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부 金泳三 개혁의 논리 - 화해와 통합
민주화 운동했던 사람들의 도덕성
―화제를 바꾸겠습니다. 金수석께서 지난해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발표하신 내용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金수석께서는 거기서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도덕적 에너지와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경제적 에너지가 합쳐서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이나 경제발전에 힘썼던 사람들의 도덕성은 별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金수석께서는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보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양자의 관계도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더 우위에 둔 결합이 아닌가 느꼈습니다.
『양자의 개인적 도덕서의 우열을 따지는 취지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도덕성을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당당하게 내세울 게 헌신성과 도덕성이고, 경제발전을 주축으로 해왔던 사람들이 내세울 것은 경험과 실무능력이라는 뜻으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실제로 군사독재에 저항했다는 것은 엄청난 헌신과 도덕성을 수반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린 것은 한 인터뷰에서 金주석께서는 사상적인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조국을 위해 불면의 발을 지새며 고민하지 않은 사람은 나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답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도덕성에 대해서 확신이 너무 강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 대답을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수배 당한 시절에는 삼천리가 이렇게 넓고 멀어도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해가 저물면 젊었을 때는 아무 친구들의 집에서나 자고 가면 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정말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럴 때 산에 올라가면 「조국의 산하는 이렇게 아름다운데 우리는 왜 이래야 하나, 한 공동체 안에서 왜 이래야 하나」는 생각이 듭디다. 그래서 민주화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을 매도하는 경우, 나라를 위해서 눈물을 흘렸던 사람들은 욕을 해라,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매도는 받지 않겠다는 겁니다. 사랑의 매라면 달게 맞겠다는 거지요』
대통령의 말
―저는 金永三 대통령이 자주 사용하시는 文民이라는 용어가 배타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민주화의 과정 속에서 그 용어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文民만 있느냐, 武民은 없느냐는 반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또 5·16이나 12·12와 같은 사건을 너무 짧은 설명으로 역사적 규정을 했습니다. 이렇게 정부가 주도하여 충분한 설명없이 이루어진 역사적 개념 규정은 金수석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자는 뜻에서 불가피하게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새 정부에서는 그런 당당함이 있습니다』
―「내부의 적」이라는 용어는 대통령께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사용하셨습니까.
『한 사람 안에서도 내부의 적이 있지 않겠습니까. 두 마음이 갈등을 일으키는 상태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확대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하는데 金수석의 역할은 어떤 것입니까.
『지난 날에는 더러 관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일반적인 연설문은 해당부처와 해당 비서실에서 작성하고 있습니다 」
―저는 대통령이 하시는 말이나 연설문에서 사용된 용어가 너무 관념적이고 과장되며 부정확하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예를 들면 『개혁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는』든지, 「음해 세력」이라는 용어, 또 『5·16은 역사를 후퇴시켰다』 뭉뚱그려 이야기한 것 등입니다.
『그것은 대통령께서 야당 생활을 오래 하셨다는 점과 대통령의 화법이 단문을 사용한다는 점 때문일 겁니다. 이제 대통령으로서 달라져야 할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명쾌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 명쾌하지 않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金泳三 대통령께서 야당 지도자로 계실 때는 말을 아주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처럼 국민들의 마음을 잡아채는 말은 金大中 씨보다 훨씬 더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난 뒤의 말은 야당 지도자로 계실 때 보다 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통령의 말은 유보적인 것이 있어야 하고 최소 의미를 가진 것이 있어야 하고 최소 의미를 가진 것이어야 하는데 여전히 야당 시절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혹시 이런 데 金수석의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제 영향만은 아니겠습니다만 표현과 관련한 오해가 있다면 저희들이 보필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또 『개혁에 음해세력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 개혁에 대해 그렇게 자신감이 없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해세력이라는 말로 막연한 우리 사회의 한 계층을 적대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제가 생각하기론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은 지금 일찍이 없었던 진전을 맞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문명의 축이 이쪽으로 오고 있지 않습니까. 1세기 전에는 우리가 세계 강대국들에게 유린당했지만 이제는 주도적으로 4대 강국을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앞으로 나아갈 시간도 촉박한데 과거의 문제에 매달리게 하고 소모적인 힘을 낭비하게 하는 것을 큰 의미에서 「내부의 적」이나 「음해 세력」이라고 표현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시점에서는 모두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형태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어떨 때는 그들이 개혁이 잘 되기를 진정 바라고 있는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개혁에 흠집을 내려는 것을 음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국 자본주의가 살아야 당신 네도 산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金泳三 대통령이 42%로 당선된 직후에는 「아, 이제 우리 사회도 새로운 도약을 맞게 되는구나」는 분위기로 일신돼 있다고 봅니다. 