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짐을 지고 뚜벅뚜벅 걸어간 사나이- 라빈 총리(3)

돈 쓸 필요가 없는 선거제도

―왜 내년부터는 총리를 국민들이 직접투표로 뽑도록 법률을 고쳤습니까.

『우리 의회에는 120개 의석이 있는데 정당은 14개입니다. 왼쪽엔 노동당, 오른쪽엔 리크드당, 그 사이에 2∼3석을 가진 군소정당이 존재합니다.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은 없게 마련이므로 연립정권이 서게 됩니다. 이때는 사실상 군소정당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총리와 집권당을 결정하게 됩니다. 저를 포함한 학자들이 이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총리를 국민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하자는 법률개정안(이스라엘에는 헌법이 없다)을 건의하여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내년 선거에서 처음으로 실시되는데 직선총리가 組閣의 권한을 갖게 됩니다. 총리가 구성한 내각이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재선거를 치러야 합니다』

총리 후보는 미국처럼 당내 경선으로 결정된다. 각당의 국회의원 후보도 黨內에서 결정하면 그 명단을 서열에 따라 발표한다. 全국회의원이 전국구인 셈이다. 유권자들은 특정한 후보에게 찍는 게 아니라 黨을 선택하여 투표한다. 黨별 득표율에 따라서 당선권에 드는 국회의원수가 결정된다. 따라서 국회의원 후보가 선거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 선거자금을 모을 필요도 적어진다.

이스라엘은 좁은 나라이지만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역행정은 지방자치 기구에 맡기고 국회의원은 외교·국방·경제정책 등 전국적인 문제에만 신경을 쓰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 놓았다. 이 제도의 장점은 정치부패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국회의원들이 國政 같은 큰 문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이곳 정치인은 몽땅 가난뱅이』

―한국에선 비자금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스라엘에서 금전과 관련된 스캔들은 없나요.

『한국 사정은 잘 모르겠고요,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몽땅 가난뱅이들입니다. 서구나 동양의 정치인들에 비교하면 생활이 비참할 정도입니다. 정치자금으로 차 사고 집 사고 하는 일은 없어요. 라빈 총리는 시거와 초콜릿만 있으면 족한 사람입니다. 정당과 관계된 금전문제는 있었지만 지난 50년간 정치인이 부패케이스로 문제가 된 경우는 없어요. 세계의 어느 정치판에서도 일어나는 일들이 여기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치인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다는 주장이다. 이스라엘 국민과 국가가 세계에서 가장 安保의식이 투철한 이유는 국방체계를 뒷받침하는 정치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기 때문이란 논리가 성립한다. 이것은 이번의 취재여행에서 기자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이스라엘의 지독한 自主국방 의지는 깨끗한 정치 엘리트의 리더십에서 피어난 장미꽃이다. 정치가 쓰레기통 같으면 아무리 국민들이 성실해도 국방은 위태로워진다.

―라빈 총리의 재산은 얼마나 됩니까.

『텔 아비브에 아파트 한 채, 그리고 자동차 한 대, 그것이 전부입니다. 예루살렘에 총리官舍(관사)가 있는데 총리를 그만두면 비워주어야 하니까 재산이 아니지요』

駐이스라엘 朴東淳(박동순) 한국대사의 부인 李恩珠(이은주) 여사에 따르면 텔 아비브에 있는 라빈의 아파트에 초대돼 가보았는데 50평쯤 크기에 식당과 거실을 같이 쓰는 수수한 편이었다고 한다. 그림 이외에 장식물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라빈 부인 레아 여사는 화려한 옷차림을 즐기지만 그 이외의 면에서는 워낙 검소한 사람이란 점을 잘 알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라빈의 총리 사임과 검찰총장의 독립성

―1977년에 라빈 총리는 은행계좌 문제로 사임하지 않았습니까.

『당시에 라빈 총리는 駐美대사를 지낸 뒤 귀국하여 총리로서 4년째 접어들고 있었어요. 그때의 法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무원들은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귀국하면 해외 은행계좌를 30일 이내에 폐쇄하게 돼 있었는데 장모 레아 여사가 깜빡 잊고 그냥 내버려두었어요. 2000 달러의 잔고가 있었습니다. 한 기자가 그 정보를 듣고 그 은행에 가서 자신의 돈을 그 계좌에 입금시켜서 증거를 잡았습니다. 라빈 총리는 이스라엘 농구팀이 유럽 챔피언戰에 진출하여 이탈리아와의 경기를 끝낸 직후 텔레비전에 나와서 총리직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국민들은 아쉬워했습니다. 그 뒤 장모님은 벌금을 물었고 그것으로 사건은 종결되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정치적 하라키리(切腹)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임 때문에 15년 뒤(92년)장인은 다시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이 사건을 처리한 과정을 보면 권력의 분산이 어느 정도로 이뤄져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스라엘 法에는 외국에 은행계좌를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한 처벌 규정이 명확히 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재무장관이 위원회를 조직, 이 처리문제를 다루게 했다. 그 결론은 재판 없이 벌금을 물리는 것으로 나왔다. 이에 대해 검찰총장이 반발했다. 법무장관은 검찰총장 편을 들었다.

