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항상 자신만만하냐구요? 리더는 부하에게 우습게 보여선 안됩니다}
{돈 안 받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며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정한 것은 밀고 나가는 것―이게 나의 스타일이다}
{중견 정치인이 눈치 보는 건 용기부족 때문… 이제는 당당하게 발언할 때}
{내가 全斗煥 전 대통령께 연희동 떠나도록 권유했다… 내가 KBS에 경찰 투입하도록 요청했다}
{金泳三 대통령은 양질의 인간형}
{나는 아무리 윗 사람이라도 할 말을 안한 적은 없다. 그러나 예의를 갖춰서 한다}
<1995년 7월 월간조선>
아이디어보다 추진력 강조최병렬(崔秉烈) 서울시장에게는 별칭이 많다. 이제는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崔틀러]를 비롯해 [해결사], [돌파력], [강경파] 등. 그런 崔시장이 8개월에서 사흘 모자라는 마지막 임명직 서울시장을 지내면서 또 하나 얻은 별명은 [안전시장]. 성수대교 붕괴 이후 난파 위기에 몰린 서울시의 선장으로 취임한 첫날부터 서울 시내 지하철 공사장과 교량 현장을 누비고 다니면서 얻은 별명이다. 1959년 한국일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朝鮮日報 기자, 정치부장, 편집국장에 이르는 26년의 언론인 생활과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 문공부·공보처·노동부 장관 등 10년 6개월의 공직생활 끝에 6월30일에 퇴임하면 처음으로 [실업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지난 6월 9일과 10일 이틀간에 걸쳐 서울시장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崔시장은 그 특유의 리더십이 지닌 배경과 인생관, 오랜 기간 기자와 공직생활을 통해 본 우리 정치판의 현실과 逸話, 국가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소신있게 토로했다.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말로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표현하며 정리해 간 崔시장은 {아이디어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꿰어야 일이 된다} 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추진력이 모자란다는 평을 쉽게 듣는 언론인 출신답지 않게 힘과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는 崔시장은 {나는 일단 立志를 하면 전력투구한다} 고 말해 실업자 생활이 길지 않을 것임을 예고해 주었다.
―7개월27일간의 서울시장이었습니다. 임기가 이제 며칠 남지 않았는데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어떤 방향으로, 어떤 철학으로 일하셨습니까.
{서울 市政이 워낙 방대하고 복잡해서 한정된 시간에 모든 업무를 파악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더군요. 고민 끝에 [좋다, 내가 여기 온 게 안전 때문 아니냐. 안전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진두 지휘한다. 또 서울시민이 가장 짜증내는 것이 교통문제다. 조금 여유가 있으면 교통문제도 챙기겠다. 그밖의 문제는 여기 있는 전문가들을 활용해야겠다] 고 정리했습니다. 간부 직원들을 불러놓고 선언했습니다. [지금부터 나는 안전문제와 교통문제를 챙긴다. 나머지는 여러분들이 챙겨라. 나에게 보고할 필요도 없다. 그 대신 여러분이 돈 먹고 일이 생긴 데에 대해서는 절대로 변호하지 않겠다.
그러나 여러분이 돈 안먹고 접시 닦으려다 접시를 깬 경우엔 내가 대신 감옥 간다. 여러분들이 내게 결재 받으러 와서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니까. 여러분 양심에 따라 가져 와라. 내가 무조건 사인한다. 일단 사인하면 내가 책임진다. 감옥을 가도 내가 간다. 그것이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영광스러운 거다] 라고 말했습니다. 대신에 감사실을 시켜 간부들이 하는 일을 조용히 확인했습니다. 그러니까 복지부동(伏地不動)이 슬슬 풀어지더군요}
―퇴임 이후의 계획은 갖고 계십니까.
{너무 바쁘게 지내느라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시장된 뒤 못해본 골프도 치면서 쉬려고 합니다. 7월 중순쯤 몽골울란바토르에서 열리는 [한몽(韓蒙)학술회의에 열흘쯤 갔다 와서 집사람 소원도 풀어줄 겸 성지순례나 갈 생각입니다.]}
{돈에는 비밀 없다}
―천주교를 믿으십니까.
