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 선거의 최대 승리자 김종필 자민련 총재(1)

이제 우리가 한국 보수층을 대표한다. 15大 大選에도 우리는 당연히 대비할 것이다 - 6·27 선거의 최대승리자 金鍾泌 自民聯 총재

그는 {국회를 중심으로 하지 않는 정치는 국민을 소외시키는 대통령 1인 독재에 불과하다면서 그런 독재를 보장하는 대통령중심제는 이제 한계에 왔다}고 주장했다

{다음 대통령의 사명은 의회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
{미국은 북한의 위협에 넘어가고 한국은 미국에 회유됐다}
{국립박물관 졸속 철거는 우선 순위 모르는 정치인들 작품}
{세대교체는 대통령이 원해서 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원해야 되는 것}
{우리 선인들이,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최선을 다한 결과가 오늘인데, 金대통령, 어제를, 오늘을, 역사를 사랑하십시오}

<1995년 8월 월간조선>

다시 역사의 한 가운데로

1995년 7월10일 오후 3시부터 3시간 동안 여의도 국회內 의원회관 221호실에서 이뤄진 金鍾泌 총재와의 인터뷰는 올해 들어 세 번째였다. 지난 1월14일 오전 그의 신당동 자택에서 있었던 첫 인터뷰는 아직 민자당 대표이던 金씨가 대통령으로부터 대표직 사퇴통보를 받고서 공개적인 공세를 막 펴기 시작하던 때였다. 신당창당 결심을 한 뒤였지만 그것을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金대표는 金대통령을 겨냥해 {세계화가 사람잡는 무기냐} {사람은 헤어질 때 잘 헤어져야 한다}고 항변조의 말들을 많이 했다. 그때 정치권의 대체적인 예상은 2인자 체질에 너무 익숙해진 金씨가 신당창당이란 모험을 감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었다. 그래서 정계은퇴설도 나왔고 그 인터뷰 기사의 큰 제목은 {내 사전엔 [정계은퇴]란 단어가 없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그러나 인터뷰 기사의 끝에다가 [언론의 왜곡·편향보도를 비판하면서도 오랜만에 언론의 초점이 자신의 한 몸에 쏠려 있는 순간순간들을 즐기는 것같이 보였다]는 감상을 적었다. 기자는 또 [구경하는 입장에선 아직 한 번도 제대로 표현된 바가 없는 金鍾泌씨의 승부근성이 당대 최고의 승부사인 金泳三 대통령과 맞붙어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흥미진진하다]고 덧붙였었다.

두 번째 인터뷰는 2월12일 역시 그의 자택에서 10시간에 걸친 것이었다. 金鍾泌씨가 이미 신당창당 선언을 한 며칠 뒤였다. 그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썼던 [창당선언에 즈음한 발표문]을 기자들이 너무 작게 취급한 데 대하여 크게 섭섭해하고 있었다. 이날 金鍾泌 총재는 완전히 출전을 앞둔 야전사령관의 자세로 바뀌어 있었으나 그를 따라 민자당을 탈당한 현역의원이 5명밖에 안돼 다소 막연하고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세 번째 인터뷰 날 의원회관 221호실의 분위기는 일변하여 개선한 장수와 그 주변의 들떠 있는 열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3일 전 있었던 金총재의 국회연설은 모처럼의 명연설로 평가돼 시중의 화제가 되고 있었고, 물론 언론에서도 이번엔 크게 취급했다. 민자당 국회의원들이 인사차 들러 기자들 눈치를 별로 보지도 않고 金총재와 인사를 나누는 것이, 무섭게 달라진 한국정치의 권력풍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6·27선거에서의 민자당 참패가 金鍾泌씨의 탈당과 自民聯 창당에서 비롯되었고, 그 선거의 최대승리자가 金鍾泌 총재가 되었다는 것은, 한국정치사상 최단시간內의 대역전승으로 기록될 만하다.

