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朴正熙 모델의 보편성
朴正熙는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나 그 약점을 알았다
―趙박사께서 지난 80년대 초 중국에서 朴正熙 대통령의 경제발전 모델을 연설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시기가 중국이 개방을 한 것과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1982∼83년 제가 중국에서 연설할 때 「朴正熙는 사회주의자였다」라고 했더니 단박에 그들은 관심을 표현했습니다. 이어서 「그러나 朴正熙는 사회주의의 약점을 알았다. 동시에 그는 자본주의를 알았고 자본주의의 약점도 알았다」라고 했습니다. 또 「朴正熙의 리더십은 그가 청렴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朴正熙의 이러한 점들을 배워야 한다」고 했었습니다』
―朴正熙의 생각은 시장경제적 자본주의와는 차이가 있나요.
『순수한 시장경제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국가가 통제하고 계획해서 국부축적을 우선시한 자본주의엿습니다』
―朴正熙 대통령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통합을 꾀한 것이라는 의미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내용의 연설을 저는 테크노크래트들이 다수인 중국의 당간부들에게 했습니다. 연설을 듣고 난 다음 그들은 우리도 상품경제·시장경제의 매커니즘을 도입해도 성공할 수 있겠다고 좋아했습니다. 鄧小平이 최근의 남방강화(南方講話)에서 「계획 없는 시장경제가 없고, 시장경제가 없는 계획경제가 없다」고 한 것도 같은 매락입니다』
―혹시 趙박사의 연설을 듣고 나서 朱鎔基나 江澤民 등 중국의 지도부가 朴正熙에 대해 코멘트를 한 적이 있었습니까.
『중국 각료급 인사들이 朴正熙 대통령을 거론하는 것은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朴正熙 대통령의 모델이 중국의 개방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이라고 보십니까.
『좋은 영향을 많이 주었지요. 특히 한국의 초기 경제개발에 영향을 받아서 만든 것이 대련 지역의 공단입니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
―동서문화센터에서 朴正熙 대통령의 경제개발계획에 대한 책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목과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朴正熙 재임 18년 간의 한국 경제 개발 정책의 성공사례와 실패사례 18개를 정리한 것입니다. 1991년 출판했는데 제목은 「한국 경제 정책론 : 정책 측면에서 본 한국 경제론 (Economic Development in the Republic of Korea : A Policy Perspective)」입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한국의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본 朴正熙 개발모델에 관한 것입니다. 독일학자, 일본학자들도 참여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한국개발원(KDI)과 함께 남북경제 통합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이북에 갔다 온 중국 갈림대 교수들이 참여할 계획입니다. 이 작업은 북한에 관한 자료가 적어서 굉장히 어렵습니다. 길림대 교수들의 관찰을 통해 중국과 북한의 경제체제를비교해 보고 이어 북한과 한국의 경제체제를 비교해 보는 방법으로 북한의 경제 체제를 분석할 예정입니다』
―북한의 일일당 국민소득이 1천달러쯤 된다고 하는 데 어떻게 보십니까.
『1천 달러는 과대평가한 금액입니다. 오만 가지를 다 넣어서 평가한 금액이었겠지요』
―趙박사께선 70년대부터 朴正熙 대통령의 경제모델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성공사례가 되겠다고 느끼셨다고 하셨지요.
『미국과 영국식의 모델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해 정부는 뒤로 빠지는 것이었으나 한국의 예는 경제 개발에 있어서의 정부 역할을 중요시한 것이었습니다. 과거 일본이 ,경제개발에서의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제일 먼저 증명했었고 한국은 저개발 국가에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증명해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모델이 되겠다고 본 것입니다』
―최근 세계은행에서 동아시아 8개국의 고도성장을 분석한 보고서를 보니까 동아시아 국가가 빨리 성장한 이유로 정부의 개입, 높은 교육수준, 비교적 깨끗한 관료집단 등등을 꼽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아시아의 모델을 남미 등의 다른 지역에 적용시켜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더군요.
