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 인터뷰
『정치가 잘되느냐 그렇지 않으냐 보다는 정국안정이 더 중요하다. 대통령 중심제는 앞으로 한국에 유리할 것』
● 케사르는 로마의 고도성장기를 안정성장기로 연결시킨 개혁자 역할을 했다
● 마키아벨리는 좌절한 인간이 아니었다
● 민족도 정신이 죽으면 죽는 것. 이탈리아엔 로마人이 없다
● 일본은 위기관리를 가능케 하는 자기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 위선은 언젠가 들통이 나지만 독선은 알아내기 어렵다. 그래서 독선은 최악(最惡)!
<1996년 7월 월간조선>
역사는 오락이다일본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氏가 지난 5월 20일부터 23일까지 4일간 한국을 방문했다. 지중해를 무대로 한 역사서술로 일본에서 이미 베스트 셀러 작가로 자리를 굳힌 시오노 나나미氏의 책은 한국에도 9권이나 번역·소개돼 널리 읽히고 있다.
그의 「로마인 이야기」시리즈가 4권까지 번역됐고 「바다의 도시 이야기-베네치아 공화국 1천년 메시지」상·하권,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마키아벨리 어록」「남자들에게」 등도 소개됐다.
현재 시오노氏가 계속 집필중인 「로마인 이야기」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만도 이미 10만 부 이상 팔려나간 상태. 『역사는 탁월한 오락이다』라는 저자의 평소 주장이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시오노氏가 이 책을 처음 펴낼 때만 해도 일본의 출판 관계자들은 이 책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시오노氏는 시공(時空)을 초월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일본인이지만 로마에 살고 있고, 그는 현대의 로마에 逞嗤?그의 상상력은 2천년 전의 로마에 있다. 그리고 그의 독자들은 주로 일본과 한국에 있다. 그는 로마에 살면서 2천년 전 로마에서 일어난 일을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한국과 일본의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셈이다.
「서양역사를 쓰는 동양여자」라고 해서 그를 특별하게 취급하려는 시각이 없지 않지만 시오노氏는 『「일본인」 또는 「동양인」의 입장에서 로마사를 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어디까지나 로마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글을 쓴다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氏의 경력은 독특하다. 그는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고 일본의 학습원 대학 문학부 철학과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한 후 1963년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이때부터 30여년간 시오노氏는 어떤 공공교육기관에도 적을 두지 않고 독학을 했고 그것을 토대로 방대한 분량의 저작을 발표해오고 있다.
1970년대 초부터 그는 르네상스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저작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의 여인들」「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신의 대리인」 등이 이 시기에 나온 책들이다.
80년대에 그의 「바다의 도시 이야기-베네치아 공화국 1천년의 메시지」와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그리고 전쟁 3부작인 「콘스탄티노플의 함락」「로도스 섬 공방기」「레판토 해전」 등을 썼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시오노氏는 「로마인 이야기」시리즈를 쓰기 시작했다. 92년 제1권을 시작으로 오는 2006년까지 매년 한권씩 15권을 펴낼 계획이라고 한다. 70세가 될 때까지 매년 한권씩 책을 써내야 하니 보통 빡빡한 아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늙을 시간조차 없는 것 같다.
케사르가 암살되지 않았더라면
지난 5월 22일 서울시내의 한 호텔에서 니오나 나나미氏를 만났다. 단발머리에 짙은 감색 투피스 차림의 그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이탈리아와는 시차도 있을테고 짧은 한국방문기간 동안 인터뷰다 강연이다 해서 적잖이 시달렸을 법한데도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시오노 선생이 한국의 지식인이나 상류층에 틈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인 이야기」나 「바다의 도시 이야기」등 서양 역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교양으로서 가르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 또 읽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여러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신한은행은 로마연구를 통해서 조직경영에 필요한 교훈을 이끌어냈고,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들 입장에서 또 작은 조직을 이끄는 사람은 그들대로 자신에게 필요한 교훈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로마사를 대표하는 역사적 개인, 즉 영웅 케사르에 대해서 「로마인 이야기」중 두 권을 쓰셨는데 케사르가 브루투스에게 암살되지 않았다면 로마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인 이야기」5권에 그 이야기가 쓰여 있는데…. 케사르는 로마가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공화정시대의 로마는 고도성장기에 있었지요. 인간이란 한계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케사르는 앞으로의 로마는 이전처럼 팽창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성장기로 들어갔다고 봤어요. 안정성장기에는 그 상황에 맞는 제도와 다양한 체제가 필요한 겁니다. 그는 이것을 바꾸려고 했어요.