처음으로 정권과 마주서다

더구나 金총재가 충청권 3개 시·도지사 이외에도 강원도 지사까지 당선시키고 한국 보수층의 일각에 단단한 교두보를 확보한 것은 [보수층의 분열]이란 한국정치 구조상 중대한 지각변동을 뜻하는 것이었다. 金총재와 金泳三 대통령은 앞으로 2년여 누가 한국 보수층의 패권을 잡느냐 하는 치열한 권력게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1988∼89년의 1盧3金시대나 1980년 봄의 불안정한 3金시대와는 비교가 안되는 완벽한 3金구도의 링 안에서, 세 사람을 합산하면 1백년도 넘는 정치연륜의 프로들이 벌이게 될, 인생의 최후승부일 수밖에 없는 向後 2∼3년의 쟁패는 장열한 드라마가 될 것이다. 만약 근대화 세력의 창시자 朴正熙의 맥을 있는 金鍾泌 총재가 정권을 잡는다면 그것은 드골의 보수주의를 이어받은 수제자 시라크의 집권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역사의 역전극이 될 것이다. 1961년 이후 처음으로 한 정권과 마주한 사람으로 돌아온 金鍾泌 총재는 선거유세의 후유증인 듯 목이 약간 쉬어 있었다. 그는 자민련이 석권한 지역을 한반도의 그린벨트라고 표현하면서 이 벨트를 넓혀 가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확확 따라옵디다}

―6·27선거에서 大勝하셨는데, 金총재의 생애에 가장 기쁜 날은 아니었습니까.

{난 그렇게 기쁘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못했어요. 우리를 지지해준 국민들에게 고맙다는 말만 연발했으니까요. 상상을 초월한 지지에 기쁨보다는 이런 일도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 앞섰습니다}

―예상은 어느 정도 하셨습니까.

{충청권에서는 이기리라 보았지만 대전같은 곳은 조금 어렵게 이길 것이라 봤고, 충청북도는 초기에 정말 어렵게 고전하다가 조금 이길 것 같았지요. 강원도도 거의 마찬가지라 봤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조직을 만들기 전에 선거가 시작됐으니 말입니다. 겨우 創黨했고 충청도 이외는 두서너 군데 지구당을 創黨한 것뿐이었지 않습니까. 망망대해에 고도(孤島) 하나라도 만들겠다 해서 지원유세를 내려간 곳이 경상북도 봉화였어요. 주민들이 우릴 보고는 대체 무슨 당이냐는 겁니다. 黨名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을 정도였어요. 그래 내가 [김종필黨]이라 대답하니 [그렇다면 알아듣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유권자들이 서해부터 동해까지 그린벨트를 만들어 준 겁니다}

―여론조사에서도 대전은 처음부터 염홍철 민자당 후보가 리드를 했고 충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놓고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여론조사 자체는 그리 정확하지 않아요. 넥타이 맨 사람들의 의견이 대부분이고 실제 바닥 사정은 또 다릅니다. 후반에 가서 내가 多衆연설을 좀 했어요. 그랬더니 확확 따라옵니다. 그게 막 보여요. 그것을 투표날까지 밀어붙인 겁니다}

[핫바지]론

―신문보도를 보면 당시 연설은 두 가지를 강조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경상도 사람이 충청도 사람을 [핫바지라 부른다]고 [핫바지]란 말을 강조했고, 다른 하나는 [외국에서 쌀을 사서라도 북한을 지원해 주겠다]는 대통령의 말을 비판한 점입니다. 효과를 많이 보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도 경상도이지만 경상도 사람이 충청도 사람을 두고 [핫바지]라 부른 적이 없는데, 이것은 조금 심한 발언이 아닙니까.

{아녜요, 아니야. 모의원이 한 이야기가 신문에 먼저 났던 겁니다. 내가 얘기하기 전에 벌써 충남 일원에서는 그 말 때문에 물의가 나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래서 내가 천안 유세 때, [지각없는 경상도 사람이 우리보고 핫바지라 그랬는데 도대체 핫바지가 뭐냐]고 청중들에게 물었어요. 그랬더니 [아, 앞 뒤 없는 바지가 핫바지 아니냐] [배알도 없는 놈이란 말 아니냐]고 청중들이 고함으로 대답하더라구요. 그래서 [핫바지라고 누가 표현했다면 그 사람을 공격하기 전에 반성부터 해보자. 우리가 얼마나 줏대가 없었으면 핫바지 소릴 들어야 했겠느냐. 우리 스스로가 생활 면에서 줏대 없는 사람들이란 소릴 들을 만큼 줏대가 없었느냐를 반성해 보자]면서 천안에서 유세를 했어요. 그런데 날 공격한다는 언론이 오히려 계획적으로 우리는 때리기 위해 [핫바지, 핫바지] 하며 우리가 얘기한 것보다 더 많이 썼습니다. 그게 역효과가 난 것이지요.