『문화권이 다르니까 안되는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경제발전 모델은 유교―한자문화권, 가부장적인 사회라야 가능합니다. 孟子의 덕치국가 이론은 지도자가 현자(賢者)를 모아야 국가가 융성한다는 것입니다. 국운이 잇어야 좋은 임금이 나타난다는 철학인 것이지요. 권위있는 리더십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의 타이밍을 안 朴正熙
―趙박사께선 朴대통령이 경제개발을 할 때 조언을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참여하셨습니다. 때문에 직감적으로 한국의 경제 개발 성공 이유를 분석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朴대통령의 리더십 때문입니다 리더십이란 국민의 마음을 잘 아는데서 나옵니다. 우리 국민의 어디가 강점이고 어디가 약점인가를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 그는 독서를 많이 했기 때문에 역사의 시원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역사관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타이밍을 알았습니다. 대신 朴正熙는 민주주의 사회를 산적이 없었다는 것이 약점이었습니다. 그가 대구사범학교를 나왔다는 것은 모범생적인 자세를 갖게 된 것과 관련있을 것입니다. 그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다니면서 기율을 몸에 익혔습니다. 일본이 명치유신을 치르면서 봉건국가에서 현대적인 국가로 탈바꿈할 때의 지도자 역할을 독서를 통해 터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이끌어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국가 자본주의라는 말을 썼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朴正熙 대통령의 경제개발과 10월유신은 함수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권위에 의한 체제를 확립한 것이 10월유신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민주주의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대학마다 군대가 파견되었듯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는 원래 모순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유신 때 두 번의 오일쇼크가 있었습니다만 한국은 극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화학공업에 대한 투자까지 하였습니다. 그때는 왜 무리한 투자를 하느냐고들 했는데 그 혜택을 우리는 80년대부터 누려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불경기라고 해도 중화학공업만은 연 10% 이상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항상 그 시기의 시각으로만 사물을 보면 안됩니다. 朴대통령의 중화학공업 투자는 20년, 30년 후의 세상을 내다보면서 국가에 플러스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이냐를 내다보고 한 것입니다. 사무엘슨의 제자인 일본의 계량경제학자 이치무라(市村) 교수는 「과거엔 朴正熙 대통령의 8·3조치(사채동결 조치)를 비판했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8·3조치는 계량경제학 방식으로 분석해야 할 것이 아니라 20, 30년이 지난 후 역사관을 가진 역사가들이 평가해야 할 것 같다. 朴正熙 대통령은 일본을 봉건사회에서 합리화 사회로 이끌어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발전엔 반드시 희생 따라
―그 비슷한 시각으로 이인화라는 젊은 작가가 「영원한 제국」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정조를 주인공으로 한 것인데 작가는 소설 중 정조의 모델이 朴正熙였다고 했습니다. 정조와 朴正熙는 권력을 강화해서 그 당시 지식층의 지배이데올로기를 무시하고 개혁을 한 공통점이 있다고 작가는 말했습니다.
『국민의 의식구조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은 2백년 걸려서 민주주의를 만들어 왔습니다. 일본도 명치유신을 시작으로 1백년 동안 국민을 훈련시켰지만 지금도 완전한 민주주의를 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 뜻에서 朴正熙 대통령은 우리 국민의 의식구조를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수 국민의 욕구는 언제나 놀고 싶어 하고, 일어서서 민주화를 외치려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국민적 요구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경제개발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봅니다.
