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츠하크 라빈(1922∼1995)의 생애
▲이츠라크 라빈은 1922년 3월1일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카두리 농업학교를 졸업했다. 모세 다얀이 이끄는 하가나에 들어간 그는 1941년 팔마하 특공대의 시리아 침투 작전에 참가했다. 소대장으로 승진한 그는 1945년 아틀리트 수용소에서 200명의 불법 이주자들을 구조해 낼 때 副책임자로 작전에 참가했다. 이듬해 6월 그는 이른바 「검은 토요일」 사건에서 영국 당국에 의해 수백명의 유태인 지도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6개월 동안 라파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1947년 10월 라빈은 팔마하의 副사령관이 되어 알론 바로 밑에서 일했다. 1948년 봄 그는 하렐 여단의 사령관이 되어 포위된 예루살렘에 길을 뚫는 나손 작전을 지휘하여 그 이웃 도시인 카타몬과 세이크야라를 해방시켰다. 알론의 지휘하에서 라빈은 로드 전투와 라믈레 전투에 참가했다. 그리고 남부전선 작전사령관으로서 네게브 사막과 에일라트市에 대한 반격 작전인 호레브 작전을 지휘했다. 그는 1946년 로도스 섬에서 아랍 국가들과의 휴전 협정에 조인하는 대표단의 일원이었다.
▲라빈은 1953년 영국의 참모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1954∼1956년 훈련소장을 지냈으며 준장으로 승진되었고, 1956∼1959년에는 북부지구 사령관으로, 1959∼1960년에는 작전사령관으로 근무했다. 그는 1961년 참모차장에 임명되었고, 1964년 1월1일 제7대 이스라엘 국방군 참모총장이 되었다. 「6일전쟁」 때 라빈은 참모총장으로서 이스라엘 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1968년 1월1일 轉役과 동시에 駐美대사에 임명되어 미국에서 5년간 근무했다. 1973년 봄 라빈은 이스라엘로 귀국하여 노동당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1973년 크네세트(이스라엘 국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74년 4월 골다 메이어 내각 때 노동장관에 임명되었다.
▲1974년 6월2일 골다 메이어의 사임 이후 이스라엘 국회는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이끄는 신정부를 승인했다. 라빈이 총리직에 있는 동안 이스라엘 정부는 경제력 강화, 사회문제 해결, 이스라엘 軍 증강에 역점을 두었다. 1974년 미국의 중재로 이집트, 시리아와의 철수 협정이 조인되었으며, 이어 1975년에는 이집트와의 잠정 협정이 맺어졌다. 1976년 6월 라빈 정부는 엔테베 작전을 통해 공중 납치된 에어 프랑스기의 승객들을 구조했다.
▲1977년 4월 라빈은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1977년 5월 총선 이후 1984년 9월 거국내각의 성립 때까지 라빈은 크네세트에서 야당인 노동당 소속으로 외교국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84∼1990년의 擧國내각에서 이츠하크 라빈은 국방장관을 지냈다. 1985년 1월 그는 이스라엘 軍 병력의 레바논 철수를 제안했으며 이스라엘의 북부 국경선 지대에 있는 정착촌들에 평화를 보장하는 안전지대의 설치를 제안했다.
▲이츠하크 라빈은 1992년 2월 노동당 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전국 예비 선거에서 이스라엘 노동당 당수에 선출되었다. 그리고 1992년의 총선에서 노동당을 승리로 이끌었다. 1992년 7월 라빈은 총리 겸 국방장관으로서 제 25代 이스라엘 내각을 구성했다. 그는 총리로서 평화협상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업적을 올렸다.
▲1993년 9월13일 백악관 정원에서 열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기본원칙 선언 서명식에서 라빈 총리는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과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다.
▲1994년 10월26일 이스라엘-요르단 국경에서 그는 이스라엘-요르단-팔레스타인 잠정협정의 서명자였다.
▲라빈은 1994년 12월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츠하크 라빈은 1995년 11월4일 (한국 시간 11월5일 오전) 텔 아비브의 말체이 이스라엘 광장에서 열린 평화지지 집회에서 연설 직후 암살되었다. 그의 유족으로는 누이 라헬, 부인 레아, 자녀인 달리아와 유발, 그리고 손주 세 명이 있다. 라빈의 자서전 「서비스 노트북」은 1979년에 출간되어 영어와 불어로 번역되었으며, 에이탄 하버가 정리한 「이츠하크 라빈의 각국 지도자들과의 대담집」은 1984년에 출간되었다.
