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거대한 비전 그 혼신의 토로(6)

제6부 전임 대통령 평가

박정희와의 화해

―한국의 민주화를 촉진하기 위해 미국 정부에 군사원조와 경제협력을 중지하라고 요청하신 게 뉴욕타임스 등에 났죠.

『뉴욕 타임스고 어디고 그런 기사가 난 적이 없습니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이 한번 뉴욕발로 보도한 적이 있는데 오보입니다. 군사원조를 중지해야 한다고 절대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경제원조는 군사독재에 악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권을 신장하는 조건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 얘기는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는 막아야 하지만 경제원조는, 민주주의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자는 것은 야당지도자로서 할 수 잇는 말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경제원조를 받은 게 아니라 차관을 빌려쓰지 않았습니까.

『경제원조에는 무상공여와 차관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 때 李承晩, 朴正熙 두 전직 대통령의 묘를 참배하셨죠. 金총재께서 납치 명령자라고 생각하시는 그 朴대통령의 묘를 참배한 것은 「역사적 화해」로 이해돼 흐믓해 보엿습니다. 표를 의식하셔서 한 겁니가. 마음으로 용서하고 화해해서 가신 겁니까.

『표도 의식했지만 그렇다고 속에 없는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金大中이가 집권하면 과거의 일에 보복할 것이라는 의혹을 씻기 위해 두 분 묘를 찾았습니다. 그때 내가 국민적 대화합을 강조하면서 거국내각을 주장했지 않습니까? 대화합을 하려면 비록 죽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을 향한 내 마음부터 풀어야겠고, 내 스스로가 성숙된 삶을 살기 위해서도 화해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과거에도 두 사람을 인간적으로 미워하지는 않았습니다』

―두 대통령을 평가해 주시죠.

『李대통령은, 평생 독립운동을 한 점을 당연히 높이 평가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분이 애국자들을 배제하고 친일파를 중용한 일은 절대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朴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는 자부심을 심은 공로가 큽니다. 그러나 국민들 사이에 지역대립 감정을 조장했습니다. 朴대통령이 1963년에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전라도 표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는 전라도를 차별하고 영호남 대립을 조장햇습니다. 통일을 앞둔 이 시점에 볼 때 더욱 위험한 유산을 남긴 것이지요』

진실은 밝히고 처벌은 말자

―金총재께서는 朴대통령과 사자(死者)와의 화해를 했는데, 민주당은 납치진상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과거 캐기에 들어갔습니다.

『12·12이건, 5一17이건, 광주사태건, 내 재판이건, 납치사건이건, 아니면 鄭仁淑 사건이든 독재정권이 저지른 비민주 인권유린 사건들은 모두 진실을 밝힌 뒤 해당자들이 사과하고 처벌없이 끝나야 합니다. 이게 제 생각입니다. 6공 들어 88올림픽이 끝나고 全斗煥, 李順子씨를 체포할려고 체포조가 만들어지고 데모가 나고 난리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안된다고 끝까지 이를 반대했습니다. 부산 대구에서 연설할 때도 두 사람 체포를 외치는 성난 군중 앞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반대했습니다. 「보복하면 안된다. 나는 80년에 사형선고를 받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보복을 않겠다고 맹세했다」 잠실 체육관에서 5만∼6만 명이 모인 자리에서도 「보복은 절대로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진실은 밝혀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盧대통령과 全대통령은 광주문제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합니다. 세상에 잘못한 것을 잘못햇다고 사과하는 것이 얼마나 떳떳하고 당당한 일입니까』

―조사와 처벌을 분리하자고 하지만 그 선을 긋기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것 아닙니까. 진상이 드러나면 국민들이 흥분해서 처벌을 요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런 요구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걸 왜 못 막습니까. 광주문제에 대해서 광주 사람들은 이미 처벌을 요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20만명이나 모인 광주의 대중집회에서 합의를 받아냈습니다. 나는 全대통령이 나에게 사형까지 선고했지만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全대통령이 백담사에서 내려오기 직전에 청와대 정무수석이 하루는 나를 찾아오더니 「盧대통령이 요즘 고민이 많아 밤잠을 못잔다. 친구인 全대통령이 백담사에서 못 내려와 盧대통령을 원망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일언지하에 「오라고 하시오. 뭣 때문에 못 옵니까」라고 했습니다. 정무수석이 너무 의외의 대답이었는지 알아듣지를 못해요. 그래서 다시 「全대통령이 서울로 오고 싶으면 오라고 하십시오」라고 해줬습니다.

