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鄧小平의 중국통치
鄧小平의 개발 전략
―동아시아 변천의 가장 큰 주역은 중국입니다. 며칠 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를 보니 중국 경제 발전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실려 있었습니다. 낙관론은 홍콩의 동아시아은행 총재배인이 쓴 것인데 중국이 고성장을 계속해 2005년에는 일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을 능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경제권을 쥐고 있는 5천5백만의 중국 화교가 중국에 투자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동남아의 중국 화교는 장사 잘 하고 노름 잘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공산주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환영받지 못할 사람들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들이 중국에 투자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들이 중국에 투자한다는 것은 돈과 함께 이들의 소프트웨어가 들어간다는 것인데도 鄧小平은 이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鄧小平은 이런 자금으로 먼저 연해안을 개발하겠다는 것입니다. 연해안이 발전하면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사천성 같은 곳은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낍니다. 심지어는 연해안과 내륙간의 일인당 경제소득 차이는 12배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鄧小平은 더 차이가 나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해안 개발을 통해 축적된 충분한 국부를 갖고 내륙을 개발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지요』
―화교들은 공산주의적 시각에서는 전혀 환영받을 사람들이 아닌데요….
『불로소득, 부동산 투기, 노름 등을 많이 한 것이 화교들입니다. 毛澤東식 공산주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이지요. 화교들이 동남아에서 가족 위주의 기업을 일으켜서 부를 축적한 것입니다. 대만의 기업들도 이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사정을 강력하게 추진하며 깨끗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金泳三 대통령은 중국의 이런 점을 눈여겨 보아야겠군요.
『그래서 제 얘기가, 金日成이 쫓아낸 사람들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친일파, 예수 믿는 사람, 지주, 교육받은 사람, 기술자들이 다 남으로 내려와 경제발전에 참여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철거도 중국의 예와 견주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의 청도, 제남에 가보면 독일인, 일본인이 지은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산동성 청도는 독일이 조차했기 때문에 독일식의 붉은 기와를 올린 건물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산동성 정부는 없애지 않을뿐더러 새 집을 짓을 땐 반드시 홍와(紅瓦 : 북은 기와)를 올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분열은 없을 것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에 난 비관적인 중국 미래 예측 기사는 「중국이 경제발전을 할수록 정치적인 위기를 겪게 되고 중국의 과학자, 지식인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두뇌 유출현상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지금 중국은 한국의 60년대 후반기쯤 해당됩니다. 1960년대 후반, 많은 한국인들은 미국으로 빠져 나갔습니다. 미국 유학생들은 학업을 마치고도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눌러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그들은 되돌아 오거나, 되돌아오려고 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나라가 어떻게 발전하느냐입니다. 발전이 잘 되면 유출된 두뇌는 선진 지식을 익혀서 되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중국의 리듬도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중국은 장차 내륙과 연안의 격차 때문에 볼안정을 겪을 것이다, 민주화의 요구로 혼란을 겪을 것이다, 변방의 티벳이나 동북3성 쪽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분규가 일어나 러시아처럼 분열될 것이다는 등의 분석도 있습니다.
『저는 중국에선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다고 봅니다. 중국은 역사상 송나라 말기에 남북조시대로 분열된 때 등을 제외하곤 계속해서 하나의 국가를 유지해왔습니다. 중국인은 변방 소수민족의 성격이 어떠하다는 것과 이들을 어떻게 끌고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지혜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내몽고나 만주만 해도 이젠 한족(漢族)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어떻게 독립을 하겠습니까. 연변의 조선족들에 대해서도 조선말을 하게 하면서도 엉큼엉큼 중국 사람들을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러시아의 문화 힘보다 중국의 문화 힘이 크기 때문에 중국은 문화 힘이 크기 때문에 중국은 해체되지 않을 것이란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중국은 군이 정치세력을 뒷받침하는 한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군에 문제가 있다면 중국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의 지도자들은 군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鄧小平이 자신의 심복인 양상곤을 대하는 것을 보세요. 양상곤의 친위대 세력이 너무 강해지니까 장성들에 대한 인사이동을 시켜서 양상곤에 충성하는 군맥을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중국의 인민해방군에서는 불만이 없습니까.
