영제국 전쟁기념관도, 프랑스의 군사박물관도 모두 도심에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전쟁기념관 역할을 하는 곳이 야스쿠니 신사인데 역시 도심에 있습니다』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십니까.

『새벽 4시 30분에 눈이 딱 떠집니다. 피곤하면 10, 20분 그대로 누워 있긴 해도 그 시간이면 눈을 뜹니다. 5시부턴 총리 공관 둘레를 30, 40분간 돌면서 산책합니다. 6시쯤 되면 텔레비전 뉴스를 켜놓고 물리치료를 받습니다. 나이(67세)도 있으니까 척추를 바로 펴는 물리치료를 운동삼아 주 5일 정도 받습니다』

李舜臣·나폴레옹 존경

―몇 시에 주무십니까.

『밤 11시30분에 잡니다. 잠은 잘자는 편이라 누우면 곧 잡니다』

―낮잠은 주무시지 않습니까.

『자지 않습니다. 수면 부족을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존경하는 위인은 누구입니까.

『국민학교 5학년 때 徐康熙 선생님이라고 아주 훌륭한 분이 계셨습니다. 교장은 일본인이었는데 교장의 딸이 같은 학년 같은 반이었습니다. 일본어를 국어로 쓰라고 한창 강요할 때였는데 교장의 딸이 불참한 가운데 소풍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서강희(徐康熙) 선생께서 이순신(李舜臣) 장군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좀더 커서는 나폴레옹 위인전을 보고 고난에 처했을 때 어떻게 용기를 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건설시장 규모가 정부예산과 유사한 34조원이었습니다. 단일 시장으론 국내 최대인 것이지요. 규모가 크다 보니 가장 많은 비자금이 조성되는 곳이 건설업계이고,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쓰는 곳도 건설업체라고 합니다. 부실공사가 많아진 것은 구조적인 건설비리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신정부에서는 건설비리를 없앨 방안을 갖고 있습니까.

『부실공사의 원인이 건설비리에 있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부정의 근원이 건설에서 시작된다는 지적은 옳습니다. 신정부에서는 건설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몇 차례 관계장관 회의를 가졌습니다. 건설비리를 살펴보니 큰 공사일수록 위에서 업자를 지정해서 내려오는 게 많았습니다. 이러니 로비를 할 수 밖에요. 심지어는 1백억원짜리 공사를 하기 위해 30억원을 쓴 것도 있었습니다. 담합을 하고 떡값을 뿌리고 하도급을 부정하게 하는 게 모두 건설비리입니다. 정부에서는 입찰제도부터 바꾸는 등 건설행정을 대대적으로 바꾸어 나갈 예정입니다』

―사정은 청와대에서 직접 챙기고 있고 감사원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총리께서도 챙기고 계십니까.

『제 4행정조정관이 실무자가 되어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예로 과거처럼 휴가를 앞두고 기업체로부터 여비를 받는 공무원이 있는가 암행감사를 했습니다. 적발된 공무원 명단은 해당부서 장관에게 넘겨 처벌을 위임했습니다』

―과거 중심의 사정을 하면 너무 많은 사람이 걸리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획을 그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어느 시점에 이르면 자연 획이 그어지겠지요』

―과거 金鍾泌 총리 시절 비서실장을 하셨지요. 다시 총리실에 돌아온 감회가 어떻습니까.

『그때 7개월 비서실장을 하다 전북지사로 나갔으니 여러 가지 감회가 있습니다. 제 이야기 좀 할까요. 저는 이상하게도 원해서 임무를 맡은 적이 없어요. 총리 비서실장 전에 무임소장관 보좌관(차관급)을 했는데 金鍾泌 총리가 대통령 결재를 받아왔다며 비서실장으로 일해달라고 해서 비서실장을 맡았습니다. 총리 비서실장을 할 때인데 어느날 김현옥(金玄玉) 내무장관이 전화를 걸어와 「고향으로 가시게 됐다(전북지사로 발령이 났다)」고 그래요. 그날 金내무가 총리실을 거쳐서 결재서류를 들고 청와대에 올라갔기 때문에 저는 강원도와 충남지사만 바뀌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씀이냐」고 했더니 朴대통령께서 「전북지사 할 사람도 적어봐」해서 몇 명 이름을 적자 제 이름에 낙점을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원해서 직책 맡은 적 없다

―원해서 직책을 맡은 적이 없다는 말씀이 재미 있습니다.