金泳三대통령 초청 만찬장에서 한 라빈의 연설 요지(1994년 12월15일)
『우리 양국은 과거와 미래를 공유』
대통령 각하, 서울과 예루살렘 사이의 거리가 수천km나 된다고 하지만 우리는 같은 아시아 대륙에 붙어 있는 이웃입니다. 한국과 이스라엘 양국은 古代史를 공유하고 있으며 또한 미래에 대한 밝은 희망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兩國 국민들은 모두 自國의 문화와 민족의 역사적 유산을 자부하고 있으며, 우리 모두는 그 문화를 보존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韓國과 이스라엘 兩國은 주변의 강대국들 속에서도 自國의 민족적 동질성을 단호하고 끈기있게 보존해 왔습니다.
韓國과 이스라엘 兩國이 공유하고 있는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가장 중요한 사회 구성 단위로서 전통적으로 가정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양국의 부모들은 자녀 교육을 가장 중시하며 그를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경제는 여러 모로 상호 보완적입니다. 서로가 상대국에서 많은 기회들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은 산업의 고도 발전과 소비재의 대량 생산에 도달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고부가가치의 하이테크 품의 제조 그리고 과학적 창조성과 기술 혁신에 기초한 상품 개발에 주력해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하이테크 그리고 고도로 발전된 한국의 산업과 마케팅은 양국의 결속 기반으로 기여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연구개발(R&D) 분야에서 우리 兩國의 협력 가능성은 거의 무한대입니다. 이스라엘은 한국에 높은 수준의 연구개발 시설과 고학력 인력을 제공할 수 있으며, 그것은 한국의 산업 성장을 지속시키고 한국의 기술적 기반을 G-7 국가들 수준으로 향상시키려는 한국의 중요한 과제에 기여할 것입니다.
미국 의회에서의 연설(1994년 7월26일)
저 금속 덩어리로부터 수천의 꽃들이 피어나…
매년 이스라엘 戰死者 기념일이면 나는 예루살렘의 마운드 헤르츨 국군묘지로 갑니다. 거기서 나는 무덤과 묘석들, 그 위로 피어나는 갖가지 꽃들 그리고 눈물을 머금은 수천의 눈망울과 마주치게 됩니다. 나는 그렇게 그 커다란 침묵의 군중들 가운데 서서 미국의 유명한 시인 아치볼드 맥레이시의 표현처럼 그들의 눈동자에서 젊은 戰死者들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다음은 그의 시 구절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그들은 묻는다. 그들의 삶과 죽음이 평화와 새로운 희망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헛된 노력이었는지를. 그러나 우리는 말하지 못한다 그 대답을 해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들이라고〉
우리가 예루살렘에서 워싱턴에 온 것은 말을 해야 할 사람이 바로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평화가 우리의 목표이며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바로 평화라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이 미국 국회의사당에 나와 함께 방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위대한 평화의 꿈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우리 이스라엘 동료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미람 카플란입니다. 그의 첫 번째 형제는 사고로 사망했고 두 번째 형제는 테러리스트들을 추격하다 사망했습니다. 세 번째 형제는 전쟁터에서 戰死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모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도 평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모세 사손입니다.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압둘라 왕과의 회담을 비롯한 여러 평화회담에 밀사로 참석한 바 있습니다.
▲차나 리블린입니다. 그녀는 나와 같은 반 친구로서 요르단을 바라보고 있는 게셔 키부츠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모진 전투를 견뎌냈으며 또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었습니다. 요즈음 그녀는 자기집 창문을 통해 요르단을 바라보며 평화의 꿈이 실현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다스칼입니다. 나이가 거의 90세나 되시는 이 분은 트랜스요르단에 있는 전기회사에서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후세인 國王의 초대를 받아 그 생신 잔치에 참석한 바 있습니다. 그는 지금 살아 生前에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희구하고 있습니다.
▲다니 마트입니다. 독립전쟁 때 요르단에 대항하여 싸우다 전쟁 포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이스라엘의 安保를 위해 헌신하신 분입니다. 그는 자신의 손주를 세대에는 다시는 전쟁이란 것을 모르기 바라고 계십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兩國의 복합적인 관계는 한 세대 동안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貴國과 우리나라가 특별한 유대 관계에 있었던 좋은 기억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 양국이 전쟁터에서 싸워야 했던 모진 기억들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귀하의 할아버지이신 압둘라 국왕의 시절을 기억합니다. 그분은 유태인 족장들과 신생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평화의 길을 추구하셨습니다.