집 짓는 과정에 비유하자면 그는 집의 지반과 규모, 담의 위치 등을 정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던 중 암살됐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후계자를 구하지 못했다면 로마의 역사는 바뀌었을 겁니다. 제5권에서 저는 그가 생각한 목소리, 그가 지명한 후계자를 세계사 후계자 부문의 걸작이라고 썼습니다. 케사르가 후계자로 지명한 사람은 남성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어린 18세였습니다. 저는 제5권에서 케사르가 그 시점에서 자신이 암살된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라고 가정을 세웠습니다.
결국 옥타비아누스는 케사르의 의지를 이어받아, 로마가 가야 할 방향을 알고, 케사르가 마련한 기반 위에 제대로 집을 지었습니다. 케사르가 암살된 해로부터 거의 2백년 동안 옥타비아누스를 이은 로마 황제들은 결국 케사르가 생각한 것들을 지켜 나갔습니다. 즉 고대 로마는 고도성장기에서 실로 교묘하게 안정성장기로 이행한 것이지요』
케사르는 최고의 애인?
-「로마인 이야기」 제4권을 읽어보면 시오노 선생께서 케사르라는 위대한 남자에 대해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더군요. 영웅이 아닌 인간 카사르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애인으로 삼기에 최고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왜냐하면 여자에게 남자란 최고의 교사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만약 케사르 같은 남자를 만났다면 저 자신이 성장할 수 있었겠지요』
-케사르가 위대한 것은 돈과 여자에 관한 생각이 보통 사람과 다른 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돈과 여자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면서도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웠다는 것인데 이것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어려운 일지이요. 그리고 군인으로서 부하들과 똑같이 활동하며 보여주는 육체적인 용기, 그것 역시 보통 사람과 다른 비범한 점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로마인 이야기 제5권에서 케사르의 군인으로서의 능력, 그리고 정치가로서의 능력에 대해 썼습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현대에도 통용된다고 생각하는 정치가의 재능이란 이런 겁니다. 로마는 커지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로마제국을 통지하는 것은 이탈리아 반도에 사는 로마인이어야 했습니다.
르거나 케사른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로마제국의 정치에 속주를 참가시키고 유력자의 자제들을(나는 이것은 「마치 플브라이트 유학제도 같다」고 말했을 정도인데) 로마 요인들의 집에 홈 스테이 시키고 공부시켜서 지도자 예비군으로 만든 뒤에 다시 돌려 보냈습니다.
케사르에게는 국경이란 개념이 없었어요. 다만 바위선이란 개념은 있었습니다. 그는 안전보장상의 방위선 개념은 갖고 있었지만 국경 개념은 초월한 사람이었지요. 그에 비하면 키케로나 브루투스는 옛 기성 로마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어요.
케사르는 정복한 갈리아 민족의 수장, 스페인人이나 그리스의 지도자들에게도 원로원의 의석을 주었습니다. 브루투스는 그것에 반발했어요. 이탈리아의 고등학교 교과서에서조차 브루투스를 향수적인 회고주의자로고 말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나는 케사르야말로 혁신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베네치아와 로마의 차이
-케사르는 세계제국을 만든 개방파에 속하고, 브루투수 등은 과거의 로마, 즉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로마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수구세력이라고 해석하시는 것이지요.
로마의 베니스의 역사를 읽으면서, 서양 역사에 위대한 자위를 남긴 이 두 나라의 공통점은 「다른 나라에 대한 관용」 그리고 「自主정신」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주정신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주정신은 일본에서는 잘 쓰지 않는 말이지요. 영어로 말하자면 「셀프 릴라이언스」, 「셀프 인디펜던스」라고 합니다.
