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어떠십니까.
『자신 있습니다. 한의사를 하신 할아버지께서 가마니 채로 한약을 고아 큰 항아리에 담아 놓고 누구라도 와서 먹게 했지요. 동네 사람들도 먹었습니다. 장관 시절 내무가족 축구대회 때는 전후반을 다 뛰었지요. 국장들은 다음날 모두 다리를 절더구만요』
신장 1백76㎝에 몸무게 78㎏. 崔의원은 고향에 오면 아침에 5㎞이상 조깅을 한다. 갔다 오는데 1시간반정도 걸리는 북한산의 승가사 등산도 거의 매일 한다. 전형적인 O형의 건강체질로 보였다.
―정권을 잡아 보니 권력이 어떻다는 것에 대해 실감을 하셨을 텐데요.
『실감하는 것 없습니다. 솔직히 야당할 때보다 더 피곤합니다. 여당이라고 느낀 적이 없어요. 사무총장 하다 그리(물러나게)됐지, (내무)장관하면서도 매일 얻어 터졌지, 언제 재(뽐내) 본 적이 있었습니까. 야당 시절에는 손만 들고 고개만 끄덕이면 됐어요. 그때가 좋았습니다. 지금 그러다간 「목에 힘준다」, 「건방지다」는 소릴 들어요. 마음이 편하지 못합니다. 발 펴고 누워 자지를 못해요. 늘 긴장입니다. 내무장관을 할 때는 상당 기간 신문도 안 보고 라디오도 듣지 않았습니다』
―현재 정치판의 주도권이 金大中이사장에게 넘어간 것이 아니냐는 견해가 있습니다. 金大中씨가 JP 세력 및 TK 세력과 연대하여 「反YS전선」을 형성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만.
『집권 여당이란 것은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내무장관이라 하더라도 면단 위까지는 한 눈에 바라보고 있습니다. 안경을 끼는 데 따라서 달리 보이지만요』
―집권 여당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은 행정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뜻입니까.
『여러 면에서 앞선다는 거지요. 통치기구에 의한 국가 관리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金大中씨가 최근에 보이?있는 행보를 놓고 볼 때 이것이 정계를 은퇴한 사람의 행위로 보십니까, 아니면 정치행위로 보십니까.
『믿어야죠. 스스로 결정한 것 아닙니까. 기자들이 몇 번이나 물어봤습니까. 물을 때마다 「나는(정치를)안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정치를 다시)할 수 있는 명분이 있겠습니까. 저는 金大中 선생을 존경하기 때문에 그 분의 인격을 믿을 수밖에 없지요』
―金大中 이사장에 의하면 「정계은퇴란 정당의 직책을 맡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정계은퇴는 했지만 정치은퇴는 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분이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올 수 있겠어요? 안 나온다고 봐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국민들에게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국민들과의 약속을 깬다면 국민들의 저항이 클 것이라는 뜻입니까.
『저항이라기보다는 도덕적인 문제겠지요』
불쌍한 한국 경찰
―金대통령은 보수연합의 구도하에서 탄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大選 당시 보수층의 상당수가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만 金대통령 당선 이후 보수층이 분열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JP로 대표되는 일부 세력이 떨어져 나가도 金대통령을 지지하는 분들 중의 일부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원인의 하나가 지나간 역사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고 오히려 북한에 대해서는 취임사에서 「어떤 동맹국보다 민족이 우선한다」는 등 너무 유화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중산층이 「대통령은 우리를 대변하는 분이 아니다」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만.
『金대통령은 가장 앞선 보수주의자입니다. 통일에 있어서도 민주와 평화의 원칙에 대한 의지는 그 누구보다도 강하신 분입니다. 金대통령의 모친이 무장 공비 의해 살해되지 않았습니까. 그 하나로도 충분히 증명되는 것입니다. 斜視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취입사에서 「이념이나 우방보다 민족이 중요하다」고 한 것은 잘못되지 않았습니까. 민족보다는 이념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글쎄요. 참 어려운 문젭니다』
―내무장관 시절 「한총련」이나 「남총련」이 열차를 세우기도 하는 등의 시위를 벌였을 때 아주 강경하게 진압을 하셨습니다. 어떤 소신을 가지고 하셨습니까.
