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공이라는 말을 들을 때 피눈물이 났다』
『내 납치는 朴대통령이 지시한 것』
『전국연합과의 정책연합은 선거 전술상의 실수』
『정치는 안하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계속 행사할 것』
『통일 대통령은 남북 협의체의 사회자에 불과한데…』
『전임 정권의 정통성 전면 부정은 곤란』
『李承晩 朴正熙 金日成을 평가하면…』
『金東吉씨가 낚싯대 보내주길 기다렸는데…』
정계은퇴 후 최초로 본격적인 인터뷰에 응한 그는 『정치를 그만두니 언론자유가 생겨서 좋다』며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그리고 명쾌하게 자신의 통일론·대북관·역사관·개혁론을 밝혔다. 특히 그는 자신의 공화국 연합제 통일단계를 거쳐서 다음 단계에 이루어질 연방제 국가의 이념체계에 관해서 처음으로 「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분명히 함으로써 자신의 이념적 좌표를 명확히 했다. 그는 정계로 복귀할 뜻이 없음을 강조하면서도 통일에의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설득하는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해서 행사할 것임을 명백히 하여 민주화의 기수에서 통일시대의 국가 지도자로 변신하려는 뜻을 내비쳤다
<1993년 10월 월간조선>

동교동 풍경
서울 동교동의 金大中 전 민주당 대표 자택에 도착한 것은 지난 8월24일 아침 9시30분쯤으로 약속시간보다 30분 이른 시각이었다.일산 신도시에 머물고 있는 金 전 대표는 토요일에 동교동으로 왔다가 일요일 예배를 보고 다시 일산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金 전 대표는 이날 인터뷰 장소로 동교동을 선택했다. 일산에서는 일체의 외부접촉을 끊고 연구와 집필에만 전념한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었다.
金 전 대표의 집은 한적했다. 휴가 중인 둘째 아들 弘業씨(43) 부부의 두 아들인 종대(7), 종민군(5)이 할아버지의 응접실을 휘젓고 다녔다. 손님에게서 받은 만원권 지폐를 한 장씩 손에 쥔 꼬마들은 『돈을 엄마에게 맡겨라』는 채근을 피해 응접실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오전 9시50분 쯤에는 전남 도의회 의원 10여명이 응접실에 들어와 권노갑(權魯甲) 최고의원 金玉斗 의원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응접실은 돌연 북적대기 시작했다. 응접실에서 나와 잠시 마당으로 내려왔다.
꽃 가꾸기가 취미이자 건강관리 비결인 金 전 대표 집의 뜰과 정원은 소문 그대로였다. 10평쯤 되는 마당에는 감나무, 모과나무, 대추나무가 한 그루씩 심어져 있었다. 나무 가지마다 매달린, 아직은 푸른 빛의 열매들이 소담스러웠다. 나무 아래로는 꽃나무들이 키 순서대로 차곡차곡 심어져 마당을 삥둘러 정원을 이뤘다. 울긋불긋한 꽃들은 아름다움을 뽐냈다. 마당의 잔디는 한 군데도 병든 곳 없이 촘촘했다. 「이렇게 섬세하고 심미적인 사람이 어떻게 거친 정치판에서 살아남았을까」하는 생각까지 났다. 마당 오른쪽 구석에 있는 대추나무 가지에는 1백 마리도 넘어 보이는 참새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참새들은 사람들이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푸드득 푸드득 날아갔다가 금방 다시 모여들었다. 동교동의 참새들은 모두 이 집에 모여 사는 것처럼 보였다. 왜 참새들은 이 집에만 모여들까.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10시 정각에 대문을 들어선 金大中 전 대표는 마당 잔디 위에서 전남 도의회 의원들과 어울려 기념촬영을 마치고 나서 잔디 밭에 새 모이를 뿌렸다. 참새들은 사람들이 다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대추나무 가지에 모여 들더니 일제히 잔디밭으로 내려 앉았다. 