이점에선 鄧小平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발전이 먼저 되어야 제도적으로 민주발전이 따라옵니다. 이를 거구로 하다간 폭동이 일어나 할 일도 다 못하게 됩니다. 언제나 「희생적인 간격」은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하려다간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맥나마라 세계은행 총재가 중국의 지도자가 위대하다고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중국은 미국과 비슷한 면적이나 인구는 네배가 넘는다. 그런데도 국민을 굶기지 않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겉만 볼 것이 아니라 속을 살펴보아야 한다」 필리핀식의 민주주의로는 절대로 안됩니다』
―「희생적 간격」이란 용어는 趙박사께서 개발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영어로는 sacrificial gap 또는 sacrificiial lag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金泳三 대통령의 개혁을 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경제력이 없으면 문화고 뭐가 없습니다. 먼저 배가 부러야 합니다. 항산(恒産)에서 항심(恒心)이 나옵니다』
―朴대통령을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은 침착하고 뭔가 뜻이 있고 비전이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상 대화를 해보니깐 부드럽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역사의 時運을 타야 한다
―이석제 전 감사원장은 朴正熙 대통령과 가깝게 지낸 분이었습니다. 이석제씨의 말이 『朴正熙 대통령은 「김일성은 내가 직접 상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80년대에 중국의 조선족 교포들 대다수가 「朴正熙가 이겼다. 김일성이 졌다」고 심판을 내리더군요』
―朴正熙 대통령은 조국근대화라는 비전으로 경제 개발을 하면서 한편으론 의료보험제도의 틀을 만들고 국민교육헌장을 만드는 등 전 방위로 국가를 반전시켜 나갔습니다. 이점은 金泳三 대통령과 비교된다고 생각합니다. 金대통령께서 지금 개혁을 한다고 사정바람을 일으키지만, 국정을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좁게 보면서 이 나라를 끌고 나가는 것 같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朴대통령은 가난을 절실히 느끼면서 어렵게 컸으니 빈곤으로부터 해방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반대로 金대통령은 독재체제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리도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 우리는 말로만 민주주의 한다고 해놓고 한번도 민주주의를 못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먼저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쌓아온 경제기반을 정비해 나가면서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해나가야 하겠습니다』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당시의 시운(時運)을 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정을 하더라도 주위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감지해가면서 해야 합니다. 경제는 경제대로 밀고 나가면서 사정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경제는 물 흐르듯 이어져 가는 것인데, 사정을 한다고 과거와 단절시켜서는 안됩니다. 중국말에 「소사화 무(小事化 無)」라는 것이 있습니다. 작은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라는 뜻입니다. 과거 것이 좀 잘못되었더라도 좋은 것은 그대로 이어나가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우리도 선진국 수준의 경제에 도달했으니 저성장을 해도 되는 것 아니냐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빨리 쉽니다. 일인당 국민소득 7천 달러인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싱가포르는 물론 대만보다도 못 사는데 싱가포르나 대만이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트루먼의 말마따나 대악(大惡)을 막기 위해서 소악(小惡)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합니다』
―全斗煥 대통령은 경제를 어떻게 이끌었다고 생가하십니까.
『朴正熙 대통령의 비전을 계속 이어나가면서 잘못된 점을 잘라냈어야 했는데 처음에 너무 단절시켜 버렸습니다. 全斗煥 대통령은 국민경제 운영방식을 국가주도형에서 급격하게 앵글로 색슨 스타일의 민간주도형 경제구조로 전화시키려고 했습니다. 앵글로 색슨 스타일의 경제정책은 우리의 역사적 배경을 보지 않고 경제의 논리만 중시합니다. 우리와 같은 문화권에서는 정부와 민간기업이 협조해 나가는 일본·독일식의 경제정책이 좋습니다. 5공 때 민간주도의 경제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돈이 생산자금화 하지 않고 증권이나 부동산에 들어갓던 것입니다. 은행에서 대출된 돈이 증권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 유입된 것은 이때부터 였습니다』
민간 주도 경제정책은 부적절
―그러나 민간주도의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금도 강합니다.
『관주도 또는 민간주도보다는 민관협조로 경제를 운영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유화한다고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부의 간섭이 많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정부의 인허가가 여전히 많다는 것입니다. 큰 흐름을 코치하는 것은 정부가 하고 인허가 같은 것은 대폭 풀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지금의 민간주도 경제는 위선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관이 주도하지 않아야 할 데는 주도를 하고 관여할 데는 관여하지 않으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95년 지방자치선거가 실시된다는 것은 朴대통령식의 권위적인, 중앙집권적인 통치가 지방자치를 경계로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방자치를 하는 데는 상당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때문에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좀 유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경우를 봐도 지방자치정부를 깨끗하게 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었어요. 우리 관료제도가 일본만큼만 확립되어 있어도 괜찮겠는데 지금의 관료제도로는 지방자치가 힘들 것 같습니다. 워낙 우리 정치인들이 관료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동원했기 때문에 자칫 부동산 많이 가진 사람이 돈 많이 써서 당선되고 하면 지방자치의 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우리는 빨리 역사의 리듬을 타야 한다 - 趙利濟의 청사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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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7-11, 1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