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안다성, "노래는 가사이다"

가사는 詩적으로 써야 한다.
月刊朝鮮 기자



지난 12월4일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원로가수 安多星(안다성·72)씨를 만났다. 그는 챙이 짧은 둥근 모자를 쓰고 긴 코트차림으로 약속장소에서 먼저 와 있었다. 그는 『우리처럼 노래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미리 와서 기다리지 않으면 불안해요』라며 반갑게 손을 잡았다.

『여기저기 오라는 데 있으면 가서 노래하죠. 한 달에 한 번은 노장가수들 모임에 가서 이야기도 하고, KBS 가요무대도 나가고… 일 년에 예닐곱 번 가요무대에 나갈 정도면 노장가수치고는 잘 나가는 것 아닙니까?』

安多星씨 하면 부드럽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먼저 떠오른다. 그는 독특한 美聲으로 詩를 읊듯 노래해 왔다. 그가 부른 「사랑이 메아리 칠 때」, 「에레나가 된 순희」, 「바닷가에서」 같은 가요는 「가요의 古典」이 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에레나가 된 순희」는 원래 가수 한정무씨가 부른 노래였으나, 한씨가 죽은 후 安多星씨가 再취입하였다. 이 노래는 방송을 통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安多星씨 자신이 1960년대 말부터 「극장식 술집」에서 십년을 넘게 불러서 유행시킨 노래다. 당시 安씨가 이 노래를 부르고 나면 손님들은 노래 제목도 모른 채 『에레나! 에레나!』 하고 외치면서 앙코르를 요구했다 한다. 그는 특히 드라마와 영화 주제가를 많이 불렀다. 「청실홍실」을 비롯해 「꿈은 사라지고」 등은 그가 불러 히트시킨 드라마 주제가다.

安多星씨는 1931년 충북 청주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중학교 졸업을 할 무렵 6·25 전쟁이 일어났다. 그는 야전공병단 「군예대원」으로 입대하여 전방 위문공연을 다녔다. 제대 후 당시 청주에 피란와 있던 신흥대학교(現 경희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하였고 9·28 수복과 함께 학교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1956년 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KBS 전속가수로 입사했다. 이때 드라마 주제곡인 「청실홍실」을 불러 많은 인기를 얻었다.

安多星씨는 KBS 전속가수에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그의 노래 실력을 알아본 한명숙(「노란 샤쓰입은 사나이」 가수)씨에게 발탁돼 오아시스 레코드社의 전속가수로 입사하게 된다. 安多星씨는 『당시 아마 내 월급이 대통령 월급의 다섯 배는 되었을 것』이라고 기억했다.

安씨는 서른 살 때 그의 공연을 구경하러 왔던 姜貞南(강정남·62)씨를 만나 결혼하였다. 이들 부부는 현재 아들 둘과 손자 둘을 두었다.

그는 평생 500곡이 넘는 노래를 불렀지만, 정작 자신은 자기가 부른 노래를 담은 LP판을 한 장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사다니는 와중에 잃어버리고 친구들이 하나 둘 가져 갔다. 다만 10여년 전 오아시스 레코드社에서 그의 노래 여섯곡과 다른 가수의 노래 몇 곡을 모아 CD를 만들었는데, 그 CD 한 장만은 고이 간직하고 있다. 기념 음반을 하나 만들려고 해도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어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가요계의 大선배가 느끼는 요즘 우리나라 대중가요는 어떨까?

『가사를 좀 詩的으로 써야 해요. 그래야 앞으로 외국노래하고 경쟁을 할 수 있어요. 세상에서 사랑이 제일 고귀한데 요즘 사랑을 표현한 노래를 보면 「나는 너 없으면 죽어, 나를 떠나지 마」 뭐 이런 식이에요. 日帝시대만 해도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대중가요 가사를 써서 노랫말이 참 아름다웠는데…』

그는 노래의 편곡이나 가사가 일본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安多星씨는 대중예술을 대하는 사회의 인식이 1960년대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우리나라에서 대중가요에 대해 名曲(명곡)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게 서운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웃 일본만 해도 좋은 노래가 있으면 名曲이라는 이름 붙이기를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노래하는 젊은 가수가 노인이 되면 혹시 우리나라에 미국의 흑인 랩(rap)이 전통가요라고 자리잡고 있을 거 아닙니까? 프랑스에는 샹송이 있고 일본에 엔카(演歌)가 있듯이 각 나라에는 그 나라 고유의 대중가요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대화 도중에 노래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나는 어느 지역을 노래한 것이 없잖아요. 내가 부른 「바닷가에서」 가지고 어디 노래碑 세울 데가 있겠어요』라며 웃었다.

그는 자신의 노래가 어려워서 그런지 후배가수들이 부르는 것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安씨는 좋아하는 후배가수로 인순이와 최백호를 꼽았다. 가창력이 좋기 때문이다.
安多星씨는 자기 노래를 듣고 「이건 도저히 아니다」고 판단되는 날이 왔을 때 조용히 쉬는 것이 은퇴라고 말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 음악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하늘의 별보다도 많아, 항상 겸손한 자세로 노래를 불러왔습니다. 은퇴는 제게 사치스러운 얘기예요』●(월간조선 2002년 1월호)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