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에 걸쳐 북한 북한 당국자들을 상대해온 李씨는 현직에서 몰러난 몸이라 그런지 남북협상에 관한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북한이 1∼2개의 核폭탄을 가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미국은 협상을 통해서 끝까지 물고 늘어져 결국은 核개발 포기 (또는 核무기 해체)를 달성하려 할 것이다』고 했다. 李씨는 또 『對北 유화론은 北의 강경파들에게 자신감을 주어 그들을 고무시킬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북한이 對南 군사력의 우위를 상실하고 있다고 판단한 순간에 전쟁의 위험이 가장 높아질 것이며, 북한 軍部가 승산없는 전쟁명령에 불복하여 위화도 회군식의 쿠데타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1994년 2월 월간조선>
제1부 북한의 협상전략『교과서적인 책을 쓰겠다』
1992년 9월 평양에서 열렸던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時의 훈령사건으로 공직을 물러난 이동복(李東馥) 前 안기부장 특보(57)는 요즘 남북대화에 관한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는 20여년간 남북대화업무에 종사한 경력으로 대북협상 부문의 1인자로 손꼽히고 있다.
지난 1월9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李 前 특보를 만나 북한 핵문제와 남북관계에 관한 주제로 7시간 반 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는 훈령사건으로 공직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남북협상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는 협상 전문가답게 정확한 용어구사와 근거 제시로 자신의 논지를 펼쳤다. 남북한에 대한 웬만한 통계수치는 아예 외우고 있었다. 인터뷰 도중 자신이 가지고 온 자료를 일일이 제시하고 수첩을 통해 통계를 확인하기도 했다.
李東馥씨는 72년부터 10년 동안 남북조절위원회 서울측 대변인을 맡으면서 평양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그는 1980년대에 삼성항공 부사장과 국회의장 비서실장을 지낸 경력도 있다.
―李선생님은 지난 연말 여러 사람들에게 보낸 인사장에서 우리 對北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남북 문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 내부의 갈등구조가 훈령문제로 번져 급기야 정부의 對北정책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혼란성을 노출시켰다」고 썼습니다.
『훈령사건은 제가 마음으로 승복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마무리된 이상 더 이상 문제삼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요즘 20년 넘게 통일과 남북문제를 다뤄온 제 경험을 국가적 차원에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남북대화에 관한 교과서적인 책을 써보려는 생각입니다. 1970년대 초 남북대화가 시작되었을 때, 공산주의자와 한 번도 대화를 해본 적이 없는 우리는 공산주의자와 협상을 해본 나라의 노하우를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미국 시카고대학 이클레 교수(국제정치학)의 「How Nations Negotiate」란 책과 6·25 휴전협상 책임자를 지낸 조이제독의 「How Communists Negotiate」란 저서를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우리도 이 비슷한 책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대북정책에서 당혹감을 느끼고 때론 곤욕을 치르는 것은 남북문제를 너무 단순화 도식화시켜 오해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가령 통일과 대화는 성격이 다른 문제인데 서로 혼동하지 않습니까. 이런 문제를 풀어보자는 것입니다』
對北협상전략에 대한 조이 제독의 충고
―對북한 협상전략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이클레 교수는 공산주의자와의 협상에서 「원칙적인 합의(Agreement in principle)」를 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공산주의자는 상대방과 원칙적인 합의를 했더라도 나중에 해석상의 차이를 물고 늘어져 결국 합의를 깨버리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와의 협상에서는 나중에 이중, 삼중으로 다른 해석이 나오지 않도록 구체적이고 뜻이 확실한 단어로 합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李씨는 북한과 실제로 휴전협상을 한 경험이 있는 조이 제독이 지적한 사항이 적힌 자신의 자료를 기자에게 펼쳐보이며 조목조목 들었다.
『조이 제독에 의하면 북한은 먼저 자신이 원하는 최종 결론을 議題로 채택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議題 채택단계에서 결론을 얘기합니다. 협상 도중에 엉뚱한 사건을 만들어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하거나, 지연작전을 펴거나 자기 주장만 내세워 상대방을 지치게 만드는 작전도 구사합니다. 원래의 안건과는 전혀 엉뚱한 얘기를 들고나와 양보를 강요하고, 만약 우리가 양보하면 그것을 약점으로 간주하는 습성도 가졌습니다. 조이 제독은 이어 북한과 협상할 때 몇 가지 사항을 충고했습니다. 협상할 때도 북한에 대한 압력을 완화해선 안되며, 협상은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단기간 내에 끝내고, 대가 없는 양보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협상에 임할 때 처음 정한 정치적 목표에서 후퇴하지 말고, 협상 결렬시 一戰도 불사할 각오를 하고 있다는 것을 북한측에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7·4공동성명의 3大원칙 합의는 우리의 실수』
―그 동안 對北협상 경험에 비춰보면 조이 제독의 지적이 정확했다고 보십니까.
