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厚洛과 사위와 스위스 비밀계좌

20만 달러가 입금된 곳은 스위스 유니언 은행이었다.
어제 작고한 李厚洛 전 정보부장의 자녀들이 미국에서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1984년 필자는 '미스터리 인물 李厚洛 연구'란 기사를 월간조선에 실었는데, 스위스 은행과 관련된 대목이 있었다. 그 부분만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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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2월10일 朴正熙대통령의 대구사범 동창인 서정귀(徐廷貴)씨(자유당 시절 재무부 정무차관)가 부산 영도에 있던 흥국산업(주)이란 석유 판매회사를 인수, 흥국상사로 이름을 고쳤다. 3월 이 회사는 대한 석유공사의 벙커C유를 인수, 판매하기로 하는 공급계약을 맺었다. 이 회사는 삽시간에 전국 판매망을 조직, 벙커C유 판매로 떼돈을 벌기 시작했다. 기구 확장과 시설 투자비를 마련하기 위해 徐씨는 67년7월 50만 달러를 받고 주식 25%를 미국 걸프사에 팔았다. 걸프사로부터 1백51만1천 달러의 차관도 얻었다.

68년엔 흥국상사가 유공의 경질유 제품까지 독점적으로 팔 수 있게끔 되어 더욱 번성하게 됐다. 徐延貴씨는 한편 李厚洛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원 아래에서 럭키재벌에 호남정유 설립의 권한이 떨어지도록 하는 데 성공, 자신은 69년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호남정유의 대주주(뒤에 사장)가 됐다.

경쟁관계에 있는 두 정유회사에 양다리를 걸친 것이었다. 이 어정쩡한 상태는 오래 갈 수 없었다. 걸프사는 흥국상사의 주식 25%를 추가로 인수하기로 하고 흥국 徐사장과 교섭에 들어갔다. 이즘의 상황이 78년의 [미 하원 한미 관계 보고서]의 부록(8백40∼41쪽)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주식 인수 대금을 2백만 달러에 합의한 직후 李厚洛은 걸프와 한국 주재 대표인 힐 보닌에게 연락, 관계자회의를 요청했다. 이 회의에는 李厚洛, 徐廷貴, 보닌, 그리고 몇 주주들이 참석했다. 李厚洛은 주식 인수 대금 2백만 달러 가운데 20만 달러를 朴대통령의 미국 방문 경비로 건네줄 것을 요청했다. 보닌은 이 제의를 (피츠버그 본사에 있는 한국 투자 담당자) HI 굿맨에게 전달했고, 굿맨은 ED 로니에게 보고했다. 로니는 20만 달러의 송금을 李厚洛이 제안한 방법대로 하도록 승인했다.

1969년 8월 21일 피츠버그의 걸프 본부는 20만 달러를 전신환으로 취리히에 있는 스위츨란드 유니언 은행에 송금했다. 수취인은 徐廷貴였고, 구좌번호는 625,965,60D였다. 1969년 12월에 이 구좌에서 19만 9천7백50달러가 인출됐다. 이 돈은 李厚洛이 徐廷貴를 대신하여 서명함으로써 인출해 간 것 같다]

여기서 흥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스위츨란드 유니언 은행은 徐廷貴씨 명의의 구좌 명세서(Statements for the account)를 정화섭(Wha Sup Chung)이란 사람에게 보낸 것이다. 이 명세서는 69년9월2일자로서 은행이 입금 사실을 통지하는 내용이다. 왜 徐씨나 李厚洛씨가 아니라 정화섭이란 인물에게 연락이 갔는가? 정화섭이란 누구인가.

사위가 비밀자금 관리

미 하원 국제관계 소위원회도 여기에 의문을 갖고 입금자인 걸프를 통해서 이 은행에 徐廷貴 구좌에 대한 상세한 정보의 제출을 요청했다. 78년6인15일 스위츨란드 유니언 은행은 [예금주가 사망했을 경우에 정당하게 상속인이 된 자만이 예금주의 구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답신, 자료제공을 거절했다. 스위스는 예금주에 대한 비밀유지를 법으로 정해놓고 있으므로 그런 답신은 당연한 것이었다.

