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인 권한 달라』
―총리실에도 변화가 있었죠.
『총리실의 행정조정실장이 차관회의를 주관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총리실 산하로 들어오면서 총리실의 심사분석·조정기능이 강화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총리실의 조정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총리에게 실질적인 통할(統轄) 권한을 주어야 합니다』
―바람직한 정부의 기능은 어떠해야 한다고 봅니까.
『기업활동이건 사회운동이건 官주도형 국정운영은 곤란합니다. 국민의식개혁운동까지 정부가 주도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어야 합니다. 경제기획원도 과거 경제성장 시대에 큰 역할을 했지만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경제기획원에 몰리는 유능한 공무원들을 환경이나 보건사회 부분으로 옮길 필요가 있습니다』
―해운관계 수산청, 항만청 등의 기구를 통폐합, 해양부를 신설하자는 얘기도 오래 전부터 나왔습니다. 해양부 신설은 타당성이 있습니까.
『연안해양의 오염이나 대륙붕 문제도 빨리 손을 써야 합니다. 정부기구 개편 얘기가 나오면 반드시 해양부가 거론되지만 이번 개편은 축소 쪽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제외된 것 같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의 업무스타일을 시간관리 측면에서 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李承晩 朴正熙 前대통령은 바쁜 중에도 일부러 책을 읽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진 반면, 全斗煥 盧泰愚 前대통령과 金泳三 대통령은 상당히 바쁘게 지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너무 바쁘면 국정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문제점이 있다고 봅니다. 대통령은 중요한 일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쏟고, 통상적이고 작은 일은 아래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 첫 조치로 총리에게 대폭적으로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총리가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것은 대통령이 올바른 정Ⅰ甦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는 올바르지 않은 것은 저지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것은 대통령이지만 일반 정책수립·집행은 해당부처에서 이루어집니다. 각 부처의 업무가 전후의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하고 부처간의 조화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총리의 책임입니다』
대통령과 총리의 업무분담
―총리의 내각 총괄 기능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통령이 총리의 실질적인 내각 총괄 기능을 인정해주어야 대통령은 더 넓은 시각에서 중요한 국정사안을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고 모든 국정사안이 대통령의 손을 거치는 것이 대통령 중심제의 본래 뜻이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대통령에게 부담이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국무총리 제도가 생길 때 위인설관(爲人設官) 성격이 강했습니다. 총리직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총리는 헌법상 각부 장관의 임명 제청권, 해임건의권, 대통령이 문서로서 행하는 국법상 행위에 대한 부서권 등을 통해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점에서 내각 책임제적 요소를 가미한 제도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총리 無用論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제도를 잘 이용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서 운용이 안 된다고 제도 자체를 뜯어고치려는 사고방식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정부 각 부처를 총괄하는 총리라는 유익한 제도를 형식에 그치게 해서는 안됩니다. 대통령이 직접 내각에 지시를 내리면 부처간의 조정이 유명무실해지고 총리는 할 일이 없어지고 맙니다. 내각을 총리에게 맡기면 대통령은 국정운영에 오히려 힘이 될 것입니다』
―집안에 비유한다면 대통령이 아버지라면, 총리는 꼼꼼하게 아이들을 챙기는 어머니 역할이겠지요.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총리제도가 잘 활용된 적이 있습니까.
『저는 별로 없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선 대통령 중심제의 의미가 왜곡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대통령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일은 총리가 독자적으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던 거죠』
―원래 서구식 제도인 대통령 중심제가 동양에 수입되어 가부장적인 가치관과 어우러지면서 대통령을 마치 임금으로 보는 시각이 부지불식간에 생긴 것 같습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통치권」이라는 초법적인 용어로 표현하는가 하면,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것을 「통치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보는 거죠. 얘기가 나온 김에 총리직 사임에 관해 물어보겠습니다. 李 前총리가 총리직에서 사임한 것은 대통령이 만든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의 결과를 총리에게 보고하라는 지시가 직접적인 발단이 되었습니다. 이 회의는 총리가 주관하는 對北전략회의가 따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언론이 對北정책에 손발이 맞지 않는다고 비판하니까 급조한 것이었습니다. 언론은 李 前총리의 이런 요청을 대통령에 대한 반항으로 보도했고, 이것이 사임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저는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가 생기는 것을 사전에 몰랐습니다. 이 회의는 대통령이 안보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구성되었는데, 설치목적은 부처간의 협의조정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부처간 협의조정을 위한 회의라면 사후 보고를 받더라도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총리 비서실장을 옵저버 자격으로 참석하도록 요청, 허락을 받았습니다』
총리직을 사임한 이유
―통일안보정책조정회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습니까.