『그것은 국기 파괴행위입니다. 만일 미국이었다면 총으로 대응했을 겁니다』
―경찰들의 사기는 회복되었습니까.
『경찰들은 참 불쌍해요. 일본은 3교대를 하지만 우리는 2교대를 합니다. 경찰서장이 한 달에 한 번 집에 들어갑니다. 외국 같으면 이혼감이죠. 「섹스는 어떻게 합니까」고 물으니 「전화로 근무지 가까운 여관으로 불러 해결한다」는 거요. 얼마나 적나라한 얘깁니까. 장관이 도기 전에는 몰랐는데 장관이 된 후 데모 때 병원에 가보니 데모 진압하다 머리가 터진 사람, 화상 입은 사람, 턱이 날아간 사람…. 누굴 위해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런데 경찰이 누굴 한 대 때렸다고 하면 신문에서 난립니다』
―왜 그럴까요.
『사회부 기자들이 좀 독특한 것 같아요. 비판이 강합니다』
―내무장관 시절이 그런 보도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습니까.
『내무장관 할 때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카니까네. 어떤 게 스트레스 주는 건지 그것도 모르겠더라니까요. 그 자리는 골빙(골병)드는 자립니다』
저녁 시간이 훨씬 지났다. 「통일과 관련한 질문을 하겠다」고 말을 꺼내자 崔의원은 깨를 설레설레 흔들며 「오늘은 골치가 아프니 그만하고 내일 다시 만나 얘기하자」고 하였다. 텃밭에서 키운 무공해 상추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오전 10시 해운대 한 호텔 일식집에서 崔의원을 다시 만났다. 단정히 머리를 빗고 깔끔한 옷차림이었다. 오후 2시 부산 시내 브니엘 여고에서 당원 연수 대회가 있다고 했다.
『북한의 기를 꺾어야 한다』
―외무통일위원회에 오신 후로 북한 핵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졋습니까.
『통일은 민주와 평화의 원칙하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유민주체제로서 통일을 해야 합니다. 북한이 도발적인 행위를 현실적으로 버리지 않는 이상 우리의 안보를 공고히 해가면서 통일에 접근해야 합니다. 통일이 되면 우리는 G8에 들어가게 됩니다. 「세계화」란 「10대 강국」에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통일이 되면 「코리아 공영권」이 탄생됩니다』
―북한에 대한 정책으로 두 가지가 대별됩니다. 하나는 「햇볕론」이라 해서 북한의 주장이 다소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양보를 해서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하자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무리한 요구에 우리가 단호하게 대처해서 원칙을 세워가야 한다는 「채찍론」이 있습니다. 崔의원은 어느 입장이십니까.
『「채찍론」이라는 용어는 쓰고 싶지 않으나 저는 후자의 입장입니다. 북한의 체제는 달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기를 꺾어 놓아야지요. 핵협상도 그래야 합니다』
―북한은 「우리를 코너로 몰면 전쟁을 불사하겠다」하고, 우리 정부는 「전쟁은 불가하다」라고 합니다. 「전쟁불가」를 주장하는 쪽이 결국 「전쟁불사」를 주장하는 쪽에게 밀리는 것 아닙니까.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유화정책만으로는 안됩니다. 적절히 조정하는 정책이 필요한 거지요. 양면 작전이 필요합니다』
돈대로 짓다 보니 부실공사
―앞으로 남북대화를 할 때 북한측이 「왜 조문을 하지 않았느냐」, 「사과를 하지 않으면 대화를 않겠다」는 주장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하여 金大中 이사장이 「조문을 막은 것은 우리가 잘못한 것이니 북한에 대해서 오해가 없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발언하여 제2의 「조문론 시비」로 비화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정부가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정부는 「흡수통일은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만.
