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국정 운영(3) - 이회창 총리 퇴임 후

『헌법상의 각료제청권 행사했다』

―총리는 어떻게 맡게 되었습니까.

『감사원장 시절 金泳三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느닷없이 총리직 제의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 전에 아무로 암시도 없었기 때문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저는 차라리 이런 제의가 없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감사원장으로 일단 정부에 몸을 담은 이상 총리직도 한번 열심히 해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동안 「얼굴 총리」라는 말도 있었지만 법률로 정한 총리라는 직책에 내용을 채우는 것은 그 직책을 맡은 사람의 의지와 신념에 달려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법률이 정한 총리의 장관 제청권을 행사했습니까.

『총리의 장관 제청권은 총리나 장관이 모두 대통령의 보좌기관이라는 점에서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제청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총리가 직접 장관을 선발하고 대통령이 제청 여부만 결정하는 것만이 정당한 제청은 아닙니다. 대통령과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치면 된다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해석입니다. 과거에는 총리의 장관 제청권이 이런 사전 협의도 충분히 거치지 않고 형식적으로 적용되었습니다. 저는 金대통령이 제시한 인사안을 놓고 충분한 협의를 했습니다. 그 중에는 제 견해로 변경된 것도 있고, 일부는 원래의 내용에 들어 있지 않은 사람이 임명된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헌법상에 정해진 총리의 제청권을 행사했다고 봅니다』

―1천여명의 직원을 둔 감사원장에서 내각을 총괄하는 총리로 자리를 옮기면서 관심도 국정전반으로 넓어졌을 텐데요. 국정 파악은 어떤 방법으로 했습니까.

『총리는 내각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총리의 역할·기능과 관련, 저는 내각 차원의 국정운영을 강조했습니다. 저는 장관과의 간담회 때 내각의 성공여부는 국정의 여러 분야가 내각차원에서 집약되고 효율적으로 운용되는 데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침 총리 임명 직후 각 부처의 대통령 연두 업무보고가 있었습니다. 각 부처의 업무보고는 총리를 거치기 때문에 저는 쉽게 업무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전에 총리가 각 부처의 보고내용에 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했습니까.

『당시 저는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지적하지는 않았습니다』

―李 前총리는 각 부처의 업무를 철저히 파악, 국무회의를 건성이 아니라 주도하는 입장에서 이끌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국무회의는 어떤 원칙하에서 주재했습니까.

『저는 내각차원의 국정운용을 강조했기 때문에 국무회의에서 주요 문제점을 활발하게 논의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시간적 제약도 있고, 차관회의에서 문제점들이 걸러진 후 국무회의에 올라오기 때문에 국무회의에서 새롭게 논의되거나 문제점이 새로 지적되는 사안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李 前총리는 총리 취임 직후 全斗煥 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 집을 방문했습니다. 감사원장 시절 그분들을 조사한 것도 있고 해서 어색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분들이 소탈한 태도로 대해주었습니다. 저는 감사원장이라는 직책상 부득이 조사를 했고, 그분들도 이 점을 이해해 주셨으리라고 봅니다』

『우리 모두 實勢가 됩시다』

―총리 당시 국무회의에서 『우리 모두 實勢가 됩시다』라는 말을 했죠. 이 말은 민주계 실세장관들에 대한 견제라고 해석되었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신문에 그런 식으로 보도되니 제가 모사꾼처럼 보인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밖에서 보기에 힘있는 장관, 힘없는 장관들이 나눠진 것처럼 비치면 내각이 전체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한 교실 출신처럼 뭉쳐서 내각 차원에서 어려운 일을 뚫고 나가자」라는 얘기와 함께 「우리 모두 실세장관으로 힘을 모아 나가자」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실세」라는 용어가 정치판에서 많이 쓰이니까 마치 어느 특정인들을 지목한 것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장관 중에는 崔炯佑 장관처럼 金泳三 대통령과 특별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영향력이 큰 장관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통괄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그런 점은 별로 없었습니다. 아무리 정치인이라도 入閣하면 내각의 구성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장관들의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제가 겪은 분들은 모두 부처업무 파악을 잘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야에서 온 사람들도 빨리 업무를 파악하고 열심히 합니다. 흔히들 「밑에서 일은 다하고 장관은 결재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장관이 제일 열심히 일합니다. 제가 총리였을 당시 박윤흠(朴鈗炘) 환경처 장관 같은 경우는 수질오염사건이 계속 터진 탓도 있지만 옆에서 보기에 「저러다 병나지」할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국방부 포탄도입 사기사건 때 정부는 별다른 의혹이 없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사건은 발표한대로 단순사기였죠.

