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선 자유민주주의가 진보, 사회주의가 수구
● 명분만 계산하고 돈을 계산 안하는게 한국정치
● 도덕론으로는 이해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 대통령 중심제를 기준으로 고쳐가야
● 자리에 욕심 있는 사람이 밑에 많이 모이면, 대통령의 힘은 강해진다
● 정부개혁,「서비스기능 강화」방향으로 가야
● 국민의 에너지를 1백% 발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정치의 제1주제
『그들의 민주화운동이 38선에서 멈추는 걸 보면 정권획득용이 아니었는지 회의가 생긴다』
盧前 총리는 『자신도 이룰 수 없는 과장된 도덕론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는 결국 위선을 낳을 뿐이다』며, 『金대통령은 특유의 결단력을, 국민의 잠재력을 활성화시키는데 투입, 21세기에 대비해야한다』고 했다.
<1995년 4월 월간조선>
『국회와 사릿?물과 기름관계』 지난 3월11일 오전 10시 코리아나 호텔에서 노재봉(盧在鳳) 前 총리를 만났다(인터뷰時 호칭은 편의상 「총리」로 했다). 지난 2월 27일 민자당을 탈당하고 의원직에서 물러난 盧在鳳씨는 매우 홀가분한 모습. 강남에 새로 마련한 사무실은 현재 정리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盧在鳳씨는 『정치의 場인 국회를 떠나는 것도 정치적인 행위이고 정치적 노선이 맞지 않아 의원직을 사퇴했으니 정치를 떠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盧在鳳 前 총리는 약 5시간 동안 「金泳三 대통령의 도덕정치」를 비롯,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문제 전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털어 놓았다. 盧在鳳씨는 지난 88년 서울대 외교 학과 교수시절, 盧泰愚 대통령 정치특보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후 대酉?비서실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그러나 91년 봄 姜慶大군 치사사건 직후 6개월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盧총리의 早期퇴진은 당시 민자당 대표 金泳三 현 대통령이 강력하게 요구했었다. 14代 국회에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들어간 이후 盧의원은 金泳三 정권에 대한 비판을 공개적으로 계속해왔다.
―요즘은 오랫만에 한가하시지요. 이렇게 쉬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총리 하고 나서 1년 정도 쉬었고, 국회에서 보낸 지난 2년도 사실 쉬었던 것이나 다름 없지요』
―국회를 떠난 후, 밖에서 본 국회는 안에 있을 때 생각하던 것과는 좀 다릅니까.
『국회 안에 있을 때도 늘 바깥의 시각으로 관심을 쏟아왔으니까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 동안 국민들은 국회의원의 전문성을 요구할 정도로 변했습니다. 따라서 의회도 국민들의 문제의식이나 사회내의 문제를 소화·흡수하는 기능을 해주어야 하는데 국회의 기능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입니다. 특히 국회의 문제 추적 기능은 거의 없다고 생각됩니다. 의원들이 어떤 문제를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1회용 발언을 한번 하고 그것이 언론의 가십란에 오르내리면 그것으로 다 됐다고 생각하니까요. 국회의 對정부질문에도 연속성이라는 게 없어서 회기만 끝나면 다 잊어 버낫求? 한국 사회와 국회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지요』
盧在鳳씨는 한국의 정당제도 역시 국회의 기능을 제한하는 중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당수가 공천을 좌우하는 한, 당지도부의 의사에 反하는 일은 할 수 없지요. 이런 이유 때문에 여당이 행정부를 보완하는 기능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는 또 「돈에 대한 관념」이 희박한 것도 우리 정치풍토의 이상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의회의 힘이 나오는 원천 중의 하나가 국민이 낸 세금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정책적인 수사(修辭)만 만발할 뿐 돈에 대한 계산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환경문제를 논할 때 그 문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만 할뿐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비용은 얼마나 들어갈지, 그것을 어떻게 충당할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국회에서의 논의라는 것이 늘 윤리적·도덕적 기준 일변도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修辭만 있고 돈 계산은 없는 정치
―국립박물관을 철거하는 것도 그 전형적인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박물관을 헐고 새로 짓는데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느냐 하는 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역사교육을 위해 보존하는 것이 좋으냐 민족정기를 위해 철거하는 것이 좋으냐는 것만 논의하는 것이지요. 국립박물관 철거 및 신축에 약 1조원이 넘는 비용이 든다는 것을 국회에서 논의한 적은 없지 않습니까.
『과장된 명분의 바람이 불 때는 부수된 문제는 거기 파묻혀 지나가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실무적인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것이 그 명분 전체에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기 때문에 섣불리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박물관 철거 문제는 제가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거론된 겁니다. 박물관의 유물이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새 박물관을 짓고 옮기자고 결정이 났었습니다. 현재의 박물관 건물은 「뜯어서 옮기자」는 방안을 생각했습니다. 당시 문화부에서는 독립기념관쪽으로 옮기려 했는데, 그곳은 교통도 나쁘고 유지비도 많이 들어 민간에서 활용하게 하자는 제안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호텔로 이용하는 것인데 그 사업을 하겟다는 기업도 있었습니다』
―국립박물관을 옮기는 문제가 「先철거 後건설」로 강행되는 모양인데 그에 대한 국회 차원의 공식적인 논의도 없습니다. 언론도 「민족정기」라는 명분에 가위 눌려 침묵하고 있지요. 우리 사회의 지도층도 친일파로 몰릴까 봐 이 상황을 묵인하고 있는 듯합니다.