『얼마 전 미국의 칼루치 차관보를 만나 제가 20여년 동안 북한과 상대하면서 느낀 좌절감을 얘기했습니다. 조이 제독이 말한 것을 지키지 않아 생긴 좌절 말입니다. 조이 제독이 말한 북한의 협상태도는 이번 미·북한 핵협상에서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나와 같은 좌절을 느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당시 조이 제독의 결론은 휴전협상은, 우리가 해서는 안되는 협상을 한 대표적인 경우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와는 원칙상의 합의를 하면 안된다는 것과 관련해 묻겠는데, 7·4 공동성명에서 합의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은 우리에게 계속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습니까.
『7·4 공동성명의 3대 원칙은 李厚洛 정보부장이 72년 북한을 방문, 金日成을 두 번 만난 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李부장은 통일문제와 관련, 남북한 사이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불신감을 얘기하면서 이는 6·25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온 국민이 아는 6·25의 원인에 대해 남북한이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기 때문에 불신감이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金日成은 「朴正熙 대통령에게 6·25는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 표현은 전쟁을 일으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소리 아닙니까. 사실상 6·25 남침을 인정한 셈이죠. 李부장이 「그럼 통일은 평화적으로 합시다」라고 응수하자 金日成은, 그럼 평화의 원칙은 됐다, 남한은 美제국주의자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한다고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니 「자주」의 원칙도 합의됐다, 나머지 하나는 「민족대단결」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3대 원칙이 채택된 것입니다』
7·4 공동성명 발표문안 작성작업에 참가했던 李 前 특보는 이 3대 원칙을 합의문에 포함시키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3대 원칙이야말로 이클레 교수가 금기시했던 「원칙적 합의」의 전형적인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6·25휴전협상·월남전 협상에 이은 세 번째의 실패 가능성
『외세간섭 배제를 의미하는 자주의 원칙은 국가간 상호의존성이 증가하는 지구촌 시대에 잘 맞지 않는 면도 있습니다. 자주는 오히려 민족 자결의 측면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자주의 원칙을 해방의 원리에 기초해서 해석, 美제국주의자로부터 남한을 해방시키는 것을 자주라고 봅니다. 북한은 평화의 원칙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합니다. 남한은 식민지이기 때문에 평화유지의 당사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휴전협정의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상의 당사자도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아니라 남한을 침략했고, 전쟁을 수행한 것도 남한입니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단지 지원하러 왔을 뿐입니다. 북한이 미국을 평화협상 상대자로 고집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말이 안됩니다. 미국의 클라크소장은 전체 UN군을 대표해 휴전협상전문에 사인했을 뿐입니다.
민족대단결은 남한과 북한의 동질성을 찾아내 통합시키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체제가 합치기 위해서는 유사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 유사성은 민주주의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민족본연에 바탕을 둔 통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일당독재, 집단주의, 유일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북한이 변해야 합니다. 북한은 민족대단결을 한반도에서 미국을 몰아내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북한은 공산주의가 주민들 생활 구석구석 파고들어 이데올로기적으로 단결이 되었는데, 남한은 미국 식민지로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남북통일이 가능하려면 미국을 몰아내야하고, 이와 함께 공산주의를 막는 남한의 법과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북한측의 논리입니다』
―1951년부터 53년까지 2년을 끈 6·25 휴전협상은, 조이 제독이 말한 것처럼 미국이 중공과 북한의 협상전략에 말려 혼난 경우입니다. 70년대 초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미·월맹간의 파리협상도 월남을 소외시켰고 미·월맹의 평화협정에도 불구하고 미군이 빠져나가자 월남은 월맹의 무력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20년 후에 벌어지고 있는 美·북한 핵협상도 그렇습니다. 북한 핵은 4천3백만명 우리 국민들의 운명이 걸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 남한은 협상에서 소외되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미국이 우리나라의 국가이익을 대변해 북한과 협상하기를 바라지만 미국은 자기의 이해관계를 집어넣어 우리가 바라는 대로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6·25 휴전회담과 파리회담의 실패를 재현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저는 그 문제에 대해선 견해를 달리합니다. 우리는 미국과 남북한이 같이 참여하는 3자회담을 하면 안됩니다. 북한은 3자회담이 성립되어도 미국의 식민지라고 규정한 남한을 주인이 아닌 종으로 취급해 상대를 안할 것입니다. 우리는 미·북한, 남한·미국, 남·북한간의 정당한 관계틀을 만들어 이 틀을 벗어나기 않게 하면 됩니다』
제2부 북한 核문제의 기본 구도
한국은 해결사가 아닌 고발자
―북한 핵문제의 기본구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우리 정부는 미·북한 핵협상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느냐」는 비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북한 핵에 관한 해결사가 되라는 주문은 잘못된 것입니다. 북한 핵은 남북한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80년대 말 공산권 붕괴 전에 세계는 미·소라는 양극을 축으로 핵 균형(nuclear parity)이 세계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소련 붕괴 후 미국은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 대량 살상 무기의 감축 또는 폐지를, 세계를 하나로 묶는 원리로 삼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적인 메시지가 바로 핵입니다. 미국은 핵 강대국간의 핵감축과 핵 非보유국 사이의 핵확산 금지를 통해 세계평화의 새로운 토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핵문제가 해결되면 화학무기, 생물무기로 넘어갈 것입니다.
