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겐 경천애인(敬天愛人)이란 말을 권해드리고 싶다}
{15대 총선에 꼭 출마하고 싶었다}
{내가 아버지를 만나는 건 정치적 독대가 아닌, 부자지간의 만남이다}
{金대통령은 10시 반에 취침… 조깅시간 10분 줄여}
{국정에 너무 몰두하시는 아버지의 건강이 걱정이다}
{나는 安企部 보고서 안본다}
<1995년 9월 월간조선>
{공개적으로 출마한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金泳三 대통령의 둘째 아들 김현철(金賢哲)씨(36)가 입을 열었다. 그는 자전적 에세이 [하고 싶은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를 펴냄으로써 이미 원고지 약 1천매 분량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책에 썼다가 결국 싣지 못하고 빼버린 이야기, 그리고 세간에 돌고 있는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도 많?남아 있다는 것이다.
金賢哲씨를 만난 것은 지난 8월5일 오후 2시,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였다. 그는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테 없는 안경 너머 보이는 사람 좋은 웃음이나 말을 할 때의 표정은 영락없이 金泳三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이날 金賢哲씨는 체크무늬 회색 양복에, 엷은 연두색 와이셔츠 그리고 짙은 감색 바지에 넥타이는 매지 않아 아주 편한 차림이었다. 요즘은 체중이 좀 줄었다고 한다. 그는 먼저 인터뷰 약속을 몇 번이나 미뤄야 했던 데 대해서 미안해했다. 金賢哲씨와의 인터뷰 약속은 원래 8월4일 오전으로 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 전날인 8월3일부터 서석재(徐錫宰) 前 총무처 장관의 [전직 대통령의 4천억 가명계좌설]?시끄러워지기 시작한 데다 신문에 金賢哲씨가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미묘한 상황이 계속됐다. 金賢哲씨는 그 일로 인한 앙금이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했다.
{그 날(8월3일)은 참 복잡한 날이었어요. 徐錫宰 장관의 발언과 제가 15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신문에 동시에 나고…} 그는 오는 15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한 부분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사실 제가 공개적으로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문에 제가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감으로써 이야기가 이상하게 된 것이지요. 공개적으로 출마한다고 한 적도 없는데 느닷없이 안한다고 하니 얼마나 우스워요. 누가 발설했는가 하는 것은 이제 와서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주체가 잘못되어 있어요. 그 말을 할 주체는 바로 전데 말입니다}
{15대 총선에 꼭 출마하고 싶었지만…}
金賢哲씨는 자신의 총선 출마 문제에 대해 대통령과 상의했던 과정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버님께서 訪美를 끝내고 7월29일에 돌아오셨습니다. 그 다음날이 일요일인 7월30일입니다. 저는 아버님께서 상도동에 계실 때도 일요일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아버님을 찾아뵙곤 했습니다. 일요일에는 ?가족들과 함께 교회에 가고 식사도 하지요. 아버님께서 청와대에 들어가신 이후에는 교회에 갈 수 없게 되었으니까 목사님께서 청와대로 오십니다. 아침에 일찍 예배를 보고 식사를 하지요. 7월30일에도 여느 일요일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청와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그날 꼭 그 말씀을 드리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 결심을 하기까지 저의 고민은 말도 못하게 많았습니다.