『대의명분이 민족정기를 살리는 것이라고 해도 그 명분을 살리는 실천은 「경영」의 문제입니다. 정부에게는 그 비용을 계산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정치의 방향감각을 상실하면 여론만 중시하게 됩니다. 물론 민족정기를 살리다는 명분을 반대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경영차원의 처리방안에 대해서까지 정 ㅎ際鬼ㅗ逵瘟?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상하좌우의 차별성은 무시하고 「평준성」만 강조하다 보니, 일단 주도적인 바람이 불면 그에 대한 반대는 다 죽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도덕주의가 되는 것이지요』
국민의 문제를 외면하는 정당은 소외될 것
―盧총리께서 金鍾沁씨의 자민련(自民聯)으로 갈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간 盧총리가 제기해온 문제를 보면, 對北觀에서나 역사관에서나 자민련과 입장이 비슷합니다.
『언론에서 저를 自民聯과 연관시켜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는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결정에 따라 움직인 겁니다. 자민련도 남북문제와 같은 현실문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했는데 그것이 저의 주장과 우연히 맞아 떨어져 관련성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 나라의 정당이 특정 경우를 제외하고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습니다만, 자민련은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자민련은 對北문제, 국립박물관 철거, 한자 사용 등에서도 분명한 입장을 취하여 재미있는 현대적 정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적 정당의 특성은 보편성에 있습니다. 어느 층을 막론하고 표를 얻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중산층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국민 일부만을 대표로 한다는 제한적인 인상을 줍니다. 저로서는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보다는 한국 전체를 어떻게 시민화하느냐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소위 중산층이라는 것은 재산을 가지고 있고 그 재산이 아깝다는 생각도 할 줄 알며 그렇기 때문에 모험을 하지 못합니다. 생활과 환경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중산층입니다. 국민들이 시민적 책임 의식을 갖도록 해주고 정책도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계에는 JP의 자민련 외에도 朴哲彦씨를 중심으로 反YS연합전선을 만든다는 구상이 있습니다. 反YS 연합전선은 내각제로써 JP·TK·DJ를 묶겠다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정치는 명망가 중심의 정치집단이거나 명망가의 출신지역에 따라 모이는 형식이었습니다. 그것은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새로운 흐름과는 거꾸로 가는 것이지요. 현재 우리 사회에는 세금, 상속, 중소기업, 노조 등 노선을 설정해야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국민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를 건드리려 주지 않는 정치는 결국 「정치란 나와 무관한 것」이라는 냉소주의만 깊어지게 만드는 것이지요』
『정책과 노선 중심의 정치 펴야』
―그렇다면 이와 같이 헛돌고 있는 정치와 사회와의 사이를 다시 맞물리게 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간격을 메우려면 정치의 참여 형식을 바꿔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정치는 정치를 業으로 하는 정치꾼 들만의 것이었고 그 외의 사람들은 소극적으로 표를 던지는 일만 했습니다. 중산층은 한국사회의 주류지만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정치는 위임하고 생업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기만을 바라는 층이고, 그러나 보니 단결이 잘 안 됩니다. 이제 중산층의 단결 의식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분명한 이해관계를 딛고 있는 시민단체의 활동으로 표현될 것입니다』
―한국의 정치판은 현재 구조적인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대구 민심은 反YS로 굳어졌고 JP의 탈당으로 충청권의 반발이 예상됩니다. 세대 별로 보아도 50대 이후의 세대와 30대의 정치성향이 너무 다릅니다. 민자당 내부에서도 기본 노선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지요. 이젠 地自制도 실시될 것이고 정치권에서는 금년 초부터 내각제 개헌도 거론이 되고 있습니다. 金泳三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이제 30%대로 낮아졌습니다. 金泳三 권력이 피크를 지나면서 중앙권력의 해체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金대통령의 취임으로 3金시대가 정리되어 1金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다시 3金시대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3金시대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야권에 국한된 현상이었는데 이제는 대한민국 전체가 3金에 의한 정치 분할이 된 것 같습니다. 이 양상은 地自制로 제도화되어 이제 지방행정까지 3金의 영향하에 들어가게 된 것 같습니다.