{아내가 천주교 신자입니다. 이 사람이 남편 실업자 되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요즘 성지순례 간다고 좋아합니다}
―하와이에 가신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개인적 친분이 있는 하와이 동서문제연구소 부총장 趙利濟 박사가 시장 임기 끝난 뒤에 잠시 와서 책이나 보고 쉬라고 초청장을 보내온 것을 기자가 보고 유학간다고 쓴 모양인데, 아직은 아무 구체적 계획이 없습니다}
약력을 보면 59년 신문기자가 된 뒤 36년 동안 편집국장, 정무수석, 장관, 국회의원, 시장까지 한번도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36년 만에 처음 실업자가 되는 셈입니다.
{그런가요, 아직 실업자가 도어본 적이 없으니 처음이네요. 공직 기간만 따지면 85년 1월 이후 10년 6개월 만에 실업자가 됩니다}
―36년을 회고해 보면 어떻습니까.
{밖에서 보면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 나름대로는 내게 맡겨진 일은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로 일했습니다.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정하고 일단 결정된 일은 뒤돌아보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골프 말씀을 하셨는데, 崔시장께서는 공직자 골프 금지령을 내렸을 때 金대통령께 [나는 골프를 쳐야겠다]고 말해 허락을 받았다지요.
{허락받았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고…. 사정 바람이 사나우니까 아무도 골프를 안가더군요. 골프장에서 만난 국회의원은 이춘구(李春九)씨뿐이었어요. 저도 주중에는 안하고 주말에 골프장에 갔습니다. 그 무렵인데 金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골프 친다고 이실직고를 했지요. 대통령께 [정치하는 사람이 골프 치면서 사람도 만나고 쌓인 피로도 풀고 좋지 않습니까]라고 말씀드렸지요. 金대통령이 아무 말씀도 안 하시더라구요. 그래도 뭐 나는 신고했으니까. 그 뒤로 골프 계속 쳤지요}
―시장하시는 동안 평균 수면시간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잠은 대개 11시, 12시 정도에 자고 새벽 5시부터 5시 반 사이에 일어나니까. 한 5시간, 많이 자면 5시간 반 정도 잤나요. 저는 잠은 많이 자지 않아요. 그 대신 한번 잠들면 나무토막이 됩니다}
―崔시장은 항상 자신만만하고 낙관적이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도감을 줍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까.
{어떤 정책결정을 하더라도 그 과정은 대단히 신중하게 하되 일단 결심하면 거기에 전력투구하고, 안되면 손 턴다는 각오로 일했습니다. 이런 각오로 일하는데 겁날 게 뭐가 있습니까. 나라를 위해 옳은 일 하다가 내가 쓰러지면 그게 더 명예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공직자들 중에는 돈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과 명예를 같이 가지려고 하니 그게 됩니까. 그러니 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쇠고랑 차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돈이라는 것은 절대 비밀이 없습니다. 비밀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멍청한 사람입니다}
―말씀을 요약해보면 어느 경우에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 직무와 관련해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 신중하게 생각해 결정하되, 결정한 것은 과감하게 추진한다. 이 세 가지 원칙인데 그걸 지키기가 어렵잖습니까.
{어렵다면 어렵겠지만 그거야 본인이 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朴대통령 높게 평가}
―재산은 얼마나 신고하셨습니까.
{25억원이 좀 넘죠. 그중에 18억이 땅 한 필지입니다. 어떻게 해서 18억짜리 땅을 가졌느냐 하면 이렇습니다. 1974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때 역곡에 조선일보사 社友村을 만든다고 해서 그때 당시 평당 1만8천원씩 주고 몇 차례 분할해서 돈을 치르고 2백평을 샀습니다. 그때는 역곡이 조그마한 동네였어요. 나중에 도시가 커지니까 그 자리가 시의 중심지대가 돼, 상업지구가 되더군요. 지금은 공시지가로 평당 9백만원이랍니다}
―건물은 안 짓고 땅만 갖고 있는 겁니까.
{조그만 가게 하나 지어서 세놨습니다. 내가 실업자되면 살 밑천입니다}
―세가 얼마나 들어옵니까.
{매달 한 3백만원 될까}
―여의도 공원 개발 계획과 관련해서 공원 이름을 [朴正熙 공원]으로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셨다지요.