『국무회의에서도, 통일원을 비롯 통일·안보 문제를 담당하는 기구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별도의 기구를 설치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 회의는 통일관계 업무추진이 아니라 협의·조정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여 넘어갔지만, 어쨌든 회의 자체의 탄생에는 외부에서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 후 이 회의의 진행상황을 보면 협의·조정의 정도를 넘어 실제의 對北·통일 정책을 논의하고 정책을 입안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시 이 회의에서 논의한 탈북(脫北) 벌목공 문제 같은 것을 총리인 내가 모르는 데도 마치 정부의 정책이 정해진 것처럼 보도되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脫北 벌목공의 귀순허용 여부를 두고 정부 내에서도 혼란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내각이 관여한 적이 없는 데도 脫北 벌목공에 관한 내용이 「정부고위당국자」라는 이름으로 수시로 발표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총리지시를 내렸습니다. 金대통령이 설치한 회의를 놓고 총리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볼 수도 있을 수 있지만, 이 회의는 원래의 취지대로 운용해야 하고, 내각을 통괄하는 총리가 이 내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회의 설치 취지나 회의 내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이 설치한 회의의 내용을 총리에게 보고하라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도전이 아니냐는 비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전에 내각 통괄의 차원에서 조정내용을 알아보는 것이 대통령에 대한 도전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金泳三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 金대통령이 李 前총리의 발언을 불쾌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습니까.
『언론에 그렇게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날 金泳三 대통령을 만나러 갔을 대 사의를 먼저 표명했습니까. 아니면 사표를 종용받았습니까.
『사표 종용이 있기 전에 제가 먼저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이 마지막 獨對의 상황에 대해서 李 前총리는 더 이상 밝히길 거부했다)
―95년은 해방50년을 맞는 해입니다. 우리나라의 지난 50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는 그동안 어려운 시절을 거쳐 중진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세계는 정보화라는 거대한 물결로 급속한 변화를 겪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남북문제입니다. 그동안 남북문제는 폐쇄적이며 위험한 북한을 개방 세계로 끌어내 위험한 핵무기 같은 것을 쓰지 못하게 하는, 비교적 단순한 구도였습니다. 하지만 1994년 말 美·北 협상 타결로 對北관계는 다변적이고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對北관계는 더 넓은 시각으로, 복잡한 상황하의 뚜렷한 원칙에 다라 접근해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의 정통성 문제
―지방자치는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봅니까.
『세계화의 함께 지방화도 해야 합니다. 아직 지방자치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은 나라 발전을 지연시키는 것입니다. 지방자치 시행에 다른 어려움은 선진국으로 나가는 데 있어서 우리가 앞으로 한번은 겪어야 할 홍역입니다』
―李 前총리는 가끔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할 생각이 없습니다』
―50년의 한국 현대사를 얘기할 때면 항상 정통성이 문제가 됩니다. 좌파세력에서는 지난 한국 현대사는 정통성이 없고 마치 북한이 더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습니다. 반면 기성세대는 거기에 적절히 반박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법적으로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정통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남한에서는 적법한 헌법 제정권에 의하여 헌법이 제정되고 정권이 수립되었으며 이것이 정통성을 뒷받침합니다』
―우리나라는 민주적인 정통성이 약한 때가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이 높은 정치의식으로 그것을 극복, 이제는 강한 정통성을 가진 정부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한번도 그런 민주적인 정통성을 이룬 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친일문제로 우리 현대사의 정통성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친일문제를 청산했는데 남한에는 친일파들이 정권에 들어갔기 때문에 남한은 정통성이 없다는 논리입니다.