『현상은 말씀하신 그대로이고 저도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 현상에 대한 제 분석은 이렇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뭉치든 흩어지든 국민은 관계가 없었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이란 요소를 빼놓고 권력경영만 해도 괜찮았던 시대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권력의 경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한국에서 살며 부닥치는 갈등요인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치는 계속 권력 차원에 머물러 갈등의 해답을 내지 못하고 있어여. 정치가 권력 게임의 차원을 떠나야 합니다. 그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정책과 노선 중심의 정치를 펴야 합니다』
『언론도 변해야』
―기존의 정치행태가 권력 게임 차원에 머물러 있었고 언론도 국민의 실익과는 무관하게 누가 이기고 지는가에만 관심을 기울여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 결과 국민들도 「누구를 찍어줘야 정권을 잡을까」라는 식의 1책 중심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는 언론사도 정치단체처럼 다 비슷비슷했습니다. 노선경쟁이 아닌 광고경쟁을 하고 있을 뿐이지요. 사실 신문이란 국민들이 매일매일 공부하는 교과서입니다. 그런 신문에 「오늘은 정치인 누가 누구와 회식했다」는 식의 기사를 실어 정치와 공론을 가십化해버리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盧총리께서 YS의 정치행태에 대해 모노선(無路線)이라는 비판을 하셨습니다만 현재 金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심층심리 속에는 정치보다 이미지에 대한 것이 많습니다. 텔레비전에 비치는 대통령의 모습, 연설문, 장관들과의 관계 등에 관한 것이지요. 한국인들의 예의 기준이나 정의감과 대통령의 행태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金대통령은 실적은 많은데 정서적이 측면에 걸려 인기가 하락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 정치에서 최고 통치자는 늘 대중 스타와 같은 자질을 요구받습니다. 그러나 오랜 야당생활로 굳어진 스타일이 대통령이라는 책임 있는 자리에서도 그대로 표현되니 국민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정책과 관련해서 대통령은 예측 가능한 정치를 하겠다고 했는데 큰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에는 좀더 신중한 검토가 이뤄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實名制의 명분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명분을 실현하고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므로 우리의 여건을 더 제대로 고려했어야 합니다. 실명제가 실시되면 지하경제의 자금이 다 밖으로 나와 자금운용이 원활해졌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정책의 영향을 직접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즉흥적」이라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언어의 폭력성을 피해야』
―대통령의 「말」에 대한 비판은 역시 연설문을 근거로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대통령의 언어는 나라 안팎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극단적인 용어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金대통령이 가장 자주 쓰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文民」이라는 말입니다. 「진보, 보수,개혁, 수구, 정통성, 민족정기, 기득권, 냉전적 사고…」등도 정치권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입니다. 이런 용어들은 피아를 구분하는 전투적 성격이 짙다고 생각됩니다만.
『정치에서 修辭는 필요합니다. 한마디의 말로 국민을 깨우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급진적인 생각을 가질수록 수사는 공허해지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병」이라는 용어는 국민 전체를 병자로 규정하는 결과가 됩니다. 결국 말한 사람도 감당할 수 없는 알맹이 없는 공허한 이야기로 변하는 것이지요. 金대통령이 성수대교 붕괴사고 때 「5천년 동안 썩었다」는 표현을 한 일이 있어요. 그런 국민이 어떻게 동북아에서 몇 안 되는 번창한 나라를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文民」이라는 말도 국민들이 갖고 있는 군인통치에 대한 염증을 집어냈다는 점에서는 성공했지만 군사력을 무시한 정치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지요. 이제 주먹으로 통치하던 시절은 지났지만 현대 정치에는 언어 폭력이 엄청난 비중을 지니고 있습니다. 언어가 폭력적으로 사용되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것은 물론 섭섭하고 불만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지요. 언어의 공격적인 성격을 피해야 합니다』
―「세계화」라는 말도 개념 정리 없이 들고 나온 용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민자당이 세계화를 내세우면서 한 일이라고는 JP를 배제한 것 밖에 없지 않습니까.
『영어로 세계화를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서술용어입니다. 서술용어가 정책 목표가 되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지요. 전당대회를 할 때도 「당의 세계화」라는 말이 나와 그대로 번역되는 바람에 외국 기자들이 매우 놀랐던 일이 있어요. 아직도 세계화의 개념정리가 되지 않아 헤매고 있는 것 같은데, 세계화를 통해 주장하려 했던 것은 결국 「선진국의 수준에 맞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즉 어느 시대의 주도적 문화에 뒤지지 않도록 주체성을 가지고 적응해 나가자는 뜻이지요』
―그런 면에서 李承晩 박사가 가장 성공적으로 세계화한 인물이 아닌가요. 이박사는 스무살 이전에는 과거공부를 하다 배재학당에 들어간 이후 서양문화에 접촉하자 급속히 자신의 인격을 변화시켜 갔습니다. 하지만 徐廷柱 시인이 「李박사는 어디까지나 으뜸가는 조선인으로 남아있었다」고 평가한 것처럼 항상 主體를 간직하고 외국의 선지적인 문화를 수용,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李박사는 그 당시로는 몇 안 되는 선구자 중의 한 분입니다. 그 이전으로 올라가면 김옥균(金玉均)을 중심으로 한 개화파가 있습니다. 개화파는 근대민족국가로 나가지 않으면 망한다고 하는 위기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