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국정 운영(2) - 이회창 총리 퇴임 후

공무원의 伏地不動과 감사원

―감사원의 전문성을 문제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문성도 없는 감사원이 어떻게 정책감사를 하느냐」, 「새로운 정책은 어느 정도 시행착오의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데 감사원의 감사로 공무원들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을 초래했다」는 것은 잘못된 지적입니다. 아무리 전문적인 정책이라도 그 형성과정, 집행과정, 집행결과 내지 효율성의 문제는 얼마든지 따져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감사한다고 해서 정책입안 활동이 위축되는 것은 아닙니다.

伏地不動과 관련, 감사가 공무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 면도 있습니다. 공무원들은 감사에서 지적될 것이 두려워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와 관련, 감사의 방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상적인 업무수행 과정에서 고의나 중대한 과실 없이 일어날 수 있는 잘못이나 적극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당연히 부담해야 할 위험부담까지 문제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싹쓸이 식의 감사를 하지 말고 항상 동기와 상황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일을 적극적으로 해보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 잘못은 때로는 과감히 불문에 부쳐야 합니다』

―감사원이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했습니까.

『감사원에서 비위처리통보제를 채택한 적도 있습니다. 감사원이 찾아낸 비위 중에는 일을 하다보면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성질의 잘못인지, 아니면 교묘하게 숨기려다 적발된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기관장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감사원은 적발된 비리 등을 기관장에게 통보만 하고, 기관장에게 처벌 여부를 맡기는 제도입니다. 감사원 내부에서 비리의 적발·처벌요구라는 감사원의 「무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반대도 있었습니다』

―우리 軍의 무기도입·개발 업무인 율곡사업 감사를 특별감사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감사원장에 취임했을 대 율곡감사는 감사원이 못한 숙제 중의 하나였습니다. 마침 국방부의 일반감사가 진행중이어서 율곡감사는 93년 하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국방부는 군 人事나 차기 전투기 F16 선정을 둘러싼 비리가 터져나오자 율곡사업까지도 국방부 자체의 특검단에서 조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 특검단의 자체 조사를 국민들이 얼마나 신뢰할지 의문이었습니다. 또 감사원이 하반기에 다시 감사할 때 군의 자체조사가 부실한 점이 드러나면 군으로서도 좋을 것이 없기 때문에 하반기 감사계획을 앞당긴 것입니다』

율곡감사와 계좌추적

―율곡감사 중에는 직무감사도 있었지만 관계자의 은행계좌 추적을 통해 李鍾九·李相薰 前국방장관 등 6명을 고발하는 등 수사 비슷한 면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의도한 것입니까, 아니면 감사를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까.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감사원의 감사는 처음부터 비위 자체에 대한 감사로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행정사무에 대한 감사도중 새로운 비위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율곡감사의 경우, F16 선정과정이나 한국형 탱크 등 전력증강사업 집행의 적정여부를 조사할 필요성이 생겨 감사를 시작했습니다. 문답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감사활동이 밖에서 보기에 수사 비슷하게 비친 측면도 있습니다. 비리 관련자를 불러내 진술을 듣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감사원이 당시 李鍾九 前국방장관을 비롯한 6명을 고발한 것은 계좌추적을 통해 의심스러운 돈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계좌를 광범위하게 추적한 감사원이 이들 6명만 고발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들은 모두 2백33가지에 이르는 율곡사업의 각 분야에서 해당 사업과 관련된 비위금액이 인정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퇴임하는 대통령이 전별금으로 준 것은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죠.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39년의 율곡감사가 앞으로 율곡사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봅니까.

『우선 율곡사업도 감사원이 언제든지 들여다 볼 수 있고 조사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주었습니다』

―율곡감사는 매년 정기적으로 하게 됩니까.

