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된 정보시스팀 운영해야 독립국가 자격』
―지난해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총리께서는 이스라엘의 하이테크 기술과 한국의 공업 능력을 결합하여 세계로 진출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 뒤로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코트라(KOTRA)도 이스라엘에 사무실을 열었고 이스라엘-한국 경제 협력위원회를 만들기로 했으며 삼성그룹도 참가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상품은 여기서 잘 팔리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족한다면 그것도 좋은 거지요』
駐이스라엘 朴東淳 대사에 따르면 그해 들어 8월 말까지의 한국-이스라엘 교역액은 4억5000만 달러. 전 해 전체의 4억3000만 달러를 벌써 넘어섰다고 한다. 對 이스라엘 수출이 2억7000만 달러. 이스라엘로부터의 수입은 1억7600만 달러. 다음 해엔 양국 무역액이 10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귀하는 총리 겸 국방장관으로서 무기의 해외판매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貴國의 라파엘社(Rafael)는 지금 한국군에 정보수집 분석 시스팀을 팔기 위해 미국 회사와 경쟁하고 있습니다. 정보분야는 매우 민감한 부문으로서 미국 정부가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과 이스라엘은 다 같이 미국과 친하고 미국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방위산업 분야에서 서로 경쟁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미국에는 없거나, 있더라도 우리가 더 값싸게 (한국에)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결정은 한국이 하는 거지요. 결국은…. 미국도 우리 같은 작은 나라가 도전해 오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국은 독립되고 큰 나라이니까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귀하께서는 독립된 정보 수집 분석기능은 주체적인 국가안보 정책의 수립 집행에서 불가결한 요소라고 보십니까.
『독립국가의 독자적인 安保전략을 위해서는 독립된 정보수집 체계는 필수입니다. 나라마다 필요한 정보가 다르기 때문에 외국에 (정보판단을) 의존할 수도, 해서도 안 됩니다』
故人이 돼 버렸지만 라빈 총리의 이 발언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국군은 美國에 의존해 오던 전략정보 수집을 독자적으로 하기 위해서 독립 시스템 구축을 시도하고 있었다. 미국은 외국회사가 정보시스팀을 한국에 팔려는 데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1995년 11월 초에 서울에 왔던 페리 美국방장관도 우리측에 대해서 미국제를 사도록 부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은 정보만은 어느 나라에 의존해서도 안되며 특히 해석된 정보를 외국에서 받는 것은 아예 받지 않는 것보다 못할 때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해석된 정보는 제공자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973년 10월 中東전쟁을 왜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미리 감지하지 못했었던가를 반성한 결과 이스라엘 정부는 주요정보는 장관이 가공되지 않는 1차자료 상태에서 직접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6월에 제주도 남쪽 해상에서 충돌사고로 침몰, 실종된 이스라엘 선원들에 대한 구조 및 수색작업을 사고 뒤 4개월이 지나도록 계속 하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에 대해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왜 이스라엘은 실종, 납치, 인질로 된 국민들의 송환에 대해서 그토록 끈질깁니까.
『우리는 작은 나라입니다. 한국은 인구가 4500만이지만 우리는 500만 남짓 합니다. 따라서 생명의 존엄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시체라도 모셔와서 가족들이 애도할 수 있는 무덤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입니다』
―그렇다면 유명한 이스라엘 간첩 코헨(기자注―시리아 고위층 속에 침투해 활약하다가 사형당한 전설적인 이스라엘 간첩)의 유해송환을 시리아와의 평화협상 때 조건으로 제시할 생각입니까?
『시리아와의 평화협상에 우리는 조건을 붙이지 않습니다. 시리아는 남부 레바논에서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헤즈불라 같은 테러조직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만 일단 대화를 하면서 시리아에 테러조직에의 지원 중단을 요구할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이것이 참기 어려운 일이지만 평화를 위해선 인내가 필요합니다』
『테러에는 「눈에는 눈」式으로 대응한다』
―며칠 전 '이슬라믹 지하드'의 지도자가 말타에서 암살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모사드의 관련설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총리께서는 올해 초 지하드를 지칭하여 『우리는 당신들을 추적하여 제거할 것이다. 어떤 국경도 당신들의 보호막이 되지 못할 것이다』고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접 국가의 主權도 침범할 각오가 돼 있다는 뜻입니까.