검찰의 방침은 라빈 총리는 벌금, 레아 여사는 기소하여 법정에 세운다는 것이었다. 검찰총장은 은행계좌와 관련된 어떤 부정도 없었고 다만 규정 위반 정도의 과실이란 점을 인정했지만 총리에게는 유별난 엄격성을 보였다. 라빈 총리는 그때 선거를 앞두고 있었는데 ①노동당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②아내와 함께 책임을 共有하기 위해서 사임하기로 했었다고 회고록에서 밝히고 있다.

재판장도 레아 여사에게 통상적인 판례를 뛰어넘는 액수의 벌금형(25만 이스라엘 파운드)을 선고했다. 기자가 이스라엘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 에피소드를 물어보았더니 거의가 『그 사건은 오히려 라빈의 정직성과 성실성을 돋보이게 했다』고 답했다.

공수부대 지원, 위험지대 근무한 라빈 손자

―왜 이스라엘에는 아직 페레스, 라빈 같은 建國 세대가 정치를 이끌고 있습니까.

『아마도 평화협상(Peace Process)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큰 일에는 뉴 리더가 낄 수 없어요. 만약 라빈 총리가 내일이라도 시리아와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그 다음날 이스라엘 국민들은 「라빈氏 수고했어요. 이제는 집에 가서 쉬세요」라고 이야기 할 겁니다』

펠로소프氏는 『골란高原을 시리아에게 되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라빈 총리뿐이다』라고 말했다. 라빈 총리의 오랜 軍 경력과 6일 전쟁의 승리, 그리고 강경파로서의 명성 때문에 그러한 양보를 해도 국민들이 안심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테러리스트 출신의 유명한 우익 지도자 베긴이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주고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치라는 설명이었다.

펠로소프氏는 『만약 페레스가 그런 일을 한다면 다음날에 당장 암살될 것이다』고 말했다. 다변가인 펠로소프氏는 책상을 손으로 두드리는 제스처를 써 가면서 변호사답게 청산유수로 설명해 나갔다.

『30년 전 제가 아직 어릴 때 우리의 우상은 장군이었습니다. 지금 세대는 달라요. 대기업인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어요. 自主국방 의지는 아직 살아 있지만 군인을 더 이상 우상화하지는 않습니다. 젊은 세대는 변하고 있어요』

펠로소프 변호사는 한국도 사정이 비슷하더라고 했다.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단 한 사람도 『북한 주민은 동포이니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통일해야 한다, 내 차는 두 대이니 한 대를 나눠주더라도 통일을 해야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더라는 것이다. 펠로소프氏는 또 『이스라엘 사람들도 한때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흡수하는) 大이스라엘 정책을 추구했는데 점차 왜 우리가 팔레스타인(요르단江 西岸 및 가자지역)을 먹여살려야 하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실용적 생각이 확산되면 평화협상은 성공할 것이다』라고 했다.

펠로소프氏는 『라빈 총리의 맏손자 요나단 라빈君이 공수부대에 지원하여 사병으로서 위험한 레바논 남부전선에 근무하다가 제대하여 내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10여분 뒤 예쁘게 생긴 한 작업복 차림의 청년이 문을 반쯤 열고서 펠로소프氏와 짧은 대화를 나누다가 사라졌다.
『저 아이가 요나단이예요』

기자가 라빈 총리의 손자 요나단을 두 번째로 본 것은 故 라빈 총리 장례식 중계방송을 통해서였다.

