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복/김일성은 거대한 파충류 같은 느낌, 핵포기 없다(3)

제5부 북한식 위화도 回軍

조총련 자금 차단하면 타격 클 것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북한이 핵을 가지고 한·미 동맹체제를 후퇴시키려는 의도인데요.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군사적 모험을 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준비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전쟁은 준비할 때 막을 수 있는 것이지 피한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북한에게 사탕을 주거나 매를 때린다고 북한이 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북한이 스스로 변화할 때까지 의연하고 대담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일본 조총련 자금이 북한체제를 유지시키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매년 6억∼10억달러 정도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경제제재를 통해 북한으로 흘러들어가는 일본 조총련의 자금을 중단시킬 수는 없습니까.

『몇년 전에 8백억엔(당시 환율로 5억 달러)이 북한에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이 돈은 대부분 만경봉호를 탄 동포가 몸에 지니고 가는 돈입니다. 미국에 경제제재를 하면 일본은 이 문제에 대한 조치를 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북한은 굉장한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한국 전문잡지 「현대 코리아」에 의하면, 조총련은 일본에 있는 파칭코의 32%에 해당하는 5천6백여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나오는 한해 매출액만도 4조엔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 잡지는 이중 3%(1천2백억엔)∼5%(2천억엔)가 북한으로 가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2천억엔 송금설이 유력해지지 않았습니까. 또 조총련은 2조3천7백억엔의 예금고를 올린 신용조합도 운영하고 있는 등 북한 경제의 보루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 사宕俑?인정하고 있습니다』

―미·북한 핵회담 진행상황을 보면 공산주의자와의 협상은 계속 압력을 강화해 단기간 내에 끝내라는 조이 제독의 지적과는 다A?않습니까.

『조이 제독의 지적에 역행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金正日 권력승계는 「집단의 세습」

―북한은 중국에 대해 불만이 많지 않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적다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미미합니다. 북한이 중국에 대해 의심을 품은 것은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할 때 나왔습니다. 더구나 UN 가입때 중국이 보여준 태도로 중국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습니다. 중국은 모택동 시절부터 북한의 정책에 대해 간섭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의 對사회주의권 정책이기도 하고 金日成 정권의 성격을 고려한 것입니다. 모택동은 사회주의 우방에 대해선 스파이 활동도 하지 말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중국 스스로도 북한에 대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핵개발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에게 조언만 하는 입장입니다. 북한측에게 특별사찰을 받으라는 말을 하기보다 NPT를 탈퇴하면 어떤 점이 불리한지 얘기해주는 수준입니다. 중국은 NPT 체제를 존중하기 때문에 한반도에 핵이 확산되는 것을 반대합니다』

―金正日 측근들과 술자리에서도 자주 어울렸던 신상옥(申相玉)·최은희(崔銀姬) 부부는 북한의 지도부를 북한 사회를 점령한 마적단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들은 술자리에서는 남한 노래도 부르지만 막상 남한을 경멸하며, 남한의 경제력도 군사행동으로 빼앗으면 된다는 군사제일주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는 72년부터 金正日이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金正日은 그 무렵 문화선전담당비서에서 조직담당비서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金正日의 부상을 보고 세대교체라고 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金日成은 이론적인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金日成은 소련 덕분에 지도자가 되었지만, 나중에 소련에서 떨어져 나와 골목대장이 되었습니다. 金日成의 사후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만주 빨치산 그룹에서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북한사회의 「진골」로 군림하면서 북한체제의 상부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만주 빨치산 그룹은 金日成 사후에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그룹에 속한 金正日을 후계자로 선택한 것입니다. 만주 빨치산 그룹은 金正日을 다섯살 때까지 만주에서 집단적으로 길렀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사람으로 金正日을 택한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에서 마적단 같은 분위기를 연상했겠지요』

―개인간의 세습이 아니고 집단의 세습이군요.

『만주 빨치산 그룹(갑산파)이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후계자를 선정한 것입니다』

한국군을 경멸하는 북한군의 전통

―북한의 군사제일주의 노선은 어떻습니까.