『그것은 현 감사원의 감사정책에 따라 결정될 문제입니다. 저는 정기적으로 할 것으로 봅니다』

감사결과 발표를 둘러싼 오해

―당시 신문을 보면 93년 7월7일 율곡감사 결과를 金泳三 대통령에게 보고한 후, 『이 정도면 됐다』는 金대통령의 말을 듣고 예상보다 빨리 감사를 끝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아닙니다. 율곡감사의 결과발표를 앞당겨서 했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당초 감사결과를 심리할 감사위원회 회의일자가 당시 개회 중이던 국회 법사위원회가 끝난 후로 잡혀있었습니다. 하지만 국회 쪽에서 율곡감사의 결과를 빨리 알려달라고 성화였습니다. 감사원은 감사위원회의 의결이 있어야 한다고 미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法司委 회기중에 보고를 하지 못하면 감사위원회의 의결 후 다시 법사위를 소집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율곡 관련 조사를 모두 끝낸 상태에서 예정을 앞당겨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발표를 한 것뿐입니다. 이를 두고 조사를 서둘러 종결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 때는 억울하고 곤혹스러워 국회에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언론이 그런 방향으로 촉각을 곤두세웠던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권영해(權寧海) 당시 국방장관이 국방차관 시절 율곡사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전력증강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조사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金泳三대통령도 감사를 빨리 종결하라는 얘기를 했을 거라는 추리죠. 실제로 외부로부터의 압력이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제가 당시 감사원 직원들에게 율곡 特監과 관련해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 과거의 정권에 속한 의혹이나 사람에 한정된 감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율곡 사업에 관련된 국방장관 등 현정부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현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과거정권 사람들보다 더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비리 사실이 없다면 멍에를 벗겨주는 것이 될 것이고 비리가 있다면 내가 책임지고 조치토록 하겠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도 「權장관을 봐 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시각은 바뀌지 않더군요』

―權장관의 동생인 권영호(權寧鎬)씨가 무기거래상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가 돌려준 일도 있었죠.

『결과적으로 權장관 동생 문제와 예정보다 빠른 감사결과 발표가 문제가 된 셈입니다. 저로서는 상당히 곤혹스러웠습니다. 權寧鎬씨는 감사원 5국에서 철저히 조사했습니다. 權장관의 경우 재산세 관계 자료까지 조사했으나 별다른 것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중 權寧鎬씨가 무기거래상에게 5천만원을 받았다는 조사가 나왔습니다. 이 돈을 준 사람은 權寧鎬씨 명의로 통장을 새로 만들어 돈을 입금했는데, 이 돈이 權장관에게 갔다는 증거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동생의 건은 불문에 무쳐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權寧鎬씨가 형이 국방장관으로 있는 것을 이용,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본다면 변호사법 위반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고 생각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權장관 동생 부분은 權장관의 비리와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단순한 수사의뢰는 공표하지 않는 관행에 따라 일부러 발표를 하지 않는 관행에 따라 일부러 발표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중에 검찰에서 수사의뢰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은 감사원이 발표에서 이를 숨긴 것으로 비난했습니다』

全斗煥·盧泰愚 前 대통령 조사

―당시 감사원은 현직 국방장관을 대상으로 심문 비슷한 조사를 하고, 全斗煥·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에게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받는 등 유례가 없을 정도로 권한행사가 강했습니다. 전직 대통령 조사에 관한 논쟁도 있었습니다. 이 정도 사안으로 대통령이 조사를 받기 시작하면 전직 대통령은 워낙 결정한 사안이 많으므로 조사 받다가 볼일 못 보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이 재직중 결정한 사안에 대해 일일이 조사 받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에 관해서는 일정부분 수긍할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평화의 댐」이나 「F16 선정」 문제는 일상적인 업무가 아니라 중요한 국가정책 결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KFP(한국전투기사업)에 관련된 사람들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진술했기 때문에 감사원으로서는 정말 대통령의 지시가 어떠했는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화의 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다고 두 전직 대통령을 감사의 직접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은 법으로도 직접 직무감찰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참고인으로서의 조사나 의견제출은 요구할 수 있습니다. 감사원은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기 위해 직접 방문, 질의서를 전달하고 답변서를 받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두 전직 대통령들의 답변서를 보면 형식적으론 감사원의 감사에 직접 응하는 것은 아니면서도 내용적으론 뒤에 붙이는 설명서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답변을 했습니다』

―감사원은 全 前 대통령의 답변서를 받아들인 반면 盧 前대통령의 1차 답변은 받아들이지 않았죠.

