敵軍과 我軍이 같이 부른 노래, 릴리 마를렌(Lili Marleen)

독일군이 방송을 듣고 좋아하니 연합군도 따라했다.
10여 년 전 가을 나는 제대 45년 만에 경상북도의 산 꼭대기에 있는 공군 부대를 찾아갔다. 내가 3년 동안 졸병으로 근무하였던 곳이었다. 1219m의 山頂에 있는 부대 모습에서 거의 반 세기 전의 추억을 되살리니 정훈희의 '안개'부터 떠올랐다. 이 노래를 1000번 이상 들었다. 점심 시간, 안개와 구름이 산 허리를 휘감고 도는 가운데서 지겹게 울려 퍼지던 청아한 목소리! 우리 부대엔 그 무렵 유행하던 정훈희의 노래를 수록한 레코드 판밖에 없었던 것이다. 안개 속에서 수도 없이 들은 '안개'는 그러나 부르기는 너무 어렵다. 1985년에 이미자 씨를 인터뷰하였더니 정훈희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릴리 마를렌'(Lili Marleen)이란 제목의 독일 노래는 사연이 많다. 이 노래의 가사는 1차세계 대전중이던 1915년에 독일사람 한스 라이프가 지었다. 함부르크 출신의 교사였는데, 軍에 징집된 후에 썼다. '릴리 마를렌'은 자신의 여자 친구 두 사람의 이름을 합성한 제목이다. 詩의 原名은 '등불 아래 소녀'였는데 '릴리 마를렌'으로 더 유명해졌다.

1939년 이 노래는 랄레 안델젠이란 여자 가수에 의하여 레코드로 취입되었다. 작곡가는 노르베르트 슐체. 1941년 독일군대는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여 베오그라드에 독일군 방송국을 설치했다. 이 방송국에 근무하는 한 장교가 비엔나로 휴가를 나오게 되었는데 레코드판을 사오라는 부탁을 받았다. 장교는 中古 레코드 가게에서 '릴리 마를렌'을 사 가지고 왔다. 이때까지 이 판은 겨우 700장이 팔렸을 뿐이었다.

베오그라드의 독일군 방송은 레코드판이 많지 않아 '릴리 마를렌'을 자주 틀었다. 괴벨스가 이끌던 나치 독일의 선전부는 이 노래가 厭戰(염전) 분위기를 퍼뜨릴 수 있다고 판단, 방송금지 조치를 취하였다. 그랬더니 독일, 이탈리아 등 主軸國(주축국)의 병사들이 방송국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지중해 주변에 배치된 부대의 병사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싸우던 독일의 롬멜 軍團 병사들도 '릴리 마를렌을 듣고싶다'고 방송국에 요구했다. 롬멜 장군도 이 노래를 좋아하여 베오그라드 방송국에 '매일 듣도록 해달라'고 했다. 연인과 이별을 아쉬워하는 사병, 병영과 戰線을 누비면서도 연인 생각으로 버티는 마음 등을 哀調 띤 곡조로 노래한 것이 戰場의 절박함과 외로움을 달랬다.

이렇게 되니 괴벨스도 내키지는 않았지만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베오그라드 방송은 아예 밤 9시55분 프로의 로고 송으로 박아버렸다. 연합군 병사들도 독일방송을 듣다가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작전중이던 연합군은 가사를 바꿔 불렀다. 독일출신으로 미국에서 활약중이던 마르렌 디트리히도 이 노래를 불렀다. 이 여배우의 이름이 곡목과 발음이 비슷하여 릴리 마를렌을 디트리히가 처음 부른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마르렌 디트리히가 부른 '릴리 마를렌'이 가장 유명하다(가장 잘 부른 것 같지는 않다. 역시 원곡 가수 안델젠이 영어로 부른 노래가 좋다).

'뉴렌베르크 재판'이란 1960년대 영화엔 디트리히가 독일인으로 출연하였는데, 미국인 판사(스펜스 트레시 代役)와 함께 간 맥주집에서 독일사람들이 '릴리 마를렌'을 합창하는 장면이 있다. 미국의 음반회사 RCA는 1944년에 페리 코모를 시켜 이 노래를 취입했다. 캐나다의 경보병 특수여단은 '릴리 마를렌'을 느린 행진곡으로 사용하고 있다.

릴리 마를렌을 부른 최초 가수인 랄레 안델젠은 전쟁중엔 공개장소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戰後 그녀는 사라졌다가 1959년 '네버 온 선데이'라는 영화의 주제곡(原曲은 멜리나 메르쿠리가 불렀다)을 독일어로 부르면서 인기를 얻었다. 안델젠은 1972년 67세에 비엔나에서 죽었다. 그가 묻힌 곳에는 '릴리 마를렌'을 기념하는 안델젠의 동상이 서 있다.

릴리 마를렌은 경쾌하면서도 哀調를 띠고 있는 노래이다. 한 일본인 작가는 '릴리 마를렌을 찾아서'라는 實錄을 쓰기도 했다. 릴리 마를렌은 2차 세계대전을 대표하는 노래이다. 敵과 我軍이 같이 불렀기에. youtube.com으로 들어가면 여러 가수들이 부른 '릴리 마를렌'이 올라 있다. 안델젠이 부른 영어판은, 유튜브에 'Lili Andersen"(Lale Andersen, 1942[English])라고 치면 된다.

*릴리 마를렌이란 노래제목과 혼동되기도 한 마르렌 디트리히는 1992년에 미국에서 91세로 죽었다. 가수와 여배우를 겸한 全天候 예능인이었다.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최초의 독일 배우로 꼽힌다. 디트리히는 민주주의가 滿開하였던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를 체험한 예술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히틀러의 反유대주의를 증오하였다. 1939년에 미국시민이 된 이후엔 연합군 위문공연을 많이 다녔다. 위험한 戰線에 왜 그렇게 자주 가느냐는 질문에 디트리히는 '그것이 고귀한 행동이므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릴리 마를렌을 독일어로 부른 것도 연합군의 反나치 심리전을 돕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이 주는 '자유의 메달'을 받았는데 그녀는 이를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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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 Marleen
영어 번역

Underneath the lantern
By the barrack gate
Darling I remember
The way you used to wait
'Twas there that you whispered tenderly
That you loved me
You'd always be
My Lili of the lamplight
My own Lili Marlene

Time would come for roll call
Time for us to part
Darling I'd caress you
And press you to my heart
And there neath that far off lantern light
I'd hold you tight
We'd kiss good night
My Lili of the lamplight
My own Lili Marlene

Orders came for sailing
Somewhere over there
All confined to barracks
'Twas more than I could bear
I knew you were waiting in the street
I heard your feet
But could not meet
My Lili of the lamplight
My own Lili Marlene

Resting in our billet
Just behind the line
Even though we're parted
Your lips are close to mine
You wait where that lantern softly gleamed
Your sweet face seems
To haunt my dreams
My Lili of the lamplight
My own Lili Marlene
My Lili of the lamplight
My own Lili Marl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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