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빨리 역사의 리듬을 타야 한다 - 趙利濟의 청사진(1)

우리는 빨리 역사의 리듬을 타야 한다 - 국제적 巨物학자 趙利濟박사의 장대한 東北亞 청사진

漢字를 많이 써야 13억 유교문화권에 편입된다.
중국 엘리트들은 朴正熙 개발모델에서 용기 얻었다.
중국은 文化의 힘이 있어 분열하지 않는다.
동양적인 권위의 리더십이 있어야 정치·교육·경제 발전이 가능하다.
한국은 동북아의 총무역할을 맡아야 한다.
세상만사 적당한 격차가 있어야 발전이 있다.

미국 이스트 웨스트 센터 부총장으로서 미국·중국·일본·북한·동남아의 고위층에 넓은 인맥을 갖고 잇는 세계적인 인구학자. 두만강개발계획의 발상자이기도 한 趙박사는 유동적인 동북아정세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활요하고 향후 10년간 경제성장에 국력을 집중하면 21세기의 강자가 될 수 있지만 지금의 찬스를 놓치면 주변강국의 종속국으로 전락해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1부 趙利濟의 국제인맥

거창한 인맥의 국제인

하와이에 있는 동서문화센터 부총장 조이?趙利濟) 박사(57)는 남북한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두만강 개발 계획을 처음 구상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동북아 지역 경제 희외」를 주관하고 있는 거물급 국제 학자이다. 한국의 상부 인사는 물론 중국, 일본, 미국, 말레이시? 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권의 저명한 학자 및 고위관료들과 인맥을 구축하고 있으며 북한에도 다녀왔고 한중수교과정에서도 막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주지는 하와이이나 경제기획원산하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월간조선이 趙박사의 비전을 들어보기 위해 그를 만난 것은 지난 10월7일 정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였다.

식사 도중 金永三 신정부의 사정활동을 소재로 한 대화가 오고 갔다. 金永三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최근 80, 90%대를 기록하고 있는 것에 대해 趙박사는 이런 말을 했다.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의 반공 분위기는 대단했습니다. 트루먼 대통령이 전쟁 발발 3일 만에 미군을 파병하자 80%의 미국민이 대통령의 결단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미군이 후퇴하자, 미국민의 85%가 「이 전쟁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 당장 미군을 철수시켜라」는 의견을 보였습니다. 여론이란 이런 것입니다. 그때 트루먼 대통령은 「나는 대중여론조사를 따르지 않는다. 국가를 위해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따져서 결정하겠다(I don't follow opinion poll. I only follow what is right or wrong for the country)」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지도자는 대중적 인기에 매달려서 국정을 결정하면 안됩니다』

화제는 金永三 대통령이 「신한국건설」과 「신한국군의 원년」을 선언한데로 흘러갔다. 趙박사는 『이북의 金日成도 주체를 강조하면서 「새역사의 창조」를 선언했다. 북한은 6·25전쟁사를 새로 기록하면서 중국 팔로군이 참전한 것을 빠뜨려 버렸다. 한국인은 너무 새것을 좋아하는 것이 문제다. 새것만 찾다보면 왜곡이 생긴다』면서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링컨 다음으로 훌륭했다는 평가를 받는 트루먼도 「과거의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한 것이 많더라도 단절시켜버리면 혼란이 온다. 그들의 장점을 살려서 이어받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어서 경제발전과 부패의 함수관계가 화제가 되었다.

봉급장이들은 원천징수를 당하기 때문에 세금을 다 내지만 돈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절세, 탈세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 아닌가란 질문에 趙박사는 『미국의 재정학 교수들은 수업 첫시간에 「지도자가 소득이 많은 상위 5%의 사람들로부터만 세금을 거두어 정치하겠다고 하면 90% 이상의 국민이 찬성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자본주의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본격적인 인터뷰는 호텔 근처에 있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자문위원실로 옮겨서 시작했다. 趙박사의 특징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빙빙 돌리지 않고 쉽게 설명한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趙박사가 경제학, 사회학, 언어학의 용어를 구사하면서 영어, 일어, 중국어까지 들먹였지만 이해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오후 5시쯤 일행은 趙박사가 묵고 있는 남산의 타워호텔로 옮겨가서 인터뷰를 계속했다. 중간에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인터뷰를 하다가 헤어진 것은 저녁 10시30분이 넘어서였다.