『군사분야에 우위를 두는 북한 지도층의 사고방식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남한과의 대화테이블에서도 군사력은 우리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잘못하면 큰 코 다친다는 위협을 많이 합니다. 북한의 군비를 예산 측면에서 따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북한군은 독립채산제를 채택하므로 무기 수출대금도 자기들이 씁니다. 북한 군부는 정부체계상 정부와 관계없습니다. 북한의 군사장비는 우리보다 훨씬 우위에 있습니다. 북한의 당, 군부, 정부는 서로 완전히 다른 나라입니다. 산업시설도 따로 가지고 있는데, 그중 군이 가장 앞선 첨단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의 군사력을 과신하는 북한은 미군이 문제이지 남한군은 상대도 안 된다고 호언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의 전쟁억지력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것이군요. 한국군을 경멸하는 전통은 어떻게 형성되었습니까.

『6·25 때 만들어졌습니다. 북한은 자신에게 없는 전통을 만들어내 주민들에게 엄청난 과대망상증을 심어주고, 대신 상대방을 비하하는 정치선전술을 사용합니다』

―북한의 군부는 군수산업, 당은 중공업, 정무원은 경공업 등 서로 다른 경제단위를 가지고 있다면, 요즘 북한의 경제난은 주로 경·중공업에 관한 얘기 아닙니까.

『군수산업은 북한의 경제난에 의해 별로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북한은 군수산업에 경제적인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경제난은 군수산업에도 결국은 영향을 끼칠 것 아닙니까.

『총체적으론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년의 경우 식량이 6백58만t이 필요한데 4백31만t밖에 생산하지 못해 2백27만t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83만t밖에 도입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모자란 부분을 메우기 위해 1일 2식 운동, 한 달에 하루를 남조선 인민들을 생각하는 절식의 날로 삼아 식량을 안주고 있습니다. 이는 군에도 영향을 안줄 수가 없습니다. 군대의 식량난도 심각합니다. 북한은 3백50만t의 원유정제시설을 풀 가동해 보아야 전제 에너지 수요의 8.4%를 점유할 수 있지만 실제 도입된 것은 1백43만t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전체 에너지 수요의 70%를 차지하는 석탄도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5천2백만t이 필요하지만 2천9백만t밖에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북한 탄광은 점점 깊어지는 데다 갱목, 전기도 모자랍니다. 코크스탄도 연간 3백80만t이 필요한데 1백50만t만 들어왔습니다. 북한의 산업가동률은 30%로 떨어졌습니다. 여기에 군수산업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무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의 수출은 90년 56억 달러에서 작년에 25억 달러로 떨어졌습니다. 북한은 97억 달러의 외채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북한 GNP의 42%에 해당합니다. 외채상환부담률이 1백50%에 이르고, 북한의 대외 신용도는 세계 1백19개 나라중 1백17위입니다. 경제사정이 이러니 군수산업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 공군은 많은 훈련비가 드는 항공기 훈련 횟수를 줄이고 있습니다. 해군도 훈련이 활발하지 못합니다』

경제난이 북한 군부를 어떻게 자극할 것인가

―북한은 기계 부품수입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UN의 경제제재가 시작되어도 북한경제는 대외 경제의존도가 적어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틀린 생각입니다. 소련이나 동구라파제로 이루어진 북한의 산업시설은 대개 고장나면 다시 고쳐 쓰는 시스팀이 아니라 전체 부품을 교환하는 체제입니다. 부품의 의존도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특히 중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92년 전체 수입 양곡의 72%, 기름의 75%, 코크스탄의 80%를 중국에서 들여왔습니다. UN의 경제제재가 가해지면 북한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경제제재가 한꺼번에 가해지면 북한체제는 위험합니다』

―이러한 북한의 군수체제 내에서 미사일 수출은 굉장히 중요하겠습니다.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이 이 문제로 북한과 접촉한 적이 있는데, 이제 끝났습니까. 다시 성사될 가능성은 없습니까.

『미국이 강력하게 견제했습니다』

―북한은 경제난으로 점점 군비가 약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 대문에 핵개발을 택했지만. 북한이 남한에 대해 절대적인 약세로 들어간다고 판단하는 시점에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습니까.

