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제 2차 대전에서 미ㆍ소ㆍ영ㆍ불 연합국에 의해 패했다. 그 후 독일분단은 연합구들의 의견 불일치로 이루어 졌다. 1949년 독일 땅에 서독과 동독이라는 두 나라가 형성된 셈이다. 초창기 동독은 통일을 위한 노력에서 공세적이었으나, 1955년에 접어들면서 서독의 국력 앞에 수세적이 되었다. 여기에서 나온 것이 동독의 1민족 2국가설이다. 동독은 그 후 독일 통일 될 때까지 끈질기게 서독에 국제법상 인정을 요구하게 되었다.
1969년까지의 기민당/기사당 정부는 동독을 정당한 나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동독을 한 국가로 인정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대독 정책에 있어서 일대 변화를 가져 온 것은 1969년 브란트가 집권함에 따라 일어났다. 그는 1969년 10월 28일 그의 시정연설에서 동독을 국제 법상 인정 할 수 없지만, 독일에는 두 국가가 존재 한다고 했고, 두 국가간 사이는 상호 외국이 아니고, 특수한 관계라고 했다. 브란트의 동방 정책은 이렇게 시작 되었고, 그 목적과 수단은 무력포기정책으로 유럽 평화질서를 유지하여, 그 속에서 독일인의 자결권을 통한 통일을 이룩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모스크바 조약(1970), 바르샤바 조약(1970) 그리고 동ㆍ서독 기본 조약(1972년)이 각각 체결 됐던 것이다.
소련을 위시한 동유럽이 2차 대전 후 생성된 국경선을 확고히 하여 그들의 영역을 지키려고 하였다면, 브란트는 현실을 인정한다는 모토 하에 우선 영토통일 이전에 사람의 통일을 우선했던 것이다.
동ㆍ서독 대표간의 70여 회담을 통하여 이루어진 동ㆍ서 기본 조약은 글자 그대로 양독간 관계의 기본 원칙에 관한 조약이다. 그 주요 내용을 보면,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은 동등한 권리를 토대 위에서 정상화된 선린관계를 발전시킨다.”(제1조), “현재나 앞으로도 양독간에 존재하는 경계선의 불가침성을 강조하고”(제3조), “서독과 동독은 대내 및 대외문제에 있어서 상대방 국가의 독립과 자주성을 존중한다.“(제6조), “서독과 동독은 양국관계의 정상화 과정에서 실제적 및 인도적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선언한다.”(제7조), “서독과 동독은 상주대표부를 교환한다.”(제8조)로 되어 있다.
당시 야당인 기민당 /기사당의 기본조약에 대한 태도는 기본조약에 반대였다. 왜냐하면 대외관계에 있어서 동독의 지위를 높였고, 동ㆍ서독관계에 있어서는 만족할 만한 정상화를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브란트 정부의 동방정책 및 대독정책의 논쟁에 있어 그 절정을 이룬 것은 바이에른 주정부의 연방헌법재판소에 대한 위헌제소였다. 1973년 바이에른 주정부는 동ㆍ서독의 기본조약은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무효라고 그 이의를 제기했다. 그 본질적인 제소의 근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조약은 독일국가통일의 유지에 반하고 있다. 독일통일을 서한은 자결권도 재통일 의 권리도 보장하지 못하고, 단지 평화적 수단으로 현상 변경을 추구하기 위한 정치적 목표를 제시하는데 그치고 있다.
2. 조약은 기본법상의 재통일권을 침해하고 있다. 조약은 동독을 서독과 동등한 독립적 및 자치적 국가로 인정했다.
3. 이 조약은 지금까지의 경계선을 자의로 조약상 합의된 국경선으로 만들었다.
4. 조약은 기본법에 근거한 동독국민에 대한 보호 및 구제의무를 침해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조약상에 동ㆍ서독 관계에의 “특수한 관계”를 정립하지 못했다. 민족통일이라는 어휘도 조약문에 들어 있지 않다. 또한 이 조약은 “잠정적 협정” 으로도 해석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조약은 시한부도 없고 해약고지조항도 없이 체결되었고, 평화조약규정의 유보도 내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서독 기본조약은 독일연방공화국의 기본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1973년 7월 31일 동ㆍ서독 기본조약은 다음과 같은 전제 아래서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에 합치한다고 한정 합헌 판결을 했다. 그 전제와 논거들을 요약하면,
(1) 우선 기본법의 전문에 입각하여 “통일은 헌법상의 계명이다. 따라서 독일연방공화국의 어떤 헌법기관도 정치적 목적으로서의 국가통일의 회복을 단념해서는 안 되고, 모든 헌법기관은 그들의 정책에서 이 목표달성을 위한 노력을 경주할 의무를 지고 있다. 또한 모든 헌법기관은 통일의 주장을 대내적으로 생생하게 상기시키고, 대외적으로 꾸준히 대변하고 그리고 통일을 좌절시키려고 하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2) 이 조약은 독일제국의 법 전통을 이어받아 법주체로서의 독일의 존속을 포기하지 않았다. 독일민족의 통일과 독일국적의 확고함을 유지했다.
(3) 서독은 동독을 국제법상 외국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기본조약전문에서 나오는 민족문제를 포함한 근본문제 이해의 불일치에 있어서의 일치, 독일통일서한 제출, 대사급이 아닌 상주대표부 교환, 전승국 권리의 존속(서독과 미, 영, 불과의 독일조약 (1954 제 7조에 의하면 서독과 서방 3개국은 평화적인 수단으로 그들의 공동목표를 서독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갖고 유럽공동체에 통합되는 한 통일된 독일을 실현할 의무를 갖는다)등은 동독이 외국이 될 수 없음을 반증한다.
(4) 기본조약은 이중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국제법적 조약이나, 그의 특수한 내용으로 보아 무엇보다도 독일내적관계를 규정한 조약이다.
(5) 따라서 그것은 분단조약이 아니고, 서독정부가 전력을 다하여 독일민족이 그의 국가적 통일을 다시 조직할 수 있도록 하는 가능성을, 오늘도, 장래에도 배제할 수 없는 조약이다.
(6) 동, 서간의 경계선은 국경선으로 인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독일은 아직도 4대국에 의한 “전체로서의 독일”이라는 유보적 국가로서 존재하는 “특수성”에 근거를 두고 동, 서독간의 경계선을 마치 서독내의 각 주간의 경계선과 같이 국내법상의 경계선으로 법정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독의 연방헌법재판소는 헌법의 감독자로 적게는 개인적 인권문제에서 국가기관간의 분쟁문제를 다루고 크게는 통일문제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위헌여부를 심사, 최종결정을 내리는 권위 있는 국가기관이다. 동ㆍ서독 기본조약이 서독의 기본법과 일치한다는 판결은 여ㆍ야간의 동방정책 및 통일정책의 첨예한 논쟁을 완화 시켰으며, 한편 야당인 기민당/기사당도 여당에 의한 미비한 기본조약을 연방헌법재판소 판결을 통해 보완하고 강화 시켰다는 점에서 그 역할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동ㆍ서독 기본 조약에 대한 독일 헌법재판소의 판결
- 李永起 교수 (명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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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0-11, 16: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