『유태 원리주의자도 큰 문제』

펠로소프氏는 이날 상당히 예언적인 발언을 했다.
『평화협상이 이 지역에 경제 붐을 몰고 올 것 같아요. 평화협상 이전에는 제가 한국에 가서 장사를 하자고 아무리 졸라도 성사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한국 상품이 쏟아져 들어오고 1년에 한국 자동차가 1만5000대씩이나 팔리곤 합니다. 관심이 이제 군사와 대결에서 경제와 협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원리주의자들입니다. 회교 원리주의자만 지적하는데 유태인 원리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점령지역에 사는 정착민 같은 사람들인데 이들은 무조건 자신들의 행동이 성스러운 것이라고 믿고 과격한 행동을 합니다』

펠로소프氏는 군대복무 경험이 없었다.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 받는 예비군 훈련기간 중 암벽을 타다가 떨어져 척추를 다쳤고 2년 동안 병원에서 누워지냈다고 한다. 그의 걸음걸이도 약간 저는 형편이었다. 그는 예비군으로부터도 면제를 받았다고 했다. 펠로소프氏는 『지난 5년 동안 처음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래도 평화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정도의 국가건설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고생 많이 했습니다. 이스라엘 가족 중에 최소한 한 명 이상은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나 여섯 번에 걸친 중동 전쟁에서 희생되었습니다』

그는 또 『이상하게도 한국인과 유태인은 습관과 전통이 정반대인데도 잘 통한다』면서
『우리는 이스라엘-일본, 이스라엘-중국, 이스라엘-타이 사람들 사이에선 느껴볼 수 없는 감정을 한국인에 대해 느끼고 있어요. 일단 가슴을 열고 나면 쉽게 친해지는 그 무엇인가가 있어요. 눈을 마주 보면서 말할 수 있는 사이라고 할까요. 한국을 상대로 한 사업도 잘 되고 있고 여기와 있는 한국 대사(朴東淳)나 직원들은 1년밖에 안되었는데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북한 수용소 문제 고발은 유태인의 도덕적 의무』

펠로소프氏를 만나기 전 준비한 자료가 있었다. 月刊朝鮮 1995년 3월호에 실린 「인간멸종의 현장」 북한 정치수용소 경비원 安明哲씨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영어로 번역한 자료였다. 이 자료를 펠로소프氏에게 건네주면서 기자는 당부했다. 『아우슈비츠는 지금도 북한에 살아 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피해자인 유태인은 이 문제를 세계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자료를 꼭 장인 어른께도 드려주십시오』

펠로소프氏는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이런 학살 만행을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것을 고발하는 일은 유태인의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저한테 맡겨두십시오』
펠로소프氏는 기자가 『내일 라빈 총리를 인터뷰하게 되었다』고 하니까 『충고를 해 줄 것이 있다』고 했다.

『인터뷰를 그분이 끌고 가도록 하면 안됩니다. 질문 하나에 대해서 20분간 강연을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귀하는 너무 예절 바르게 하는데 여기선 무례가 필요합니다. 대답을 중단시키고 질문공세를 펴도 됩니다. 우리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해요. 가만있으면 강연만 듣다가 끝입니다』

기갑부대 추모의 밤 행사장에서

11월2일 밤에 기자는 텔 아비브 교외에 잇는 기갑부대 기념관으로 구경을 갔다. 이날은 기갑부대 전몰자 추모행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全기갑부대 출신 제대장병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관광버스 수십 대를 타고 全國에서 고참들이 모여들었다. 아내, 아들, 딸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 많아 거대한 가족모임이었다. 야외극장에서 열린 추모의 행사는 예술적인 조명 아래 경건하고도 환상적 분위기 속에서 거행되었다. 기자는 주로 장군 출신들이 앉아 있는 스탠드에서 지켜보았다.

기갑부대 합창단과 기갑부대 출신가족의 어린이 합창단이 무대 양쪽에서 「우리가 역사를 만들었다」같은 軍歌를 부르고 戰死者의 자녀들이 횃불을 붙이는 동안 전시된 탱크는 빨간 조명을 받아 밤하늘을 배경으로 불타고 있었다. 전쟁과 군대를 소재로 한 예술공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 품에 안긴 꼬마의 천진한 표정이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에제르 와이즈만 대통령과 라빈 총리도 기자와 같은 구획 안에 앉아서 구경했다. 두 사람이 입장하고 퇴장을 해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특별한 경호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날 기자는 中東戰史에 나오는 영웅들을 여러 명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눴다. 기자는 전쟁기록물을 많이 읽어 그들의 이름은 익은 터였다. 4차 중동전쟁 때의 공군사령관 베니펠레드 장군, 4차 중동전 때 수에즈 운하를 渡河하여 이집트 군의 배후를 차단한 탱크부대 지휘관 데이비드 쇼발 장군도 만났다. 쇼발 장군은 『對戰車 미사일은 초속 100 m 로 날아오기 때문에 육안으로 포착하면 피할 수 있는데 세 발이 동시에 날아와 피격당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지난 5월의 첫 이스라엘 방문 때 「戰士의 일기-이스라엘에서 훈장을 가장 많이 받은 탱크 지휘관의 전투記」란 책을 한 권 샀었다. 그 주인공 아비돌 카할라니 장군(51세)도 만났다. 준장으로 예편한 그는 노동당 국회의원이 돼 있었다. 다부지게 생긴 그는 라빈 총리와 사이가 나빠져 있었다.