제가 내년 총선에 꼭 출마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취임초에 아버님께서 대통령의 친인척 문제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가족이나 친척 중 누구도 정치를 못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아버님으로서는 당연히 하실 말씀을 하신 겁니다. 당시는 취임 초기이고 개혁이 강하게 추진되고 있었던 시점입니다. 아버님으로서는 당연히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의지표현을 해두어야 했던 겁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해보니, 저의 총선 출마는 개인적으로는 하고 싶어도 아버님께 누가 되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그 전에도 몇 번인가 이야기를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바쁘신 아버님을 붙잡고 제 개인 문제를 상의드리기도 어려워 주로 휴가때를 이용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金賢哲씨는 아주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이번에 아버님께서 미국 방문을 위해 나가 계시는 동안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침에는 [그래 총선에 나가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했다가 저녁때가 되면 [나가도 괜찮은 것 아닌가]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조변석개(朝變夕改)였지요.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도 이번에는 결론을 내리고야 말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참 어려운 결정 했다}
金賢哲씨가 최종적으로 [이번 총선에는 안나간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 것은 가족들과 함께 용평에 가 있을 때였다. {바로 아버님의 지난번 訪美기간중이었습니다. 고민이 심해지니까 답답해서 서울에는 못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가족들과 여행을 가게 된 겁니다. 용평이 참 좋았어요. 사람들도 얼마 없고 바닷가도 그리 멀지 않으니 아이들도 좋아하고…. 저는 사실 고민이 있다 해도 누구하나 상의할 사람이 없는 입장입니다. 괜히 잘못 이야기했다가 말이 날 수도 있으니까요. 마침 장인어른(김웅세.金雄世·롯데월드 사장)께서 시간이 난다면서 동행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집사람과 장인 어른에게 의논을 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용평에 있던 어느날이었어요. 저는 아주 조용히 결론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안 나가기로요}
―金賢哲씨가 출마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말씀드렸을 때 金대통령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던가요.
{일요일 아침에 제가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리니까, 눈을 감고 듣고 계시더군요. 제 말을 다 들으시더니 아버님께서 [참 어려운 결정을 했다. 마음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내용의 말씀을 하세요. 그리고 나서 아버님께서는 [이제 뭘 할지를 생각해야 할텐데…]라며 걱정을 하셨습니다. 저는 [일단 박사논문을 끝내고 나서 차근차근 생각해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럴 때는 제가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유학, 가고 싶을 때 가겠다}
―金賢哲씨의 유학설이 여러 번 나왔지요.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유학도 제가 가고 싶으면 가는 겁니다. 저는 이미 MBA(경영학 석사)도 했고 박사는 국내에서 하고 있습니다. 자꾸만 저도 모르는 유학설이 나오는데 아마 제가 학부 때 너무 공부를 안했다고 해서 공부를 좀 더 시켜주려는 모양이지요?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일만 있으면 유학 이야기가 자꾸 나옵니다. 3당합당 이후에도 그랬고 아버님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에도 그랬습니다. 한겨레 신문이 계속 그랬는데, 이번에는 용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의 유학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해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중에는 저를 위해 유학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제가 있는 것이 불편하니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겁니다. 사실 박사논문을 쓰면서 그 준비를 하러 미국에 갈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좀 있다가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정돕니다. 지금 나가면 오해를 하고 온갖 억측이 쏟아질 것 아닙니까}
―金대통령께서는 앞서 하신 말씀 이외에 다른 말은 안 하셨습니까.
{아버님께서는 몹시 착잡한 심경이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하리라고는 상상을 못하셨던 것 같아요. 제 나이 이미 40을 바라보는데다 아이가 셋이나 되는데, 결국 당신 때문에 그런 결심을 하느라고 마음 고생을 많이 했으니 안됐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원래 말을 많이 하는 분이 아니잖아요. [우리 정서라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라고 하셨는데, 결국 [이 문제도 간단히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일 때문에 네가 피해를 보게 된 것인데 길게 생각하자] 그런 취지인 듯했습니다. 아버님 임기가 이제 2년 반이 지났습니다. 후반기에 마무리를 잘 해서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셔야 할텐데 제가 걸림돌이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절대로 아버님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제가 출마를 포기하는 것이 합당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날 金대통령과 했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셨습니까.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 출마하지 않기고 결정을 했으니 언론에 인터뷰도 하고 공개를 하겠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유감스럽지요. 밑도 끝도 없이 그런 이야기가 나갔으니까}
{저를 아버지 뒤에서 음습한 일이나 하고 있는 사람으로 봐요}
―6·27 지방자치제 선거가 끝난 후에 어떤 부담을 느끼셨습니까. 출마하지 않기로 결심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심리적인 압박이랄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늘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그러다가 총선 날짜가 점점 다가와 제 문제가 현재화(顯在化) 되니 오래 끌기 싫어서 결심을 한 거지요. 물론 6·27 선거 결과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영향을 받은 정도지 그 결과가 제 결심과 직접 관련이 있다거나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닙니다}
―金賢哲씨의 책 [하고 싶은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에 관한 내용이 언론에 소개된 것이 지난 7월31일 월요일이지요? 그때 나온 기사의 내용을 보면 [정치인 2세라고 해서 정치를 못할 이유는 없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총선에 출마할 뜻이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만.