盧대통령이 내 얘기를 듣고 밤 두시까지 잠을 안자고 「김대중 총재가 내 은인이다」라고 흥분하더라고 합디다. 그날부터 3일 후에 全대통령이 서울로 왔습니다. 全대통령이 연희동 집으로 돌아갈 때 그 집이 백담사로 떠나면서 국가에 헌납해 놓은 것이라 문제가 됐지 않습니까. 그때도 나는 「들어가는 게 무슨 문제냐」고 했습니다. 「내놓는다고 했다가 안 내놓으면 할 수 없지. 자기가 자기 집에 들어가는 게 무슨 문제냐. 대한민국이 그렇게 가난한 나라도 아닌데 집 하나 국고에 안들어온다고 무슨 상관이냐」고요.

全斗煥씨가 어떤 사람입니까. 나를 공산당, 그리고 광주사건의 주모자, 내란 선동자로 몰아서 죽이려 한 사람 아닙니까. 2년 7개월의 감옥살이, 2년여의 망명, 그리고 7년 간의 공민권 박탈과 연금을 내게 안겨준 사람 아닙니까? 납치사건 직후 일본 정부와 金溶植 외무장관 사이에 「金大中이 해외에서 한 언동을 이유로 처벌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이뤄졌는데도 한민통 사건과 연결해 사형을 선고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全斗煥씨를 도왔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원칙을 끝까지 지켰고 국민을 배신할 수 없어 죽음의 길을 걸어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죄는 미워하지만 인간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나를 납치했던 사람들을 진작에 용서했습니다』

―납치사건의 진상은 사실 대부분 드러난 상태 아닙니가. 더 캐낼 게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李厚 씨가 이미 崔泳謹 의원을 통해 朴대통령의 지시로 했다고 내게 분명히 증언을 했습니다』

납치지령은 朴대통령에게서 나왔다고 본다

―하지만 李厚 씨는 다른 자리에서는 「자신이 알아서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朴대통령이 지시했다고 아직은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최영근(崔泳謹) 의원과 李厚 씨가 대질하면 알 것 아닙니까? 내가 朴대통령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는 게 아닙니다. 李厚 씨는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뭣 때문에 엄청난 죄를 자기가 스스로 뒤집어 쓸 일을 했겠습니까. 납치 관계자들은 「대통령의 지상 명령」이라 해서 납치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李厚 씨가 朴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겠지만 金炯旭에 대한 朴대통령의 조치를 보면 나는 충분히 朴대통령이 저를 없애버리라고 지시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봅니다』

―민주당의 납치사건 조사위원회에 참여한 분들은 「朴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쪽으로 조사를 몰아가려는 의도를 확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진실을 진실 그대로 조사하지 않고 어느 쪽으로 몰아가는 조사는 총재님께도 누가 될 것 같은데요.

『李厚 씨가 당당히 나와 얘기를 하고 崔泳謹씨와 만나 대질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李厚 씨가 내게 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저절로 정해지는 것 아닙니까. 朴대통령에게 덮어씌울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민주당의 조사에 나는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납치는 됐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있지 않습니까. 납치사건은 한일 양국 정부가 떳떳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李厚 씨 혼자 저지른 일이라면 金鍾泌 총리가 무엇 때문에 일본에 가서 자기의 가장 철저한 정적을 위해 사죄하고 다녔겠습니까. 李厚 을 구속해 버리면 끝나는 일인데…. 보복이 아니라 진실 규명차원에서 조사가 이뤄져야지요』

―동서독의 통일 현장을 보셨으니까 통일의 후유증을 더 절실하게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경제부작용을 너무 과민하게 본 것이 아니냐. 독일이 4∼5년간 통일의 부작용을 딛고 일어서면 대독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흡수통일을 반대하는 논리를 포기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8월 13일 발표한 연설에서도 독일의 통일은 큰 위업이고 먼 장래에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너무도 부담이 크고, 독일의 장래까지도 망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건 제 얘기가 아니고 독일 전 수상이 낸 책의 제목이 「이건 아니다」입니다. 「동독이 잘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통일 방법이 잘못 됐다」는 거지요. 독일에 가면 누구나 통일방법이 잘못됐다, 조급했다고 얘기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실세가 4대 1인 동독 마르크를 1대 1로 서독 마르크와 교환해줬지만 오히려 동독의 경제발전을 저해했다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제7부 金日成 평가

루마니아에서 느낀 점

―루마니아도 방문하셨죠. 그곳에서 느낀 역사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상당히 어렵습니다. 자본부족, 노동자의 저생산성, 부패의 만연 등 문제가 많습니다. 부카레스트 국제공항에 쓰레기가 널려 있고…. 차우세스쿠가 죽고 선거를 통해 공산당 했던 사람들이 다시 뽑혔지만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EC 가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수상, 야당 당수, 정교회 대주교 등을 두루 만나봤지만 아직 가닥을 못잡고 있었습니다. 호텔에서 루마니아의 종교 지도자들과 저녁을 했는데 비용이 2백80달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비서가 「2백달러만 줬다」고 하더군요. 호텔 직원이 「영수증을 안 끊을테니 2백 달러만 내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직원들이 영수증을 끊고 안끊고는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이니 2백 80달러를 다주라」고 했습니다. 혹시 나중에 구설수에 오를까봐 한국 대사관에도 이런 사정을 자세히 알려놨습니다.