『친일 청산과 정통성 문제는 다르죠』
―우리나라 법률문화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구속사건의 경우, 변호사에게 착수금으로 1천만원을 주고, 성공하면 다시 5천만원을 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 놓고도 변호사를 마음대로 만날 수도 없는데 말이죠. 일부 변호사들이 귀족화되면서 정작 자신의 임무는 다하지 않는 이상한 법률문화가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늘이거나 법률시장을 개방, 경쟁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많은 수임료를 받는 일부 유명한 변호사들이 있는 반면 한정된 사건을 서로 맡기 위해 경쟁하는 변호사들도 많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늘이면 후자그룹의 경쟁을 격화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에 들어가서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정부 내에 법률전문가가 너무 없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늘리면 그들 중 정부로 들어오는 사람도 많아지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유능한 젊은 변호사들이 많아져 법률 서비스도 더 쉽게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李光耀의 생각에 반대』
―이것은 法治를 우리 사회에 어떤 식으로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에서 법치주의를 확립시킨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법원이 위헌(違憲) 심사권을 가지고 헌법재판을 한다는 것이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것이 모든 정치 행동의 기준이 됩니다. 둘째는 변호사를 이 사회각계 각 층에 진출한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변호사가 많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일의 처리를 법의 측면에서 판단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언론의 활동영역에 관해 일정한 선을 긋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의 경우 지나칠 정도로 언론이 파고들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언론의 행위에 제한을 두다보면 자칫 언론의 행위에 제한을 두다보면 자칫 언론의 정당한 활동까지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외부의 제약보다는 언론 자신이 흑백논리로 한쪽으로 휩싸이지 말고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광요(李光耀) 前 싱가포르 총리는 동양적인 전통, 가족중심·가부장적 행태 등을 법이란 도구에 담아 나라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는 동양사회에 서구적인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무비판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金大中 亞太재단 이사장은 이를 독재의 합리화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법률가적 관점에서 李光耀씨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포린 어페어誌에 실린 李光耀, 金大中씨의 글을 읽었는데, 저는 李光耀씨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金大中씨의 생각이 법치주의나 민주주의에 적합하다고 봅니다. 전통적인 윤리관념들은 사회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요소지만, 개인의 권리나 자유는 법적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합니다. 법의 목표는 시민적 자유의 확보입니다. 아시아에서도 민주적 전통을 수용하고 익혀나가야 합니다』
―李光耀씨가 자신의 독재를 법치라고 주장할 때 이를 반박하는 방법은 법 제정방식, 즉 언론자유가 보장된 복수정당체제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할 수 있습니까.
『법 제정에 관한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면 법이 되고, 그 법에 의한 행동은 항상 정당하다는 생각은 자칫 잘못하면 나치스나 파시즘으로 이어집니다. 법의 형태를 취했다고 언제나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중앙청,『굳이 철거할 필요없다』
―朴正熙 대통령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대통령으로서의 능력과 업적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분은 역사를 보는 비범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고 봅니다. 다만 정권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非민주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도 역사적인 사실로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는 반론이 있지만 그 말은 실증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논리로 법에 어긋난 정권획득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부정하기도 힘들지요.
『그 시점에 있어서 그분의 역사적 업적 등은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국가경제적 발전에 끼친 공적은 인정해야 합니다』
―일부 정치인들은 요즘 성수대교 붕괴사고나 공무원들의 부정부패 사건이 생기면 이를 前 정권의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법률용어에 「공작물 설치, 보존에 관한 하자책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도성장시대에 이루어 놓은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하자가 생겼다고 항상 설치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존에 잘못이 있다면 보존자도 책임이 있는거죠』
―중앙청 철거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처음에는 철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日帝를 상징하는 상징물처럼 보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후 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 건물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헐어버릴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언젠가 우리 후손은 역사적인 부담 없이 중앙청을 바라볼 수 있을 때가 올 것입니다. 게다가 문화재 이전에 따른 위험부담과 엄청난 예산을 들여 굳이 철거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도 있습니다』
<기록·崔洪烈 月刊朝鮮기자>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국정 운영(4) - 이회창 총리 퇴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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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7-14, 10: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