『다음에 얘기합시다』
―崔의원이 내부장관 시절에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났는데 우리나라에서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북한의 전쟁 도발 가능성 때문에 가스를 묻고도 안보 측면에서 표시를 못했습니다. 그래 지금 어디 무엇이 묻혀 있는지를 몰라요. 건설업자도 누구도 모릅니다.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현재의 경제능력을 기준으로 「왜 그랬냐」고 햐면 얘기가 되나 과거 우리 형편으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옛날에 집을 지을 때「돈대로 지어 줘」이랬다 카니까네. 돈대로 하다 보니 이리 된 것 아뇨』
―국방상의 이유로 가스관의 매설이 국가 기밀처럼 취급되었다는 점을 아현동 가스 폭발 때 확인하셨습니까.
『장관시절에 알았죠』
―개선방안을 내지 않셨습니까.
『알아야 내죠. 몰라요. 건설업자도 하고 나면 그만이지 몰라요. 이건 무기보다 더 위험합니다. 간첩들이 털어 버리면 (터뜨려 버리면)다 끝난단 말이지. 그 말 듣고 보니 아찔하더라 카니까네』
―崔의원을 일대 일로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崔의원을 좋아하게 된답니다. 반면에 신문이나 매스컴을 통해 崔의원을 아는 사람은 崔의원에 대해다소 나쁜 인상을 가지기도 한답니다.
『그런 소릴 많이 듣습니다. 조부장이 말씀해 주세요. 「만나 보이(만나 보니)아이더라(아니더라), 글터라(그렇더라)」 조부장이 솔직히 밝혀주세요』
『제가 가장 못난 놈이라 생각하죠』
―요즘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그 참 재미있데요. 며칠 전에 이문열씨와 밥을 한 끼 했습니다. 만나기 전에 그양반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 싶어 보게 되었지요』
―어떤 점에서 재미가 있었습니까.
『인간관계를 심도 있게 다루었데요. 만나 얘기해 보니 자기가 어릴 때의 성장 과정에서 (소재를) 얻은 것 같더구만요』
―崔의원에 관한 인물평을 보면「순발력과 상황 판단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상황을 판단하십니까.
『자기를 버립니다. 자기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아집이 생깁니다. 항상 객관적이려고 노력하지요. 또 정치인이기 때문에 항상「역사에 어떻게 투영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과거 어려웠을 때 이후락씨를 만나러 갈 때도 딱 결심하고 갔지요 그러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정확한 답이 나오지요』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 아닙니까.
『제가 가장 못난 놈이라고 생각하죠』
―崔의원을 만나는 사람은 두 가지 인상은 확실히 가지겠습니다. 만날 때 손아귀에 힘을 넣고 세게 악수하시는 것하고, 헤어질 때 90도 각도로 깍듯이 인사를 하시는 것 말입니다.
『십 몇억원으로 여섯 번의 선거를 치렀다면 모두 안 믿을 겁니다. 우리가 뭘로 했겠습니까. 「상놈 발德」입니다. 뛰어 댕긴(다닌)거요. 악수하고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돈 주고 술 주는데 우리는 아무 것도 줄 수 없다면 절이라도 크게 해야 할 꺼 아이요(할 것 아니요). 악수라도 세게 해서 기억에 남겨야 할 꺼 아이요. 내무장관 할 때도 국장들을 다 모아 놓고 이런 얘기를 했어요.「지방자치에 뜻이 있는 사람은 절부터 새로 배워라. 악수하는 법부터 배워라. (지금처럼) 그러다간 표 줄 사람 아무도 없다.」내 한테서 배운 사람은 지금 잘 한답니다(하하). 밀양에 출마하는 사람이 와서 하는 얘기가 「자기는 죽도록(인사할 때허리를) 내룬다꼬 (내린다고) 내랐는데(내렸는데) 아직까지 건방시럽다(건방스럽다)는 소릴 듣는다」 그래요. 자인시리(자연스럽게) 하는 게없는 기라(것이라)』
―형식에서 내용이 나온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하다 보면 유권자를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납니까.
