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거대한 비전 그 혼신의 토로(2)

제2부 연방제의 정치이념

민주화 안한 자본·사회주의 몰락

―지난번 강연하신 내용을 보면 영국에 다녀오신 후 金총재께서는 사회주의의 패배가 되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추세라는 점과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에 대해 확고한 인식을 세운 것으로 느껴집니다.

『소련이 패퇴한 이후로 전세계에서 공산정권이 전부 소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졌다」는 평가는 올바른 판단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를 안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진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신봉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는 역사발전에 따라 자기변화를 이뤘지만 민주주의를 안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는 자기개혁을 거부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안한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나라는 2차 세계대전 전의 독점 자본주의 국가인 일본과 독일입니다. 민주주의를 한 쪽은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게 됩니다. 국민여론이 수렴 안되면 국민들이 정권을 바꿔버립니다. 국민 뜻에 맞추다 보니 정치가 유연하게 변화해 나간 것입니다. 혁명도 필요 없고 국민의 봉기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경제·소유에서의 민주주의가 왔습니다. 주식 대중화와 사회화가 이뤄져 서구 선진국에서는 대주주가 주식의 5% 이상을 소유하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소유에서 독점이 없으니까 전문 경영인 시대로 넘어갔습니다. 서구 민주국가의 사회주의에서는 국영기업이 없어져 민영화로 가면서 역시 주식의 대중화와 전문경영인 시대가 이뤄졌습니다. 말만 사회주의 자본주의지 두 체제가 민주주의를 통해 중도통합이 이뤄진 겁니다. 나치즘과 공산주의는 국민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군대·당·비밀경찰 등 억압조직을 강화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강력히 저항하지 못하고 사보타지를 벌였습니다. 뭐括?의욕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니까 생산성이 오르지 않고, 제대로 된 물건이 안 만들어지니 물건이 안 팔리고 경제가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공산정권은 엄청난 억압조직을 갖고 있으면서도 총 한방 못 쏘고 무너져 버렸습니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정권이 노동자에 의해 붕괴했습니다』

『북한은 시장경제로 간다』

―민주주의를 하지 않은 사회주의 체제만 망했다는 말씀은 탁견인 것 같습니다.

『2년 전 모스크바 대학에서 같은 내용의 연설을 했습니다. 로그노프 총장이 「우리는 사회주의가 졌다고만 생각을 했다. 서방 사회의 논평 중에 이런 얘기는 처음이다」며 높게 평가하더군요. 그래서 그때 평생 명예교수직을 저한테 줬습니다. 역사적으로 승패는 끝났습니다. 중국은 경제가 사회주의를 떠났습니다. 경제는 사회를 움직이는 주된 동력입니다. 그런데 경제만 변하고 정치적 억압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월남, 쿠바 모두 시장경제로 가는데 북한 하나만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가져야 합니다. 북한은 변하지 않으면 비참한 파멸을 맞을 것이고 잘 변화하면 남한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칙으로 갈 것입니다. 앞으로 연방단계에 이르기까지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필요도 있지만 현 북한정권의 지도층을 위해서 더욱 필요한 일인 것입니다』

―金총재께서 말씀하시는 3단계 통일론에서 최종적인 연방제 이후 단계의 통일국가는 어떤 사회인지 그동안 의혹이 많았습니다. 최종적인 정치체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보면 될까요.

『간단히 말해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가 두 축이 되는 사회라고 하면 되겠지요. 연방제 이후가 아니라 연방제부터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군과 외교를 통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金총재께서 이렇게 최종적인 통일한국의 사회체제를 딱 부러지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고 못 받으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金총재께서는 지금까지 「최종 정치체제의 결정은 다음 세대의 문제다」라고 유보적인 태도를 표명해 오셨잖습니까.