『먼저 첫 번째 테마인 베네치아와 로마를 봅시다. 베네치아가 중세의 로마라고 불린 것은 법률적인 통치를 했기 때문인데, 사실 로마와 베네치아는 정반대라고 할 정도로 다른 나라입니다. 베네치아는 영토를 확대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베네치아는 전성기에도 인구가 20만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베네치아는 통상의 나라였어요. 만일 베네치아가 영토를 획득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통상 기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영토적 야심에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로마는 농경민족이었습니다. 영토에 대한 느낌이 베네치아의 경우와는 전혀 달랐지요. 또 베네치아는 코레라도라든지 본토 쪽, 즉 북부 이탈리아로 영토를 확장해가는데, 이것도 당시 주요 무역상대였던 프랑스와 독일에의 통상로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베네치아는 베로나나 파도바처럼 지금도 이탈리아의 상권(商圈)으로 남아 있는 곳을 영토안으로 끌어 들이지만 그 지역의 주민 대표들을 베네치아 국회의원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베네치아는 로마와는 정반대였지요』
-로마나 베네치아처럼 이민족에 관용을 보일 수 있는 나라는 자신감이 있어야 겠지요. 로마의 국가로서의 자신감 또는 로마 시민으로서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신감은 물질적 풍요가 선결요인
『그리스인이 생각해낸 스토아파(派)가 로마의 지도층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에 따르면, 자유로운 시민으로 태어난 남자에게 최선의 선택은 공동체에 봉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군사나 정치에 봉사하는 것이 남자에게 있어서 최선의 삶이라고 믿었지요.
또 하나 로마의 강점은 이민족을 자신들의 영향권 안에 끌어들였다는 겁니다. 이민족을 죽이고 그들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설사 패배한 민족이라고 해도 그들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물론 로마의 영향권안에서 말입니다. 그 대신 로마는 물심양면으로 이들을 지원했어요. 물(物)이 무엇인가 하면 기간사업이지요. 그들이 사회간접자본을 정비한 것은 경제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군대의 이동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였는데, 효율적인 시스템은 다른 면에서도 도움이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물자 유통이 매우 간단해지고 많아졌어요. 로마제국 내의 속주에는 특산물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이 특산물들이 유통돼 들어왔습니다. 마치 지금 유럽연합이 하려는 것을 유럽 뿐 아니라 북아프리카와 중근동을 다 합친 지역에서 한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이렇게 하면 당연히 경제수준이 높아집니다. 로마의 안전보장에 대해서는 「로마인 이야기」 6권에서 씁니다. 로마는 안전보장을 하고 경제 구조를 세우고 그런 다음에 이민족들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자신감이란 마음만 가지고는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겁니다. 물질적인 면에서도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이지요』
-제가 「로마인 이야기」와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읽어보고 로마인과 베네치아인의 공통점이라고 느낀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정치제제와 제도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예로서 14세기 베네치아에서 왕이 음모를 꾸며 공화정을 왕정으로 바꾸려고 하다가 들켜 참수형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지요. 베네치아人들은 자신들의 제도를 바꾸려고 하거나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을 엄격하게 처벌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법치(法治)란 자신들이 선택한 제도에 대한 충성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法에 대한 로마인들의 생각
『한국은 성문법 국가입니까. 헌법이 있나요』
-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지요.
『왠지 제가 공감하고 있는 국가인 로마와 베네치아는 모드 非성문법 국가입니다. 성문법 국가와 非성문법 국가의 차이는 법에 대한 생각의 차이입니다. 베네치아와 로마에서 법은 바꾸어도 좋은 것, 현상에 맞지 않으면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프랑스나 일본은 헌법이 있으므로, 현상에 맞느냐 안맞느냐보다 헌법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먼저 따지지요. 로마인에게 있어서 법이란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법이란 필요에 의해서 만든 것으로 어느 시기에 적합한 법이란 시대가 바뀌면 맞지 않게 되는 것, 즉 그대는 바꾸어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헌법에 해당하는 한 나라의 시스팀, 즉 공화제라든지 왕정이라든지 하는 것은 커다란 원칙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관한 도전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지요.
『베네치아 공화국은 건국해서 붕괴되기까지 공화제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바뀌었어요. 그것은 베네치아 쪽이 폐쇄적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어요. 또 베네치아는 통상입국이었어요. 베네치아人들은 피렌체의 메디치家처럼 홀로 두드러진 부자는 가능한한 만들지 않았어요.
그래도 大상인 계급이라는 것은 있었어요. 말하자면 경제계 같은 것이지요. 경제계가 정치를 했기 때문에 한 사람만 두드러진다는 것은 곤란했습니다. 경제란 것은 국내 경쟁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발전할 수 없지요. 그러니까 경제에서 경쟁의 원리란 숙명적이에요.