『1993년 이후, 이스라엘-PLO 사이의 평화 협상이 진전되어 갈수록 지하드와 하마스 조직에 의한 테러는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동차 폭탄으로, 수류탄으로, 자살공격법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모든 테러 희생자의 70%가 이스라엘人들입니다. 그들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정치적인 방법으로 평화협상에 반대하면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해온 방식 그대로 그들에게 대항하고 있습니다. 지하드 두목을 누가 죽였는가는 먼 장래에 역사가 알려 주겠지요. 우리는 그 가증할 테러 조직의 두목이 제거된 데 대해서 애도할 입장은 아닙니다』
―한국은 이스라엘을 아시아 국가로 보지 않고 서양문화권의 나라로 보고 있습니다. 東아시아의 유교문화권 나라들과 앞으로 더 가까워지려면 유교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지구촌化되는 상황에서는 어떤 나라도 고립된 존재로 남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종교, 문화, 역사가 다른 나라들은 그 다른 뿌리(Roots)에 따라 각각의 개성을 살려가면 되는 것이지 그것이 교류와 협력의 장애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이란은 국제테러리즘의 인프라스트럭처』
―중동에선 지금 평화협정과 회교 원리주의라는 2大 흐름이 상호 충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화협상이 결국 회교 원리주의를 압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호메이니 없는 호메이니주의」가 지금 中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원리주의자들은 곳곳에서 온건한 이슬람 국가의 정권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을 죽이려 한 자가 누구입니까.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유태인들을 爆死시키고, 뉴욕의 세계무역회관 빌딩을 폭파한 자가 누구입니까. 한편으로는 지하드와 하마스 조직을 지원하면서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이 세력의 원천은 바로 이란입니다. 이란은 국제 테러의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를 깔아놓고 있습니다.
수단은 이미 「호메이니 없는 호메이니주의」에 넘어가 테러의 기지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제리가 원리주의자의 손에 넘어가면 이란型의 국가가 될 것으로 봅니다. 이란은 이 모든 테러의 배후세력일 뿐 아니라 재래식, 非재래식 무기를 다 갖춘 군사강국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협력과 대처에 의해서만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합니다』
『누구도 페레스와 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
―여기 들어오기 전에 페레스 외무장관을 보았습니다만 두 분이 서로 그렇게 비난하면서도 요사이는 또 그렇게 협력을 잘 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거의 50년 동안 서로를 잘 알고 지내오면서 기복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평화협상에 있어서 같이 협력하고 있습니다. 왜냐? 그것이 바로 평소에 우리가 이룩하려고 꿈꾸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파트너입니다. 우리는 이제 과거의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정책을 위해서 이렇게 만나고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갈라놓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손에 손잡고 이 지역에 새로운 시대, 즉 평화와 경제적 번영이 전쟁과 정치적 갈등을 덮어버리는 그런 새 장을 열고 말 것입니다』
라빈은 『아무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할 것』이란 말에 특히 힘을 주었다. 그 다음날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으리란 것을 알 턱이 없는 그로서는 최상급의 표현으로써 페레스와의 우정을 설명한 셈이다. 라빈 총리가 앉은 뒷벽엔 이갈 알론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다. 알론은 라빈의 직속선배로서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팔마하 특공대의 창설자였다. 라빈과 알론은 형제처럼 친밀했다고 한다.
라빈과 페레스는 자신들을「뜻을 같이 하는 사이」, 즉 同志라고 정의했다. 라빈은 생애에 있어서 친구로서의 알론과 동지로서의 페레스가 있었던 것이다. 국방장관실엔 소파가 없었다. 예루살렘의 총리 집무실엔 최근에 소파가 들어왔다고 한다. 방의 크기는 서울의 구청장 방보다도 작았다.
―1966년에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朴正熙대통령을 만났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분에 대한 평가를 해주시죠.
『저는 당시 이스라엘軍의 참모총장으로서 군인의 입장에서 한국을 보았습니다. 판문점과 DMZ를 방문했어요. 그런 가운데서도 위대한 경제발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감을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경제발전이야말로 한 국가와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지난번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金泳三 대통령께서는 우리 내외를 위해 만찬을 베풀어 주셨는데 그 자리에서 그분이 말씀하기를, 민간인으로 대통령이 된 것은 30 몇 년 만에 자신이 처음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모총장 출신으로서 수상이 된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제가 처음」이라고요』
이때 처음으로 라빈 총리가 소리내 웃었다.
