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두만강 개발계획
―趙박사께서는 두만강 개발계획을 처음 발상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발상은 여러 사람이 했습니다. 그 발상을 궤도에 오르게 한 사람이 제가 되겠지요. 5년 전 저는 송건(宋健)이라는 중국 국가과학위원회 책임자(부총리급)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宋健씨는 그때 「소련과 중국이 영토문제로 협상하고 있는데, 두만강 하류의 중국 도시인 방천(防川)에서 두만강을 따라 통항할 수 있는 권리를 중국이 받아낸다면 중국의 동북지역이 발전하지 않겠는가」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두만강을 중심으로 국제 경제협력이 이뤄진다면 이곳이 막대한 잠재력을 갖는 곳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장춘(長春)에서 동북아경제 협력 1차회의를 열어 내놓은 것이 삼각형 모양의 두만강지역 개발계획이었습니다. 장춘 회의 때 이북의 대표도 참석했는데 그들은 어떻게 회의가 돌아가는지도 모르는지 「팀 스피리트 훈련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장춘에서 두 번째로 열린 회의에서 두만강 개발계획에 참여하겠다고 밝혔지요 2차 장춘회의 때 북한 대표는 북한측 두만강 개발계획과 북한 지역의 6백 4㎢에 자유특구를 만든다는 안을 들고 왔었는데 국제회의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발표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때도 의장을 했는데 이북대표가 와서 발표시간을 30분 달라고 해서 중국의 양해를 얻어서 기회를 주었습니다. 내용은 「청진·나진을 개방할 테니 중국은 두만강에 항구를 만들지 말고 우리 항구를 이용하라」는 것 등이었습니다』
두만강 개발의 비전
―趙박사께선 장춘회의를 어느 분들과 함께 시작한 것입니까.
『중국의 宋建씨, 일본의 오오키타 사부로씨 등과 시작했습니다. 옹키타 사부로와 저는공동의장이 되어 1988년 동해를 평화해역으로 만들?자원을 공동개발한다는 회의를 블라디보스토크와 니이카다에서 개최한 적이 있었습니다』
―북한이 장춘회의에 참가하게 된 것은 趙박사께서 중국을 통해 초청장을 보냈기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소련측은 어떤 사람을 매개로 해서 접촉하셨습니까.
『당시 소련 사회과학원 극동지역 책임자인 일리체프를 대화상대로 했습니다』
―두만강 개발계획에 UNDP가 참여한 것은 언제부터였습니까.
『2차 회의 때부터였습니다』
―UNDP가 두만강개발을 지원한 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술적으로 가능성이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지요』
―자금은 누가 지원합니까.
『UNDP자체 예산과 민간재단에서 주로 지원하지요. 한국의 무역협회와 산업연구원·기업, 일본의 기업과 민간재단, 중국에서도 돈을 대고 핀란드도 자금을 좀 내놨습니다』
―핀란드가 왜 돈을 냅니까.
『장차 동북아시아가 세계의 경제의 큰 중심이 될 것이니 미리 관심을 두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UNDP가 이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 사업이 본격화되면 UNDP가 주관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이 계획이 가능한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이지요』
중국, 두만강 개발계획에 적극적
―중국이 두만강 개발 계획에 아주 적극적인데 어떤 연유 때문인가요.
『10여년 전 중국이 개방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산동성은 상당히 낙후된 지역이었습니다. 馬洪씨 등은 일찍부터 중국의 동해안, 즉 황해안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의 서해안도 한국에서는 낙후된 지역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점에 착안, 동서문화센터(East West Center)에서 황해안 지역의 개발을 연구하자는 「연해안개발 국제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이 회의를 중심으로 한국과 중국 산동성 지역의 전문가들이 만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천진 시장이었던 정치국원 李瑞環씨도 이 회의를 적극 도와주었습니다. 산동성은 宋健씨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앞에서도 중국과의 교류에선 인맥이 중요하다고 했지요. 이러한 인연이 토대가 되었기 때문에 황해안 개발 계획이 오오키타 사부로와의 동해안 개발로 발전했고, 다시 동북아 경제협력으로 발전하면서 중국도 적극적이 되었던 것입니다. 중국은 지금까지 동해안으로 나갈 길이 없었습니다.