나는 모의원이 한 말을 두고는 청중들에게 공격하라고 얘기한 적이 없어요. 그 반대로 자성하자, 줏대를 갖자고 했어요. 그리고 쌀문제는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얘기했어요. 이게 무슨 소리냐고. 남북 협력기금 2천억원이 있다 손치더라도 거의 전액을 쓰면서까지 쌀을 북쪽에 보내려 한다면 왜 한 마디라도 국회에서 얘기하지 않느냐 말이오. 국회에 얘기한다는 건 국민들에게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 형태가 다 문민독재(文民獨裁)라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대통령 중심제입니다. 이 모든 일이 산 사람, 대통령에게서 빚어진 겁니다. 4천5백만 전 국민이 이 한 사람에게 매달려 있는 격입니다. 정말 국정을 민주주의대로 한다면 의회민주주의를 살려야 하는 게 아니오. 유세장에서 쌀 지원 문제를 두고 이렇게 얘길했더니 앉아 있는 농민들이 소리치며 난리가 납디다. 그건 대통령이 잘못한 거요. 더구나 北京서 비밀회담 한 것부터 쌀 싣고 가다가 인공기 게양한 것까지 모든 것이 잘못된 겁니다. 선장이 참 어려운 곳에 쌀을 싣고 가는데, 그 선장에게 先은 이렇고 後는 이렇다고 알려줄 것은 알려줬어야 해요.

그런데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고 올려보내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거기서는 무장한 자가 올라와 설쳐대니 선장은 [난 죽었구나] 생각이 들었겠지요. 알려줘야 할 것을 알려주지도 않고 올려보낸 사실을 선장이 그 자리서 알았더라면 자기 나라를 얼마나 원망했겠습니까. 그런 식의 정치가 어딨습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대통령 자신이 갖는 독단과 전횡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대통령 중심제는 유일체제로서 한계가 온 거 아니냐는 겁니다. 이제는 참된 의회 민주정치를 하기 위해서라도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처칠은 [최상의 것은 아니지만 의회 민주정치밖에 없다]고 했답니다만, 의회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는 의원내각제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일 당장 의원내각제를 하자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대통령이 자기 대통령하는 동안에는 헌법 고치지 않겠다고 버티니 헌법은 당분간 고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 지금의 제도를 따르면서 내년, 내후년에 도전을 할 겁니다. 그러다가 15대 국회에 가서는 본격적으로 당 차원에서 국민을 향해 설명을 드리고 이해를 얻어 내각제를 구현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겠다는 겁니다. 유세장에서 이런 얘기를 들은 청중들도 [그래, 국회하고 상의하는 게 의원내각제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지역감정은 곧 애향심

―우리가 북한에 쌀을 준다고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형편에서 비상시를 감안해 얼마만큼 줄 수 있는지 따져본 적 있습니까. [무조건] 운운했지만, 그 쌀이 개인 겁니까. 다 정해져 있어도 막상 실행할 때는 국민들에게 어떻게 쓸 생각하느냐고 물어야 합니다. 그러면 반대할 국민들이 어딨습니까. 난 그 절차가 틀렸다는 겁니다}

―충청도 고향 분들의 지지를 압도적으로 받은 것이 이번이 두 번째죠. 87년 大選 때와 88년 총선 때인데 지금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지금이 월등했어요. 대단했어요}

―선거결과를 분석한 청와대 측에서는 지역할거주의에 원인을 두고 있고 이 때문에 선거가 아주 나쁜 모양새로 됐다고 합니다만….