朴대통령에 대한 그의 평가는 경제발전이 민주화의 기반이 되었다는 定說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날 인터뷰를 통해서 라빈 총리는 경제를 이야기할 때 특히 즐거운 듯했다. 그가 주도한 중동평화협상의 목적은 평화정착 이후에 중동국가 간의 경제교류·협력을 진전시켜 이 지역에 경제 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집트 같은 나라는 이스라엘이 군사적 헤게모니를 바탕으로 경제적 覇權을 지향하고 있다고 의심할 정도이다.
『아예 정당이 돈을 거두지 못하게 만들었다』
―정치와 돈에 대한 귀하의 철학을 듣고 싶습니다.
『정치활동에서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지난 2년간 더욱 엄격한 법을 제정하여 돈을 아예 쓰지 못하게 해버렸습니다. 새로운 법에 따라서 내년 선거에서는 정당이 정치헌금을 받는 행위가 일체 금지되는 대신에 정부가 선거자금을 각 정당에 배분할 것입니다. 이제는 어떤 정치인도 기업인에게 「여보게, 우리 정당을 위해 돈을 좀 보태주게」란 이야기 자체를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유슈비츠는 50년 전에 없어졌지만 지금 북한에는 살아 있습니다. 金日成 부자에 대한 비판을 했다가는 3代가 다 수용소로 보내집니다. 그곳에서 살아나올 가능성은 없습니다. 임신하면 죽입니다. 아유슈비츠와 꼭 같은…(이때 라빈 총리가 질문을 제지하고 나섰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약간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분명히 해둘 게 있습니다.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과 人權문제를 같은 수준에서 비교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유태인 학살은 나치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이뤄진 人種멸종 정책입니다. 人權문제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中東평화협상에서 人權문제를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 당국에 민주주의를 하라, 人權을 개선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선거를 하도록 했습니다. 선거를 통해서 민주화가 진행되면 人權문제도 개선되겠지요. 이집트에는 적어도 선거가 있고 의회가 있으며 야당이 있습니다. 시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야당도, 선거도 없어요. 이런 형편에서 人權문제를 일률적으로 거론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 유태인들이 당했던 살육을 일반적 人權문제의 하나로 본다든지 같은 수준으로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된 겁니다』
―북한 수용소도 人權문제가 아니라 生과 死의 문제입니다. 더구나 북한은 아유슈비츠의 관리 방식을 모방해서 그대로 써먹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그래도 유태인 학살에는 비교하지 마세요. 절대로…』
기자의 작전은 실패였다. 기자는 북한 수용소를 아우슈비츠와 비교하여 설명하면 라빈 총리가 흥미를 더욱 느낄 것이고, 그때 준비해간 북한수용소 관련 英文 자료를 건네주면서 『유태인이 앞장서서 국제사회에서 여론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할 셈이었던 것이다. 인터뷰는 이것으로 끝났다.
기자는 『준비한 질문 중에서 남은 것을 두고 갈 테니 서면으로 답변해달라』고 부탁했다. 라빈 총리는 선뜻 승낙했다. 기자는 분청사기(접시)를 선물로 내놓았다. 라빈 총리는 네 겹으로 된 포장지를 일일이 다 뜯어 책상 위에 벌여 놓는 것이었다. 라빈 총리가 답례로 준 것은 「예루살렘의 스카이라인」이란 사진집이었다. 첫장에 명함이 붙어 있었다.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는 『한 번 더 한 번 더』라고 했다. 아마도 실수로 사진이 안 나왔을 때를 대비해서 몇 번 더 셔터를 눌러놓으라는 뜻인 것 같았다.
기자는 『다음은 서울에서 다시 뵈었으면 한다』고 인사했다.
라빈 총리는 『고맙다』는 말을 거듭했다. 선물로 받은 사진첩에는 1992년 6월에 라빈 총리가 예루살렘 해방 25주년 기념식에서 한 연설의 일부가 실려 있었다.
〈예루살렘을 삶의 중심적 요소로 여겨온 한 사람으로서, 이 도시를 탈환하기 위해 진격했던 戰友들의 한 동반자로서, 저 벽에다가 이스라엘의 깃발을 꽂기 위해 돌격한 IDF 병사들의 참모총장이었던 사람으로서 나는 기원합니다. 수천년에 걸친 念願과 고통을 지켜보았던 이 도시에서, 우리와 敵들 간의 분쟁이 종식되기를, 그리고 황금의 도시 예루살렘에서 평화의 조약이 서명되기를〉
라빈과 朴正熙
라빈총리의 인터뷰를 마친 기자의 느낌은 잘 늙은 할아버지와 만난 기분이었다. 라빈의 경력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권력게임으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총성과 함성 속에서 평생을 보낸 인물답지 않게 조용하고 무뚝뚝하면서도 자상했다. 멀리서 보면 라빈은 카리스마의 化身일 수밖에 없는 생애이다. 가까이서 느낀 라빈은 그냥 따뜻했다.