베네치아는 공화정이라고는 해도 미주제가 아니라 과두제라고 하지요 적은 수의 엘리트들이 통치한다는 것입니다. 베네치아는 이런 형태를 끝까지 고집합니다. 그래서 이 정체에 반대한다는 것은 베네치아인들의 입장에서는 경제원리에 반대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요. 경쟁이 없는 세계에서는 경제가 성립되지 않는다, 때문에 한 사람이 통치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고 본 것이지요.
로마는 농경민족입니다. 따라서 영토가 중요합니다. 경쟁논리로서 국가를 운영할 수 없어요. 베네치아는 경제원리로 국가를 운영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로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락쿠스 형제 때부터 이야기인데 로마인들은 지도자 계급이 고정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봤지요. 나중에 로마의 영토가 넓어지면서 로마의 지도자 계급이 이에 따라 부자가 돼서 경제력까지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힘을 갖게 되면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려고 하니까 사회에 유동성이 없어지지요. 케사르는 새로운 피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로마나 베네치아는 양쪽 모두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적합한 것을 택한 것이지 이념적으로이게 좋다고 해서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이 두 나라가 통상민족이나 농경민족이란 차이를 뛰어넘어 非성문법 국가라는 데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로마가 망한 이유는?
-시오노 선생이 어디선가 인터뷰를 하며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민주주의란 미국이 다른 나라에 강요하고 있는 최고의 신(神)이다』라면서 일신교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말씀하셨지요. 로마에서는 기독교가 3백년 동안 전파된 뒤에 국교가 되었고 그로부터 백년 후에 西로마가 망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구교를 삼은 것과 로마의 쇠망과는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십니까.
『앞으로 8년 정도 지나야 그 문제에 대해 쓸 것 같아야. 나는 사전에 면밀하게 공부하고 글을 쓰지는 않아요. 일관해서 1년중 6개월은 공부하고 나머지 기간 동안에는 글을 쓰지요. 그것은 베네치아에 대해 쓸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저는 일본인으로서 베네치아史나 로마史를 보지는 않아요. 아시아人으로 보는 것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일본에서 상당히 지배적이었던 서양인의 생각을 옮긴 것도 아닙니다.
저는 가능한 한 베네치아人처럼 생각하고 로마人의 마음에 돼서 느끼려고 해요. 그렇게 하면 그들과 함께 산다는 느낌이 들어서 미리 공부하지 않는 것이지요』
-아직 결론은 내리지 않으셨군요.
『일단 생각하고 있는 건 있어요. 그러나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고 봐요. 로마가 기독교 때문에 망했다고 할 수 없지요. 저의 부드러운 추측에 의하면 베네치아는,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도 썼지만,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한 끝에 마치 고목이 쓰러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쓰러졌어요. 로마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길이 있었을까라고 생각해보지만 없었다고 봅니다』
-「로마인 이야기」 제3권의 마지막 문장에서 부르크하르트의 「역사적 개인」에 관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역사적 개인이란 그 시대정신을 자신이 스스로 구현하고 한 시대 또는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고 그 방향으로 국민과 국가를 끌고 가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을 읽으면서 이승만(李承晩)과 박정희(朴正熙)라는 한국 사람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 두 사람이 한국에 있어서의 「역사적 개인」이라는 것입니다. 朴正熙 대통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30년 이상 일본과 떨어져 살아온 까닭에, 물론 1년에 한번은 돌아가지만, 관심이 주로 유럽·북아프리카·중동에 향해 있어서 아무래도 이 질문에 답변할 만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시오노 선생이 어떤 강연에서 한 이야기 중에 朴대통령이 한 이야기와 똑같은 것이 있다는 겁니다. 「먹는 문제보다 자유가 더 소중한 사람은 항상 극소수다」라는 극소수를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먹는 문제가 가장 소중한 생활인을 상대로 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셨던 것이겠지요. 먹는 문제가 해결이 되면 자연히 자유의 문제는 해결이 된다고 봅니다만.
『朴대통령이 지금 살아 있다면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요. 그 당시에는 그것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지금도 이 세계에는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자유란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특히 문필업을 업(業)으로 삼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살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어요.
일반인들에게도 자유가 소중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자유경쟁이 없는 곳에서는 반드시 정체가 나타납니다. 경쟁원리가 작동하지 않고 자유의 정신이 없어지면 모든 곳에서 정체가 일어납니다.