그때 과거를 같이 참회하여 일단 선을 긋고 미래 창조에 같이 참여하자는 그런 儀式이 있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즉 과거의 잘못은 덮어두겠다. 그러나 앞으로 부정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의 선언이 있었어야 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취임하자마자 가정으로 들어가 과거의 비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구속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金泳三 대통령 혼자만의 과거는 묻지 않고 다른 사름의 과거는 묻겠다는 식의 위선적인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1년이 지난 뒤 金泳三 대통령의 과거가 이제는 대통령에 대한 반격 자료로 사용되면서 개혁의 의미가 퇴색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앞으로 개혁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늘이려면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은 선거라는 여과 과정을 통해서 그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司正은 우리가 지난날의 아픔을 걷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司正은 대통령도 같이 아픔을 겪는 과정이었습니다. 맞는 사람에 못지않게 때리는 사람이 더 아픈 그런 과정이 라고 생각합니다. 가까이서 지켜보면 특히 더 그런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야당과 언론도 그런 아픔을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개혁을 하더라도 한국 사람들의 민족성에 맞는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야생마처럼 뛰고 싶고 오기가 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개혁의 울타리는 크게 쳐주되 그 안에서는 폭넓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신나게 일할 수 있다고 봅니다. 司正을 중심으로 해서 코를 꿰어 끌고 가려고 하면 따라가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신바람을 개혁으로 연결 시키기 위해서는 司正的인 접근은 안될 것입니다.
『司正的인 접근은 개혁의 전부가 아니라 불가피한 과정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식보다 이렇게 하자는 식의 건강한 제안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에 그런 분위기가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요즘 노사분규가 별로 없는 것에 대해 그것을 자중시키는 것이 金수석과 같은 분이 정부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이런 답답한 심정은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 일어나야 당신들 몫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주장을 다 들어줄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대안 없는 투쟁을 하는 타성화된 도식 때문에 참으로 어렵습니다. 언론이나 存野 야당들도 생각해보면 그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그 길로 가자고 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UR 같은 경우도 우리가 협상력의 제고나 실익을 얻기 위한 전략적 반대는 좋습니다. 그러나 비준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시대에는 당당한 목소리로 「이것은 아니다. 이 길이다」고 말하는 들판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3黨 통합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지금까지 金수석의 과거 경력과 생각하고 계신 것에 관한 질문을 많이 드렸습니다. 저는 사실 60-80년대 까지 각각의 시대에서 그 시대를 보는 눈이 金수석과 제가 큰 차이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차이는 1987년 12월 16일 대통령 선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에서 왔다고 봅니다. 그때의 盧泰愚 정권을 정통성 있는 정권으로 보아야 하느냐 아니면 여전히 타도의 대상으로 보아야 하느냐가 지식인 사회의 분기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盧泰愚 정권은 국민들의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기 때문에 정통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모든 시각의 출발점은 이 선거 결과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金수석께서는 盧泰愚 대통령 시기를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盧泰愚 대통령 시기를 역사적 과도기였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盧대통령 시대라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있었기 때문에 새 정부의 탄생도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3당 합당을 역사적으로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당 합당을 통해서 「이렇게 역사를 창조할수도 있구나」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전개과정은 아름다운 그림이 되지는 못했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심지어 야당에서는 애써 의도적으로 그렇게 파악하지 않으려는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3당 합방은 미움과 갈등 치열한 대결이 아니라 우리도 평화적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우리 역사에서 일찍이 보지 못했단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잘 가고 있느냐에는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도 최근 10년 동안 우리 정치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으라면 2.12총선, 6월 사태와 함께 3당 합당이라고 생각합니다. 3당 합당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주도층이 대동 단결하여 정치 지도층의 볼륨을 아주 크게 만든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정치구도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金泳三 대통령이 호랑이 굴로 들어가서 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하나의 전술적인 변신이었다고 해석합니다. 오히려 3당 합당의 의미를 축소시켜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들어가서 흡수됐다, 변신했다」 비판에 대한 대응논리서 나온 것인줄 압니다. 정치적 수사죠. 영국의 오래된 성당에 이런 구절이 쓰여져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지나온 우리 역사를 보면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을 많은 것을 느낍니다. 3당 합당도 그런 것이라고 봅니다. 역사적 사건도 결국 인간의 힘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예정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역사를 보는 겸허함이 생깁니다』
『언론은 이제 국민을 향해야』