인터뷰를 할 때 그는 視線을 기자에게 고정시킨 채 한번도 정좌한 자세를 풀지 않았다. 먼 나라에서 온 기자에게 정성을 다하려는 자세였다. 그때 기자는 故 朴正熙 대통령과 비슷한 인간형이란 생각이 들었다. 단정한 몸가짐, 과묵함, 내성적 성격, 부끄럼, 멀리서는 무섭고 가까이서는 따뜻한 이미지.
朴대통령은 1960년대 말에 이스라엘의 농업기술과 키부츠 운동, 그리고 自主국방 의지를 배워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특히 1968년 1·21 청와대습격기도사건 이후엔 연설 때마다 이스라엘의 鬪魂(투혼)이 언급되고 있다. 1973년 석유파동 이후 한국은 아랍국가들로부터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이스라엘과의 외교관계를 냉각시켜야 했다. 朴대통령은 내심 이런 입장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했다고 한다.
1966년 라빈과 朴대통령의 만남이 어떠했는지는 상세한 정보가 없지만 라빈 총리도 朴대통령에 대해 호감을 가졌다는 사실을 이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아쉘 나임 前 駐韓 이스라엘 대사에 따르면 라빈 총리는 작년 12월 訪韓 때 누군가가 朴正熙 대통령을 비판하는 견해를 전하니까 이렇게 변호하더라고 한다.
『국가 지도자는 그 사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 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남긴 결과물에 의해 평가받아야 한다』
최근의 이스라엘-한국 접근은 한때 헤어졌던 옛 애인의 재회와 비슷하다. 그 재회의 章에서 金泳三 대통령과 라빈 총리도 서로 인간적인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런 흐름 속에서 기자도 흐뭇한 마음으로 국방부 건물을 떠날 수 있었다.
택시기사로부터 들은 悲報
기자는 라빈 총리와 인터뷰를 끝낸 그 길로 텔 아비브를 떠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하루를 보낸 뒤 4일 밤 9시에 대한항공편으로 이륙, 5일 오후 5시에 김포에 도착했다. 오후 6시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車中에서 기사로부터 라빈 피살 소식을 들었다. 1주일 전에 예고된 그 대중집회에서 그것도 동족에게 당했다! 가족의 죽음 이외에 그만한 충격은 나에겐 10·26 사건 이후 처음이었다.
기자는 비행기 안에서 인터뷰 녹음테이프를 들으면서 對話를 정리했었다. 아직도 귓전에 울림이 큰 그 영감의 목소리가 남아 있는데 죽었다니! 시간을 계산해보니 기자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이륙해서 솟아오르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라빈 총리는 피격되었던 것이다. 기자와의 인터뷰가 위대한 지도자의 마지막 肉聲토로가 되었다는데 생각이 미치니 기자는 이 만남의 의미를 소중하게 간직하여 좋은 기사로 승화시켜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죽음까지도 朴正熙와 라빈은 비슷했다. 동포에 의한 저격. 라빈 저격범도 한때는 라빈을 영웅으로 숭배했을 것이다. 그러나 라빈은 총구와 流血로써는 항구적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요르단江 西岸과 가자 지구를 팔레스타인人, 그것도 원수 중의 원수였던 PLO에게 돌려주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스라엘 建國정신을 대표해온 시온주의자들은 ①유태국가 ②민주국가 ③유태인의 역사적 고향땅(유데아-사마리아로 불린 구약 성경시대의 땅 지금의 요르단江 西岸)을 완전히 차지한 국가, 이런 국가를 창건하기를 원했다.
1948년에서 1967년까지 시오니즘은 본래 목표의 두 가지만 달성된 상태였지만 그렇게 살았고 그 속에서 번영을 계속했다. 이스라엘은 유태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유태국가였고 또 민주 국가였다. 그러나 그것은 유태인 고향땅의 일부만 차지한 국가였다. 이스라엘은 6일전쟁으로 요르단강 西岸과 가자지구를 점령했고, 그 결과 시오니즘이 본래부터 추구했던 유태인의 역사적 땅을 통치하게 되었다.