{아버님이 출국하시기 전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은 작년 한겨레 사건이 책을 내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됐지요. 이 자리에서 고맙다는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대응하는 방식에 대해서 과거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과거는 과겁니다. 대통령의 아들이 마치 대단한 특권이라도 누리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건 아니에요. 사실 이 이야기는 책에 썼다가 뺀 것인데 오늘은 그 책에서 빠진 이야기를 좀 하도록 하지요. 저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시민으로서 기본권 확보를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아버님을 만나는 것을 두고 정치인이 독대(獨對)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파악한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저는 엄청난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요. 언론과 세간의 오해에 대해 맞대응을 하려고 했더니 주변에서 모두들 말리더군요. [참는 게 미덕]이라느니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마련]이라느니 하면서 그러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지기는 커녕 시간이 갈수록 허상은 점점 자라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어요. 국민들은 이제 저를 아버지 뒤에서 음습한 일이나 하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당해야 합니까}
{대통령의 아들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다}
金賢哲씨는 한겨레 신문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한 상태다. 金씨가 쓴 책에서 한겨레 사건 부분을 요약하면 이렇다.
〈金賢哲씨는 지난 92년 대통령 선거기간 중 이충범 변호사의 소개로 한약업사 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그 무렵 역시 이충범 변호사의 소개로 그린벨트해제 추진위원회의 대표들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이 자리에서 李변호사의 권유로 [여러분이 건의하신 내용을 수용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메모를 적어주었다. 그런데 이충범 변호사가 수임했던 한약업사 단체의 민원사항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이 단체가 들고 일어나 문제가 표면화되었다. 그 와중에 [각서]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것이 이 메모인데, 그린벨트해제 추진위원회에 써준 이 메모가 한약업사들에게 써준 것으로 둔갑을 했다. 메모의 내용도 [노력]이란 말을 지운 채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로 변해 있었다. 문제는 한겨레 신문이 李변호사가 받은 수임료 1억원이 金씨에게 정치자금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한 것이다. 金씨는 그래서 한겨레 신문을 상대로 소송을 하게 됐다〉고 한다.
金賢哲씨는 원인제공을 한 한겨레 신문 쪽에서 먼저 성실하게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한 소를 취하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저는 대통령의 아들이기 이전에 한 사람입니다. 한 개인의 명예회복과 인권은 중요한 겁니다. 그리고 저에게 그런 식으로 공격을 한 것은 아버지에게도 해를 가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들이 시작을 잘못 했으니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 자신들이 먼저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푸는 것은 간단해요. 명예회복을 시켜주면 되니까. 정정보도를 하라는 것이지요}
[金賢哲 인맥]이란 말은 아버지에 대한 모독
―金賢哲씨를 둘러싼 의혹의 핵심은 金賢哲씨가 대통령의 아들로서 대통령과 가장 접근하기 쉬운 지근(至近)거리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金대통령과 만나면 주로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눕니까.
{그건 오늘 꼭 말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저희는 5형제예요. 저는 그 중의 한 명입니다. 저 말고 다른 형제들도 청와대에 드나듭니다. 아버님이 당선된 직후의 일입니다만 어느 일간지의 사설에서 제가 청와대에 사는 것은 독재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제가 청와대에 사는 것은 孝이자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농담처럼 아버님께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버님은 [창살 있는 감옥]에 사시지만 저는 [창살 없는 감옥]에 산다고요.