그 호텔은 국영이었습니다. 차우세스쿠 대통령이 짓다가 혁명을 만난 대통령궁에 가보니 세계에서 제일 큰 건물이었습니다. 우리 중앙청 건물이 네 개쯤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그안에 1백 50평쯤 되는 대통령 방이 세 개나 있었습니다. 대통령 방, 인민회의 의장 방, 국가평의회 의장 방, 이런 식으로 한 방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방마다 부인방이 따로 붙어 있었습니다. 차우세스쿠는 거기 앉아보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현재 공사가 중단된 상태여서 관리비가 문제인데 라스베가스 사람에게 관리를 부탁했더니 「너무 커서 쓸모가 없다」며 포기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대통령 궁 부근의 거대한 중앙청과 고위간부 아파트를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비판을 받지 않고 정권교체의 길이 막힌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통감했습니다. 차우세스쿠는 망하는 날 시민들을 설득하러 나갔다가 지지 군중이 반정부 군중으로 변하자 옥상에 대기시켜둔 헬기를 타고 달아낫습니다. 그런데 그 조종사가 도중에 헬기를 내려놓고 혼자 달아나 버렸지요. 그래서 부인과 같이 체포되어 처형되었습니다. 그런 걸 보고도 독재자들이 왜 경종을 못 받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북한이 루마니아식으로 붕괴하지는 않겠습니까.

『모르죠. 하지만 남북의 통일을 촉진하려는 내가 너무 자극적으로 얘기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북도 살고 우리도 살면서 북을 점진적으로 개방시켜 통일로 나가야 하는 게 최선의 방책입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해서는 마음 속으로 준비를 해야지요』

―지난 대선을 앞두고 관훈토론회에서 「金日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페널리스트의 질문에 金泳三 후보는 「유보하겠다」고 한 반면, 金총재께서는 「해방 전까지의 金日成은 평가한다. 그러나 그후의 金日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평가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까.

『북한이 나의 통일방안에 관심을 갖고 있고, 또 원만하게 평화통일을 하려는 입장에서 자극적인 말은 피하겠습니다. 그의 독립운동은 평가합니다. 그러나 개인숭배는 잘못된 것입니다』

핵 재처리시설 포기는 잘못

―「환상적 통일론은 안된다」는 게 국민여론입니다. 그런데 韓完相 부총리는 95년에 연합체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호 인터뷰에서 무슨 근거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내 희망을 얘기 한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개인이 통일에 대한 꿈을 갖는 것은 괜찮지만 통일업무를 담당한 장관이 자신의 희망을 그렇게 얘기한다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金총재께서도 95년에 국가연합 형태의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며 95년을 강조했는데 이것 역시 국민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핵문제만 해결되면 국가연합이 안될 이유가 없습니다. 하려는 결심이 서고, 핵만 풀리면 내년에도 가능합니다. 양쪽이 서로 거부권을 갖는 연합체를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국가연합 아래서 평화공존과 평화교류의 단계를 거쳐 연방제로 가는 것입니다. 1년이면 논의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95년 전에도 가능한 것입니다. 희망이 아닙니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2중장치는 IAEA 사찰과 남북한 핵 상호사찰입니다. 이 둘이 다 충족돼야 하는 건데.

『둘 다 해야죠. 우리가 그걸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남북합의서이 핵문제 조항을 보고 나는 당시의 총리에게 「핵협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핵사찰을 일방이 타방에 사찰할 지역을 지정하고, 상대방의 동의를 받은 뒤에 실시하도록 돼 있더군요. 사실상 사찰 거부권을 준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자유로운 핵사찰이 이뤄지겠습니까. 또 핵 재처리시설을 포기한 것도 잘못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지금 핵전문가들은 우리 경제발전에 큰 장애요인이라고 걱정이 태산같습니다. 장차 남북이 휴전선 근방에 공동으로 핵의 평화적 이용시설을 만드는 방향으로 합의해서 가도록 해야지 핵의 평화적 이용까지 포기한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지요』

―우리 정부는 재처리시설을 포기함으로써 북한이 재처리시설을 못 갖도록 압력을 가하는 근거가 됐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억지입니다. 재처리시설이 문제가 아니라 핵 폭탄제조가 문제입니다. 휴전선에 남북 공동의 재처리 시설을 마련하는 방안도 있지 않습니까. 일본이나 구미 선진국은 모두 핵재처리시설을 갖고 있는데 우리만 핵을 재처리 안하고 선진국들로부터 비싼 가격의 플루토늄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국익을 훼손한 일입니까』