『선거란 아주 기술을 요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보다 1만표 차로 떨어지고 있다 칩시다. 조직원을 모아 놓고 「우리 열심히 하자」하면 실감을 안해요. 상대방 표 5천 표를 빼앗으면 되는 것인데 자연 부락으로 쪼개면 한 동리당 두 집 차이밖에 안되요. 「두집만 니가(너가) 책임져라」이러면 「아이고, 두 집이면 하것슴미더(하겠습니다)」 그럽니다. 그런 용기를 주는거지요. 두 집은 어디 있느냐면 외딴 집입니다. 거기는 잘 안가거던요. 안 가는 데를 가야 하는 겁니다. 동네를 지날 때는 지프차를 타지 않습니다. 인간 심리가 차를 타면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 걸어가면(외딴 집도) 올라가게 되지요』
『권력은 순간이다』
―崔의원은 국회의원 선거도 해보시고 당내 경선도 해보시고 대통령 선거까지 치러 보셨는데 선거마다 접근하는 방법이 다릅니까, 아니면 기본 적인 원칙이 있습니까.
『똑같아요. (투표인) 숫자가 작을 수록 어렵습니다. 최고 어려운 선거가 뭔지 아십니까. 한 동네에 몇 가구 사는 구장 뽑는 선거가 제일 어렵습니다』
―그건 왜 그렇습니까.
『아, 얼굴 보면 빤히 아는데… 거서는(거기에서는) 전략·전술이라 카는 기(하는 것)이 참 어렵다 카니까네. 자기 행동 표시를 잘 못한다는 거요.(잘못하면) 원수지거덩』
―지난 대통령 선거운동 때 스스로 판단하기에 어떤 점에서 기여했다고 보십니까.
『일반 사조직을 총괄했습니다. 구호를 부를 때 선창하는 역할을 맡았지요』
―대중동원 말씀이신가요.
『모든 게(가장 중요한 것이) 선창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중요하지요. 자신감을 불어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둘째는 혐오스런 일은 모두 마다하지 않았어요. 그런 일을 자임해서 한 겁니다. 사조직은 돈이 필요 없는 조직입니다. 자기들이(스스로 돈을 내서) 다 썼을 걸요.』
―흔히 사람들은 지난 大選을 끝내고 金泳三 대통령 진영에 돈이 많이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던데….
『제가 아는 한 金대통령은 절대 돈을 다 쓰지 돈을 호주머니에 남겨두지 않습니다』
―당시 선관위를 비롯해 여러 단체에서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쓸 여가가 없지 않았습니까.
『그거는(그것은)…그거는 절대 오해하면 안돼요. 그때는 돈 있으면 얼마든지 썼지, 돈 없어서 못썼지…』
―앞서 「권력이나 돈을 정치인에게 물거품 같은 것」이란 뜻의 말씀을 하셨는데요.
『59년 민주당에 입당해서 자유당 망하는 것 봤죠, 민주당 망하는 것봤죠, 그 다음에 공화당 등 정권 망하는 것을 죽 봤지 않습니까. 결국 정권 자체가 영원하다고 생각하면 사람이 오만해지고 역사를 두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런 말씀은 과거 장기집권자들에 대해서 민주화 운동을 하시던 분이 많이 한 얘긴데 이제는 민주계가 정권을 잡았으니 오히려 스스로에게 경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할 말 같습니다.
『그렇죠. 스스로에게 하는 거죠. 강연하러 가면 꼭 이런 얘기를 합니다. 「권력이란 순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늘 다짐합니다. 제 자신을 보고 하는 얘깁니다』
―崔의원은 경주 崔씨의 시조는 누굽니까.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죠. 현재 제가 경주 崔씨 종친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시사 만화를 보면 군화가 아니라 등산화가 상징적으로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민주산악회」 출신들이 너무 많이 정부 및 산하 기관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요.
『「민주산악회」 출신들이 한 50명 들어갔나요. 「민주산악회」 사람들이 전국에 1백50만인데, 그래 50명이 뭐…(대단한 숫잔가요)』
―그 자리에 능력이 맞는 사람이 들어가야 되는데 그 분들의 자질이 낮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까.
『책임자로 들어간 사람은 열 명도 안됩니다. 그 분들은 어떤 사람보다도 잘 하고 있지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