『계속해서 군비증강을 하는 쪽으로 나가고 있으니 불만이 없는 것같습니다. 군은 중국의 안정화하는 중추세력입니다. 중국인의 문맹률이 30∼40%에 이른 것도 중국을 안정화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천안문 사태가 일어났을 때 중국 지도층은 대학생들의 시위모습을 그대로 텔레비전으로 방영하게 했습니다. 텔레비전에 장발을 한 대학생들이 옷을 벗어 제끼고 코카콜라를 마시며 민주주의를 외치는 모습이 나오자 80%에 이르는 농민들은 「저것이 민주주의로구나」 하곤 현재의 상황을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큰 대국인지라 민주주의를 하자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고성장 정책으로 경제발전을 다 마쳐 버리겠다는 것이 그들의 속셈입니다』
동아시아에는 리더가 있어야
―인민해방군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중국의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는 오래 가겠군요.
『그럴 것이라고 봅니다. 권위를 가진 지도 체제는 동양적인 것입니다. 동양적 문화권에서는 권위의 리더십, 그것이 없다면 상징적인 리더라도 있어야만 잘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 문화권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에는 예외 없이 권위 있는 리더십이 있었고 그것이 없었으면 상징적인 리더라도 있었습니다. 한번 살펴봅시다. 일본의 천왕, 한국의 朴正熙, 중국의 鄧小平, 태국의 왕,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인도네시아의 수하루토 등이 바로 권위의 리더 또는 상징의 리더 아닙니까.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권위의 리더를 인정치 않고 완전 민주주의를 하려고 한 나라가 필리핀이었습니다. 지금 필리핀이 어떤 상황입니까.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한 나라가 발전하려면 반드시 권위의 리더십이 있어야 합니다』
―鄧小平의 딸 鄧楠이나 朱鎔基 등을 만나보셨지요. 그들이 毛澤東을 보는 시각은 어떠했습니까.
『毛澤東이 중국에 기여한 바도 크다, 그러나 착오도 많이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론 국가를 통일하고, 건설하고, 초기에 경제건설을 한 공로는 대단했다. 그러나 개인숭배를 통해 황제가 되려고 한 것은 문제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毛 시절의 문화대혁명은 완전한 실패였다, 너무 길었다 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毛澤東 사후인 1981년 鄧小平이 중심이 되어 중국 현대 공산당사를 평가하는 문건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문건을 읽어보니까 문화대혁명에 대해서는 맹렬히 비판하면서도 毛澤東에 대한 평가는 총론적으로 엄정하게 한 것을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鄧小平의 아들이 문혁 때 병신이 되었습니다. 鄧小平도 속으로는 毛澤東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鄧小平은 실권을 쥐고나서도 毛澤東의 사진과 동상을 떼내거나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鄧小平이 하는 일이 더 잘 된 것입니다. 수백만의 毛澤東 지지자들은 鄧小平이 「毛澤東도 위대한 지도자다」고 했기 때문에 鄧小平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이탈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鄧小平은 상징적으로 4인방만 처벌하고 홍위병은 전부 다 용서했습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국내의 혼란 없이 개방정책을 펼 수 있었던 것입니다』
鄧小平과 金泳三
―지금 金泳三 대통령은 신한국 건설, 신한국군의 원년 등을 선언함으로써 과거와 획을 긋는 단절을 하고 잇습니다. 이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그럼 우리가 주도했던 시절은 구한국이었고 내가 있었던 군대는 구한국군대였냐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지도자의 역사관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鄧小平은 81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문건을 통해 과거를 정리한 다음 金泳三 대통령과 반대로 간 것 같습니다.