소위원회는 이 정화섭이 누구인지는 쉽게 밝혀냈다. 그는 李厚洛씨의 외동딸(38)의 남편이다. 정씨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장인인 李씨는 70년12일에 정보 무경험자인 鄭씨를 국제문제담당 국장으로 앉혔다. 재임말기엔 朴대통령으로부터 지적을 당해 사위를 물러나게 했다.

미 하원 국제문제소위원회 조사관이 인터뷰한 李씨의 둘째 아들 이동훈(李東勳)씨(한국화약 김종희.金鍾喜 회장의 사위)는 鄭화섭씨가 장인을 위해 돈을 관리한 적이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鄭화섭씨가 1980년대 로스앤젤레스 교포사회에서 화제의 초점이 되었다. 鄭씨는 한미 플라자라는 6백50만 달러짜리 상가빌딩을 시내 요지에 갖고 있었다.

교포들은 이 건물이 李厚洛씨가 해외로 빼돌린 돈으로 세워진 것이라 주장, 입주반대운동을 벌였다. 청년들이 돌멩이를 던져 유리창을 부수기도 했다. 교포들의 이런 움직임에 견디지 못했던지 鄭씨는 이 건물을 다른 교포에게 팔아 넘겼다.

검은 돈은 스위스로

흥국상사 주식 매입에 따른 에피소드는 李厚洛의 행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걸프로 하여금 흥국 주식의 25%를 2백만 달러에 사도록 힘을 넣은 것은 李厚洛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미하원 보고서뿐 아니라 유공에 근무했던 간부들이 이를 시인하고 있다. 이 매입 가격은 당시의 적정가격보다는 약 3배, 1년 전의 매입 가격보다는 약 4배 비싼 것이었다. 그는 徐廷貴씨와 주주들에게 횡재를 안겨 준 거래를 주선해 놓고 20만 달러의 커미션(?)을 대통령 여비 명목으로 떼어갔다. 그 돈의 인수는 해외에서 스위스 은행을 통해서 이뤄졌다.

외환관리법을 위반한 것은 물론이다. 스위스 은행 등 외국은행을 이용한 이런 [검은 돈] 관리방식은 李厚洛씨뿐만 아니라 제3공화국 실력자들의 행동패턴이었다(金炯旭은 朴東宣이 급히 필요하다고 하니까 서울 암시장에서 10만 달러를 바꿔 건네주기도 했었다). 스위스 은행들은 세계의 검은 돈이 몰리는 집합장소다. 철저하게 예금주를 보호하는 대신 싼 예금 금리를 적용, 금리차로 큰 수입을 올리는 것이 이 나라다. 미 하원 국제소위원회 보고서는 스위스 은행 구좌 문제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

朴대통령이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에 李東勳씨가 대통령이나 아버지에게 불리한 이런 증언을 왜 했는지 수수께끼다. 이때 李東勳씨는 미국에 있었던 것 같은데 미국 의회쪽의 압력이 거세었던지, 아버지가 그 정도 쯤 이야기해도 좋다고 협조를 양해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李東勳씨는 1980년대 현재 李厚洛씨의 둘째 아들로 한국화약그룹 고 金종희 회장의 사위다. 큰 아들 李동진씨는 고 徐廷貴씨의 사위다. 이후락씨는 유공, 호남정유, 경인에너지 등 3대 정유공장을 가진 재벌의 창업주들과 사돈이 된 것이다.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세 사돈과 세 정유공장은 李厚洛씨의 엄호를 가장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진출한 걸프, 칼텍스 유니언 오일 등 미국의 세 국제석유자본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이가 李씨였다. 그 지원의 대가로 朴정권은 정치자금을 걸프와 칼텍스로부터 거두어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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