후세인 폐하, 우리는 우리 생애에 많은 일들을 보아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 생애에 너무나 많은 고통을 보아 왔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기려 하십니까. 나는 나의 자손들에게 무엇을 남겨야 하겠습니까. 나에게는 오로지 꿈밖에 없습니다. 보다 나은 세계, 상호 이해와 조화의 세계,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인 세계, 이런 세계를 건설하겠다는 꿈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그리 많은 것들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신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당신의 평화 속에서 우리의 손을 맞잡아 주신 데 대해, 당신의 정치적 총명과 용기에 대해, 우리들 가슴속에 당신의 신민(臣民)들 가슴속에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새로운 희망을 심어 주신 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미국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마디하겠습니다. 군번이 3-0-7-4-3으로 과거 이스라엘 군에서 장군을 지낸 나이지만, 오늘은 내 자신을, 평화를 위한 군대의 병사라고 생각합니다. 군인으로서 27년 동안 조국을 위해 봉사했던 내가 지금 요르단 국왕이신 폐하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망자도 부상자도 없는 피도 고통도 없는 전투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행동 하나하나가 기쁨일 수 밖에 없는 유일한 전투입니다. 평화의 전투이기 때문입니다. 훗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는 무수한 꽃들이 저 녹슬어 가는 장갑차 잔해들을 뒤엎을 것입니다. 장갑차라니요, 정말이지 그것은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 전혀 얼토당토 않은 존재들입니다.
훗날 그 침묵의 금속 덩어리들로부터 수천의 꽃들이 피어나 「샬롬」이라는 평화의 말고 함께 우리에게 미소 지을 것입니다. 우리의 책 중의 책인 성서에는 평화라는 말이 아주 다양한 문맥 속에서 2백37회나 언급되어있습니다. 우리는 그 성서에서 우리의 가치관과 우리의 힘을 이끌어 냅니다.
에레미야서에는 라헬 족장에 대한 비탄의 글이 있는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의 입에서 울음소리를 거두어라. 너희의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라. 왜냐하면 그들의 노고가 보상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니라.
라빈 장례식 각국 지도자들의 추도사
후세인 요르단 국왕:『당신은 평화의 戰士였습니다』
라빈 총리는 우리가 경계선 저편에서 만난 한 형제, 한 동료, 한 친구, 한 인간, 한 군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를 존경했듯이 우리는 그를 존경했습니다. 그와 우리는 그 경계선을 걷어내야 한다고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와 우리에게 모두 유익한 유산을 남기기 위해서 말입니다. 나는 그렇게 소중한 사람을 잃고 이렇게 슬퍼할 순간이 오늘처럼 찾아오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습니다. 당신은 군인으로서 살았습니다. 당신은 평화를 위한 戰士로서 죽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들 가슴을 열고 평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평화의 진영에 속합니다. 리빈 총리에게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는 평화를 약속했습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당신과 요르단에 있는 나의 백성들에게 그리고 세계에 대해 다시금 약속합니다. 라빈 총리와 마찬가지로 나도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유산을 남기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내 차례가 오면 내가 남긴 유산도 나의 선조나 이츠하크 라빈의 그것과 같기를 희망합니다.
페레스 이스라엘 총리대행:『흉탄은 평화의 행진을 멈출 수 없다』
지난 토요일 밤, 우리는 함께 평화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당신의 가슴이 기백으로 용솟음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집회 때 당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있다는 경고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누가 테러리스트인지를 몰랐습니다. 우리는 사태가 이렇게까지 엄청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되었습니다. 평화를 한시라도 앞당기기 위해서 우리는 주저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지금 우리 국민들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한 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을 죽인 그 흉탄이 당신이 출발시킨 평화의 행진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유언도 유서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우리가 믿음과 결의를 가지고 어떠한 길을 걸어 나가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떠났습니다.
노아 벤 아르치 라빈 총리의 손녀:『할아버지는 우리의 영웅이에요』
할아버지, 당신은 평화의 진영에서 커다란 불기둥이었어요. 그 평화의 진영이 지금 어둠과 슬픔 속에 잠겨 있습니다. 사람들은 민족적 재앙 운운하지만,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멈춰지지 않는데 어찌 당신이 국민들 모두를 위로할 수 있겠어요…. 할아버지, 당신은 살아 생전이나 돌아가신 지금이나 우리 가족들의 영웅이에요. 지금 제 가슴속에는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너무나도 크기에 복수의 감정이 자리할 곳이 남아 있지 않답니다. 우리들 내면에서의 정화가 우리가 쾌유되는 발판이 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우리의 전철을 밟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자리에서 그분의 순교가 지닌 의미를 확실히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한 국민이 그 적국에 대한 미움을 털어내지 못한다면 그 국민은 그들 내부에서도 증오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겠습니까. 우리 미국인들은 링컨과 케네디와 마틴 루터킹을 잃었습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그 오랜 상실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미국인들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진정으로 부탁합니다. 여러분들은 절대로 우리와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고 말입니다.
역사의 짐을 지고 뚜벅뚜벅 걸어간 사나이- 라빈 총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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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7-14, 10: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