『그렇습니다. 그 사건은 군·검찰 합동의 수사기구 결성부터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사건의 내용은 발표한 대로입니다』

―정치권에서 문제를 제기해 다시 수사를 재개한 상무대 입찰부정 사건에는 선거자금 같은 정치적인 사안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데는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상무대 사건은 조계종 분규사건이 발단이 되어 수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서의현(徐義玄) 총무원장과 맞선 조계종 개혁세력측이 제시한 요구사항 중에는 상무대 이전에 관한 비리의혹을 밝히라는 것이 들어있었습니다. 조계종 사태가 폭력사태로까지 번지자, 金泳三 대통령은 저에게 전화로 이 폭력사태를 철저히 수사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저는 조계종 폭력사태만 수사하면 반사적으로 정부가 상무대 사건을 일부러 은폐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을 우려, 두 사건을 모두 철저히 수사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과중한 국회의 질의 답변으로 장관들이 업무에 많은 지장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국회의 질의 답변 관행에서 개선할 점이 있습니까.

『많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대개 의원들이 수십 가지 정책질의를 하고 각 사항에 대해 일일이 체크하면서 답변을 받아냅니다. 국회 본회의는 물론 상임위에도 장관뿐 아니라 간부급들이 모두 참석, 엄청난 시간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웬만한 일은 담당 실무국장에게 물어보고 총리나 장관에게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만 물어보는 관행의 정착이 아쉽습니다』

―金泳三 대통령은 94년 봄 일본과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한국을 떠났을 때 대행체제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집니까.

『대통령은 外遊중에도 통신시설을 이용, 국정운영을 체크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총리가 업무를 대행하는 상태는 아닙니다. 헌법상으론 대통령 有故시 총리가 맡은 권한대행 체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UR 관련 對국민 사과

―94년 봄 金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안보장관회의를 소집한 적이 있었죠.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총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대통령이 국내에 없으니까 아무래도 불안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치안관계 장관회의는 대통령 외유시 통상적으로 열어왔습니다. 제가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연 것은 당시 북핵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상황변화를 체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정부의 특징 중의 하나는 정부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총리나 대통령이 나와서 對국민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李 前총리는 94년 1월 낙동강 수질오염 사건, 94년 4월 UR 이행계획서 수정파동으로 사과를 두 번 했습니다. 특히 김양배(金良培) 농수산부 장관이 UR 이행합의서 문제로 해임된 후 對국민 사과문안을 두고 청와대와 異見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UR이행계획서 문제는 93년 12월 UR협정이 타결될 때의 문안과 정부가 낸 이행계획서가 내용이 틀렸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화를 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담당자들이 협정내용을 수정한 것이 아니라 협정서 중 불분명했거나 미비한 부분을 조정·보완한 것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우리나라에 유리한 것을 건져내려고 고심했던 결과입니다. 이들이 대통령과 국민들을 속인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저는 UR이행계획 관련 對국민 사과를 하기 전날 밤을 꼬박 세웠습니다. 저는 결국 「UR이행계획서를 수정한 것 이라기 보다는 조정·보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미리 알리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라는 취지의 사과를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 청와대쪽에서 「왜 지시대로 안 했느냐」는 항의는 없었습니까.

『청와대쪽에서 불만스러워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새 정부는 낭비가 심하다는 이유로 서울평화상을 폐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김용식(金溶植) 이사장은 법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며 법률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강권(强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서울평화상은 없어져도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서울평화상 재단이 있는데 거기서 결정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관변단체 보조금 감축

―관변단체에 대한 보조금 감축은 직접 결정했습니까.

