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의 전사] 정형근의 폭탄증언(하) - 남한 내 친북세력(1)

친북세력 4만2000명…"0.1%의 좌익에 99.9%가 휘둘리는 건 지도층이 부패하여 도덕적 용기가 없기 때문"
● 『언론·출판·문화계에 친북세력 8500명 침투 추정』
 ● 『대통령이 되려고 2~3천억 모으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 수천억 모으는 세상이니…』
 ● 『최근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제2조총련을 건설하기 위해 활발히 공작』
 ● 『부패한 권력자들은 체제가 위험해지면 도망가지, 몸 던져 지키지 않는다』
<月刊朝鮮 1995년 6월호>

<『교육·문화·언론계에 친북세력 8500명』>

鄭亨根 前 안기부 1차장은 지난 5월호에 이은 이번 6월호 月刊朝鮮과의 인터뷰에서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국내 親北세력은 모두 4만2000명』이라고 밝혔다. 鄭亨根 안기부 前1차장은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에서 안기부 수사국장 법률보좌관으로 옮긴 1983년 이후 만 12년 동안 북한의 對南적화사업을 저지하는 남쪽의 守門將 역을 맡아왔다. 체제유지 차원의 對共수사뿐 아니라 정권유지 차원의 「安保수사」를 지휘하기도 한 鄭 前 차장은 『뇌물 규모가 수십, 수백억에 달하는 권력형 부패구조를 청산하지 않으면 親北 좌익세력의 성장을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가 밝힌 공안기관 분석 결과에 따르면 4만2000명의 親北 세력중 대학 등 학원가에 1만8000명, 노동계 1만 명, 재야·종교단체 5500명, 교육·문화·언론계에 8500명이 활동중이라는 것. 이들 중 핵심세력은 1만2000명∼1만5000명, 적극 동조세력은 3만 명. 이념성향별로는 주사파 등 NL계는 2만7000명, 사노맹 등 PD계는 1만5000명으로 알려졌다. 「불순집회」 참가인원과 그간 공안사건 수사를 통해 얻은 조사결과를 종합분석해 얻어낸 수치라고 한다.

『문민정부 출범 후 이런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對정부 투쟁 이슈가 군사정부 때에 비해 줄었기 때문이겠지요. 공산주의자나 親北주의자들의 생명은 끝났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이것은 오판입니다. 지금은 잠복기라고 봅니다. 북한은 對南공작에 과거보다 몇배 이상의 돈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어요』

교육·문화·언론은 우리 사회의 표현을 지배하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야다. 여기에 8500명의 親北세력이 활동중이라는 분석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선전, 선동을 중시합니다. 예술, 문화 부문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것은 당연하지요.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대학에 입학했던 主思派 대학생들은 졸업 후에 마땅한 직장을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들이 문화, 언론계로 많이 진출했습니다. 특히 출판계는 거의 좌익, 金日成주의 세력이 지배하다시피 했습니다』

<0.1%가 99.9% 쥐고 흔든다>

구체적으로 어떤 단체가 親北성향을 띠고 있는지 밝힐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구체적으로 거명은 안하겠지만 「民主」라는 이름을 붙인 단체가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어떤 단체는 정부 보조금까지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30대 기자들중에도 親北세력이 존재할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親北세력이 4만2000명이라면 인구 0.1%에도 못 미치는 소수이지만 이들은 사회를 쥐고 흔들 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鄭亨根 前 차장의 평가는 어떨까.

『저는 사상이나 이념이 무섭고 집요하다는 것을 이 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투쟁 양태를 보고 절실히 느꼈습니다. 우선 이들은 먹고 사는 데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내부 결속력은 어떤 면에서 우리가 본받을 정도로 강하지요. 40년을 교도소에 있으면서 전향하지 않는 집요함과 강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폭발적인 힘은 보통사람의 몇백 배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회가 불안할 때는 많은 소외계층이 이들에게 심정적으로 동조하다가 추종세력화합니다. 이들 세력은 수축력과 팽창력을 가지고 있어 상황에 따라 숫자 이상의 힘을 발휘합니다』