모이를 먹다 불안한 듯 푸드득 대추나무로 달아났던 참새들은 인기척이 사라지면 대추 알이 쏟아지듯 잔디밭을 몇 번 오가며 순식간에 먹이를 모두 먹어 치웠다. 도의원들과 분주히 인사를 나누던 金 전 대표는 『집에서는 도저히 조용하게 인터뷰를 하기가 어렵겠다』며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그래서 인터뷰는 동교동 부근인 서교호텔 음식점의 한 방에서 6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두 시간쯤 인터뷰를 하다가 냄비국수로 점심을 간단히 떼울 때 權魯甲 최고의원이 『흑산도에서 가져온 것』이라며 큰 접시에 가득 채운 홍어회를 내오도록 했다. 시중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잘 삭은 홍어였다. 『요즈음 홍어 철이 아니어서 어렵게 진짜 홍어를 구했다』는 權최고의 말에 金 전 대표는 영국에서 홍어회를 먹었던 일을 화제로 올렸다. 대선 패배의 충격 속에 영국으로 떠났지만 그에겐 영국에서의 생활이 대부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제가 아는 분이 영국에 오는 길에 홍어를 사면서 「金大中 선생님 갖다 줄 거니까 좋은 걸로 주십시오」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내주려던 홍어를 집어넣더니 「그럼 진짜를 드려야 되겠네」라면 딴 고기를 주더랍니다. 이 분이 대한항공 여객기를 타고 오면서 사정을 설명하고 고기를 냉장고에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다니, 승무원이 그 분을 귀빈실로 모셨다고 합니다』 金 전 대표는 『홍어 덕에 1등석에 타고 온 사람도 있다』며 『세상 살면서 남에게 좋은 소리 듣고 살아야 한다』고 흐뭇해 했다.
『정치는 안하지만 정치가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잊지 않고 좋은 기억 속에 남겨둔 국민들에게 감사했다. 그러나 「용공 음해」와 국민들의 오해를 털어버리지 못한 채 정치를 떠나야만 했던 사실에 비통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목숨을 걸고 4천만 국민을 다 사랑했는데…. 그런 국민들이 「김대중이는 과격하다. 용공이다. 김대중이는 안된다」고 오해할 때는 피눈물이 났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나를 빨갱이라고 몰아붙이고 선거가 끝나면 「잘못했다」고 비는 이런 부도덕한 행위를 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당초 金 전 대표와의 인터뷰는 통일논의에만 주제를 국한하기로 하고 이뤄졌다. 그렇지만 金 전 대표는 기자가 주제 밖으로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도 성실하게 답변했다. 그의 말은 거침없이 나왔고 꾸밈이 없었다.
「정치를 계속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세 번 심판을 받았으면 됐지 무슨 낯으로 또 나서겠느냐』고 짤막히 대답했다. 그는 『정치가 잘 돼야 통일이 되는데 왜 정치에 관심이 없겠느냐. 저술·강연을 통해 나의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겠다』며 자신이 앞으로 펼칠 정치활동의 한계를 그었다. 71년 대통령 선거로부터 20년 이상 계속된 민주화 지도자로서의 임무를 끝내고 그는 이제 스스로에게 통일시대의 정치 지도자로서 임무를 새롭게 부여하고 있었다. 그는 『金泳三 대통령이 역사에 기록될 페이지와 내가 기록될 페이지는 다르다』고 했다. 金大中 총재와 그의 통일정책을 놓고 6시간 이상 토론이 이뤄졌다. 소감을 간단히 말하면 그의 통일정책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3단계 3원칙 통일론」이라는 기존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그의 통일론은 이전의 통일론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새로운 통일론이었다.