만주는 방대한 농업지대이고 대경유전에서는 중국 총석유 생산량의 65% 정도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또 이곳은 대단위 중공업 지대이기도 합니다. 동해로 나갈 길이 없다보니 자연 대련항에 병목현상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鄧小平, 李鵬, 江澤民등 중국의 지도자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등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입니다. 두만강 학에서 15㎞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의 국경도시 방천(防川)이 나오는데 중국은 이곳에 항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북한과 소련에서 「항구를 새로 만들 것 없이 우리 항구를 쓰라」고 나온 것이지요. 중국은 북한의 항구를 사용하는 데 복잡한 수속과정이 문제가 되자, 소련의 조그만 어항 자루비노 항구를 개발해서 쓰겠다며 결정하고 훈춘에서 자루비노까지 철로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를 생각게 하는 긴 안목으로 하부구조 건설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연해안 개발 계획」을 정책화한 것이 있습니까.
『많이 했습니다. 항구도 많이 만들었고, 한때 우리나라가 서해안을 개발한다고 떠들다가 흐지부지한 적이 있지요. 그것이 중국의 황해안 개발과 발을 맞추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양국의 의자가 서로 작용해서 공동상승(synergy)하도록 하는 것이 제가 주도하는 일입니다』
―북한은 중국이 청진과 나진항을 이용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지요.
『그럼요. 두만강 개발 계획은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을 이용해서 이 지역을 개발한다는 것인데 북한이 참여하기로 결정했지요. 반대로 우리는 이번 기회에 북한에게 자본주의는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되겠습니다. 북한은 자본주의가 뭔지도 몰라요. 제가 북한의 김정우를 만나 경제 통계가 있느냐고 물으니까 「있기는 있지만, 이제부터 만들면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회답했습니다. 우리는 인본적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국제적인 테두리를 만들어 북한을 이끌어줘야 한다는 것이 저의 대 북한 비전입니다』
국가간의 발전단게 격차에서 에너지가 생긴다
―다자간의 포럼을 통해 자연스럽게 북한을 이끈다는 고차원의 전략이군요.
『예. 북한은 두만강 개발 계획이 자극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金達玄은 「두만강 특구에 공장을 지어 우리 노동자들에게 80 달러의 월급만 주면 파업도 안하고 농땡이도 안합니다. 철야를 해서라도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란 말을 제게 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은 쇄국주의를 폈기 때문에 개방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金達玄은 외국에도 많이 다닌 것으?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만나 보니까 어느 정도 수준의 사람입니까.
『알기는 상당히 많이 아는데 국제적인 프로젝트의 매커니즘까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정도였습니다. 김정우는 특구를 만드는 것에 대해 「땅을 주면 주권까지 뺏기게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걱정도 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두만강 지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요.
『그럼요.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해안 쪽의 일본 지방정부(縣)들은 싱크탱크를 만들어 두만강지역 투자전략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하얼빈에서 사카다로 오는 옥수수의 양은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마루이치(丸一) 같은 기업은 두만강 하류 지역의 모래만 실어와도 수지가 맞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결의된 게 동북아개발은행 아닙니까.
『예. 동북아개발은행을 만들 것을 연구해 각국에 의견을 물어보자고 했습니다. 동북아개발은행은 동서문화센터가 이 회의와 협조해서 연구하는 것입니다』
―동북아 경제협력 회의를 주도하는 기관이 동서문화센터(East West Center)입니다.
『처음 장춘에서 회의를 하고 나니까 동서문화센터는 미국 정부의 연구기관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문제검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별도로 동북아 경제협력회의 사무국을 만들어 하와이에 두기로 하고 그 의장을 저로 한 것입니다. 동서문화센터와는 협조관계가 되는 것이지요』
―동아시아 경제연구원은 어떻게 편성된 것입니까.