『저는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바르게살기중앙운동협의회(바살협), 자유총연맹 등의 활동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청결, 산불예방 등 미처 정부의 손이 미치지 않는 부문에서 많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왜 「관변단체」라는 경멸스런 이름을 들어가면서 정부의 특별한 지원을 받아야 합니까. 이들은 몇 백억원에 이르는 자신들의 자산을 가지고 있으니, 자립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정부의 행사 때 심부름꾼처럼 인원을 동원하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습니다. 다른 시민단체 같이 이들도 자립하여 떳떳하게 정부의 지원을 받음으로써 자존심과 명예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선 자립의 기초를 닦을 수 있도록 보조금을 점차적으로 끊어가는 방법을 강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95년·26년 선거 때 정권과의 유착같은 오해를 받지 않도록 단기적으로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기간이 3년으로 잡혀 있었습니까.

『바살협은 95년부터 바로 중단, 새마을중앙회는 95·96년 50%씩, 자유총연맹은 95년 60%, 96년 40% 중단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들 조치가 이들 단체들을 枯死시키려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저는 이들 단체의 활동내용이나 의의를 낮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는 의도였습니다』

―보수세력쪽에서는 이런 시각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체제를 수호하는 기능을 했던 자유총연맹이나 前정권에서 만든 서울평화상 같은 것을 약화시키거나 폐지하려 하는 대신, 반정부·반체제적인 활동을 했던 단체에는 사단법인 승인과 함께 문예진흥 기금까지 지원하는 것은 우익을 소외시키고 좌경세력을 비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었습니다.

『자유총연맹 간부들과는 보조금 중단에 관한 문제점을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운동권 출신인 金文洙씨가 민자당 지구당위원장을 맡고, 자유총연맹에 관한 보조금을 중단하는 일련의 일들이 겹쳐 그런 생각이 든 것 같습니다』

―李 前촐리는 감사원장이나 총리시절 법률이 정한 권한을 확보하려고 했기 때문에 청와대나 안기부 쪽에서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들 기관에서 견제를 받은 적은 없습니까.

『총리 때 제 交人관계를 묻고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한번 알아보라고 한 적은 있습니다. 그후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다는 해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홍구(李洪九) 부총리와는 경기고등학교 동기지요. 상당히 각별한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학교를 같이 다녔으니까요』

―당시 경기고 출신 장관이 8명이나 되었어요. 특별한 모임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그런 것 없습니다. 오히려 경기고 출신끼리 몰려다닌다는 얘기가 나올까봐 경기고 출신 장관들과는 일부러 모임 같은 것을 피할 정도였습니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총리

―청와대와의 업무협조를 할 때 비서실장이 창구였습니까.

『金泳三 대통령에게 할 얘기가 있으면 직접 전화했습니다. 직접 전화를 받기도 하고요. 사무상 필요에 따라 朴寬用 비서실장도 통화한 일은 있지만 평소에 특별한 창구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과 총리가 만나는 주례보고는 어떤 자세로 임했습니까. 쟁점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상의까지 했습니까.

『각 부처의 업무를 일일이 보고하기보다는 내각 차원에서 문제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얘기했습니다』

―대통령의 지시가 명백하게 부당하다고 생각될 때는 그 자리에서 『No』라고 말했습니까.

『제 의견과 다른 부분은 그대로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의 지시가 부당하거나 부당하게 보일 때 그 자리에서 『No』라고 말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밑에서는 일단 시행 해본 후 『해보니까 안 된다』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의견을 표시하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李 前총리는 솔직하게 그런 의견표시를 했기 때문에 대통령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한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과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한편 분명하게 제 의견을 말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말을 했습니다. 총리든 장관이든 정책에 관해 대통령에게 말할 필요가 있으면 해야 합니다. 대통령에게 말하기 어렵다고 해서 피하면 언로(言路)가 경색되고 대통령에게도 좋은 일이 아닙니다』

―단임제 대통령제에 대해 문제를 제가하는 사람이 많은데, 개헌의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까.

