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극장에서 올해 아카데미 직품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수상작인 '노매드랜드'를 보았다. 유목민의 땅이란 뜻이다. 화면은 의도적으로 어둡게 했다. 흐린 새벽 아니면 저녁 무렵의 분위기로 始終했다. 세번째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64세)의 독무대였다. 캐서린 헵번만이 더 많은 상을 받은 女優라고 한다. 그녀의 動線을 따라가는 영화이다. 꾸밈없고, 강인하면서, 극도의 자제력을 보여주는 여성상이다. 이 영화에선 포옹 키스 장면이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맥도먼드는 2018년 가을 이 영화를 찍으면서 실제로 넉 달 동안 밴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밴을 집으로 삼아 일정한 직장 없이 임시직을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사는 이들의 생활이 배경인데, 일을 안하는 노숙자와는 다르다. 실제로 노매드 생활을 하는 이들이 다수 출연했다. 특히 아리조나 주의 공터에 일종의 노매드 센터를 만들어 운영하는 인물이 조연이다.
주인공 맥도먼드는 남편이 죽은 뒤에도 계속 일하던 회사가 문을 닫자 노매드가 되는데 행동이 딱 노매드 스타일이다. 독립적이며 돌아다니길 좋아하고, 혼자 있기를 즐기며, 자연을 좋아한다. 미국인 특유의 고독하고 강인한 모습인데, 이 영화에선 종교적 색책가 없어, 즉 심리적으로 기댈 구석을 만들지 않아 주인공은 더욱 외롭고 억세면서 어딘가 쓸쓸해보인다.
줄거리는 너무나 평범하고 자연스럽다. 드라마틱한 장면도, 과장이나 우연도 없다. 이게 불만인 관객도 많다고 하지만 나는 그 부작위성이 좋았다.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의 차이는 작위성과 자연스러움 아니겠는가? 나는 주인공이 선량한 남자 노매드와 결합하여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되길 바랐지만 그녀는 마당에 세워둔 밴 속에서 자고 밴을 몰고 나와 버린다.
영화 끝에 가면 이 주인공의 외로움, 그 뿌리를 확인하는데 그것은 죽은 남편에 대한 절개이다. 너무 일찍 외롭게 죽은 남편을 기억해주어야 그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품고 산다. 기억되는 삶만이 가치가 있다는 名言이 나온다. 노매드 센터를 운영하는 밥 웰스도 아들이 자살하여 살아갈 의욕을 잃었을 때 누군가를 돕는 삶을 통하여 再起하기로 작심했다고 털어놓는다. 역시 사람은 他人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가치를 확인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인공이 죽은 남편과 함께 살았던 빈집을 다시 찾아가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구석구석 확인한 뒤 문을 열고 바깥의 대자연을 바라보는 황량한 장면이 이 영화의 절정이다. 미국인들의 강인함은 혼자됨의 외로움을 감당하는 용기임을 보여주는데 대자연이 그런 힘의 원천이다. 영화에 나오는 노매드들은 지갑은 얇아도 동정을 바라지 않는다. 여주인공의 자존심 강한 행동은 19세기 초반 미국을 여행하고 미국여성들의 독립성에 감탄했던 알렉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란 책에서 묘사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600만 달러밖에 들지 않은 영화로서 코로라 사태에도 불구하고 돈을 좀 벌었지만 대한극장엔 관객이 세 명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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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나무위키)
영화가 시작되기 전, 미국 네바다 주 엠파이어(Empire) 시에 있던 US 석고(U.S. Gypsum)의 공장이 석고보드 수요 감소로 인해 2011년 폐업했고, 공장이 있던 곳은 우편 번호마저 말소되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펀(Fern)[2]은 한때 엠파이어에서 남편인 보와 살고 있었다. 보는 석고를 캐는 광부였고, 펀은 US 석고의 인사과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가 암에 걸려 죽고 석고 공장이 문을 닫으며 공장에 수입을 의존하던 엠파이어 시는 그대로 몰락해 버렸고, 결국 직장도 연고도[3]없이 홀로 남게 된 펀은 밴 한 대에 몸을 의지해 떠도는 노매드가 된다.
영화는 펀이 차에 실을만한 살림살이를 제외한 모든 것을 창고에 맡긴 뒤 밴을 타고 떠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아직 일할 의지도 충분하고 경력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수 없던 펀은 한 캠핑장[4]에 밴을 맡긴 뒤 아마존 물류 센터에서 일하게 된다. 펀은 캠핑장에서 만난 노매드 린다에게 밥 웰스의 유튜브 채널을 소개받고 그를 만날 것을 권고받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펀은 아마존 물류센터 일의 계약 기간이 끝나서 일을 그만두고 밥 웰스가 있는 남쪽으로 떠난다.