명확한 설명
우선 그는 공화국 연합제를 거쳐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통일 한국이 지향하는 최종적인 정치체제에 대한 비전을 명확히 했다. 그는 통일 국가의 성격에 대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두 축으로 하는 사회체제다. 이를 지향해 북한을 유도하는 것이 통일의 방책』이라고 명확이 말했다.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3단계 통일론을 제시한 이래 22년 만에 통일국가의 이념과 정치체제를 처음으로 명백히 함으로써 북한이 내세운 고려 연방제 통일안과의 차이를 확실히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북한의 사회체제가 민주화되지 않고 시장경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연방제나 완전 통일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金大中 통일론의 변화는 그가 지금까지 얘기해 온 통일론과 비교해 보면 뚜렷해진다. 그는 「통일 한국이 궁극적으로 어떤 사회여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항상 『통일을 이룰 그 세대가 선택할 문제』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가 세계사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영국에 머물면서 북한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잆하면서 연방제 이후 통일에 대해 본질적인 입장을 명확히 정리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인터뷰에서 기자는 金大中 전 대표를 총재로 호칭했다. 그의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고, 지금까지 야당가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제1부 국가연합에의 전략
북한에 퇴로(退路)를 열어줘야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국에 계실 때 인터뷰를 신청했다가 양쪽에 다 사정이 생겨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한반도 통일문제에 관한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시리라고 기대가 큽니다. 저도 이번에 공부를 많이 해가지고 왔습니다. 통일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사인에까지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영국에 계시면서 멀리서 우리나라를 바라 보셨는데 영국에서 바라본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비쳤습니까.
『유럽 사람들은 냉전도 끝났고 독일같이 어려운 나라도 통일이 됐는데 남북한은 왜 아직도 서로 욕하고 싸우느냐, 이해하기 어렵다는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상하다, 딱한 사람들이다」는 거지요. 저도 역지사지(易地思之) 해보니까 참 우리가 한심해요. 단일 민족이라고 자랑하면서도 전쟁하고 으르렁거리면서 왕래도 안하지…. 그곳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한 민족이라고 느끼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감하고 부끄러운 게 남북의 대치상황이었습니다』
―유럽에서 북한 관련 정보를 많이 접하면서 북한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새로운 시각을 얻으셨을 텐데요. 『그곳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개 일치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굉장히 나쁘다. 붕괴할지 모른다」는 게 지배적인 판단이었습니다. NPT 탈퇴도 북한이 몰릴 때까지 몰려 자포자기 상태에서 최후의 승부수를 내던진 것으로 보더군요. 영국의 전략문제 연구소 (IISS) 사람들을 만나보니 「북한의 NPT 탈퇴는 경제문제다」라고 결론짓더군요. 그래선지 유럽의 전문가들은 정작 북한 핵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경제난을 돌파해 보려는 몸부림으로 보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화를 내고 배가 부르면 웃는 게 당연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혁명 때 중국은 광적으로 反서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개발이 진척된 지금은 서방에 얼마나 온건한 제스처로 나옵니까. 북한의 강경태도를 바꾸려면 고픈 배를 채워주는 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북한 핵문제는 강자쪽에서 아량을 베풀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북한이 핵을 가지는 것은 절대로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퇴로 없이 북한을 코너에 몰면 안됩니다. 북의 퇴로를 여는 방법은 경제적으로 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국가연합 틀 안에서 북한에게 경쟁사회 적응력 가르쳐야
―8월13일 63빌딩에서 가진 생환기념 통일 강연에서는 직접 눈으로 확인해서였겠지만 독일통일의 후유증을 강조하셨고, 독일의 통일이 잘못 됐다는 인식을 강하게 비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독일통일이 잘못 됐다는 게 아니라 급격한 통일이 잘못됐다는 것이지요. 서독은 엄청난 경제력을 바탕으로 통일에 충분한 대비가 있었습니다 그런 서독조차 무리한 통일을 감당하다보니 재정 적자가 현재 6천억마르크 입니다. 콜 수상은 당초 통일 비용으로 1년에 5백억 마르크씩 10년에 5천억 마르크면 충분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통일 후 매년 2천억 마르크가 투입되고 있습니다. 10년에 2조 마르크가 필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데도 동독이 경제적으로 회생하지 못하고 있는 점입니다.