그는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수세력들이 親北세력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양상을 보이는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득권자들은 결속력이 없고 겁이 많습니다. 이들은 재산과 명예를 한때 가졌거나 현재 소유하고 있습니다. 지킬 게 많습니다. 그에 반해 4만2000명의 親北세력들은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온몸으로 투쟁합니다. 그들이 뭉쳐서 협박전화나 공갈을 며칠 동안 계속하면 당한 사람은 치를 떨고 침묵하게 됩니다. 일본의 국가주의자와 같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의지가 전혀 없어요. 우익이나 수구세력으로 낙인찍히면 사회에서 행세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진보를 자처하는 좌익의 용어전술이 성공했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보수세력의 서글픈 현실입니다』

그는 우리 사회를 지키는 대안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왔다고 말했다. 먼저 군사정부는 민주화되어야 하고 다음으로 우리의 부패구조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가 가진 자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親北세력이 발디딜 틈이 없어진다는 설명이다.
『대통령이 되려면 2~3천억이 필요하고 대통령이 되면 수천억을 모으게 됩니다. 국회의원 선거 한번 치르려면 50억, 1백억이 드는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옵니까. 이러한 상층부의 부패구조가 종식되지 않는 한 공산주의자가 발붙일 여지는 많습니다』

<친북 좌익수구세력이 「진보」로 둔갑>

그는 「재야단체」, 「운동권」이라는 용어 대신 「문제단체」, 「문제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공산주의자들의 용어혼란 전술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했다. 진보·보수세력, 운동권, 주사파, 親北세력, 좌파 등 다양한 용어가 뒤섞여 사용돼, 국민들이 피아(彼我)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게 만든 현실에 대해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용어전술이 남한에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안기부 내에서 용어 문제에 대해 검토를 많이 했습니다. 당시 盧泰愚 대통령까지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어요. 한때는 「親北 폭력세력」, 「金日成주의자」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주사파」는 「문제권」들이 스스로 쓰는 용어지요. 최근에 입수된 북한의 지시 문건을 보면 절대로 북한의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남한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쓰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야 남한에서 근거를 굳힐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저희는 보편적으로 「金日成주의자」, 「親北세력」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그는 親北주의자들이 진보세력을 자처하고 자기들에 반대되는 세력은 보수세력으로 몰고 있으며 일부 언론에서도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름대로 민주세력과 金日成주의자를 구분할 수 있는 기분을 만들어봤다고 말했다.

『첫째, 진정한 민주세력은 남북한의 인권문제, 현실모순을 동시에 거론하는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쪽에 대해서는 거품을 물고 비판하면서 金日成 독재나 인권문제는 거론하지 않거나 남한의 군사력은 공격체제고 북한은 방어체제라고 주장한다든지 하면 이것은 親北세력, 金日成주의자로 볼 수 있는 주요한 근거가 됩니다.
두 번째, 전문용어로 「공작선의 인입」이라고 합니다만 현실비판을 일삼다가 어느날 갑자기 행적이 묘연하고 침묵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공작선에 포섭됐다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親北주의자나 親共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용어인 「평화」나 「통일」을 앞세우며 북한에 사사건건 편들면 의심을 할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최근엔 민족종교인 대종교의 총전교 안호상(安浩相) 박사가 북한을 방문, 단군릉에 참배하고 국민학교 명칭변경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외국어대 朴창희 교수가 在日공작원에게 포섭된 혐의로 구속돼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민족주의 세력이 공산주의에 넘어가고 좌익세력이 민족주의로 위장하는 최근의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공작원에게 민족주의적인 모습을 강하게 풍기는 인사에 접근하라고 교육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항상 민족 정통성을 내세우고 있어요. 혁명열사릉을 만들고 과거 항일운동을 한 사람들의 후손을 우대하는 정책을 취해 북한에 정통성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많은 학자나 예술인들이 동조해 성공을 거뒀습니다. 지금도 그런 심리전 공세가 계속되고 있어요. 상당한 체제 수호자도 정통성에 있어서는 북한에 뒤진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北美회담」이란 표현의 문제>