『한번도 제가 운동해서 직책을 맡은 적이 없습니다. 4·19 직후 경북 영천에서 육군 경리학교장을 할 때였는데 볼 일이 있어 서울에 왔다가 기차를 타고 내려갈 때였습니다. 대전에서 역장이 올라타더니 「일이 생겼다고 육본으로 오랍니다」고 하는 거에요. 육본에 갔더니 경리감으로 발령났다고 하는 겁니다. 제가 육사 4기인데 두 기수나 선배를 앞지른 발령이었습니다. 정신이 아찔하더라고요. 참모총장이 송요찬(宋堯讚) 장군이었는데 「타이거 宋」으로 불릴만큼 무서운 분이었습니다. 그래 총장실로 곧장 못 들어가고 김종오 참모차장실로 가서 「선배들을 지휘해야 하는데 어렵습니다. 다음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김차장께선 「총장께 직접 말씀드리라」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총장실에 들어가 「선배들도 많고 해서 경리감을 할 수 없습니다」고 했더니 「군인이 명령을 받았는데 무슨 소리야」하는 것입니다. 宋총장이 저를 좋게 본 것은 틀림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 원효로의 집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경리감 자리를 제게 인계할 분은 기분도 안 좋은데 저까지 나오지 않자 총무과장을 집으로 보내 「나와서 업무를 인계받으라」고 자꾸 재촉했습니다. 할 수 없이 나가서 인계를 받았습니다. 그때 경리감은 준장의 보직이었고 저는 대령이었습니다. 경리차감은 全斗煥 전 대통령의 장인인 李圭東 대령이었는데 육사 2기로 저보다 선배였습니다. 李경리차감의 보고를 받는게 제일 곤란했습니다. 李차감이 결재받으러 오면 벌떡 일어나 사인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인가 하고 안되겠다 싶어 국방대학원으로 자원해 갔습니다.

1년 정도 공부하는 도중에 5·16이 터지자 국방대학원이 혁명정부에 인재를 공급하는 「싱크탱크」가 되었습니다. 정래혁(丁來赫) 장군이 상공부를 맡게 되자 저를 조선전업 사장으로 발령을 내리곤 전력(電力) 3사를 통합하라고 했습니다. 그 일을 하고 나니까 다시 경리감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이때는 소신껏 일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대령급 이상이 50여명 정도 되었습니다. 저는 경리병과의 고급장교들에게 「경리병과를 위해 남아야 할 분과 나가야 할 분을 써내라」고 하고 일정한 선 이상으로 거론된 분을 모두 내보냈습니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소신껏 일을 시작하려는데 외자청장 발령을 받았습니다.

저를 좋게 본 宋堯讚 내각수반이 「경리를 아니 조달업무를 하는 외자청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발령을 내려버린 것입니다. 외자청에 가서 미국 조달청의 규정을 번역해서 우리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맑고 깨끗한 조달행정」이란 표어도 붙여 놓고 일을 했습니다. 당시도 보안사령관(당시는 방첩대장)의 힘이 센 때였는데 자꾸 저한테 공사를 누구누구에게 주라고 압력을 넣었습니다. 저는 「혁명한 분이 내게 조달업무를 맡겼으면 똑바로 하라고 맡긴 것 아닌가. 부정한 일은 못하겠다」고 20여분간 전화로 싸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외자청 공무원을 모아 놓고 「최고회의 의장(朴正熙)이 시키더라도 부정한 것은 하지 말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민정이양(1963년)이 다가와 「원대복귀 지원서」를 의장 앞으로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朴正熙 의장이 사인을 안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오정근 재정담당 최고위원에게 매달려 「군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朴의장께선 화를 내고 사인을 해주셨습니다. 마땅한 보직이 없었는데 마침 민기식(閔耭植) 1군사령관이 관리참모로 같이 일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박병권(朴炳權) 국방장관이 불러서 국방부 재정국장을 맡아 5년간 했습니다. 제가 외자청장을 했으니까 행정부에서 차관을 했던 사람인데 1군에서 참모를, 국방부에서는 국장을 한 것입니다(웃음). 그러나 직급이 하향되었는데도 전연 불만이 없었습니다. 소신껏 내 일을 하니 떳떳했습니다.