『鄧小平은 실권을 잡은 후 4대(四大)와 파업을 금지시켰습니다.
4대란 사람들이 모여서 「와」 떠드는 것(大鳴),
크게 비판하는 것 (大批判),
민주화를 크게 요구하는 것 (大民主),
대자보를 붙이는 것 (大字報)입니다.
4대와 파업을 금지시키는 선에서 과거 청산을 끝내고 개방을 위한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기본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월급을 준다는 안수분배(按需分配)를 하는 것인데, 鄧小平은 그러지 말고 일한 만큼 소들을 가지라는 안로분배(按勞分配)를 하라고 했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월급이 보장되는 제도를 중국속어로 「철밥통」이라고 합니다. 鄧은 철발통을 없애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鄧小平의 딸 鄧楠을 만났더니 안로분배를 하는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 계속 안로분배쪽으로 가야겠다고 했습니다. 자본주의을 하겠다는 것이지요』
―鄧小平은 군 정치장교 출신입니다. 정권의 뿌리를 군에 두고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것 아닙니까. 鄧小平의 군사정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감군(減軍)을 하면서 현대화를 해 나갈 것입니다. 지금 중국은 가장 두려워했던 소련이 없어졌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위협은 별로 느끼지 않습니다. 대신 군은 국내 안정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에 대해서는 잘 대해줍니다』
鄧小平의 人民解放軍 장악
―그러나 각 지역 주둔 부대의 지휘자가 그 지역에 뿌리내리는 것은 막겠지요.
『예. 뿌리내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鄧小平은 군대에 자기 인맥은 구성해 나갑니다. 천안문 사태 때 鄧은 수도 및 인접 성(省)의 군대를 동원했는데, 소문에 의하면 이 부대들과 이때 동원되지 않은 무한(武漢)지역 주둔군이 鄧小平의 인맥이 형성되어 있는 부대라고 합디다』
―중국은 항공모함을 갖겠다며 대양함대 구성을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은 과거의 소련을 대체할 만큼 군비증강을 계속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조금만 해도 크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경제개발을 더우선시 할 것입니다. 군비를 증강한다고 해도 중국은 단기간 내엔 군국주의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중국은 남지나해의 남사군도에 군대를 파견하고 영유권을 주장해, 주변국가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과거 1백년 간 땅을 많이 뺏겼기 때문에 영토문제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입니다. 영토에 대한 애착이 아주 강한 것이 중국인의 정서 같습니다. 중국은 영토문제에 대해선 양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붕(李鵬), 주용기(朱鎔基) 등을 만나보셨지요. 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李鵬은 우리 기준이 아니라 중국 기준으로 봤을 때 보수적인 사람입니다. 개방에 대해 그렇게 적극적인 편이 아니었습니다. 鄧小平은 그런데도 李鵬을 빼내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대신 일을 개방에 적극적인 朱鎔基 한테 다 시킵니다. 제가 보기엔 중국 지도자 중에서 朱鎔基가 가장 날카롭고 머리가 좋은 것 같앗습니다. 李鵬을 버리지 않는 것은 개방에 반대하는 세력과의 화합도 중시하겠다는 태도입니다. 중국말로 이화위귀(以和爲貴)라고, 화합을 해서 귀한 것을 이루겠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그런 중국 지도자들은 정치인이 아니라 모두 테크노크래트들이지요.
『엔지니어 출신들이 많아요. 공허한 소리는 안 하는 편입니다』
―중국 군대의 힘은 상당히 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인민해방군을 장악하고 있습니까.