{난 거기에 동의하지 않아요. 지방자치는 지방 권리입니다. 같이 가는 거에요. 엄격히 말해서 충청도만 그런가요. 다른 지방은 안 그렇습디까. 자기네들 선거구가 그 사람들 기반 아닙니까. 그것을 더 넓힌 것이 道, 더 넓히면 나라가 되는 게 아닙니까. 거 공격하기 위해서 하는 소리지, 그것 때문에 열기가 더 나왔다고 보진 않아요. 다만 이번에 보니까, 나를 그렇게 못되게 했다는 데 대한 공분(公憤)이 작용했다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어딜 가나 그 얘기니까. [信義가 없고 義理가 없고, 그래서 틀려먹은 사람이다. 한 번 혼내주자] 하는 소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표도 87년보다 월등 많이 쏟아져 나왔어요}

趙淳 후보 지지한 배경

―金총재 말씀은 지역주의와 지역감정은 공기처럼 원래 있는 거니까 그것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지방자치를 실시하면 오히려 승화시킬 수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맞는 얘깁니다. 현상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정치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서 덮어놓고 선거패배의 분을 그런 데서 푼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金총재의 주장은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나온 지역주의와 지역감정에 대한 주장과는 색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없애자고 해왔는데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지역발전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장치로 지방자치를 운용하자는 말씀이군요.

{사실 나 역시 지역감정 없애자고 누구보다 앞서 주장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방자치 하면 그것을 지역발전으로 승화시킬 유형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중앙정부는 국가 단위에서 이것을 어떻게 잘 조절할 수 있겠는가에 신경을 써야지요. 임의대로 없애려 한다고 됩니까}

―自民聯이 조순(趙淳) 서울시장 후보지지를 선언했을 때 한국의 보수층 인사 중 한 사람이 아주 실망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념적으로 가장 다른 분들이 金大中 이사장과 金鍾泌 총재라고 하는데, 아무리 선거에서 유리하다더라도 어떻게 정치적 신념을 수정해서까지 趙淳 후보를 지지할 수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정치를 너무 계산적으로 하는 분]이라는 비판이 그것입니다.

{그건 그 사람이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립니다. 자, 보십시다. 서울시장 세 명 중 누굴 찍어 주겠습니까. 게다가 趙淳씨가 공산주의잡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趙淳씨는 前 정부에서 부총리까지 지낸 사람입니다. 게다가 민자당에 계속해서 맡길 수는 없다는 이유로 趙후보를 빼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전부 무효표를 낸다든지 선거를 다시 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러니 거기서 누굴 뽑겠습니까. 그래도 나은 건 趙淳 후보입니다. 그 사람 서울시장 시키자 이랬던 겁니다. 趙淳 후보는 선거기간에도 자기 黨에서 마땅치 않은 일이 있자 마구 비판하던 사람입니다.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으로 봤고, 서울시민들에게는 경제적 측면에 우선하는 기능이 요구되는데, 그런 면에서 趙淳 후보가 좋다고 본 겁니다. 趙淳 후보와 金大中 이사장과 연결시킬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를 지지하는 서울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우린 어떡해야 하느냐. 너희는 후보도 안냈으니]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이야기를 한 겁니다. 우리가 趙淳 후보를 지지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 이외에 살 붙이고 뼈 붙여서 얘기하는 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겁니다}

{보수층 분열은 다 金대통령 책임입니다}

―이번 선거를 全國 단위로 봤을 때 특이한 현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보수층의 변화입니다. 지난 大選 때는 보수층이 단결해서 3당 합당 구도를 통해 金泳三 대통령을 지지했었지요. 결국 보수층이 金泳三 대통령을 만들어 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金총재께서 자민련을 만드는 과정에서 보수층이 분열된 현상을 나타냈습니다. 이번 6·27 선거기간 중 어떤 지역에서는 金泳三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金大中씨를 지지하는 등 보수층의 분열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보수층이 분열하게 되면 金大中씨와 같은 이른 바 [진보] 쪽에 가까운 분들이 정권 획득에 유리한 구조가 됩니다.