{그건 잘못 알려진 것이고, 제가 낸 아이디어는 광복공원입니다. 다만 여의도 개발 공청회를 한다기에 시장 자격으로 인사말을 하면서 [여의도를 런던의 하이드 파크, 뉴욕의 센트럴 파크처럼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어달라, 공원 이름도 여러분이 지어달라]고 했지요. 그 얘기를 하면서 내 생각에는 95년이 광복 50주년이니 그걸 기념해 광복공원이라고 했으면 하는데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좋은 의견을 내달라, 예를 들어 여의도 광장을 만든 사람이 朴대통령이니 [朴正熙 공원]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고 그밖에 무어라고 좋다고 한 겁니다}
―朴正熙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정치적으로는 지독한 독재를 한 사람이니 우리 사회에서 좋게 평가받기는 어렵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나는 朴正熙 대통령이 유신 1기만 하고 물러났더라도 사정이 달라지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분리해서 평가하더라도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총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을 합산해서 朴正熙 대통령을 어떻게 보십니까.
{두 가지를 합해서 봐도 나는 朴대통령에 대해 상당한 평가를 합니다}
외국감리 시켜 부실공사 버릇 고치기로
―시장 취임 후 관훈토론이나 언론과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지하철, 교량 등 안전문제에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던데요. 과외공부라도 한 겁니까.
{제가 안전에 관해 아는 게 있습니까. 처음 보고를 받는데 무슨 다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지하철이 어떤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구요. 그래, 좀 과장해서 얘기하면 11∼12월은 다리 밑으로 지하철을 공부하러 돌아다녔습니다. 지하철 터널 속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지하철 기관사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몰라요. 지하철 기관사들에게 어디에 물이 샌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고 지하철 운행이 끝나는 밤 12시가 되면 그 구간을 공사한 회사의 오너를 오라고 해서 같이 돌아다녔지요. 곳곳에 다 오너들을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오너가 오니까 공사한 회사에서도 한 부대가 옵디다. 교수도 오고 전문가도 오고…. 그렇게 모여서 현장에서 새벽 3시, 4시까지 토론하는 겁니다.
―10부제, 버스전용차선제 등 교통대책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서울시 교통 대책에 관해서는 아이디어라는 아이디어는 다 나와 있습니다. 정책이라는 구슬을 꿰야 좋은 목걸이가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구슬을 꿰는 게 중요하고 일단 꿴 뒤에는 설득하고 모든 것을 무릅쓰고 끈질기게 밀고 나가는 것이 요체입니다. 그렇게 해서 57가지 대책을 수립했습니다. 거기에 보면 단기, 중기, 장기 대책이 다 있습니다. 버스전용차선 단속을 위해 3천명의 市직원이 나가서 감시하고 있습니다. 감시하지 않으면 지키질 않으니까요}
―지금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까 崔시장의 일하는 방식이 짐작이 갑니다. 우선 최고 관리자 입장에서 집중적으로 챙길 것은 챙기고 나머지는 실무자들에게 과감하게 맡긴다. 그 다음에 감사기능을 가지고 체크하고 현장확인을 많이 하고 일단 정한 것은 끈질기게 한다…. 이렇게 요약될 것 같습니다. 서울시의 안전에 대해서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 놓은 사례가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건설 분야는 공무원, 시공회사, 감리기술자, 설계회사, 관련학회 등이 누구 잘못이라고 어느 한쪽을 비난할 수 없을 정도로 얽히고 설켜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결론이 외국 감리회사에 감리를 맡기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엉터리로 공사한 사람들이 사우디 가서는 멀쩡하게 공사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외국감리 덕분이라고 하더군요. 우선 가양대교 건설에 외국감리를 도입해서 계약했어요. 영국의 맥도널드라는 세계적인 감리회사가 들어옵니다. 대충 공사하다간 아마 혼날 겁니다. 제가 한국의 감리하는 사람들에게 한동안 술안주감이 됐다더군요. 사대주의자라느니 예산을 낭비한다느니 별 흉칙한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안하면 안됩니다. 앞으로는 서울시 공사 중 어려운 공사, 즉 지하철 공사, 교량 공사는 외국인에게 감리를 시켜야 합니다. 한강 다리 등 기존의 시설물에 대해서도 국내 전문가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에게 안전진단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모든 교량에 교적부를 만들었습니다. 교량마다 설계도, 시방서, 누가 무슨 문제를 발견했고 어떻게 보수했다는 내용이 전부 서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매뉴얼을 만들어서 자기가 담당하는 다리는 정해진 매뉴얼대로 체크해서 사인을 해 교적부에 끼우게 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시설물 관리 실명제입니다. 지하철 공사와 관련해서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한강 밑에 지하철을 뚫고 있는 곳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하저를 통과할 때 물의 하중만 해도 엄청납니다. 일본 같은 경우는 큰 강밑을 통과할 때는 지하 1백m에 터널을 뚫어요. 우리는 수심이 깊은데는 강바닥에서 불과 15m밖에 안됩니다. 들어가 보면 애들 오줌 누는 것처럼 물이 새나옵니다. 그 안에 서 있는 게 불안했습니다.