『동아시아 경제연구원(API)은 저와 南悳祐씨가 서울에 만든 것으로 南悳祐 전 총리께서 회장을 맡고 계십니다. 중국에도 동아시아 경제연구원이 똑같이 조직되어 있고 그쪽에서는 馬賓씨가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지금 가나모리(金森)씨 등이 중심이 되어 동아시아 경제연구원을 만들고 있습니다』
―두만강 개발계획은 노동력과 땅·항구는 북한·중국·러시아가 제공하고 기술과 자본은 한국과 일본이 제공한다는 구도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동북아경제협력이란 아이디어를 내게 된 근거는 일본, 한국, 중국, 북한 순서로 인구·산업 구조의 전환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에서였습니다. 일본은 이미 성숙한 산업구조, 인구구조이고 한국, 중국, 북한 순서로 성숙한 인구·산업구조로 전환될 것이라고 예측을 한 것이지요. 동북아는 발전단계에 격차가 있는 나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다이나믹한 지역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물이 흐를 때 상류에서부터 하류까지 낙차가 있어야 수력이라는 물리적인 힘이 나옵니다. 그것과 똑같이 지역도 발전 단계가 다른 나라들로 구성되어 있어야 역동적으로 성장합니다. 지난 수십년간 동북아의 일본,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함계 고성장을 해온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반대로 지금의 구라파를 보십시오. 상대적으로 같은 발전단계의 나라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역동적인 힘이 적습니다』
미국의 영향력 남아 있어야 동북아가 안정
―물리학적으론 낙차가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나옵니다만, 지역에서는 어떻습니까.
『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격차가 크면 힘이 안나옵니다. 쉽게 설명하면 형이 5천만원을 번다면 동생은 2천만원은 벌어야 서로 자극을 받아 함께 발전합니다. 동생은 형을 따라가야겠다고 노력하고 형은 동생을 리드하기 위해 노력하는 상호작용이 있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형은 대기업의 사장인데 동생은 주정뱅이로 너무 격차가 크면 서로에게 짐만 되어 오히려 나빠집니다』
―두만강 개발은 일본, 한국, 중국, 북한이 서로 순환하는 구조로 연결되어 진행되어야 하겠군요.
『그럼요. 이 지역에 항구를 만든다면 일본 건설회사는 직접 참여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인건비 등이 너무 높기 때문에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건설회사는 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 건설회사는 돈을 댈 것입니다. 한국 건설회사는 중국과 북한에서 단순노동자를 고용해 항구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런 구성이 가장 경제적인 구성입니다. 4개국이 이질적인 발전 단계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성이 가능한 것입니다』
―재미있겠는데요. 趙박사께선 이 이론의 명칭을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인구와 산업구조 변천의 상호작용모델(interaction model)이라고 붙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개발하는 것은 두만강 지역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도 가능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두만강지역이 암흑지대였으니까 빛을 먼저 비춰주자는 것입니다』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동아시아개발은행을 만들자는 것이군요. 동아시아개발은행에는 어떤 나라들이 참여합니까.
『동아시아개발은행을 만들자고 의견을 물어본 나라가 일본, 한국, 중국, 북한, 몽고, 러시아였습니다. 미국과 대만을 참여시킬 것인가는 이 나라 정부들의 반응을 보고 차후에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동아시아개발은행이 구성되려면 일본의 참여 여부가 가장 중요하겠군요.
『그렇지요. 그런데 일본 정부는 UNDP가 주관하는 두만강 개발 계획의 구성원이 아닙니다. 일본의 중앙정부는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아요. 일본 민간기업의 움직임과 지방정부의 움직임을 쭉 지켜보다가 서서히 참여할 것입니다』
―일본이 돈을 대게 하려면 이 회의에 참여하는 가나모리(金森)씨 등이 열심히 논문을 써서 이 계획을 알려야 하겠군요.
『그럼요. 지금은 많이 알려져서 동해안 쪽의 일본 지방정부(縣)들은 아주 관심이 높습니다. 우리나라의 서해안 지역이 영남지방에 비해 낙후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해안 쪽의 일본은 태평양 쪽 일본에 비해 개발이 덜 된 소외지역이었습니다. 일본은 지방자치를 하기 때문에 지방정부의 움직임이 중요합니다. 동해안쪽의 일본 지방정부들은 이 계획이 본격화되면 자기들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대단합니다』
UNDP는 후발 참여
―중국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두만강 개발 계획에 관심을 기울입니까, 지방정부(省)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입니까.