{보수세력이 분열됐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 책임은 저쪽 金泳三 대통령에게 있어요. 미덥잖은 일을 해왔거든요. 지금도 믿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겁니다.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가겠어요. 우리에게도 일부 왔습니다만, 유보적인 사람들이 많을 게요. 내년에 그런 현상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잘 지켜봐야 할 겁니다. 우리가 趙淳씨를 지지했어요. 우리가 보기에는 최소한 10∼13% 작용했어요. 우리식으로 본다면,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박찬종 후보가 될 가능성이 컸다고 봅니다. 우리가 趙淳씨를 지지했던 이유는 민자당이 더 이상 국민의 신뢰 속에 다음 정권을 담당할 수 있는 정당으로 보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걸 보고 조금 심하게 보는 사람들은 민주당과 연합하는 게 아니냐고 합디다만 천만에요. 이것은 對與 공세를 위해 필요할 때 뜻을 같이 할 수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한 겁니다}

―지금까지 한국을 이끌어 온 것은 보수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인구비례로 봐서 약 70%를 차지합니다. 현재 한국의 보수층은 민자당과 자민련, 그리고 개인지지 성향으로 말한다면 대체로 金泳三 대통령과 金鍾泌 총재로 나눠져 있습니다. 보수층이 분열됐다는 것은 정치구조가 불안정하게 형성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大選에서는 불안정한 정치 구조를 안정화시키려는 쪽으로 가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분열된 보수층을 끌어안는 정당, 전체 보수층의 대표가 되는 정치인이 차기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다음 총선은 보수층의 패권을 누가 잡는가를 결판내는 선거가 될 것 같은데요.

{이제 우리나라에서 보수세력은 자민련 아닙니까. 우리가 다 끌어안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겁니다}

{保守란 日新, 又日新하는 것}

―자민련에 소속된 면면들이 지금 우리나라의 이 큰 보수층을 대표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지금은 우리가 보수층을 대표할 만큼 크질 못해요. 우리가 같이 해보고 싶은 사람들은 현재 외부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금년 말까지 2백명을 목표로 당세를 확장하는 데 전력투구할 겁니다}

―보수라면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치성향을 가진 분들입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자민련의 구성을 보고는 수구적(守舊的)인 혹은 權力기생적인 집단에 가깝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守舊가 어디 있습니까. 매일 매일이 日新이요. 日新, 又日新인 겁니다. 자꾸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 생활의 의지요, 근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守舊가 됩니까. 우리의 保守라는 것은 소위 되지도 않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나 표방해 가지고서 세상을 어지럽힌 것을 거부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새로운 발전을 추구해가는 그러한 의지가 바로 보수의 근간입니다. 게다가 한국적인, 지켜야 할 傳統을 차질 없이 지켜 나가고 거기서 넓혀 나가는 것을 우리는 保守라 합니다}

―그러나 保守가 保守로서 존재하려면 자기 개혁과 자기 정화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민련의 경우 이런 자기 개혁, 자기 정화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충분히 보일 시간적 여유도 없었지요. 앞으로 보여갈 겁니다. 자기 개혁이라 얘기하지만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봉사를 하고, 영역을 얻어내고, 그걸로 국민들에게 果實을 조금이라도 보태드릴 수 있는 이런 일련의 노력이 개혁과 더불어 발전, 연결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의 보수층은 경제개발을 주도한 세력으로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반면 권력에게 약해 權力기생적이란 말을 듣습니다. 그 이유는 부패로 인해 약점이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면 좌익들의 도전에 대해서 당당히 대응해야 하는데, 우리 보수층들은 약점이 잡혀 좌익들의 발언에도 입을 닫고 가만히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보수층은 숫자는 많지만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 정치를 맡는 주체세력으로서 이런 보수층을 그대로 인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자민련이 표방하는 보수도 과거의 문제점을 갖고 있는 보수층과 어떤 차별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날 뭐 한 사람들을 덮어놓고 영입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은 외곽에서 뜻이 있으면 보태주면 된다 이겁니다. 우리가 창당(創黨)하고 당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신진기예(新進氣銳)라고 했습니다만, 20代 가지고는 안됩니다. 30代도 좀 부족합니다. 결국 40∼50代인데,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인간적인 면에서 일할 수 있고 분별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영입하는 중입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