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70년대에 부산의 국제신문에서 주로 사회부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취재차 가끔 影島에 있는 국립수산진흥원에 들리곤 했었다. 거기서 길죽한 큰 유리병에 담겨있는 어류의 표본과 만나곤 했으나 '신기하다'는 정도 이상의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몇년 전에 (현대해양사 발간)란 '치어(稚魚)를 찾아서'란 책을 읽으면서 그 어류 표본들이 우치다게이타로(內田惠太郞)란 분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치다씨는 수산진흥원의 전신인 조선수산시험장 技師로 일하면서 한반도 근해에서 각종 어류의 生活史를 연구했던 분이다. 우치다씨는 1942년에 큐슈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겨 이곳에서 정년퇴직 한 뒤 몇년 전에 작고하였다고 한다.
이 책을 번역한 변충규 교수(제주대학교 증식학과)는 1958~79년 사이에 수산진흥원 증식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우치다 교수의 업적에 경탄하였고 그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하나의 의무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稚魚를 찾아서'를 번역하여 수산학도들에게 이 분의 업적을 소개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실천하게 된 것은, 번역자 자신이 정년퇴임을 앞두게 되어 더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後記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필자는 감동했다. 국경과 국적을 초월하며 진리에 접근해가는 학자의 집념과 양심이 좋은 수필처럼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다. 식민통치.전란 등 격동기 속에서 한 학자가 겪어야 했던 고뇌는 가슴을 저리게 했다. 일본이 패전한 뒤, 큐슈대학에서 연구생활을 하면서 수산진흥원에 두고 온 표본과 자료의 안부를 애타게 생각하는 장면의 묘사는 조용한 절규 같다.
<여위고 가늘어진 허리에 미끄러져 내려오는 혁대를 움켜쥐면서 공연히 물을 마시면서 쳐다보는 현미경도 시야가 흐려서 잘 보이지 않고... 조선은 멀어만 가고 그곳에 남기고 온 장기간의 노력의 결정은 손이 닿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것을 생각하면 내 육신의 일부가 찢겨지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우치다씨는 이런 걱정도 하고 있다.
<그 표본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그 귀중함을 깊이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철저한 관리를 기대할 수 없다>
우치다씨는 또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참다운 과학적인 조사연구가 兩 민족을 위하여 궁극의 이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도 했다.
우치다 교수는 한국근해 물고기들의 生活史를 탐구해가는 과정을 체험적 기록으로 정리하였으므로 자연과학책인데도 아주 재미 있게 읽힌다. 40톤밖에 안되는 시험선에 몸을 싣고 파도에 시달리면서 물고기 생태의 신비를 추적해가는 우치다 교수의 가슴속에선 오직 자연에 대한 순진한 호기심이 불타고 있었으리라.
<공기는 딱딱한 유리창같이 굳게 차가와져서 두드리면 까칠까칠 소리가 날 것 같았다>
<고래는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 넣으려는 순간 나를 곁눈질로 보았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눈알이 나의 눈과 마주친 것이다.... 나는 바다에 뛰어들어 그 고래의 뒤를 따라가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자연의 섭리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 진리에 접근해가는 치밀한 자세, 그리고 자연에 대한 사랑... 이런 것들을 느끼게 하는 '稚魚를 찾아서'를 덮으면서 나는 우치다씨와 꼭같은 걱정을 했다.
수산진흥원의 그 표본과 자료들은 잘 있는가?
어린 물고기(稚魚)를 찾아서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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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30, 2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