전통적 교양에 국제적 감각

趙利濟 박사는 1936년 7월5일 일본에서 태어나 만 아홉 살 때 해방을 맞아 가족과 함께 고향인 경남 함안군으로 돌아왔다. 국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정치행정학 석사, 시카고대학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시 일본으로가 도쿄(東京)대학에서 인구학 박사, 게이오(慶應)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부산 동아대학에서 명예 경제학 박사학위를 수여받은 바 있다. 그가 박사학위논문을 발전시켜서 만든 인구구조 예측 모델론은 세계적인 학설로 인정돼 각국의 인구정책에 활용되고 있다. 정치학, 행정학, 사회학, 인구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 전 분야에 대해 관심을 넓혀가는 도중 그는 부흥부에서 관료로 근무했고(1958년), 국세(國稅)조사위원회 간사(1959)를 지내기도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시카고대학 조교수, 하와이대학 사회학·경제학교수(겸직)를 지냈으며 시카고대학 조교수, 하와이대학 사회학·경제학교수(겸직)를 지냈으며 동서문화센터(East West Center)총장서리와 부총장(현재까지)을 지냈다. 1966년에는 서울 문리대에서 초청연구교수로 강의한 바 있고 다음해엔 말레이시아 수상실 고문으로 근무했으며 중국 길림대학의 명예교수로 임명되기도 했다.

趙박사가 여러 학문을 공부할 수 있었던 배경엔 탁월한 외국어 습득 능력이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한국어, 영어, 일어 외에도 중국어, 말레이시아어, 인도네시아어,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다. 이러한 언어 구榮�력�?학자적 명성, 전통적인 교양과 국제적인 감각,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다국적 인맥이 있었기 때문에 두만강 개발 계획과 같은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주도할 수 있었다. 그는 朴正熙 대통령 재임중 한국의 경제 개발 정책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공로 등으로 국민훈장 동백장(1977년)을 받았고 한중수교의 막후에서 양국정상간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맡아 국민훈장 무궁화장(1992년)을 받았다. 가족은 1973년 결혼한 전은자(全恩慈)씨(전택부.全澤鳧 YMCA 명예회장의 딸)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었다. 주 생활 근거지는 미국의 하와이이나 한국 국적을 고수하고 있다.

제2부 漢字로 국제화

漢字 써야 13억 인구권에 편입

―최근 국제화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면서 외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와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한자의 사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자를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면 적어도 동양3국의 언어와 사상을 이해하는데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趙박사께서는 한자 사용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에 맥아더가 이끄는 미군이 점령군으로 들어와서 취한 조처 중의 하나가 한자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점령군은 「한자를 썼기 때문에 일본이 복잡해져서 군국주의를 한 것이 아니냐, 한자를 쓰지 않으면 타자 치기도 쉬울 것이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러자 일본의 지식인들은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은 듯, 하나같이 들고 일어나 결사 반대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모리타(盛田)와 함께 소니사를 공동 창업한 이부카 마사루(井深大)였습니다. 이부카는 저와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였는데 한번은 「당시 나는 점령군이 우리 문화조차도 없애려고 한 데 대해 엄청난 충격을 받고, 우리 문화를 지키려면 한자를 타자로 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자를 전산화하기 위해 소니의 연구진들과 함께 무지무지한 노력을 했다. 20여년간 노력한 결과 한자의 전산화에 성공했다」며 이런 체험담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방위산업과 관련해서 얼마 전 우리는 약정에 따라 미국에 소프트웨어를 전달했다. 워싱턴에서 있었던 그 전달식장에서 나는 『이 기술은 미국 점령군이 일본의 한자를 없애려고 한데 간신히 대응한 다음, 한자를 전산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다. 이제 이 기술을 당신들에게 넘겨준다. 그때 우리가 한자를 없앴다면 오늘의 이 기술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일본은 한자를 계속 사용했기 때문에 기술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朴正熙 대통령이 한국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합니다만 한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게 68년 그가 취한 「한글전용 5개년계획」입니다. 73년 한국은 다시 한자교육을 시작했지만 우리는 한글 전용을 하면서 너무 잃어버린 게 많습니다』