『鄧小平이 당과 군대를 장악하고 있으니 당이 군대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겠지요』
―많은 사람들은 鄧小平이 죽은 후엔 리더십이 무너져 중국 공산당의 군대 장악력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鄧小平이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개방정책을 지속할 수 있는 정비를 해놓고 갈 것이고, 빨리 죽으면 군을 조직적으로 정비하는 것이 늦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내수에 중점 둔다
―얼마전 중국을 다녀온 일본경제 신문기자가 『가서 보니 중국은 내수 중심의 경제이더라. 한국은 중국을 지나치게 경계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국은 자본이 없었기 때문에 수출을 중시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수에 치중할 것입니다. 중국이 무역을 하는 것은 자본을 끌어들여 축적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중국의 무역규모가 한국을 능가했습니다. 세계시장에서 중국은 우리의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 중국의 경제가 어느 수준에 올라서게 되면, 경쟁자가 아닌 우리의 방대한 시장이 될 것이란 의견이 있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중국이 잘 살게 되면 미국처럼 전세계를 먹여 살리게 되겠지요. 그런데 저는 반도체와 철강을 제외한 지금의 전제조업의 비교 우위가 없어져 궁극적으론 중국에 지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한 우리의 좌표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창의력 있는 인력자원의 개발과 과학기술의 개발밖에는 다른 방안이 없습니다. 지금은 이런 것을 꿰뚫어 보고 21세기를 대비한 대한교육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되고 있지 않습니다. 대학에서 질적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질적인 대학 교육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까도 말했듯이 대학 안에 기강이 있어야 합니다. 기강이 바로 선 대학이라야 교수와 학생이 부지런히 공부합니다. 총장선거 같은 것을 해선 대학교육의 기강을 바로 세울 수가 없어요』
―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집단은 기업가집단이고 가장 경쟁력 없는 집단은 교수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기업가에 대한 평가는 절하하고 교수집단에 대해선 과대평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대학에서는 전임강사만 되면 평생이 보장됩니다만 미국의 대학에서 전임강사, 조교수는 계약직입니다. 교수 사회에 경쟁이 도입되어 있는 것이지요. 얼마 전에 한국의 어떤 대학에 갔더니 15년 전에 만든 노트로 아직도 강의한다는 교수가 있었습니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장래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대학을 보면 알 수 있지요.
『그럼요. 그래서 우리의 미래가 비관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원은 인적자원과 과학기술뿐입니다』
―앞으로의 일본은 대학과 기업 전체가 과학기술을 연구함으로써 일본 전체가 연구소가 되고 공장은 외국에 두는 형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동북아지역의 협력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동북아지역의 나라를 돕지 않으면 일본은 결국 이 테두리를 망가뜨리는 역할을 할 지도 모릅니다. 일본 돈 1만엔에 나오는 게이오(慶應)대학 창시자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가 아시아를 벗어나자는 탈아론 (脫亞論)을 주장했었는데 지금은 아시아와 접촉하자는 접아론(接亞論)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도 이제는 이런 변모된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이지요. 1백년 만에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李光耀 전 싱가포르 수상이 『장차 동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는데 하나가 일본이 자본과 기술을 이 지역에 풀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미국이 이 지역에 군사적 정치적인 영향력으로 남아서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군국주의 테두리 안에서 자라난 사람들이라 사고하는 방식이 다른 나라를 무시하고 종속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자라나는 신세대는 평등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은 李光耀 전 수상이 전제조건으로 말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일본,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일본의 뉴리더로 꼽히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는 과거의 일본 지도자와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빙빙 돌리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한다든지….
『호소카와(細川) 일본 총리가 과거에 동서문화센터에 왔을 때 만났었는데 아주 개방적입디다. 영어도 잘 하고 아주 진지하게 공부하는 자세를 갖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과거의 일본 지도자들과 다른 것 같습니다』
―호소카와나 오자와 같은 일본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과거의 일본은 경제성장만 추구하고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 있는 역할을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하겠다는 쪽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중국이 우리를 바짝 쫓아오다 보니 우리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대신 우리는 중국시장을 개척해 미국에서 잃은 것을 보전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주요 시장이 선진국인 미국에서 개도국인 중국으로 이전하게 된다는 것은 높은 수준의 제품을 만들다가 낮은 질의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이전하게 된다는 의미 아닙니까. 우리는 역시 미국·일본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제품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5∼10여년간 지금처럼 계속해서 인전 가원과 과학기술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세계 시장에 팔아먹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중국 천진 공단에선 한국이 투자한 공장에서만 노사분규가 일어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과거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업체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나 군대까지 출동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이 외국에 나가서도 한국식 사고방식을 고집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아닙니가.