자신의 책 서문을 쓴 사람이 라빈이었는데도. 그 이유는 이스라엘-PLO 간의 오슬로(Ⅱ)합의가 국회에 회부되었을 때 라빈 총리의 직접 설득도 뿌리치고 否표를 던졌기 때문이었다. 카할라니는 4차 중동전쟁 때 골란高原 전투에서 탱크부대 대대장으로 참전, 결정적 전투에서 10여 대의 탱크로 수십 대의 시리아 戰車부대를 격퇴, 이스라엘을 구한 영웅으로 추앙받은 인물이다.

기자를 안내했던 샌디氏는 『내일 라빈 총리에게 카할라니와 만났다는 얘기는 꺼내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기자는 民軍 일체의 이날 행사를 보면서 왜 한국에서는 전쟁영웅들이 많은데도 잊혀지고 먼 나라 이스라엘의 전쟁 영웅은 본 기자까지도 알 정도로 기억되는지, 또 軍과 民을 역사속에서 융합시키는 이런 행사 대신에 軍과 民 사이에 담을 쌓으려는 움직임만 득세하는지를 곰곰 생각했다.

라빈의 최후 인터뷰

『1966년에 한국 첫 방문… 그때 벌써 무언가가 이뤄지고 있었다』

1995년 11월3일은 금요일이었다. 토요일은 유태교에선 휴일이니 우리의 토요일에 해당하는 금요일에는 대부분의 사무실이 휴무였다. 기자는 이날 오후 1시10분쯤 국방부로 들어갔다. 선물과 취재 노트, 카메라, 녹음기가 든 작은 가방 세 개를 들고 들어갔다. 국방장관실에 갖고 들어갈 때까지 가방에 대한 검색은 한번도 없었다. 믿는 사람에 대한 편의제공은 좋지만 만약 내가 테러리스트라면 라빈 총리의 목숨은 내 것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망상이 드는 것이었다.

장관실 입구엔 전화받는 비서가 한 사람 있을 뿐 손님이 앉아 기다릴 만한 공간도 의자도 없었다. 복도 한쪽을 파서 만든 곳이 대기실인데 문도 없고 소파만 양쪽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하루 전에 만났던 해외담당 부국장 요시 드라즈닌氏에게 촬영을 부탁했다. 선물이 포장돼 있는 것을 보고는 검색은 생략하고 『총리 앞에서 풀라』는 것이었다.

오후 1시30분쯤 페레스 외무장관이 서류철을 들고 혼자서 장관실에서 나왔다.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눈 듯한 느낌을 주었다. 페레스는 라빈 장례식 弔辭 때 이날 나누었던 대화를 소개했다.
『(그 사건) 하루 전날 우리는 단둘이서 만났었지요. 처음으로 당신은 일이 힘들어 죽을 지경이라고 실토하면서 평화에 대한 의무감이 우리를 혹사하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수행비서의 안내를 받으면서 집무실에 들어선 것은 오후 1시35분쯤이었다. 키가 기자와 비숫한(176cm쯤) 라빈 총리는 청색 양복 차림이었다. 맞은편 벽 쪽에 놓인 책상 뒤에 서서 기자를 맞았다. 기자는 목례를 하고 다가가서 악수를 한 뒤 딱딱한 의자에 앉았다. 담판하듯 맞 對面하는 형국이 되었다. 명함을 꺼내놓고 朝鮮日報와 月刊朝鮮에 대한 설명을 해갔다.

『여기 다 적혀 있군요』

라빈 총리는 책상 위에 놓인 한 페이지짜리 타이프 메모를 보면서 다소 퉁명스럽게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本論으로 들어가자는 뜻인 것 같았다. 기자는 준비해간 질문지를 꺼내 놓고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라빈 총리측에서는 한번도 사전에 질문 요지를 미리 보여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두 손 모으고 단정한 자세

―귀하가 지난해 12월에 한국을 방문한 이래 양국 사이엔 눈부신 교류·협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인상을 말씀해 주시지요.