―외부에서 金수석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상당히 고민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얼마전 수석회의에서, 제가 직무상 골프장 살리는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어느 수석이 말하길 「이런 金수석을 두고 세상엔 사상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 한바탕 웃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일에 힘을 빼앗길 여유가 없습니다. 개혁은 꼭 성공해야 합니다. 저는 金泳三 정부를 위해서 개혁이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서 성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혁에 대한 심정적 보필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힘을 합쳐 정부가 잘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언론의 역할도 큽니다. 현재 우리 언론은 과거의 타성대로 여전히 권력을 향해 있습니다. 청와대를 향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언론은 국민을 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각종 이익집단의 욕구 분출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언론은 무엇이 우리의 공동선을 위해서 올바른 것인지 그런 욕구 분출을 여과하는 기능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공동선 우리 공동체가 어디로 어떻게 함께 가야 하는가를 놓고 함께 고뇌하는 언론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우리 나라의 주류 층이 작년까지만 해도 대통령의 개혁을 도울 자세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주변에 이념적인 의혹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움츠러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대통령이 그 사람들에게 납치당했다』고 극언을 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념적으로 피비린내 나는 경험을 겪었기 때문에 그 문제가 걸리면 쉽게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학시절에 동료 문학도 한 사람이 이런 습작소설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몇 십년 뒤 대학 캠퍼스에서의 일입니다. 학생들이 담소를 하는데 「20세기 중엽에 우리의 선조 들은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가지고 서로 죽이고 싸웠대」 「이데올로기란 것이 뭔데?」 「글세, 오늘의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야」. 저는 정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부분을 촌탁(忖度)해서 자기의 불만을 화대 시켜 정당한 것으로 일반화하려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절대 다수는 진정으로 걱정해서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의 생각 자체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저로서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우리 정부를 너무 왜소하게 보는 것입니다. 在野 출신 인사들도 건강하고 애국적입니다. 내가 건강한 만큼 다른 쪽에서 살아온 사람들도 충분히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다 같이 깨달았으면 합니다. 또 그들은 극히 소수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당에 있는 것이 아니고 대통령과 매일 얼굴을 맞대는 측근에도 있지 않습니까. 또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대통령이 살아오신 일생일 무시하는 말입니다. 그분은 어머니를 간첩의 손에 잃어버렸고, 이 나라 정치지도자로서 나름대로 확고한 신념과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측근이었던 사람들이 여전히 지금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과거 삶의 궤적에서 그런 점이 있었습니까. 지나친 우려라고 생각합니다』
代案을 통한 국민통합 필요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대통령과 주류 층이 연결을 위해서는 金수석같은 분의 노력이 먼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건국 후의 짧은 역사 속에서도 이념이나 성향의 잣대만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이런 문제를 확대해서 제기하기보다는 상식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수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북한에 대해 아주 엄정한 자세 우리 지난 현대사에 대한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은 우리사회의 책임 있는 사람으로서는 기본적인 요건 아닐까요.
『그것은 누가 누구를 매도하거나 인민재판하는 식, 또는 요구돼서 이루어질 성질이 아니라 상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런 자연스러운 과정에 무언가 벽이 막혀 있는 것을 느낄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지금 우리는 우선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크게는 민족 웅비의 역사창조를 위해서 전력해야 할 때입니다. 전체적인 國運도 좋을 때가 아닙니까. 우리는 갈등과, 분열, 위화감이 상징하던 시기를 극복해냈습니다. 이젠 새로운 도약을 해야 할 시기입니다. 21세기를 지배하는 가치는 군사력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도덕성에 바탕한 높은 문화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것을 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치도 갈등을 유발하고 트집잡기가 아닌 정의를 위한 경쟁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경쟁은 더 나은 대안을 계속 제시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 구체적인 대안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통합 과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해방 이후 우리 현대사를 끌 고온 두 개의 수레바퀴가 있습니다. 하나는 경제발전이었고, 또 하나는 자유, 인권이란 키워드(Key Word)로 상징되는 민주화였습니다. 지금까지 이 둘은 절묘하게 조화되어 상호 견제하고 경쟁하면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 왔습니다. 金泳三 정부에 들어와서는 서로간의 갈등 논리, 비판논리가 상호 견제 속에서도 통합하여 성경의 말씀처럼 「합동하여 유익하게 된다」는 (金수석께서 말씀하신) 화해의 논리와 통합의 논리로 승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스러운 건 우리 지식인 사회에서 그런 화해와 통합의 논리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통합작업에선 그러나 親 金日成的 요소는 엄격히 배제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화해하고 통합하자는 논리가 우리 시대의 가치임을 자각하고 우리 모두에게는 계속 창조적 代案을 제시하는 생산적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정리·曺中植 月刊朝鮮 기자>
보수층의 표적 김정남 수석의 이념과 역사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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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7-11, 17: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