북한의 핵개발은 핵확산을 방지하는 NPT 체제를 위협하는 최대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NPT 체제는 오는 95년에 핵확산방지조약을 연장하면서 새로운 틀을 짜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만약 NPT 가입국가 중 한 나라만이라도 핵개발을 시도한다면 국제사회 전체가 가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설득하고, 나중에는 힘을 통한 제재수단을 강구할 것입니다. 북한 핵은 국제적인 문제로 NPT 차원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이해당사자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92년에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남북한 공동선언을 근거로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점을 들어 국제사회에 고발할 수 있습니다. 핵의 평화적 사용, 핵무기의 제조·시험·저장·재치·사용 금지,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금지, 남북한 상호사찰을 규정한 비핵화선언을 준수하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어떤 경우에도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것을 제지하리라 봅니까.
『예, 그렇습니다. NPT 체제를 지금 손상시키면 95년에 가서 NPT 체제를 연장하거나 강화시킬 수 없습니다. 때문에 북한의 핵보유를 막겠다는 미국의 입장은 확고부동한 것입니다. 다만 핵에 관한 북한의 집념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여기에 대처하는 미국의 방법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다고 봅니다』
原爆 1∼2개 가졌다고 볼 수도
―북한에 있어 핵개발은 국가존망이 걸린 생존카드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까. 전에는 외교카드로 본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생존전략이라는 얘기가 더 많습니다.
『북한 핵을 외교적 카드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설사 북한이 핵을 외교적 카드로 잘 사용하더라도 북한이 무슨 이익을 얻을까 의문입니다. 북한이 외교카드로 핵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지금은 엄청난 부담만지고 있습니다. 북한체제의 속성상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것은 확고부동한 생각입니다』
―2년 전 李 前 특보는 북한이 15㎏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해 한때 언론이 떠들썩했지만, 지금은 거의 정설이 되었습니다. 최근 미국 정보기관이 합동으로 클린턴 대통령에게 올린 국가정보판단서(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는 북한이 한두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은 어떤 단계에 왔습니까.
『북한이 86년부터 5MW 원자로를 정상 가동해 플루토늄을 추출했다면 15㎏의 플루토늄을 모았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입니다. 안기부도 지난해 국회 국방위에 북한이 7∼22㎏의 플루토늄을 보유했을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미국의 정보 기관들도 북한이 12㎏ 또는 그 이상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탄을 2개 정도 만들 수 있는 양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정설은 없습니다. 플루토늄을 추출한 뒤 핵무기로 완성하려면 2년 안팎의 시간이 걸립니다. 핵무기가 완성되려면 플루토늄, 뇌관 등이 필요한데, 북한은 뇌관을 개발하기 위해 이미 70여회의 고폭실험을 했습니다. IAEA는 북한 구룡강 부근에 고폭실험장이 있을 것이란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현지 답사에서 구룡가 주변의 한 주물공장에 밥그릇 만드는 시설이 있는 것을 보고 많은 의문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만약 뇌관만 개발되었다면 조잡한(crude) 형태의 핵폭탄을 이미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기에 미사일 등 운반수단이 필요합니다. 핵무기가 완성되려면 여러 요소를 같이 따져보아야 합니다』
미신고 核폐기물 시설의 비밀
―핵무기 운반수단은 꼭 미사일이 아니더라도 비행기로 투하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조잡한 형태의 핵무기는 보통 전투기를 가지고는 안되고 폭격기를 이용해야 하는데, 북한이 가진 경폭격기가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애스핀 국방장관은 최근 몇달 동안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또 얼마 전 제가 만난 일본의 핵문제 전문가는 미국측 자료를 근거로 핵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은 북한이 비밀 핵개발을 중단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핵의 사찰이 사실상 중단된 작년 9월 이후에 있었던 일은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 부분은 IAEA의 사찰이 다시 이루어져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규명되어야 합니다.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하기 전에는 IAEA의 사찰로 일정 정도의 성과를 달성한 것은 사실입니다. 