한자는 머리를 굴리게 한다

―구체적으로 뭘 잃어버렸습니까.

『소니의 예처럼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지요. 한자는 정확한 메시지, 정확한 어의(語義)를 전달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관리와 기술개발을 하는데 아주 유용합니다. 우리가 한자를 잘 알면 일본어나 중국어를 모른 채 일본이나 중국에 가더라도, 한자로 쓰인 간판을 보고 쉴새없이 「저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머리를 쓰는 과정에서 저절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한글만 쓰게 되면 이런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일본은 중국과 더불어 동아시아의 주축이고 미국과 더불어 첨단산업을 리드하는 나라입니다. 첨단을 달리는 나라와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도구를 갖고 있다는 것은 아주 유리한 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시아의 또한 주축인 중국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것도 한자를 매개로 하면 훨씬 쉽습니다. 쇼비니스트(국수주의자)입장에서 한글만 전용하다간 국제 기술 개발에서 낙오될 우려가 있습니다.

우리가 왜 영어를 공부하고 있습니까. 국제화를 해서 앞서가려는 것 아닙니까. 한자를 쓰게 되면 영어 사용국 인구보다 더 많은 중국과 일본의 13억 慣맙?편입될 수 있습니다. 또 한자를 사용해야 과거의 우리 문화적 소산을 잃지 않고 되살릴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요코하마에서 동북아 고대 역사 국제 심포지움에 참가해 역사학자인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 일본은 한자를 매개로 70% 정도는 의사소통이 가능했다」고 했습니다. 현재와 과거의 현실이 이러한데 한자를 쓰지 않는다면 한국은 장차 21세기의 고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는 텔레비전을 전시(電視)라 하고 컴퓨터를 전뇌(電腦)라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외국어를 받아들일 때 자기나라 말 화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반드시 외국어를 우리말화 해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국계(外界)와의 접촉이 가장 많았던 때였습니다. 일본이 발전한 것도 서양문화에 대해 개방을 하면서부터 가능했던 것입니다. 문을 닫은 나라는 언제나 발전성이 없었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의 한국은 5천년 사상 가장 잘 살고 있다. 한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은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단으로 대륙과 단절돼 사실상의 섬이 된 한국은 살기 위해서 해양화전략을 채택, 외국과의 접촉을 늘려나갔기에 이만큼 살게 된 것이다. 반대로 북한은 거꾸로 나갔기에 지금 못살고 있는 것이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 그렇죠. 문을 닫아놓고 자기들끼리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레닌이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시켰을 때 95%의 소련 국민이 박수를 치고 우리들끼리 잘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만 지금 소련은 사라져 버리지 않았습니까. 毛澤東도 자기들끼지 집체화(集體化)하면 1980년에 중국인의 소득이 미국인의 소득을 능가할 수 있다고 큰 소리쳤지만 역시 허언(虛言)으로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역사는 항상 개방한 나라의 손을 들어줘 왔습니다』