『개헌 차원보다도 단임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우선 소위 권력누수현상이 빨리 옵니다. 국가사업을 추진하는 데도 5년 안에 일차적인 성과라도 볼 수 있는 사업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4년 중임이 좋은 점도 있습니다』

―최근 「Rise of China」라는 책을 보니 미국인 저자는 한국의 개발모델을 높이 평가하면서, 중국이 이를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970년대 한국의 관료조직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집단이라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공무원들이 정치권, 언론, 대통령, 감사원 등 거의 모든 부분으로부터 매를 맞고 있습니다. 지난 50년간의 한국발전에서 견인차 역할을 했던 관료제도를 제대로 평가하기는커녕, 『썩었다』는 식으로 비판만 하고 있습니다. 金대통령이 『문제가 있는 공무원은 그만두고 나가라』고 公言한 적도 있습니다. 공무원을 다독거려 끌고 나가려는 노력이 아쉽습니다.

『성장시대에 있어서 공무원들이 이룬 성과는 대단했습니다. 이제 공무원들은 사회경제적인 변화에 따라 앞에서 선도하기보다 뒤에서 민간부분을 받쳐주는 역할전환을 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문제는 새 정부 들어 개혁이나 司正의 主대상이 공무원이 되다보니 공무원들의 자괴감이나 모멸감 등을 느끼고 있고, 사기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기간조직인 공무원을 끌어안지 않으면 국정운영에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품위나 명예를 지켜주지 않으면 공무원들은 따라오지 않습니다. 과거 공무원들이 적은 월급으로도 신바람 나게 일한 것은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정경제원, 문제 있다』

―감사원은 공무원에 대한 감사를 하기 때문에 어떤 기관보다도 공직사회의 문제점을 가장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감사원장 시절에 본 공직사회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고 그 대책은 무엇입니까.

『감사원의 감사는 공무원의 비리를 막는 데 아주 제한적인 역할을 할 뿐 입니다. 공무원의 비리를 원천적으로 막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공무원의 처우개선 노력과 함께 민원·인허가 등에 관련해서 공무원이 비리의 유혹을 받을 소지를 없애는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합니다』

―공무원의 비리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인 장치 마련과 공무원 처우개선, 그리고 감사원의 감독 기능이라는 3박자가 맞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번의 정부기구 개편도 공무원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총리시절 정부조직 개편 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까.

『정부조직 개편은 새 정부 출범 이후 계속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2개의 부서를 합친 상공자원부와 문화체육부가 탄생하기도 했지만 그것으론 부족했습니다. 공식적인 조직개편 얘기는 93년 말 행정쇄신위원회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하지만 공무원 사회가 술렁거리자 金泳三 대통령이 이를 부인했기 때문에 그 후론 공식적인 논의는 없었습니다. 저는 총리 시절 전체적인 정부조직 개편보다는 각 부처별로 기구를 개편하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큰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非공식적인 작업을 통해 정부부처 개편안을 金泳三 대통령에게 제출한 임시국회 때 통과시키면 정기예산국회 전에 정부가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金대통령이 결심하면 구체적인 작업이 가능했습니다만,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재정경제원으로 합치는 아이디어는 들어 있었습니까.

『그 생각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재정경제원의 출범이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정부조직 개편은 단순한 기구축소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 부처기능의 효율적인 배분과 조정이 중요합니다. 필요한 부처 기능이라면 기구를 확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여러 부처에 널려 있는 비슷한 업무와 필요 없는 업무의 교통정리를 잘하면, 자연히 더 효율적이고 작은 정부가 될 것입니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의 철학은 과거의 官주도형의 정부를 국제화·세계화라는 세계 추세에 맞게 뜯어고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歲入·歲出, 그리고 통화관리를 한 곳에 모은 거대 부서의 탄생은 이런 취지에 역행합니다. 재정경제원이 예산을 쥐고 세출까지 통괄하면서 거의 전 부처의 일을 실질적으로 간섭하면, 경제논리와 비경제 논리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깨져 균형 있는 국정운영이 어렵게 됩니다. 부처 사이의 업무조정도 어렵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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