『全 前대통령측이 답변서 뒤에 붙인 설명서를 통해 감사원의 질문내용에 대해 상당 부분 답변을 한 반면, 盧 前대통령측은 처음에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盧 前대통령은 대신 비서실장의 명의 對국민성명서를 냈습니다. 감사원이 盧 前대통령에게 다시 답변서를 요청하자 자신의 책임부분에 대해 성명서를 인용하는 형식으로 관련내용을 밝혔고, 감사원은 이를 답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F16 선정」의 문제점

―金泳三 대통령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부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셨을 텐데요.

『金대통령이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를 한 적은 없습니다. 단, 청와대 비서실쪽에서 대통령에 대한 조사 선례를 남긴다는 측면에서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율곡사업에 관련된 방위산업체나 무기거래상의 계좌를 추적하다 보면 이것은 뇌물이고, 이것은 정치자금이다 라는 식으로 구분되지 않았습니까. 국방부 당국자, 대기업이 낀 방위산업체, 외국의 무기중개상들 사이에 오고간 돈 중 정치자금은 고발이나 조사대상이 될 수 없었을 텐데요.

『감사원도 방위산업체나 외국 무기업자들에서 들어온 정치자금을 캐려고 노력했습니다. 李鍾九·李相薰 前 국방장관 등에 대한 개인 비리는 드러났는데 언론에서 말하는 정치자금 부분은 전혀 근거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측에게도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자료를 요구했습니다만 전혀 성과가 없었습니다. 외국에서 돈 세탁을 해서 다시 들여온다는 제보다 소문은 무성하게 있었지만 증거를 잡지는 못했습니다』

―감사원은 차기 전투기를 F18로 정했다가 다시 F16으로 바꾼 것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조사했습니다. 감사원은 F16 선정이 잘못되었다는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F16 제작업체인 제너럴 다이내믹스(GD)사의 자료를 그대로 인용한 점, 작전요구사항에 미달하는 비행기를 계약한 점, 아직 개발하지 않은 부품이 개발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계약을 한 것이 국방부 무기구매 규정에 위반된 점 등이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감사원은 F16이나 F18 중 어느 비행기가 더 좋으냐를 가리는 조사를 벌인 것은 아닙니다. 비행기의 성능이나 전투력의 질에 관한 판단은 감사원이 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만 감사원은 F18을 F16으로 변경하는 과정이 적정하게 이루어졌는지를 조사했습니다. F18은 F16보다 비싸지만 전력지수로는 F16보다 우수했습니다. 국방부가 F16으로 바꾼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북한과 대치하는 데 얼마만큼의 비행기가 필요하다는 필수작전 소요대수를 산정하면서 전력지수 계산을 잘못했습니다.
둘째 그 소요대수를 마련하는데 드는 가용재원액을 근거로 국방부는 F18보다 싼 F16을 들여올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던 것입니다.
셋째 작전기능으로 볼 때 F16에 장착되어야 할 일부 탑재장비가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감사원은 리를 근거로 F16 선정과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감사원이 전문지식도 없이 F16과 F18의 성능을 비교한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 감사원은 선정과정의 적정여부를 조사했을 뿐입니다』

평화의 댐은 필요했나

―F18을 F16으로 바꾸라는 지시가 盧대통령에서 김종휘(金宗輝) 외교안보수석, 국방부로 내려왔기 때문에 그 지시에 맞추는 자료를 동원하고 논리를 전개한 것은 아닙니까.