북한과 직접 접촉 않는다

―金총재가 통일 이야기를 하면 우리 정부는 물론 북한도 경청할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통일문제에 전념하겠다」는 金총재의 말을, 국내뿐만 아니라 북한에도 메시지를 보내고 남북 당국을 다 같이 설득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북한과 직접 접촉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북한에 잘못 해석될 수도 있고 국내에서도 쓸데없는 오해를 사니까요. 정부를 제쳐놓고 나서지는 않겠습니다. 金泳三 대통령이 金日成을 만나기 전에는 金日成을 만나지 않을 겁니다. 영국에 머무르는 동안 어떤 분이 「북한에서 한번 오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며 간접적으로 북한의 뜻을 전해왔습니다. 나는 가더라도 金대통령이 가고 나서 가겠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북한이 오판하는 근거가 안되도록 해야죠. 북한이 「金大中이가 金泳三과 별도로 움직이는 구나. 나눠서 콘트롤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 곤란하지요』

―91년 평양 IPU 총회 때 朴英淑 부총재를 통해 북한 고위층에 金총재의 통일방안을 전달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쪽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金총재는 가져온 서류봉투에서 공화국 연합제를 설명한 자료를 꺼내더니『시중에 배포하던 3단계 통일방안의 팜플렛을 준 것에 불과하다. 바로 이것이다』고 설명했다)
『공화국 연합제 방안을 주었던 「이 안을 중심으로 통일 문제를 논의 하는 데 이의가 없다」, 「충분히 같이 논의할 용의가 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금년에 열린 뉴 델리 IPU에서도 북한 관계자들이 「金大中 안으로 한번 논의합시다」라고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 정부가 내놓은 한민족 공동체 통일론은 金총재의 통일론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韓完相 부총리는 국민적 합의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金총재도 국민적 합의를 강조하는데 저로서는 「과연 통일방안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없느냐」 의문입니다. 통일방안을 놓고 국민투표까지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趙부장께서는 국민적 합의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최종적인 방향은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를 축으로 하는 통일국가이고 북을 그쪽으로 유도해 가야 한다는 생각에 주사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이 동의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성급한 통일은 부담이 되니까 차분히 단계적으로 진행시켜야 한다는 쪽으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 아닐까요.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자유롭게 통일방안이 논의된 적이 없습니다』

―6공 때는 자유롭게 논의가 이뤄졌지 않습니까.

『6공 때도 활발한 논의가 봉쇄됐습니다. 정부 의견을 지지하는 주장은 반영됐지만 반대하는 경우는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도 기회가 없었어요. 국민투표를 거쳐 통일방안을 확정시켜야 할 필요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북한에 대해 권위를 가지고 나설 수 있는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통일 후에 예상되는 문제점들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미리 만들어 놓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독일 통일 이후 「신탁관리청」이 설치됐지만 옛 서독사람들이 땅 소유권을 주장해 외국자본이나 서독기업인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막대한 장애를 받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미리 법적인 해결책을 마련해둬야 합니다. 통일 후에 대책을 만들면 너무 늦습니다. 통일 이후 북한 지역에 대한 땅 소유권은 농지개혁에 준하여 정부가 채권으로 보상을 해주고 실물을 정부가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국민적 논의에 붙여 통일의 대강(大綱)을 만들 때입니다. 통일원칙을 국민들에게 승인 받으면 앞으로 잡음 없고 권위 있게 통일 정책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국민투표에 부치려면 취사선택이 가능해야 하는데 정부의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 외에 다른 것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정부안이 부결되면 정부권위가 무너져 오히려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은 金泳三 정부에 의해 계승되지 않았습니다. 6공이 마련한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은 국가연합 단계를 잠시 거치다가 통일헌법을 만들고 완전 통일을 하겠다는 게 골자입니다. 金泳三 대통령의 통일방안은 이것과 다른 겁니다. 국가연합 기간을 길게 잡고 점진적으로 연방제로 넘어간다는 내용입니다. 남북교류를 통한 통일준비단계를 거쳐서 통일할 때는 국가연합 방식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공화국 연방제 통일안과 비슷합니다. 국민투표에 부칠 때는 단일방안이 상식이지만 두 개 정도의 안을 부칠 수 있습니다. 국민투표를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민의 의사를 물어서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스위스는 최근 미국으로부터 F18 전투기를 사오는 데도 국민투표를 했습니다. 군주둔지를 늘리는 데도 국민투표를 했습니다. 그래서 통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EC 가입은 부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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