그후 이스라엘인들은 또 다시 근본적인 질문에 마주쳐야 했다. 우리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하나의 선택 방안은 요르단강 西岸과 가자지구를 포함하여 모든 이스라엘 땅을 차지하고 유태 국가로 남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西岸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人 거주자들을 영구히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물리적 탄압을 통해 그들이 결코 정치적 권리를 얻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두 번째 선택은 요르단강 西岸과 가자 지구를 포기하고 민주국가로 남는 것이었다. 이것이 라빈의 선택이 됐다. 요르단江의 西岸을 구약 성경시대의 유데아-사마리아 지역으로 부르며 신성시하는 보수적 유태교인들과 이 지역에 이주해 살고 있는 13만명의 정착민들에겐 라빈이 저주의 대상이 돼 버렸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대전환에서 라빈은 제물로 바쳐졌다.
그의 사위 펠로소프氏가 말했듯이 유태인들(다른 나라의 대중도 마찬가지이지만)은 라빈을 하나의 도구로 쓴 셈이다. 나라를 세우고 지킬 때는 戰士로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는 祭物로서 쓰여졌던 사람이 라빈이었다. 아낌없이 준 나무, 四肢가 다 잘려나가고 남은 밑동까지도 지친 행인에게 빈 자리로 내 놓는 그런 나무였던 것이다.
아쉘 나임 前 駐韓 이스라엘 대사는 라빈의 죽음이 중동평화에 기여한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세계 70여개 나라에서 頂上들이 조문을 왔습니다. 미국에선 前 현직 대통령 4명, 전·현직 국방부장관들, 상하원의 의장·총무, 그리고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국가들의 지도자까지 왔습니다. 이 자체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中東평화에 대한 세계 여론의 일치된 지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젊은층이 특히 라빈의 죽음을 애도했고 침묵하던 다수는 침묵을 깨고 나왔으며 우익과격세력은 守勢에 몰려 변명에 급급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라빈 만큼 신뢰를 받는 지도자를 다시 찾아볼 수 없게 된 점은 크나큰 손실입니다. 어차피 그의 죽음은 建國세대의 퇴장을 의미합니다.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이스라엘과 한국의 협력관계가 외교·군사·경제·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발전되고 있으므로 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큰 영향이 없을 것입니다』
『난 괜찮아』
기자는 라빈 총리의 장례식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낯익은 얼굴 세 사람이 보였다. 페레스, 펠로소프, 요나단…. 기자는 라빈 총리의 피살에 대해 총리 대리로 페레스만큼 진정으로 통탄한 이도 없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서로 싸우고 화해한 뒤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 시기에 평화협상의 후원자를 잃은 페레스의 침통한 얼굴을 보니 라빈과 비슷한 인상이었다. 부부처럼 라이벌도 오래 싸우다가 보면 얼굴이 닮아가는 모양이다.
라빈으로선 페레스가 죽음의 곁에 있었다는 점이 다행이었으리라. 그가 들고 뛰다가 쓰러진 평화의 횃불을 확실하게 이어받아 달릴 同志가 지키고 있었으니까. 朴正熙의 죽음 뒤엔 혼란이 왔으나 라빈의 죽음 뒤에도 이스라엘은 질서 정연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힘일 것이다. 비상사태가 닥쳤을 때는 한 개인에 의존하지 않고 다수에 바탕을 둔 민주체제가 더 강한 것이다.
라빈의 장례식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연설문 담당 보좌관 에이탄 하버氏의 연설이었다. 라빈은 토요일 밤의 집회때 「평화를 위한 노래」를 불렀다. 그는 가사를 적은 쪽지를 갖고 있다가 정사각형으로 정확히 접어 와이셔츠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 쪽지는 피가 뭍은 채 발견되었다. 하버는 라빈 총리를 아버지처럼 모셨다고 말하면서 그 쪽지를 들고 나와 낭독했다.
아침해를 맞으며/
평화의 노래를 부릅시다/
기도의 속삭임이 아닌/
평화의 노래를 부릅시다/
우렁찬 목소리로/
평화의 날을 기다리지만 말고/
그날을 향해 나아갑시다
라빈 총리 승용차의 운전기사 다마치氏에 따르면 라빈은 병원으로 옮겨지는 車中에서 의식을 잃기 전에 이런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아프긴 한데 그렇게 심하진 않아』
가슴을 관통 당한 朴正熙의 마지막 말 『난 괜찮아』를 연상시키는 라빈의 마지막 肉聲.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국가를 위해 소진시켜버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었을까?
역사의 짐을 지고 뚜벅뚜벅 걸어간 사나이- 라빈 총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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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7-14, 10: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