일본은 외래문화 차곡차곡 축적

―개방과 민족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는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합니까. 언어를 지키는 것은 민족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일본은 한자를 자기 편리한대로 읽습니다. 일본에 가면 郡山이라고 표기하는 지역이 있는데 읽기는 「고리야마」로 읽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곰곰이 조사해봤더니, 「고리」는 우리말의 「고을」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야마」는 山을 뜻하는 우리말의 고어 「뫼」에서 나왔으므로 고리야마는 우리말의 「고을 뫼」란 말이 옮겨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니가타현에 가면 牛頭라고 지명을 적는 곳이 있는데 일본사람들은 「소마리」라고 합니다. 우리말의 「소머리」에서 나온 말이지요. 왜 일본인은 牛頭를 일본식 한자읽기로 읽지 않을까요. 일본인들은 한국과 관계 있는 것이라도 그들의 전통이 된 것은 그대로 보존합니다. 일본의 개방은 옛날 것은 잘 보존하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리야마」 「소마리」가 「테레비(TV)」와 공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들어온 것은 축적하고, 오래된 것은 닦고 보존하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였기에 오늘의 일본이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언어학자 오노 스스무(大野進)가 쓴 「일본어의 기원」이란 책을 보면 규칙적으로 경남 가야지역의 한국어가 오랜 세월을 두고 일본어로 변화해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 「일본어의 구모(雲)는 한국어의 구름이 변해서 된 것이다」 「일본어의 노부루(登る : 높은 산에 올라 가다는 뜻)는 한국어의 높다가 변해서 된 것이다」 「위를 뜻하는 일본에 우에(うえ)는 한국의 경상도 말인 우(上)에서 나왔다」 「일본어로 밭을 뜻하는 하타케(畑)는 경상도 말인 밭떼기에서 나왔다」 「일본어로 말하다는 뜻의 이우(言う)는 한국어의 입(口)이 동사화해서 된 것이다」 등등 숱한 예가 실려 있습니다.

인류학과 해부학을 전공한 도쿄대의 하니와라(埴原和郞) 교수는 조몬시대부터의 일본인 두 개골을 분석한 결과 일본 도래인과 토착인의 골격이 다르다는 것을 밝히고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 12세기까지 도래인의 수가 토착인의 수보다 8대 2로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기타큐슈(北九洲)나 히로시마 (廣島), 쥬고큐(中國)지방, 특히 나라(奈良), 교토(京都) 지방은 거주자의 90% 이상이 도래인이라는 것을 밝히고 그들의 천왕에게 「천황 폐하도 도래인의 후손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제가 일본 경단련(經團連)에서 연설을 했는데 연설이 끝난 후 그쪽 사람들 말이 옛날엔 상용한자를 2천자 정도 썼는데 이젠 3천자로 늘리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일본인들이 가타가나를 만든 것은 1천년이 넘습니다만 한자를 버리지 않앗습니다. 우리는 그 반대로 왔던 것이지요.

같은 루트 상에 있었던 한일 민족이 한쪽은 한자를 버리고 한쪽은 취함으로써 문화적 차이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일본은 이부카 마사루의 말처럼 한자를 지킴으로써 개방을 하게 되었고 기술개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부카 마사루는 전산화한 한자를 입력해 놓은 워드프로세서로 일본 학생이 의사를 표현하는 속도가 영어를 쓰는 학생이 알파벳 전용 워드프로세서로 의사를표 현하는 속도보다 빠르면 빨랐지 결코 늦지 않다는 것을 실증해보이기도 했습니다』

한자 쓰면 정신자세가 달라진다

―한자의 장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자를 사용하는 일본 청소년들의 평균 아이큐(IQ)가 세계 제일이라고 말하더군요.