베네치아는 과두제였지만, 에라스무스는 베네치아에는 다른 민주적인 나라보다도 훨씬 더 자유가 있다고 했어요. 로마법왕청이 금서처분한 루터나 마키아벨리의 책을 베네치아에서는 살 있었습니다. 또 어느 탈옥수의 수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남겨져 탈옥하는 사람의 이야기였어요. 당시 종교재판소는 로마에 있었지요 주위에서 그를 도와준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베네치아로 가라고 말하고 있어요. 당시 이탈리아에서 베네치아는 가장 자유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경우에도, 제5권에 썼지만, 결국 케사르를 무너뜨린 사상적인 지주는, 즉 암살자들이 지주로 느낀 사람은 키케로였어요. 물론 키케로 자신은 암살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만. 케사르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키케로의 전집이 나왔어요. 그러한 종류의 원론적인 자유는 지금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완벽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오디비우스는 조금 야한 시를 써서 추방됐어요. 그런 게 없다면 사회는 발전하지 않아요.
그러나 지식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은 이것도 마카이벨리의 말이에요.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은 자유고 뭐고 없다는 것인데 이 말은 당시에도 물의를 일으켰어요』
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
-朴正熙 대통령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좀더 설명하면 미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실천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오노 선생이 마지막 일신교라고 말씀하셨던 민주주의에 대해서 모든 나라에서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할 때 朴正熙라는 사람은 민주주의를 한국 실정에 맞게 변화시켜 적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만들어 그것을 통해 경제발전을 시도했지요. 결국 그는 미국의 일신교에 대항하다 암살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어요. 저는 그러한 관점에서 마키아벨리의 어록을 읽었습니다.
『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에요. 그것을 목적이라고 생각하니까 잘못이 벌어집니다. 수단의 하나인 것이지요. 저는 한국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지만 대통령제를 택한 것은 앞으로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떤 면에서 그럴까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0년이 지났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정말로 되풀이 해서는 안되는 일인데 단 하나 플러스적인 면이 있어요 그것은 인간의 욕망을 아주 단순화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즉 내일 과연 살아있을 수 있는지, 또 먹을 수 있는지 그런 것만 남지요.
그런데 지난 50년 동안의 평화를 거치면서 풍요와 비례해서 우리의 욕망도 다양해졌어요 그것은 결국 정치불안으로 연결됩니다. 외관으로 보아 정치가 잘 된다거나 안 된다거나 보는 정축 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50년 동안 얻은 최대의 것은, 정치가는 별 볼일이 없었지만, 정국은 안정됐다는 것이지요.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지만 정국 안정을 모색하고 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대통령제를 하고 싶어하지만 반대가 심해요. 결국 이번 선거에서 이긴 쪽은 소위 중도좌파인데, 이들은 대통령제로 이행하는 데 반대하리라고 생각해요. 아니 반대하지는 않더라도, 소극적이 되리라고 봐요.
일본은 수상의 힘이 너무 약해서 이를 바꿔야 해요. 한국은 대통령제가 확립됐으나 앞으로의 세계 정세 속에서 유리한 시스팀을 갖춘 셈이지요』
-하지만 한국에서도 최근 대통령 중심제를 내각제로 개한하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모두들 열심히 대통령제로 바꾸자고 하고 있어요. 다른 나라 사정을 잘 알지못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시오노 선생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권력관계가 안정되니까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정치가 안정되지 않으면 낭비가 많아집니다. 그리스 시대에도 20년 동안 「전세 시대」라고 불리며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혹평을 받는 시대가 있었지요. 그리고 나서 민주주의로 이행합니다. 그 20년 동안 아테네의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어요. 그 후에 민주제로 바뀐것입니다. 한국의 대통령은 전제가 아니지요. 선거를 통해 바꿀 수 있으니까요. 매우 이상적인 것 아닙니까』
-한국인들이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대통령의 힘이 너무 강하다는 것입니다. 검찰을 통해 수사를 할 때 공평하게 하지 않고 여당을 옹호하면서 야당 국회의원에 대해 더 엄격하고 불공평하게 하기 때문에 이러면 안된다, 내각제로 바꿔서 대통령의 권력을 좀더 약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 사람들이 선택할 두 가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지금 시스팀으로 가면서 나쁜 일을 한 사람을 제대로 벌 주고 법이 통용되는 나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시스팀이 잘못됐다며 바꿀 것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