『1966년에 저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는데, 당시 저는 참모총장이었고, 한국은 朴대통령의 영도 아래서 1950년대의 戰亂을 딛고 막 국가再建을 시작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작년, 28년 만에 다시 찾아가 본 한국은, 그 변화가 너무나 드라마틱해서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위대한 경제 발전에 의해 貴國은 이제 선진 공업大國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三星그룹 부회장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경영자들을 만났습니다만, 金泳三 대통령에 의해서 시작된 개방정책에 따라, 또 우리가 추진하는 평화정책(Peace Process)의 덕분이기도 합니다만 한국과 이스라엘은 급속도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 사이에 이스라엘 시장에는 자동차, 전자제품 등 수천 가지의 한국 상품들이 등장했습니다. 한국과 이스라엘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공통점이 많습니다. 군사력과 테러의 위협 속에서 국가생존을 유지해야 하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습니다. 북한은 지금 中東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는 극단적인 세력을 돕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아주 부정적인(Very negative)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북한과의 오랜 대결 관계를 평화적으로 해소하려고 경제협력을 제의하는 등 노력을 해 왔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책임은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공산전체국가(extreme Communist totalitarian)인 북한에 있습니다. 아시아 대륙에서 우리 두 나라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이지만 위협 속에서도 평화 공존을 이룩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을 위한 계기를 마련한 우리에게 이제는 아랍국가들도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카사블랑카 회의에 이어 며칠 전 열린 암만 中東정상회담은 이 지역에 새로운 경제 협력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한국과 이스라엘의 협력에도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2주전 UN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본인은 金泳三 대통령을 1년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기쁨과 영광을 가졌습니다. 거기서도 兩國이 달성한 협력적 성과를 확인하고 그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라빈 총리는 남보라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예상대로 수수한 차림이었다. 얼굴은 붉었고 안경 뒤의 눈은 푸르고 깊었다. 응시하는 눈매이지만 위협적인 눈매는 아니었다. 正坐(정좌)하여 책상 위에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단정한 자세로 제스처 없이 천천히 말했다. 바리톤의 굵직한 목소리였다. 30초에 한 번씩 입술에 살짝 미소를 띠었다가 서둘러 거둬들이는데 그 웃음이 그렇게 천진난만할 수가 없었다.

그의 장례식에서 손녀가 나와 추도사를 하면서 『이제는 할아버지의 그 반쪽 미소(half smile)를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했을 때 기자는 바로 그 웃음을 떠올렸다. 라빈 총리는 한국의 경제성장, 특히 공업력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을 「Great Industrial Power」라고 부를 때는 기자도 기분이 좋았다.

특히 金泳三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호감이 두 나라 급속접근의 바탕이 돼 있다는 느낌이 왔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했던 것 같다. 金泳三 대통령은 작년 訪韓한 라빈 총리와의 만찬 때 예정시간을 훨씬 넘기면서 대화를 계속했고, 다음날 아침에 DMZ 시찰을 떠나게 돼 있던 라빈 총리를 다시 아침식사에 초대, 대화를 계속했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여 이란 등 中東지역에 수출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 건 이외에 북한이 이란의 금전적 도움을 받아가면서 核개발을 하고 있다는 정보도 갖고 있습니까.

『우리는 북한 핵개발의 이해 당사자가 아니므로 그 문제에 대해서 판단할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관점에선 북한은 中東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 一役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란과 시리아에 스커드 C 地對地미사일을 팔고 있는데 사정거리가 500 km나 됩니다. 북한은 이 두 나라에 대해서 미사일 생산기술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란은 더 긴 사정거리를 가진 「노동」 미사일을 매입하려고 하는데, 그 사정거리는 1300 km나 됩니다. 이것은 이란에서 이스라엘에 이르는 거리입니다. 북한은 이란을 도우려고 작정한 세계 유일의 국가입니다. 사정거리 300km 이상의 미사일과 그 개발기술을 외국에 파는 것은 국제조약 위반입니다. 북한은 이스라엘의 敵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란과 북한이 과연 核개발에도 협력하고 있느냐 하는 데 대해선 이스라엘에서도 이견이 있는 듯했다. 전날 구티 몰 해외담당 차장에게 물었더니 그는 『북한의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이 국내용으로만 보기에는 너무 크다』면서 『이란에 플루토늄을 팔 목적을 갖고 있을 개연성이 있다』고 했다. 한국과 이스라엘이 급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양국이 북한의 核개발 및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공동의 위협으로 의식하고 있어 대응책에서 협조할 수 있는 소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이스라엘은 북한과 직접 교섭하여 그들의 미사일 판매를 저지하려고 했습니다. 장래에도 북한과 직접적인 교섭을 시도할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습니까.

『그런 접촉이 여기저기서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쓸데없는 일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조건은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것이었고 미국이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그 문제를 취급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다시 직접 교섭을 시도할 수도 있겠네요.

『미국과 한국 등 여러 국가들이 협력하여 만들어낸 對 북한 정책과 배치되는 정책을 시도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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