『그런 측면이 있었죠. 당초 국방부는 기종(機種)변경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F18을 기준으로 재원을 산출하고 청와대에 품신을 했는데, 청와대에서 기종변경을 포함한 전면적인 재검토 지시를 내렸던 것입니다. 감사원은 청와대에서 차세대기 機種변경을 포함한 재검토 지시를 하게 된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盧 前대통령에 대한 서면 질의를 한 것입니다』

―전투력 측면에서 봤을 때 F18을 F16으로 바꾼 것이 우리나라 국익(國益)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겁니까.

『반드시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전투력 측면에서는 F18이 우수한 것은 사실이죠.

『국방부의 전력지수 조사에 의하면 F18이 더 높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F18이 F16보다 우수한 것은 사실인데 문제는 금액의 차이라는 변수가 들어가니까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관한 교훈이 있다면 정책결정 과정이 좋지 않으니까 결과도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F16 초도기(初渡機)가 처음 나왔는데 ASPJ(내장된 전자교란 장치)를 달지 않았기 때문에 공군이 목표로 한 전투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일종의 불합격품이라고 할 수 있죠. F16과 평화의 댐에 관한 감사원의 지적사항 중 공통점은, 대통령이 한번 방침을 결정하면 밑에 있는 전문가·기술자들의 합리적인 견해가 무시되고 이미 결정된 방향으로 자료가 왜곡된다는 것입니다. 금강산댐의 경우, 실질적으로 최대 저수량이 50억t을 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2백억t이라고 발표하고, 대통령에게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추어 서둘러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평화의 댐은 남북대치관계 때문에 세부적인 실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對北 대응댐을 만드는 것이 불가피하지 않았느냐는 의견이 全斗煥 前대통령의 답변서를 통해서 나왔습니다. 또 거기에 공감하는 여론도 있었습니다.

『평화의 댐이 앞으로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정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감사원의 조사는 과연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에 따른 위협이 당시 그렇게 큰 대응댐을 만들 정도로 심각했던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88올림픽에 대비한다고 했는데, 정상적인 예산조치에 의거하지 않고 국민의 성금을 모아서 세울 만큼 그렇게 급하고 중대한 것이었느냐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조사 결과 그런 정도의 위험은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 진척상황에 따라서는 연차적으로 예산을 배정해서 대응댐을 건설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급한 위협도 없는데 갑작스럽게 성금까지 걷는 것은 국가 정책상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단 1%의 北의 위협이 있더라도 이에 대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위협이 안 된다는 것이 명확한 데도 비상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율곡감사의 교훈

―율곡감사를 끝낸 후 율곡사업에 관해 전체적으로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율곡사업은 단순히 예산집행의 적정여부의 차원이 아니라 전력증강과 국토방위에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기나 방위장비의 성능 등은 군 사기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율곡감사는 단순히 회계감사나 예산집행을 따지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율곡 사업은 군의 명예나 신뢰확보 차원에서 철저히 수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책 대안(代案)도 같이 냈습니까.

『율곡감사는 군 방위력에 대한 본격적인 첫 감사였습니다. 과거 감사의 노하우가 없었기 때문에 미흡한 점도 있었습니다. 전반적인 대안 외에 사안별로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앞으로 감사가 계속되면 고도의 정책대안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기 전문가 등이 감사원에서 있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까.

『그렇습니다. 감사원의 전문화는 직원 자신이 전문화되거나 전문가들의 자문이나 도움을 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前者의 방안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감사원 직원들에게 자신이 하드웨어가 되어 전문가들의 지식을 입력, 소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전문가 그룹에게 사전에 용역을 주거나 자문회의를 통해 감사자료에 대한 충분한 의견교환을 하는 방법으로 전문성을 확보하도록 강조했습니다』

―율곡감사를 할 경우 정부 내의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전문가를 차출, 한시적으로 자문위원회 같은 조직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필요할 때 자문과 용역을 받을 수 있는 전문가 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한 적이 있습니다』

―1992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 참석한 이동복(李東馥) 前안기부장 특보가 이른바 훈령조작 사건으로 감사원의 조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국회에서도 문제가 되어 李東馥 前 특보는 물러났습니다. 당시 3급 비밀에 해당하는 서울―평양 사이의 암호 電文이 어떤 경로를 통해 李富榮 의원에게 유출되었는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국가의 중요한 문서가 야당 국회의원에게 빼돌려진 것은 감사원이 고발하고 검찰이 당연히 수사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훈령조작과 비밀문서 유출