『양쪽 다입니다』
―중국측의 대표격인 송건(宋健)이란 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현재 나이는 63세쯤 되었고 부총리급 국무위원입니다. 방위산업 지도자, 원래는 미사일 전문가로 시스템학을 공부했답니다.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이 그를 죽이려고 해서 주은래는 그를 신강성에 보내놓았답니다. 문혁이 끝난 다음엔 돌아와 미사일과 로켓을 연구하는 항천부(航天部)의 차관을 했습니다. 시스템학이 인구학과 비슷한 데가 많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시스템학을 한 사람들에게 인구문제 해결책을 찾아보라는 과제를 내렸답니다. 그는 인구문제 논문을 뒤지다가 제가 쓴 문헌을 보고 인상을 받았다며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게 10여년도 더 지난 시절의 일이었습니다. 宋健씨는 그후 중국 인구정책의 기본을 세웠습니다. 그는 「중국 인구의 과학적인 체계화」란 책을 미국에서 출판했을 때 제게 서언을 써달라고 부탁해 그때부터 친해졌습니다』
―가나모리(金森)씨의 말을 들어보니 일본의 중앙정부도 두만강 개발 계획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일본은 대개 두 패로 나뉘는데 한패는 「중국하고만 손잡으면 다 되는 것 아니냐」는 비개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고, 오오키타 사부로 인맥의 국제파는 「한국, 미국 등과 국제적으로 손잡고 협조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북한, 자본주의 생각하게 해야
―이 개발계획에 미국을 끌어들이는 것은 어떤 이유입니까.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을 끌어들여야 균형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또 미국을 끌어들여야만 동아시아국가들끼리 똘똘 뭉쳐서 미국에 대항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피할 수 있습니다. 미국을 참여시키면 자연 공개된 지역 조직이란 것이 증명됩니다. 이 회의의 사무국을 하와이에 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 회의의 기본적인 목적은 두만강 지역 개발을 화두(話頭)로 삼아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자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론 스칼라피노 교수가 말한 NET(Natural Economic Territories : 자연경제 영역)가 발전해나가는 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이지요』
―한국에서 열린 이번 회의에 북한 대표는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평양회의 때 북한이 보인 관심과는 대조적입니다.
『경제협력 위원회 서기장인 임태덕이 오기로 했고 또 그들은 오고 싶어 했는데, 남북문제 때문에 못 온 모양입니다』
―지난해 평양회의 때도 북한은 아주 적극적이었지요.
『그럼요. 각국의 참가자들을 칙사 대접했습니다. 특별열차에 참가자들을 태우고 17시간 동안 한번도 서지 않고 나진까지 데리고 갈 정도였으니까요』
―두만강 개발 계획을 주관할 두만개발공사(公社)를 만들자는 안이 나왔지요.
『북한, 중국, 러시아가 공사(公社)를 만들어 땅을 마련한 다음 한국과 일본 회사에 일정 기간 동안 부지를 분양하는 것입니다』
―UNDP와 이 회의와의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상호보완적이지요 정확히 말하면 UNDP는 우리 아이디어를 받아서 정부 차원에서의 실행으로 옮기려고 하는 것입지요』
―우리가 북한에 대해 두만강 개발 계획 같은 것을 던져주는 것은 우리입장에서는 상당한 플러스 아닙니까.
『그럼요. 두만강 개발 계획을 통해 경제발전이 북한에 유리하다는 점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북한은 두만강 지역 개발도 해야겠고, 조국 통일도 해야겠고, 한편으론 핵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이점을 조금씩 보여주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자꾸 개방을 촉진하게 하는 것이 우리와 동북아시아 지역에 유리합니다. 우리 정부는 이런 것을 정책 차원에서 깊이 있게 논의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두만강 개발 계획을 한다고 하자 확 관심을 가졌다가 좀 지나자 떨어져 나가고 또 좀 지나자 확 관심을 가지고 하니까 문제입니다』
―趙박사께선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몇 번 해보셨기 때문에 두만강 개발 계획도 비교적 수월하게 추진하고 계신 것같습니다.
『인맥, 체제의 이해, 언어 장벽의 극복, 자금 조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가 있기 때문에 하는 건데 정말 힘들어요. 이젠 궤도에 올랐으니 할 만하지만 처음엔 얼마나 힘들었는지…. 「연해안 개발」을 추진하면서 鄧小平의 딸인 등남(鄧楠) 등과 중국의 수자원 개발을 연구하고, 중국 전력문제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를 공동연구한 것 등이 있었기 때문에 두만강 개발 계획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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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7-11, 1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