사찰이 시작되면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이용해서 더이상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 이전에 북한이 플루토늄을 추출했는지, 추출했다면 그 양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국제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것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이 봉쇄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5MW짜리 원자로의 연료봉을 교체할 때 입회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니고,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5MW 원자로 안에 있는 연료봉에서 샘플을 몇 군데서 뽑아내 검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핵분열 주기를 알 수 있기 때문에 핵연료가 몇년도에 장입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은 IAEA에게 2호 원자로는 86년 1월에 장입한 연료를 지금도 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에 연료봉이 한번인가 두 번 깨진 적이 있는데, 그때 핵폐기물을 뽑아내 거기서 g단위의 미량 플루토늄을 추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미국은 영변 상공에서 위성정찰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2호 원자로가 몇번 운전 중단되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연료 샘플을 분석해 보면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서 연료봉의 장탈이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2호 원자로의 연료 샘플 채취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원자로의 연료 공급기가 고장났기 때문에 연료를 꺼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93년 3월에 전체 연료봉을 교체하겠다고 했지만, 그뒤 이에 대해 아무 말도 없습니다. 또 하나의 보완적인 방법은 핵폐기물을 검사하는 것입니다. 원자로에서 사용한 연료를 재처리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미 사용한 핵연료에다 질산을 작용시키면 플루토늄은 기화되어 분리되고 나머지는 액체상태로 폐기물이 됩니다. 이 폐기물은 1천도를 넘는 고온이고 방사능이 많기 때문에, 일정 기간 동안 지하 핵저장시설에 두었다가 나중에 다른 작용제를 넣어 고체화시켜 영구 폐기장소로 가져갑니다. 지하 핵폐기물 저장소에 있는 핵폐기물의 존재여부와 그 양을 확인하고 이를 역산하면 얼마만큼의 플루토늄이 추출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용후 핵연료 안에는 0.015%의 플루토늄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IAEA가 작년 2월25일 이 핵폐기물 저장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결의하자, 북한은 3월9일 준(準)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3일 후에 NPT 탈퇴선언을 하는 등 그 난리를 쳤던 것입니다.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현재 북한이 상당한 양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는 것은 거의 객관성을 지닌 사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對北 경제제재는 이미 시작되었다
―북한은 문제가 되고 있는 두 곳의 지하 핵폐기물 저장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거부하면서 NPT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순수하게 핵사찰 측면에서 본다면 이 두 곳의 사찰을 통해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12∼13㎏의 플루토늄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북한이 이를 신고하도록 해 IAEA가 감시 카메라를 설치, NPT체제하의 감시망 속에 집어 넣겠다는 것이죠.
『그렇죠. 다만 미신고 핵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은 북한의 태도가 너무 완강하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의사를 강요하는 데는 방법상 제약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단계까지 가려면 상당한 과정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회담진행 상황을 보면, 미국도 전에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일괄타결을 생각했는데 요즘은 좀 변했습니다. 즉 현재 신고된 시설에서 더 이상 플루토늄을 추출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가 확보되면, 전에 생산되었을지도 모르는 플루토늄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위험부담을 감내하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임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엔 굉장한 함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추출된 플루토늄의 투명성을 확보하려면 최소한 1∼2년이 걸리는데 그 사이 이미 빼돌린 플루토늄을 가지고 핵무기를 개발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미국은 앞으로 북한에 압력을 넣고 또 설득하면서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할 것입니다. 북한이 이 줄다리기를 얼마나 견딜지가 문제입니다. IAEA의 통상사찰, 즉 임시사찰과 정상사찰은 기신고시설을 대상으로 계속 진행될 것이고, IAEA는 2호 원자로 연료봉 교체시 입회문제(샘플 채출을 의미), 지하 핵폐기물 저장소에 대한 특별사찰 등을 계속 추진할 것입니다. 미국의 압력, 설득이 계속되면 북한도 자신의 의도를 성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북한 핵게임에 관한 대차대조를 따져보면, 북한은 먼저 팀스피리트(TS) 훈련 중단을 거의 얻어냈습니다. 경제원조나 국교정상화는 북한이 상당한 양보를 해야 가능합니다. 반대로 북한은 5MW 원자로를 양보하여 더 이상의 플루토늄 추출을 포기했습니다. 이미 빼돌린 플루토늄을 내놓지 않으면 경제제재 등의 강제적 압력을 받을 수 있겠는데, 결국 북한도 마지막 단계에 와서는 계산을 할 것이고….
『우리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UN 안보리가 일본을 개항시킨 페리 제독처럼 커다란 함대를 몰고가서 경제제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사실상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북한이 핵문제 때문에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안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일본, 유럽, 남한과의 경협 노력이 계속 좌절되지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