최근 일부 언론을 포함, 심지어 여당 정치인들까지 北美회담이란 용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北美회담이라는 용어는 美北회담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우리 민족이고, 핏줄이기 때문에 미국보다 앞세우는 것은 감상적인 측면에서 一面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국가보안법상 명백히 반국가 단체입니다. 반국가 단체를 우리의 혈맹보다 上位개념으로 표기하고, 우방보다 민족이 앞선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감상적 민족주의자요. 저들의 용어전술에 언론이 말려들어가면 안됩니다』

1991년 11월 서울고법은 범민련 남측본부에 대해 이적단체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공안기관은 범민련 남측본부가 40여 개 단체, 1천 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범민련 남측본부가 이적단체로 판결이 난 후에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들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처벌하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1천여 명을 전부 처벌하려면 일대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이들은 야당, 재야, 종교단체와 연결돼 있습니다. 야당에서는 국가보안법 위반자 문제를 공격 이슈로 삼고 있습니다. 민주세력과 정치인, 종교인, 공산주의자들이 뒤섞여 분간을 할 수 없어요. 이런 점에서 북한의 對南공작은 훌륭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봅니다』

그는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명할 수는 없지만 국가보안법을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을 저해하는 비호세력이 있다고 밝혔다.

『對共수사를 제대로 할 수 없도록 안기부법을 개정한 경위와 그 주역들을 조사해보면 그런 세력들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 4월 서울지법은 전국연합 李창봉 의장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이 선고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李 의장은 94년 발간된 범민족대회 자료집에서 연방제 실시, 미군철수, 보안법 철폐 등 북한의 對南선전내용과 유사한 주장을 실어 국가보안법 7조(반국가단체 찬양고무)를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북한과 유사한 주장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반국가 단체를 고무, 찬양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며 국가보안법을 엄격하게 적용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鄭 前 차장은 여기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

『국가보안법 사건 관련자를 공안기관에서 내사하고 검거, 수사해 재판부에 갈 때까지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듭니다. 지금은 죄 없는 사람을 관제 빨갱이로 만드는 공안기관은 없습니다. 앞으로 對共수사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겁니다』

<對北 경계장치 고장>

최근 사법부에서 국가보안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그는 우리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다원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하지만 이런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도록 교묘한 심리전을 펼치는 배후가 있다고 경고했다.

『한때 모 지방대 교수가 金日成 원전을 그대로 베껴놓은 듯한 논문을 썼습니다. 그런데 서울지검에서 소환해 조사하지도 않고 희한한 구실을 붙여 설문지를 보내 조사했습니다. 나중에 내사해 보니 많은 사람들이 수사를 하지 않도록 압력을 넣었습니다. 지금도 사건마다 그런 일이 있습니다. 對共수사기관이 그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는 북한이 미국을 중심으로 「제2조총련」을 만들어 해외교포를 통한 對南공작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최근 美·日과 접근하고 남한을 고립시킨다는 對南전략 구도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나라를 「유일의 적」으로 규정해 특히 해외 親北세력을 동원해 정부와 국민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습니다. 해외를 통한 우편물 공작이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어요. 북한은 對南공작에 대해 체제 차원에서 돈과 사람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가장 성공적 사례는 조총련입니다. 유럽의 독일, 덴마크,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까지 거점으로 삼아 유학생들을 공작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 교포들이 많이 사는 미국을 중심으로 제2조총련을 건설하기 위해 활발히 공작하고 있어요 북한 출신의 교포들을 상대로 침투공작을 벌이고 있지만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교포 2세나 유학생들에게 깊숙이 침투하고 있어 이 세력이 커질 것으로 보는데 여기에 철저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林秀卿 방북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호주에도 親北세력이 침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그는 공안기관에서 지금도 해외 親北단체로 분류하고 있는 在美 한청련 前 의장 尹한봉씨를 수사하지 않은데 아쉬움을 거듭 나타냈다.