영국에 머무르는 동안 동독지역을 세 번 방문하고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구권 국가들을 돌아봤습니다. 이들 공산권 사람들은 국가건 개인이건 소위 「사회주의의 정의」 때문에 특혜와 공짜에 젖어 내 힘으로 경쟁해서 살겠다는 자립심이 적었습니다. 그들은 강자가 약자를 돕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구 동독 지역에 가보니 근로자들의 불만이 대단해요. 서독과 거의 같은 월급,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불평 투성이었고 고맙다는 얘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서독이 책임을 다 지겠다며 흡수통일을 해서 이렇게 된 겁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의 고통은 자업자득과 같습니다. 동독 노동자들은
「2차 세계대전은 똑같이 일으키고 우리만 40년간 고생을 했다」,
「통일하면 서독과 똑같은 생활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불평들이 참 많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북한을 지원해야겠지만 북한이 의타심을 버리도록 유도해 나가야 합니다. 장사는 장사대로 셈을 분명히 하고, 인도적으로 도와야 할 일은 엄격히 구분해야 할 겁니다. 네 책임 내 책임을 구분해야지 인도주의 하나만 가지고 대하면 안됩니다.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정치적인 틀이 바로 국가연합 형식입니다. 국가 연합의 틀 안에서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면 두 체제에 큰 부담이 가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남북한이 통합을 추진할 때는 정신부터 바르게 세우고, 북한 사람들이 경쟁사회에 적응하는 마음을 기르도록 해야 하는데 흡수통일을 하면 이런 과정을 거칠 수가 없습니다. ㄲ가연합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경제 개방은 민주화 몰고 온다
―북한을 도와 자생적 경제력을 가질 수 있는 정치적 틀로서 국가 연합이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국가연합은 여러 가지로 필요합니다. 완전 통일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연방제도 지금은 할 길이 없습니다. 연방제는 내정은 따로 하지만 외교 국방은 통일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하나가 될 만큼 사고방식, 행동방식, 민족적 동질성이 회복되지 않았는데 합치면 동서독보다 어려운 상태로 갈 것입니다. 남한이 북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안으면 양쪽 다 파산합니다. 국가연합은 통일로 가는 책임을 분담하는 방법입니다. 서독은 경제력에서 우리 한국의 여섯 배, 인구에서 동독의 네 배, 면적에서 두 배의 규모였습니다. 그런데도 심각한 통일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남북한은 서로가 상대에 대해 부정적인 것만 강조해왔습니다. 동서독은 40년간 교류를 계속했고 서로 상대방의 텔레비전을 보고 신문을 구독했습니다. 이렇게 「서로를 다 알았다」며 통일을 해도 「마음의 장벽」은 강화되고 있습니다. 독일이 과거에는 「1민족 2국가」의 분단상태였는데 이제는 「1국가 2사회」로 새로운 분단이 시작됐다든가 동독 서독은 없어졌지만 동독인·서독인은 엄연히 남아 있다, 동독인은 이등국민이고 서독인은 일등국민이다는 것입니다. 폰 봐이체커 대통령은 저에게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마음장벽은 그대로다」고 말씀한 일이 있습니다』
남북의 적대감 순화시켜야
―그러나 독일이 급격히 통합된 것은 결국 동독 사람들의 선택이었잖습니까. 『그렇지요. 동독 사람들이 곤경에 빠진 것은 인과응보입니다. 통독 전에 사회민주당과 동독의 민주화를 이끈 노이에스 포럼(새로운 광장)은 헌법 1백 46조에 따라 양쪽 대표가 나와 신헌법을 만들고 점진적으로 통합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기민당은 장밋빛 약속을 던졌습니다. 통화를 1대 1로 바꿔주고 서독과 똑같이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죠. 동독 사람들은 물신주의에 사로잡혀 「빨리 통합해 서독처럼 살자. 다른 건 소용없다」며 서독 기본법 23조에 의해 스스로 성급한 흡수통합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는 것입니다.