『한국인들은 배타적이라 타민족을 무시하는 경향이 심한 편입니다. 왜정 때 일본 관동군의 앞잡이로 중국에 들어갔음에도 마치 우리가 중국을 쳐들어 갔었던 듯 우쭐한 마음으로 「뙤놈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근세사에서 일본을 한번도 앞서보지 못했으면서도 일본인들에게는 「왜놈들」이라고 손가락질합니다. 단일민족이라 그런지 몰라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행동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국 화교들을 못살게 볶아서 쫒아낸 나라는 한국뿐일 것입니다』
한국, 화교 쫓아낸 것은 큰 실수
―한국이 화교를 쫒아낸 것은 큰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화교는 대개 산동성 출신들이었는데 지금 산동성과 뱃길이 놓였습니다. 이 화교들이 남아 있었으면 활발하게 상업이 이뤄져 상호 발전했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중국과 연해안 개발계획을 처음 논의했을 때 중국 측에서는 한국에 산동성 출신 교포들이 있어 상호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당한 기대를 했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화교들이 없었어요. 이러한 편협된 사고를 줄이려면 먼저 객관적으로 역사를 볼 수 있는 훈력을 해야 합니다. 저는 동북아 경제권 개발사업의 한 맥락으로 한중일의 역사교과서 비교연구를 시킨 적이 있었는데 세 나라 교과서가 공통적으로 객관성을 잃고 있었습니다. 역사 기술에 객관성을 잃었다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고 사실을 생략했다는 뜻입니다. 왜곡보다 더 심각한 것이 생략부분입니다. 동양 3국은 역사 교과서에 빠뜨린 것과 왜곡한 부분을 되살려서 역사를 객관화시켜야 합니다. 일본의 에가미 나미오(江上) 교수와 같은 사람은 실제로 「일본인은 도래인이다」라면서 역사 교과서의 객관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과 협력하려면 인맥의 형성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역시 상대국에 대한 문화적인 이해가 있어야겠지요.
『그럼요. 역사를 객관화해놓으면 상대국의 문화에 대해 바르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동양의 경제 원리는 서양의 계약적인 경제원리와 달리 문화적, 역사적, 제도적인 것을 내포합니다. 우리에게는 폭을 넓혀서 보는 눈이 중요합니다. 동양3국은 동일한 역사 공동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평양처럼 주체를 외치다가 뒤떨어져서는 안됩니다』
―중국은 북한을 계속 지원할까요.
『지난 10월2일 중국 인민해방군 창설 기념식에서 金日成의 축하 전문을 가장 앞에 놓았던데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이겠지요. 그러나 중국은 북한의 붕괴는 원치 않기 때문에 북한의 자위가 가능하도록은 도와줄 것입니다. 북한이 붕괴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동북아에서의 함수가 바뀌는 것이므로, 앞으로의 상황예측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북한이 대남도발을 한다면 중국은 어떻게 나올까요.
『북한의 대남도발에 적극 반대할 것입니다』
―중국의 입장에는 한국의 경제적 번영이 자기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입니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국은 북한이 붕괴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이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중국이 러시아와 마찰을 빚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당분간은 없을 것입니다. 러시아는 자국의 내부사정 때문에 그럴 여지가 없습니다. 鄧小平은 지금의 러시아 사태가 최대의 교훈이기 때문에 내부를 다지는데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시간이 지나면 지난 세기 러시아에 넘겨준 영토를 되돌려 받으려고 애쓸 것입니다』
우리는 빨리 역사의 리듬을 타야 한다 - 趙利濟의 청사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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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7-11, 1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