『그렇게 들리게도 했지요. 사람의 생각은 자꾸 발전하는 것입니다. 소련 등 공산권의 종말과 동독의 붕괴를 보고 생각이 더욱 정리된 것입니다. 그전에는 통일하는 것만 중심으로 생각하고 완전통일에 대해서는 그때 가면 우리가 살아 있을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해 크게 관심을 안 가졌습니다. 「국가 연합 단계가 끝나면 양측이 모두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로 갈 것이다. 연방제 하에서 각기 자기측 내정의 운영 방법에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최종 국가는 물론 연방제조차 그것이 어떤 성격이라는 데 합의가 있어야만 연방제 단계로 넘어 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연방제 단계를 거치면서 북한이 민주화, 시장경제의 방향으로 움직여야만 완전한 통일이 된다는 말씀입니까.

『네, 연방제부터 그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연방제를 실시하려면 연방 헌법을 정해야 하고 그러려면 연방 대표간에 국시가 정해져야 합니다. 연방제 대통령과 국회의원도 선출해야 하는데 두 개의 이질적인 이념체계간에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미국이 두 개의 체제로 갈라져 있다면 어떻게 하나의 연방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연방국가의 예산도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바탕이 없어서는 편성이 불가능합니다』

金日成이 살았을 때 담판 유리

―많은 사람들이 金총재의 통일론을 비판할 때 「미국의 연방제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같으니까 이뤄지는 것인데 金大中의 연방제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공존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불가능 연방제다」라는 비판이 많았죠.

『이번 인터뷰를 수락한 이유는 사실 나의 통일방안을 전부 드러내고, 통일에 관심 있는 국민들이 내 통일방안에 대해 가진 오해를 씻어내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군사 정권의 공작정치가 저의 통일방안을 얼마나 왜곡, 국민을 세뇌시켰는지 잘 압니다. 인도를 보십시오. 인도는 민주주의를 하는 연방국가지만 공산주의 주(州)가 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주도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 등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그래도 수용하고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태리 공산당도 마찬가지지요. 북한이 자유민주주의적인 다당제체제를 허용하고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 시장경제 원리를 받아들여야만 연방제가 가능합니다. 다만 연방제의 테두리 안에서 북한이 나름대로의 특성을 살리는 것은 내부자치로 취급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북한이 경쟁을 인정 않는 독재를 주장하고 시장경제를 용인하지 않는 한 연방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대통령·국회의원을 선거하고 국가경제 계획을 짭니까』

―金日成 체제붕괴는 곧 북한 체제의 붕괴라는 전제하에 「북한정권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식으로까지 일부에서는 통일논의를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金총재께서는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군사독재 정권이 탄생할 가능성이 크고 이 정권 하에서 진짜 개방은 중국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보셨는데.

『金日成 정권이 무너진다고 북한이 붕괴하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저는 金日成 정권이 있는 동안 문제를 푸는 것이 일을 순조롭게 진행시키는데 좋다는 입장입니다. 金日成이 죽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살았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북한은 체제에 올 상당한 영향을 각오하고 서방과의 국교를 서두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북한의 경제위기가 너무도 급박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어차피 북한이 개방으로 가는 것이라면 김일성이 자기 당대에 자신의 막강한 권위를 가지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 관계를 정상화하여 주자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셋째로 지금 북한이 중국의 경험을 보니까 사회주의를 안바꾸고도 개방이 가능하다는 것을 교훈으로 배우고 고무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요인 때문에 북한은 「두 개의 한국은 안된다」고 40년 동안 고집하던 걸 바꿔가면서 UN에 동시가입하고, 남북 교차승인을 용납했습니다. 남북 합의서에서도 남한에 대해 국가호칭을 하지않았습니까. 북한이 법적으로 한국을 완전히 인정한 것입니다. 나는 金日成이 있으니까 이런 혁명적인 변화가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레그 전 주한미국 대사도 저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신문에 나온 그의 좌담기사를 보고 알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자신을 가져도 좋을 입장입니다. 왜 金日成을 두려워합니까. 우리의 민주주의, 경제적 압도, 국민의 투철한 반공의식, 세계적인 공산주의의 몰락, 자신을 못가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6·25 사과 욕할 수도