사람들은 제가 청와대에 자주 들어가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사실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버님이 알면 죄송스럽지만, 사실은 큰 매부가 한국에 들어와 있을 때는 제가 좀 돌아가면서 청와대에 들어가자고 했을 정도예요. 제가 아버님과 만나서 늘 국정에 관한 엄청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님은 누구에게라도 의견을 묻는 분이세요. 전화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시지요. 저는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일 뿐이지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金대통령에게 시중의 여론을 전해드리는 것 이외에는 어떤 일을 합니까. 구체적으로 개각 때는 사람을 추천하기도 합니까.
{이런 말은 하지요. 어떤 유형의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도지요. 물론 아주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립니다}
―유형이란 어떤 뜻입니까.
{그런 것까지 말씀을 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대통령에게 어떤 인물을 추천해달라는 인사청탁이 金賢哲씨에게 들어옵니다.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은 인지상정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아버님께서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 그 동안 음으로 양으로 아버님을 도왔던 사람들에게 우리 정부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의리의 문제이고 신의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제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金賢哲씨가 추천하여 정부에서 일하게 된 사람은 몇 명이나 됩니까.
{그런 질문 자체가 새로운 오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을 너무나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소위 [金賢哲 인맥]이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정말 분개합니다. 그분들은 대통령의 인맥이지 어떻게 제 인맥입니까. 어불성설입니다. 그건 제가 터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한겨레 신문에 문민정부 들어와 출세한 사람들의 리스트가 실렸더군요.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취직이 안된 사람들이 찾아와 삭발농성을 하는 형편입니다. 그분들을 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 분들이 과거에 한 고생에 대해서 배려를 해주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은 金賢哲로 통하더군요}
―언론에서 말하는 金賢哲씨의 인맥이라는 것은 이런 겁니다. 金賢哲씨와 친하게 지냈던 사람 중에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고, 소그룹을 만들어 국정에 대해 의논하고 그 의견을 청와대로 보낸다는 것이지요. 요즘 [과거 3실세]의 시대는 가고 [新 3실세]의 시대가 왔다고 하더군요. 소위 [新 3실세]라는 사람들은 이원종, 김무성, 김기섭씨를 말하는 것 같은데….
{참 어처구니없는 말입니다. 제가 故 김동영 장관을 어려서부터 [동영이 아저씨]라고 부르며 자랐듯이 이분들은 아버님과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던 분들입니다. 그러니 제가 천거해 요직을 맡았다고 하면 아버님과 그분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분들에게 죄송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 친밀하게 지내면서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을 걱정하고 정책을 발상하는 小그룹이 있습니까.
{저에게는 그럴 능력도 시간도 없습니다. 책에 이미 다 쓴 대로입니다. 저에게는 아버님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습니다. 아버님이 그 목표를 이루셨으니 저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제 개인 문제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그 외에 제가 건방지게 국정을 논한다는 것은 어울리지도 않아요}
―성균관 대학의 김모 교수, 모 증권회사 부사장 C씨, 모 언론사 간부 등 여섯 명 정도가 정치적으로 모이는 모임이 있다면서요.
{김교수는 여론조사 관계로 알게 된 분인데, 지금 말하신 분들은 청와대 정무수석과 가까운 분들이고 저와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는 아닙니다}
―안기부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봅니까.
{그 얘기를 듣고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겁니다. 도대체 그 분들과 아버님을 어떻게 보고 그런 말들을 하는 겁니까. 심지어는 제가 證市를 조작한다는 말까지 있어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金賢哲에게로 이어지더군요}
―金賢哲씨와 함께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했던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를 A씨라고 합시다. 어느날 현철씨가 A씨를 불러 그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꺼내놓고서 [당신에 관한 이런 좋지 않은 내용이 있으니 앞으로 조심하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A씨는 그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金賢哲씨가 안기부 보고서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직접 만나고 싶군요}
―金대통령께서 안기부 보고서를 보신 후에 그 자료를 건네주신 일은 없습니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박사과정의 코스웍은 끝나고 이제 논문만 남았다고 하셨는데 박사논문의 주제가 기업합병과 인사관리라면서요.