90년 3월 19일 총선에서 노이에스 포럼이 겨우 2·9%, 사민당이 23%를 차지했고 보수세력인 기민당은 48%를 득표해 압승했습니다. 동독 사람들의 성급한 결정이 오늘날 이런 불행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남북한은 전쟁을 치른 쌍방 당사자입니다. 서로 상대방에게 가족을 살해당한 기억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이를 여과 순화시키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길은 국가연합밖에 없습니다』
『중국이 흡수통일 원치 않아』
―흡수통일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쓰이지만 그 의미에는 혼동이 있습니다. 북한은 「먹고 먹히는 통일」 즉 힘에 의한 강제적 통합을, 남한은 동서독식 통일을 지칭합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흡수통일관은 역시 「동서독식 통일」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언젠가는 자유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로 통일되고, 문제는 시간의 완급이라고 생각합니다. 金총재의 말씀도 언젠가는 남북간에 자유민주주의를 이데올로기로 하는 정치적 통합이 불가피하지만 천천히 해야 한다는 완급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아닙니다 천천히 하더라도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식으로 남북통일을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얘깁니다. 현실을 한 번 생각해 볼까요. 金日成 , 金正日 정권이 붕괴하더라도 북한 사람들이 동독사람들처럼 휴전선을 넘어 와 통일이 될 가능성이 적습니다.북한은 지금까지 「남한은 미제의 식민지다. 몇 사람만 잘 살고 나머지는 거지다. 범죄·마약·매춘의 소굴이다」고 가르쳤습니다. 북한 사람들에게 남한은 용납할 수 없는 사회라는 부정적인 인상만 잔뜩 있습니다. 그들이 동독인 같이 남한에 자진 흡수되려고 궐기할 것을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또한 북한에는 현재 1백10만의 강력한 군대가 있어 金日成 정권이 붕괴하면 군사 독재정권으로 갈 가능성이 더 큽니다. 게다가 중국은 북한정권이 남쪽으로 흡수 통합되는 것을 묵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은 북한이 완충국가 역할을 하면서 미국과 일본 세력을 막아주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북한의 존재는 그들의 국익에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중국도 머지 않아서 민주주의의 선택에 대한 도전을 강하게 받게 될 것입니다. 중국의 장래는 그때의 대응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북한이 일거에 무너져 미국과 일본이 우리와 함께 압록강까지 올라가는 것을 중국이 과연 좌시하겠습니까.
흡수통일은 그 자체로도 경제·사회적 부담이 크지만 설사 우리가 원한다 해도 사태가 동독같이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화국 연합제 방식으로 대등한 통일을 해가지고 점차로 북한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능히 가능한 것입니다.』
―남북한 정부가 독자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연합 단계를, 북한이 자생적으로 경쟁력을 갖도록 하기 위한 정치적 틀로 보면 되겠습니까.
『그렇죠. 국가연합 단계를 10년쯤 이상으로 잡아야 합니다. 북한이 우리와 거래하고 장사를 하면 서서히 개방으로 나가고, 개방이 되면 경쟁력이 필요합니다. 경쟁력을 키우려면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시장경제는 민주주의를 안하고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이런 점에서 중국도 민주주의를 안하면 한계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노동집약단계에서는 억압이 통하지만 정보화지식·첨단산업으로 가면 정보가 물 흐르듯 자유로이 흘러야 하고 창의가 솟아나야 합니다. 독재체제로는 이게 불가능합니다.
북한도 개방과 시장경제, 다원화와 더불어 민주화 쪽으로 갈 겁니다. 여유 있게 다뤄가면 북한을 우리 역량으로, 그리고 그들의 필요성에 의해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서둘지 말자」, 「불안해하지 말고 자신을 갖자」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 불안해 할 필요가 없냐면 국가연합에서는 양 국가가 지금과 똑같이 외교·국방·내정의 권한을 가지고 독립국가로서의 기능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협조하면서 경제교류와 남북간의 전면적 교류를 실현하여 긴장완화와 공동의 이익을 추진하는 단계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북한이 마음놓고 물건을 만들고 돈벌이에 재미를 붙이게 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