건설회사 책임자 보고 [이래선 안된다. 세계 최고의 터널 전문가를 불러 와라] 그래서 시공사 부담으로 오스트리아의 지오컨설트(GEOCONSULT)라는 회사를 불러 왔습니다. 지오컨설트가 한 달 동안 점검하고 갔습니다. 세 군데만 보고 가서 권고, 지적한 것이 조그만 책 한 권입니다. 그 사람들이 지적한 대로 1백% 보강공사를 했습니다.}
―15m란 깊이는 괜찮습니까.
{일단 굴을 뚫고 나면 그 안에 원통구조물이 들어갑니다. 이 원통구조물의 콘크리트 강도를 높이고 두께를 두껍게 하면 이론적으로는 문제가 없답니다. 또한 문제가 많았던 당산철교의 경우 한·미·일 전문가들이 회의 결과에 따라 모두 보강은 했지만 다리 진동을 이용해 안전을 테스트하는 첨단기술을 가진 미국회사(SANTAFE)를 얼마 전 불러다 정밀검사를 시켰습니다. 종합보고서가 7월 초에 올 예정입니다}
{국립박물관 이전 예정지는 습지}
―다른 민선 시장이 들어와도 외국감리제도라든지 단계별 준공검사제도를 계속 지킬 수 있게 법제화가 됐습니까.
{서울시의 경우 그런 문제는 이제 상식입니다. 단계별 준공검사는 이미 규정으로 자리를 잡았고, 외국감리도 건설교통부에서 규정을 바꿔 용이하게 해주었습니다}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안전은 결국 돈 아닙니까.
{돈과 그 공사를 하는 사람들의 프로페셔널리즘입니다. 그게 안되어 있습니다}
―공무원들의 부패도 한몫 하는 것 아닙니까.
{돈받는 공무원이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푼돈 수준입니다. 기본적으로 입찰가격이 너무 낮아요. 정부 공사 평균 낙찰가격이 내정가의 57% 수준입니다. 제대로 공사가 되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어려운 공사에는 외국감리를 붙여야 합니다. 가스관 매설공사 같은 것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무조건 자유경쟁을 시키라고 해서 가스업자는 뒷전이고 거의 전부 수도관업자가 시공합니다. 공사는 주로 밤에 하니 감독자도 없지, 하다가 돌이 나오면 적당해 해버리고…. 일본만 해도 도시가스관은 전문회사만 시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외국감리가 들어오면 공사비는 늘겠습니다.
{우선 감리비용이 두 배 이상 들 겁니다}
―남산 제모습 찾기는 盧泰愚 대통령 말기에 결정됐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계신 것 같은데….
{저는 남산 제모습 찾기에 반대한 것이 아닙니다. 지난번 외인아파트 철거에 1천6백억원을 투입했습니다. 시민 세금 1천6백억원이 얼마나 귀중한 겁니까. 얼마나 급한 데가 많은데…. 그 돈을 멀쩡한 건물 때려 부수는 데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산 제모습 찾기라는 확실한 정책만 세워놓고 낡아서 쓰지 못하게 되면 그때 가서 철거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아름다운 인공은 사실 자연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무조건 인공은 나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철거하고 용산가족공원으로 신축해서 옮기는 것을 반대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반대의견을 대통령에게 말씀하셨습니까.