20년간 군생활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데 럭키금성의 구태회(具泰會)씨 형제분이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점심 약속을 하고 나갔더니 具씨 형제 다섯 분이 나와서 식사대접을 하고는 호남정유 일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호남정유 총무이사가 되어 회사를 창설하고 공장을 지었습니다. 그 일을 끝내고 나니 같은 고향인 육사 한기 후배인 이병옥(李炳玉) 무임소장관이 보좌관(차관)을 해 달라, 朴炳權 대한중석 사장(前 국방장관)도 같이 일하자, 丁來赫 국방 장관은 차관보를 맡아달라고 동시에 부탁을 해왔습니다. 무임소장관 보좌관을 하고 있을 땐 金鍾泌 총리가 비서실장(차관급)을 맡아달라고 해서 그 일을 하다가 도백(전북도지사)으로 나간 것입니다. 지사를 5년간 하고 교통부 장관을 하다 관광공사 사장을 했습니다. 이젠 모든 봉사를 다했구나 했는데 농수산부 장관을 맡으라 해서 그 일을 했습니다.

아시아나 항공 회장이 된 것도 그렇습니다. 朴晟容 금호그룹 회장이 어느 날 점심을 초대한다기에 제 2민항 문제로 전직 교통부 장관에게 인사하는 것인가 생각하고 나갔습니다. 朴회장과는 초면이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나니까 「아시아나 항공을 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부담스러워 저는 그 길로 서울을 도망쳐 경주의 한 콘도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두 내외가 밥해먹고 있는데 朴회장이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 「대통령께서 꼭 나와서 도와주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 하는 것이었어요. 후에 알아보니 박승(朴昇) 경제수석이 대통령께서 한 말씀이셔야 제가 아시아나 일을 맡을 것 같다고 건의해서 그렇게 된 것입디다. 당총재가 그런 말을 했다는데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항상 저는 이런 식으로 일을 맡아왔습니다』

18번은 「고향무정」

―관리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 행정을 해보시니 관리행정의 요체가 무엇인 것 같습니까.

『내가 뭘 알아서 합니까. 무능하다고 정평이 났는데…. 그냥 상식적으로 하는 것이지. 사회 조직은 인간대 인간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대에서 하는 것처럼 명령으로는 안됩니다. 인간애로 조직이 굴러 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조직을 움직이는 데 중요한 것이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계획을 잘 세우는 것입니다. 제가 아시아나 항공을 시작할 때도 비행기를 띄우는 날부터 정해놓고 했습니다. 최종목표가 정해져야 구체적인 계획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계획을 통계적으로 가시화시켜야 사람들이 따라 옵니다. 조직은 목표를 잘 세우고 착실하게 추진해 나가야 잘 운영될 수 있습니다』

―좌우명이나 가훈이 있습니까.

『하하하, 별 것을 다 묻는군요. 특별한 것은 없고 「성실하게 살자, 최선을 다 하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보십니까.

『민족이나 국가는 역사 속에서 생성하고 발전합니다. 그리고 그 구성원들이 주어진 여건 하에서 얼마만큼 힘을 모아 생존과 번영을 해나가느냐에 따라 역사가 좌우됩니다. 우리 역사는 해방이 타율적으로 되었기 때문에 아직도 타율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남북이 하나의 국가로 발전할 때까진 이러한 과도기가 계속될 것으로 봅니다. 통일은 슬기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저력을 준비하는 데 더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경제성장을 했더라도 독일의 예에서 보듯 결코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합니다. 과거처럼 국난을 당하는 상황이 다시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대비해 경각심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1995년 8월15일은 해방 50년이고분단 50년이 되는 때입니다. 북한 金日成은 95년을 통일의 해라고 선전하면서 특별한 의미로 써먹고 있습니다. 우리는 해방 50년, 분단 50년을 대비한 특별행사 계획이 있습니까.

『아직 공식적인 계획은 없습니다』

―취미는 무엇입니까.

『없어요. 일 하는 게 취미지』

―십팔번은 무엇입니까.

『예전에는 「나그네 설움」이었는데 「고향무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최근 개각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사실입니까.

『대통령께 물어보셔야지요』

―우리나라의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총리의 권한은 약할 수밖에 없다. 각료들을 제대로 장알할 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 헌법은 각료 임명시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청권을 제대로만 행사해도 내각을 충분히 장악할 수 있다고생각합니다. 대통령과 권력투쟁을 하는 것이 아닌 한 총리는 내각을 장악하려는 힘을 강화해 나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하고 있어요. 제청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6시간 20분에 걸친 긴 인터뷰를 하고 총리공관을 나올 때 뇌리에 남는 黃총리의 이미지는 월간조선 4월호에 실린 인물연구 기사의 제목 그대로인 「성실-그 자체의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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