『尹한봉씨는 광주문제 해결 차원에서 사면한 것입니다. 신분상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출국을 금지할 수도 없습니다. 체제 수호와 정치적인 타협은 엄격히 선을 그어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鄭씨는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한 각계 인사들 중 신고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얼마 전 북한 공작원이 노동계, 재야, 종교계 인사 20여 명을 포섭하기 위해 접근한 적이 있습니다. 이중 30% 정도는「협조 못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30%는 「찬성하지만 때가 아니다」, 나머지 30∼40%는 「어느 때라도 동조하겠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북한 공작원의 접근을 신고하지 않았어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정도의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李善實 사건 때도 신고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국민들의 對北 안보의식이 고장났어요』

<정치군인 출신의 부패>

鄭亨根 前 차장은 통치권에 저해되는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에 대해서도 정권유지 차원에서 수사를 펼쳤다. 정래혁(丁來赫) 前 국회의장·문형태(文亨泰)씨간에 벌어졌던 비리투서사건 같은 게 안기부의 「안보수사」대상이었다. 89년 12월 광주문제 해결을 위해 鄭鎬溶 민정당 국회의원(당시 특전사령관)이 의원직을 그만두는 것으로 합의를 했는데 90년 봄 보궐설거에 출마, 선거운동 과정에서 안기부에서 미행도 하고 압력을 넣어 중도사퇴시켰다. 鄭 의원은 모종의 약점을 잡혀 결국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이 사건에는 鄭 前 차장이 개입돼 있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鄭 의원이 현재 중진의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미묘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소상한 경위나 내용에 대해 밝힐 단계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엄청난 비리를 가진 사람들이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으로 행세하는 풍토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그는 과거 모든 부패구조와 비리는 높은 곳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왔다고 지적했다. 권력형 부정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한 공무원이나 국영기업체의 간부가 기백만 원, 기천만 원을 수수해 구속되고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는 정치인은 무사한 상황은 간첩 침투가 가능한 사회구조를 만들어 낸다고 설명했다. 특히 건설업계에서 뇌물을 많이 주는 이유에 대해서 그는 『과거 큰 프로젝트가 있으면 수의계약이나 지명계약을 했습니다. 인허가에 따른 특혜 규모도 엄청나고 수사해야 할 비리가 가장 많습니다. 특혜 또는 보신을 위해서 권력 실세들에게 돈을 많이 갖다 바칠 수밖에 없지요. 더구나 건설업체는 비자금을 많이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일본같은 선진국에서도 건설업계 비리가 많습니다』

그는 비리가 크면 클수록 뇌물액수도 커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권력형 부패구조가 지속된 원인에 대해 지난 30년간 권력을 장악했던 정치군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金(영삼) 대통령이 일절 돈을 안 받겠다고 선언하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한 것은 고질적인 부패구조를 청산하는 제1보로서 對共면에서도 큰 뜻이 있습니다』

<『썩은 지도층은 좌익 앞에서 긴다』>

그는 안기부는 어떤 기관보다 깨끗한 기관이라고 역설했다.

『안기부 내 여러 국장을 지냈기 때문에 비교적 안기부를 소상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대형 비리사건이 터졌을 때 안기부가 관여된 것은 없었어요. 다른 곳은 돈을 받는데 안기부 직원은 돈을 안 받는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안기부는 깨끗한 기관이라는 것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부패한 권력자들은 체제가 위험해지면 도망가는 쪽을 택하지 몸을 던져 그 체제를 지키려는 의지는 없다고 말했다.

『0.1%의 좌익세력에 99.9%가 당하고 있는 것은 일반 국민들의 비겁성 때문이 아니라 체제세력의 상층부가 부패하여 맞서 싸울 도덕적 용기가 우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몸을 돌보지 않는 對共수사관들을 따뜻한 눈으로 대해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對共수사관들은 집 한 칸도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들을 격려하고 물질적인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들을 격려했던 사람은 村老, 서민들이었어요. 진짜 양식을 가진 중하층 사람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누구보다 먼저 전선에 나갈 때 안심할 수 있는 사회가 됩니다. 서구의 귀족들이나 지식인들이 존경을 받는 이유는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앞장서 나가 싸우다 죽은 역사가 누적돼 있기 때문이에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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