『북한의 지도층이 절망감에서 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은 항상 경계해야하지만, 북한 군부는 그럴 경우 위화도 회군 쪽으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은 全전력의 65% 이상을 전진 배치했으므로 전쟁의 징후를 파악해 대처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전진 배치한 무기시스팀도 기름, 식량 등이 있어야 제대로 작동하는데, 병참지원은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경제난으로 위험한 짓을 할 수 있지만, 거꾸로 그것 때문에 위화도 회군을 할 수도 있습니다. 루마니아에서 차우세스쿠가 무너진 것은 군부가 등을 돌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북한 지도층도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군이 위화도 회군을 하려면 전쟁을 일으켜도 승산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북한이 전쟁을 일으켜도 승산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보여주고, 우리 내부사정에 대해서도 오판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최근 일본에 있는 전 남로당 간부 朴甲東씨가 구국전선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는 92년 11월 만들어진 북한의 反 金日成 조직에서 나온 성명문이 중국을 통해서 전달됐다고 저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그중에는 남한 사람들한테 부탁한다고 하고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성명문은 남한이 북한 주민이 아니라 북한 당국자하고만 상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북한 정부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북한을 보는 시각의 혼동이 있습니다. 통일은 남북한을 서로 섞는 비빔밥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체계를 보편화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북한이 설 자리가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현상타파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지배계층을 상대하는 경제교류나 대화는 현상유지적 측면이 강합니다. 文益煥 목사가 북한주민은 무시하고 金日成을 만나 포옹하는 것은 오히려 통일을 지연시키는 행동이 됩니다』

뇌물은 「기쁨」이다

―통일원은, 우리가 북한 주민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결국 북한 당국자를 통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합니다. 북한 주민을 생각해서 따로 정책을 세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독은 적십자사를 통해 동독에서 4만명의 정치범을 돈을 주고 사오지 않았습니까. 독일 통일 전에는 동·서독 간에 연간 1백50만명의 왕래가 있었습니다. 독일은 이러한 인적교류를 통해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하고, 안되면 기다려야지 무턱대고 金日成에게 뛰어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중국 연변에서는 남북한 이산가족이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북한이 이를 알고도 묵인하는 것은 뇌물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산가족에 대해서는 북한의 정책이 변한 것이 아니라 밑에서 사보타지하는 것입니다. 북한 사회에는 뇌물구조가 全사회에 만연되어 뇌물로 되지 않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뇌물을 「기쁨」이라고 부릅니다. 뇌물을 주는 사람은 바라던 일을 성취해서 기쁘고, 뇌물을 받은 사람은 받아서 기쁘다는 의미입니다』

―남북회담 때 金日成을 직접 만난 적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金日成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92년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 때 남북대표단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한 시간 남짓 걸린 식사 시간중 金日成을 가까이서 대한 느낌은 마치 거대한 파충류 같았습니다. 밥 먹으면서 얘기하는 金日成의 스타일은 아주 유들유들했습니다. 마치 위대한 배우 같았습니다. 음식도 많이 먹더라고요. 그 많은 코스의 음식을 조금씩은 다 먹고, 맥주도 계속 마셨습니다. 金日成이 밥알을 흘리면 뒤에 있던 사람이 얼른 치웠습니다. 延亨默 총리한테는 거의 반말 비슷하게 말을 걸곤 했습니다』

―金日成·金正日 부자간에 불화는 없습니까.

『없습니다. 국정 일선은 金正日이 완전히 커버하고 있지만 중요한 문제는 金日成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선 金正日이 아버지에게 잘 하고 있다고 봅니다』

―金正日 체제가 단명으로 끝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의 변화상을 살펴보면 1대 지도자가 세상을 떠나면 지도자의 사업을 계속하는 후계자가 등장하거나 체제변화가 옵니다. 金正日이 金日成의 후계자로 등장한 것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미완성된 혁명을 완성하겠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논리 없이는 후계자로서의 정당성에 문제가 생깁니다. 하지만 나중에 金日成의 후광이 사라지면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金正日은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을 포용하는 능력이 없어 반감을 가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金正日은 자기 주위의 동료들끼리는 잘 어울리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金正日은 심장수술을 받은 후 심장박동기를 달고 다닌다고 들었습니다』

―金正日의 성격은 북한체제를 유지하는 데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겠습니까. 金日成은 그렇지 않은데요.

『金日成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등 정감을 표시하는 스타일이지만, 金正日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북한 정상회담을 하면 남북한 관계가 급격히 바뀔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1970년 두 차례의 양독 정상회담에 참가했던 서독의 브란트 수상은 뒤에 정상회담을 서둘러 가졌던 것을 몹시 후회했습니다. 대화가 아래로부터 올라가지 않고 바로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니 서로간의 차이점이 너무 드러나서 그 뒤의 협상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정상회담은 그만큼 신중을 요합니다. 더구나 북한이 말하는 정상회담은 남한의 여러정당 사회단체의 대표와 金日成이 만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의 조선」 논리에 의한 것입니다』

핵문제 해결 전 정상회담 있을 수 없다

―정상회담의 기본공식이 틀린 것이군요. 그런 정상회담은 실질적인 성과는 없는 南北 각자의 對內 선전용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북한의 주장 중 말도 안 되는 것은 들어줄 필요도 없는 것 아닙니까.