『감사원의 감사는 李의원의 문제제기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감사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당시 이산가족, 남북협의 등 중요한 문제에 관한 청와대나 대통령의 의사가 우리 대표측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李의원이 공개한 사본건도 기밀문서의 유출이란 측면에서 같이 조사했습니다. 그 문서는 안기부에서 통일원 차관,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 관련 장관에게 전달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문서를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폐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청와대에 전달된 문서 사본이 李富榮 의원에게 전달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는 그 문서를 인계 받은 적도 없고 보전하지도 않고 있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李富榮의원도 조사했지만 문서 입수경위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사건에 대해 더 이상 밝힐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조사를 마쳤습니다. 국가의 기밀문서가 유출되었다는 중대한 사안을 감사원이 왜 묵과했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 감사의 동기와 주안점이 어디에 있는지에 관해 본말을 전도한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국가의 기밀문서 유출을 묵과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기밀문서 유출문제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 내부적인 사정이고, 국외에 나가 청와대나 대통령의 지시를 조작한다는 것이 더 중대한 일입니다. 감사원이 기밀문서 누출사건을 고소·고발해야 되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사원의 고발은 수사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훈령조작 사건과 관련, 기밀문서 유출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려져 있었습니다. 검찰이 이 문제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느꼈다면 감사원의 고발여부와 상관없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의 조작설 여부에 대해서는 「조작」이란 말을 붙이기에는 복잡하고 애매한 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편의상 조작이란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1993년 말 대법원장 임명을 앞두고 李 前총리에 대해서도 하마평이 많이 오고갔습니다. 李 前총리의 법조계 경력 등을 보면 기대를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대법원장직을 바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저도 대법원장으로 법조계의 발전을 위해 일해보고 싶은 심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이미 법관의 경력을 포기하고 감사원장직을 수락했기 때문에 감사원장으로 있으면서 대법원장직을 기대한 적은 없습니다』

―감사원장 시절 우리 사회는 金泳三정부의 개혁으로 온통 들끓었습니다. 당시 개혁은 우리 사회의 큰 흐름을 형성하면서 일종의 「마녀사냥」 같은 경향을 띠기도 했습니다. 특히 언론에 의해서 재산이 많은 것이 바지 不淨한 것처럼 보도되었습니다. 정성진 검사장 같은 사람은 검찰에서 제일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공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단지 물려받은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그 재산을 한번도 사고 팔아 이득을 취한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당시의 개혁은 법의 차원을 넘어선 것 아닙니까.

『개혁 초기에 단행된 재산공개는 법률적인 근거 없이 극히 정치적인 차원에서 이뤄졌습니다. 金泳三 대통령의 재산공개로 시작된 공직자 재산공개는 재산의 많고 적음을 따지는 방향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급기야 마녀사냥 같은 부작용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계획된 프로그램에 의해 추진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치적인 행위로 시작된 개혁은 사회의 큰 흐름을 형성하면서 돌풍적인 분위기로 이어졌습니다. 재산이 많다는 것이 不德한 것으로 보이는 등 흑백논리식으로 한 방향으로 쏠리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재산공개의 취지는 재산이 많다는 것을 문제삼자는 것보다도 공직에 있는 동안 재산관계를 투명하게 함으로써 不正을 방지하자는 데 주안점이 있습니다』

―그런 때일수록 변호사협회나 법무장관 등 법률가들이 나서서 여론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개혁에 관한 법률적인 기준을 세워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 동안 권력에 저항한 법률가들은 많았는데, 국민의 여론에 대해 저항한 법률가들은 적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국회 법사위에서 「富자체를 부도덕하게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많이 나왔습니다. 감사원은 재산공개를 담당한 기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넓게 보면 司正을 담당하는 기관이라는 이유로 많은 공격을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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