―金日成과 정상회담을 할 경우 회담에 나서는 남쪽의 지도자가 6·25 전범과 민족의 장래를 의논했다는 게 과연 역사의 정의에 맞는가, 또 金日成 정권이 곧 주민들의 격하운동에 직면할텐데 金日成과 어떤 약속을 하는 것이 부담이 되지 않겠는가, 시실 이런 우려가 있습니다. 김일성에게 어떤 약속을 해 준 대통령이 金日成정권과 같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쓸 데 없는 걱정입니다. 朴正熙 全斗煥 盧泰愚 金永三 역대 대통령이 金日成과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앞에 세 사람은 간청을 했지만 저쪽이 안 들어줘서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동안 국민들로부터 저항이 없었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6·25 전쟁 책임이 그렇게 문제가 된다면 왜 지금까지 쟁점이 안됐습니까』

―지금까지는 남한의 지도자들이 약한 정치적인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이제 거꾸로 된 것 아닙니까. 金日成이 일 대 일로 우리의 카운터 파트가 되기 어렵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입장입니다.

『金日成을 만났을 때 6·25 문제를 얘기할 수 있지 않겠어요. 「배상처벌을 요구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고 사과하라」고 요구할 수 있지요. 북한은 40년간 북침했다고 주장해 왔는데 소련 자료에서 다 판명이 나지 않았습니까. 이것도 짚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金日成이 앞으로 어떤 위치가 되든 그와 맺은 협약은 북한의 새정권 아래서도 유효합니다. 북한과 盧정권이 체결한 남북 합의서가 金泳三 정권에서 무시되지는 않습니다. 金日成 정권과 당장에 핵 문제를 해결해서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북이 협력의 방향으로 가도록 해야지요. 미국은 지금 북한과 일대 일로 대화하고 있습니다. 상대에 대한 대화의 필요성이 문제입니다. 양쪽이 쉬운 것부터 풀어가야 합니다. 관계가 개선돼 가면 그때 가서 6·25에 대해 스스로 미안하다고 나올 겁니다. 그 문제뿐입니까. 아웅산 사건, KAL기 폭파사건도 어느 땐가는 진실을 밝혀야지요. 좋은 게 좋다고 그냥 넘어갈 수만은 없습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은 안돼

―북한 핵문제에 대한 金총재의 인식도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작년의 인터뷰에서만 해도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보가 없다』는 유보적인 입장이었는데 8월 13일의 강연에서는 「북한이 핵무장을 추진하고 있다」는 인식 위에 『어떤 일이 있어도 북한의 핵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바뀐 것은 영국에서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입니까.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고 있기 때문에 내 입장이 바뀐 것입니다. IAEA의 대북 협상으로 의혹이 증폭되고 있고, 미 첩보위성의 위성사진을 근거로 전문가들이 전부 「수상하다」「만들었거나 만들고 있거나 둘 중에 하나다」고 판단하고 있지 않습니까. 런던의 군사 전문가들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IAEA 본부가 있는 비엔나에서 그곳의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을 만나본 결과 의심스러운 게 틀림없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잘 숨겼다고 생각했다가 미국의 위성사진을 들이대자 「IAEA가 미국의 종속기관이냐」고 떠들었지만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북한의 핵무장이 통일에 절대적인 걸림돌이 된다고 보십니까. 핵문제와 경협은 별도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핵무기를 남한에 쏘겠다는 사람과 어떻게 평화적으로 통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북한은 이번에 NPT 탈퇴로 외교 기술면에서 점수를 많이 얻었습니다. 그러나 핵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면 우리도 할 가능성이 있고 아시아와 세계에 걸쳐 도미노 현상이 일어납니다. 특히 일본은 북한이 어린아이 수준의 「핵 장난」을 하는 순간 핵 초강대국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아시아 전체의 평화가 근본적으로 흔들립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운명이 어디서 덜미를 잡힐지 모를 겁니다. 핵문제는 남북문제뿐 아니라 아시아의 평화와 연결된 문제입니다. 아시아의 평화는 「팍스 아메리카나」에 틀을 잡고 있습니다. 그걸 깨는 건 좋지 않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좋은 대안이 없습니다. 우리의 국익과도 큰 관계가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장은 절대로 용납 못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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