{논문 주제가 자꾸 변해요. 사실 초기에는 그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기업합병의 사례가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기업합병은 윤리적으로도 그렇고 아직 먼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사례도 부족하고 문헌도 없고 그렇습니다. 유일한 케이스라면 서울신탁은행의 경우인데 그것 하나만 가지고 논문을 쓰기는 어려우니까 결국 그 주제는 포기했지요. 선배나 친구들이 박사논문은 주제만 잘 잡으면 절반은 끝낸 거나 다름없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두 번 째로 생각했던 주제는 조직학습이론 쪽이었어요.
최근 경영학계에서 붐이 일고 있는 주제라 이런 분위기가 있을 때 논문을 남겨 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하려고 보니 이것 역시 막연해서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좀 학문적으로 조직사회화의 문제를 다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원래 인사관리 문제를 공부했었거요. 규모가 큰 전자회사 등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조직사회화 전략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겁니다. 일단 결정을 하니 지도교수님도 반기시고 해서 올 가을과 겨울에는 논문에 전념할 생각합니다}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지만 조교들이 제 후배니까 부탁도 좀 하고 제가 직접 하기도 하고 그러지요}
{결석해도, 공부 안 해도 말이 나니까}
―지난 2년 동안 학교는 얼마나 자주 갔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제가 학교에는 적만 걸어놓고 딴 일을 하는 줄 아는 모양인데 사실은 그동안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저는 언론에 얘기하고 싶었어요. 아마 기자들도 학교에 와봤더라면 제가 학교에 다니고 있는 걸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저는 학교와 집을 왔다갔다 하고, 제 친구인 박태중씨가 하는 사무실에 가서 귀퉁이에 앉아 작업을 하고 그랬습니다. 나중엔 그걸 제 사무실이라고 하더군요}
―학교에는 일주일에 몇 번 정도 갔습니까.
{과목별로 몰아서 하루에 세시간씩 하니까 제가 듣는 과목 수만큼 갑니다. 처음엔 서너과목씩 들었으니까 일주일에 서너번 갔지요. 마치 학부 다닐 때 공부 안한 것 보충이라도 하듯, 철저하게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지금은 하루만 수업에 안가도 말이 많거든요. 수업시간에 벙어리처럼 앉아 있으면 그게 또 이야기 거리가 될까봐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공부하는 과목 중에 뭐가 제일 재미있습니까.
{인사관리 특강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경영도 결국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잖아요. 저는 직장생활을 딱 3개월 해봤습니다. 만일 대통령 선거가 없었더라면 저는 회사원이 됐을 겁니다}
지난 87년 5월 金賢哲씨는 미국 남가주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박사과정을 계속할 생각이었으나 국내의 정치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아버지를 혼자 둔 채 떠나기는 어렵다고 판단, 한국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는 우선 직장을 구하기 위해 국내에 진출해 있는 외국 은행의 문을 두드렸으나 번번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거절당한 끝에 쌍용증권 공채에 합격했다. 그는 2개월간의 연수와 1개월의 근무를 마친 후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선거가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꼭 세달치 월급을 벌어보았다고 한다.
―기업이든 정치든 인사의 원칙은 다 비슷한 것 아닙니까. 金泳三 대통령은 늘 [人事가 萬事]라고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그 말이 한 때 우리 사회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후 장관인사 방식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돼 [人事가 亡事]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金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내가 대통령이 되면 장관들은 나와 같이 퇴임하게 될 것]이란 이야기를 하며 장관들이 임기 동안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金대통령은 너무 매정하게 그리고 너무 단기에 장관들을 갈아치워 문제가 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답변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닌 것 같군요. 인사는 중요하지요. 그러나 저는 개혁을 평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개혁은 정말 너무 어렵습니다. 어떨 때는 아버지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혁명은 강제적인 힘을 동반하니 차라리 쉬울 겁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있지만 제조가 갖춰져야 인사가 제대로 될 것 같습니다. 과거 잘못한 제도 하에서의 인사는 앞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