『자랑같지만 제 집안 아이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콜롬비아 대학을 다니는 우리 딸아이는 한국어와 일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데 저는 이 아이가 어릴 적부터 한자를 가르쳤습니다. 이 아이에게 일본 국어 교과서를 사다주고 일어를 가르친 것은 그후였습니다. 어느날 딸 아이가 「아버지, 일본 사람들은 창의력이 있겠습니다」라고 해요. 그래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했더니 「한 일(一)자 하나를 놓고도 이치라고 읽고, 히토츠라고 읽고 카즈라고 읽는 등 다섯 가지로 읽을 수 있으니까 창의력이 많이 생기겠어요」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한자의 특징이 여러 개의 뜻을 품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글만 쓰면 하루만에 글을 깨쳐 문맹을 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말이 뜻하는 것 하나만 떠올리게 됩니다. 간자(簡字)화 하지 않은 한자를 쓰는 대만의 과학기술 수준이 얼마나 높습니까. 대만 청소년들의 문맹률이 2∼3%라고 합니다. 대만은 교육을 열심히 했기에 문맹률을 낮추면서 과학기술 수준을 높인 것입니다. 한자를 쓰면 문맹률이 높아진다는 주장은 이제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어떤 교육을 하느냐에 따라 문맹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된 것입니다. 대만은 국민의 지적수준을 높이는 상향평준화를 한 것입니다. 한자 간자(簡字)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중국에서는 최근 한자를 너무 간체화한 것은 잘못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의 1차 간체화는 초서나 행서를 따른 것이었기에 문제가 없었으나 2차간체화 때는 글자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 중점을 둠으로써 표의문자 특유의 한자 특성이 사라져버렸다는 지적입니다.

21세기엔 틀림없이 동아시아는 서양의 기술문화와 접목함으로써 막대한 경제력 집중이 생길 것입니다. 동시에 문화진흥이 일어날 것으로 봅니다. 이땐 한자가 중요한 의사전달 수단이 될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일본의 12분의 1밖에 되지 않으며 중국에 비해도 소국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국수적으로 나간다면 앞으로 세계의 문 밖에만 나가도 설움을 받게 된다는 것을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북의 金日成이 아무리 주체를 외치고 한글 전용을 외쳐도 그걸 누가 알아 줍니까. 지난해 제가 평양에 갔을 때 김정우와 임태덕이 「이젠 우리도 한자를 다시 교육시킨다. 아까운 외화를 써가며 일본이나 중국에 훈련생을 보내도 한자를 모르니 배워오는 게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자 쓰자는 것은, 옛날 선비들처럼 격식에 맞게 한문을 써서 커뮤니케이션하자는 게 아니고 한자를 혼용하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용평에서 열린 동북아 경제 회의에서 만난 중국 대표는, 「일본에 가면 한자만 읽어도 신문에 무슨 내용이 실렸는지 간판의 내용이 무슨 뜻인지 대강 알 수 있는데 한국에 오면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같은 문화권의 동양3국에서 이렇게 의사소통이 안되어서야 우리의 국제화가 잘 되겠습니까. 일본에서는 한자를 쓰면 자세가 바르게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말을 주의 깊게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세요, 일본 청소년들이 글을 쓸 때는 자연 자세가 발라지지만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한글을 쓸 때는 흩어집니다. 이런 것을 알기 때문에 일본은 한자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도 세로쓰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과거 일본보다 외래어를 적게 썼으나 점점 늘려나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논리라는 뜻의 영어 logic 같은 것도 羅輯이라고 쓰고 「로지」라고 읽습니다. 중국의 이런 변화는 장차 기술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중국은 공업부문에서 연평균 15∼17%의 고도성장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로 10년∼15년을 나간다면 중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규모를 이룰 것이라고 봅니다. 국가지도자는 세계적인 역사의 흐름을 파악해야합니다. 일본의 지도층은 이런 흐름을 잘 파악했고 또 잘 파악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봅니다. 중국의 지도자들도 역사의 리듬을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한문으로 된 「삼국지」 첫구절이 「합구필분(合久必分 : 합한 것이 오래되면 반드시 나눠진다)」이고 맨 마지막 구절이 「분구필합(分久必合 : 나눠져 있는 상태가 오래되면 반드시 합쳐진다)」 아닙니까. 바로 역사의 리듬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중국 지도자들은 지금은 개방을 할 때라고 보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역사의 리듬에 맞추려 하듯, 우리도 우리의 창의력이 무엇인가 하는 역사적 감각을 가져야 번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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