{얘기할 기회가 없었으니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 나는 중앙청 건물을 허는 데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우선 박물관을 지어서 그 속에 있는 문화재를 온전하게 옮겨놓고 해도 되지 않느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용산가족공원은 적지가 아니라고 보십니까.
{거기가 습지라고 하더군요. 기술이 발달해서 습지에도 지을 수 있다고 하긴 하던데. 저는 그 습지에다가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재산을 갖다놔도 되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서울시청 공무원이 지금 5만명이죠.
{5만3천명입니다. 여기다 공사직원 등 사실상 시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는 사람을 더하면 7만1천명에 1년 예산이 8조원입니다}
{밖에서 들어보니 언론에 대한 비판은 가혹합니다}
―이런 큰 조직의 톱 매니지먼트에서 조직을 끌고 간다는 게 대단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서울시라는 행정조직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밖에서 서울시를 볼 때는 복마전이고 공무원들은 伏地不動이고 수준 낮고, 이런 것만 생각했습니다. 들어와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명령체계가 서 있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훈련도 되어 있더군요.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면 [맘모스]입니다. 머리를 눌러도 꼬리가 움직이려면 한참 있어야 하는 조직입니다}
―조직이 한 손에 장악되지 않습니까.
{업무 내용이 너무 다양하고 이권과 밀접합니다. 일반 정부 부처의 경우 장관의 결재가 이권과 관계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거리도 멉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시장이 사인하면 시장실 문만 열고 나가면 이권이 됩니다. 현장에 가보면 市공무원들의 일상 공무가 다 이권에 관계된 겁니다. 한번 보세요. 서울 시내 술집, 식당이 몇 개교 이발소, 목욕탕이 몇 개입니까. 이게 전부 서울시가 관장하고 있는 겁니다. 그뿐 아니라 도시계획, 환경문제 등 모든 게 이권과 밀접되어 있습니다}
―서울시 경영진단을 의뢰하셨다지요.
{지금 하고 있습니다.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는데, 제가 시장이 되고 민선시장한테 정말 꼭 필요한 선물이 없겠는가 생각해 봤습니다. 민선시장이 들어오면 이 방대한 조직을 한번 철저히 분석해서 재편해야 될 것 아닙니까}
―결과가 나왔습니까.
{일단 개괄적인 보고만 받았고 최종보고는 6월15일입니다. 덮어놨다가 민선 시장에게 넘길 겁니다. 미리 공개하면 선물이 아니잖아요}
―대충 인원이 많다는 결론 아닙니까.
{현재 조직을 전제로 보면 인원은 많은데 동경처럼 새 서비스 수요를 생각하면 인원이 더 늘어나야 된다고 하더군요}
- 단국대 풍치지구 해제 문제로 상당히 곤욕을 치르셨는데 지금도 그 소신이 정당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전통있는 큰 대학인 단국대가 도시 밖으로 옮겨가는 것은 서울시로서는 상당히 바람직한 일입니다. 당연히 도와줘야지요}
―언론의 시각과 崔시장의 시각이 부딛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崔시장의 생각은 대학이 도심에서 외부로 나가면 교통문제 등 여러 가지 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해제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지만 언론의 시각에서는 일종의 특혜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건설업자에게 특혜를 주는 것은 문제이지만 도심에서 나가겠다는 대학을 도와주고 대신 그 지역에 법에 따른 각종 규제, 즉 고도제한을 하면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공개적으로 지시하여 공론화함으로써 부도 위기에 몰렸던 단국대학이 예정대로 옮겨갈 수 있게 되었고 그 자리에 대해서는 철저한 고도제한 조치를 가했습니다}
―25년 동안 언론인 생활, 그 후 10년 동안은 정치인과 행정가로 계셨습니다. 기자와 취재원 양쪽을 다 경험하셨으니 언론을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입장입니다. 우리나라 언론을 어떻게 보십니까.
{최근에 증면이 이루어지면서 기자들도 많이 충원이 됐습니다만 기자에 대한 직업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기사 쓰는 분량은 과거에 비해 엄청 늘어나니 자연히 사실확인이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과거에도 과장보도, 추측보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밖에서 언론에 대한 비판은 가혹합니다. 우선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대책이 없는 동네라고 얘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