『金泳三 대통령도 이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金日成이 입장의 변화를 보이고 핵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정상회담을 위한 정상회담이 아니라 무언가 우리가 수확을 올릴 수 있는 회담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핵문제 해결 전에 정상회담은 있을 수 없고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상회담도 안됩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6공화국 때 金宗輝, 朴哲彦씨 등이 많이 추진하지 않았습니까.

『누구라고 거명은 않겠지만, 무책임하게 정상회담을 추진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정상회담의 본질을 생각하지 않고 겉모양만 따졌군요. 우리 정부안에 진지한 정상회담 전략을 연구하는 부서는 없습니까.

『우리도 해당 연구 부서에서 깊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허황된 정상회담을 거론하던 사람들의 의견이 결국 수정되지 않았습니까』

―盧泰愚 대통령도 처음에는 정상회담에 많은 기대를 했으나, 집권 후반기에는 많이 현실적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때의 정상회담은 북방외교의 연장선상에서 논의되었다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방외교와 통일은 상호 모순되는 개념입니다. 북방외교는 북한의 우방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 남북한간에 평화공존의 틀을 마련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통일과는 서로 역기능적인 관계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모스크바→평양→서울을 잇는 정상회담 구도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韓完相 장관이 취임하고 통일원과 안기부 사이에는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일원은 통일이라는 이상으로 북한을 보고, 안기부는 안보라는 현실로 북한문제를 다룬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통일이라는 이상과 안보라는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지난 88년 金在淳 국회의장을 모시고 일본에 갔을 때 가스가 잇코 前 민사당 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언급하면서, 「7천만의 통일도 중요하지만 4천만의 자유는 더 중요하다」고 갈파하더군요. 그는 78년에 민사당 위원장 자격으로 북한에 가서 金日成을 만나보니 아주 위험한 사람이더라는 말을 했습니다. 당시 일본 민사당은 한국의 신민당과 자매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金泳三 총재가 金日成을 만나겠다는 얘기를 했을 때 위험한 발상이라고 충고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78년 일인데 지금(88년) 한국쪽은 너무 시끄럽고 아주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통일원은 통일을 추구하고, 안기부는 자유를 관리하는 입장에서 서로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양자의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여러 인적요소 때문에 불협화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韓完相 장관은 金泳三 대통령의 취임사에 민족우위론을 의미하는 표현을 우겨 넣어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의심을 받았고, 李仁模 노인을 북송해 북한의 선전자료로 이용하도록 만드는 등 두 가지 점에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89년 등장한 李仁模 노인 북송문제가 92년 5월 제7차 남북고위급 회담 때 논의된 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92년 4월15일 金日成의 80회 생일을 기해서 나온 金日成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 제2권 85쪽을 보면, 金日成의 삼촌 김형권이 1930년 8월 함경북도에 있는 한 파출소를 습격, 오바시라는 일본 순경을 권총으로 쏴 죽이고 마을 사람들에게 일장연설을 할 때 李仁模 소년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李仁模 소년은 金日成 가계(家系)의 혁명사를 증명해주는 특수한 위상을 가지게 되었고, 북한도 李仁模 노인을 돌려 받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생긴 것입니다. 북한은 李仁模 노인 송환을 전쟁포로 송환차원에서 논의했으나, 李仁模는 9·28 수복후 지리산에서 공비활동을 하다 잡혔습니다. 만약 공비를 전쟁포로로 인정하면 대한민국의 건국사가 달라집니다.

李仁模 노인만 송환하면 다른 미전향 장기수들과 형평성이 문제됩니다. 또 李仁模를 데려다 북한이 어떤 목적에 이용할지 뻔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李仁模 노인의 건강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도 동진호 선원의 반환을 요구하는 등 상호주의 원칙으로 다루어야 했습니다. 金泳三 대통령이 인도주의 실천으로 북한에 대해 도덕성의 우위를 확보한다는 명분을 중시하여 李仁模를 송환한 것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李仁模를 북한에 보낸다고 해서 무슨 기대를 했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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