펀은 밥 웰스와 그의 주변에 모인 노매드들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운다. 이윽고 밥과 다른 노매드들은 모두 떠나고, 펀과 다른 노매드 하나만이 남는다. 어느 날, 펀은 밴의 타이어에 펑크가 나자 옆에 있던 다른 노매드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다른 노매드인 스왱키와 안면을 트게 된다. 스왱키는 자신이 폐에 있는 암이 뇌까지 전이되어 시한부 인생이라고 밝히며, 병원에서 죽느니 자유롭게 여행을 하며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스왱키는 먼저 떠나고, 펀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난다.
펀은 한 캠핑장에서 일자리를 얻고, 그 곳에서 일을 하던 도중 데이브라는 다른 노매드를 만난다. 두 사람은 데이브가 펀이 아버지에게 물려받아서 소중하게 여기던 접시를 실수로 깨거나 아픈 데이브를 펀이 문병 와주는 등의 사건을 거치며 친해지고, 데이브는 펀에게 자기가 곧 일할 식당 월 드러그에서 같이 일할 수 있게 도와 주며 펀과 같이 일하게 된다. 어느 날, 데이브의 아들이 데이브가 일하는 식당에 찾아와 자기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데이브는 자기는 아들에게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아들에게 갈지 노매드 생활을 계속 할지 고민하다 결국 아들과 같이 가기로 하고, 펀은 예정대로 다른 지역의 비트 농장에서 일을 시작하기 위해 떠난다.
펀은 비트 농장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펀의 밴이 심하게 고장나는 일이 벌어진다. 정비소에 밴을 맡기자 차라리 새로 사는 게 더 쌀 지경으로 수리비가 많이 나왔지만, 노매드 생활을 하며 밴에 정이 든 펀은 밴을 버리지 못하고 밴 수리비를 빌리기 위해 언니의 집에 간다. 펀의 언니는 펀에게 같이 살 것을 청하지만, 펀은 언니의 부탁을 정중히 사양[5]한다. 펀의 언니는 펀이 일찌감치 고향에서 먼 엠파이어로 시집을 간 뒤 너무도 허전했다며 아쉬움 섞인 작별 인사를 남기고, 펀은 돈을 받고 다시 길을 떠난다.
펀은 떠돌다 아들의 집에 정착한 데이브의 초대를 받는다. 데이브 아들 내외는 손자를 본 상태였고, 데이브도 타고 다니던 밴을 마당에 펑크난 채 방치하고 노매드 생활을 접은 상태였다. 데이브는 펀에게 아들 내외도 허락했으니 자신들과 함께 살자고 권하지만, 펀은 이미 편한 침대에서 자다가 문득 잠이 깨서 다시 밴에서 잠에 들 정도로 노매드 생활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다시 펀은 길을 떠나 영화 첫 장면에 나왔던 창고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펀은 창고에 남아 있던 물건마저 전부 처분한 채 다시 아마존 물류센터 일을 하고, 다시 밥 웰스와 노매드들 곁으로 간다. 그 사이에 스왱키는 자신이 원하던 데로 여행을 하다 세상을 떠났고, 밥 웰스와 펀, 그리고 다른 노매드들은 모닥불 앞에서 스왱키의 삶을 기린다.
펀은 밥 웰스에게 죽은 남편 보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러자 밥 웰스는 자신도 5년 전에 아들이 자살한 이후 노매드의 삶을 택했다면서, 길 위에서는 영원한 작별이 없으며 누구나 다시 만나게 된다는 말[6]을 한 뒤 언젠가 자신도 아들과, 펀도 보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펀은 엠파이어로 돌아와서 예전에 자신이 다녔던 공장과 유령도시가 되어버린 엠파이어 가운데에 있던 자신이 살던 집을 둘러본다. 이후 네바다의 사막과 그 사막 한 가운데를 달리는 밴을 비추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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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멕도먼드: 메릴 스트립과 함께 현대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배우로 꼽힌다. 1997년 <파고>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1년 만인 2018년에 <쓰리 빌보드>로 2번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3년 만인 2021년에 <노매드랜드>로 3번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엄청난 기록을 남겼다.[2] 뿐만 아니라 에미 상, 토니 상까지 수상하여 영화, TV 드라마, 그리고 연극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연극의 3대 상(일명 '트리플 크라운 액팅'[3])을 모두 받은 몇 안되는 배우 중 하나이기도 하다.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1957년 6월 23일 미국 일리노이 주 깁슨 시티에서 신시아 앤 스미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만 1세가 넘었을 무렵 그녀는 버논과 노린 맥도먼드 부부에게 입양되어 프랜시스 루이스 맥도먼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의 양어머니는 간호사였으며, 그녀의 양아버지는 목사였다. 맥도먼드 본인이 '화이트 트래시'라고 칭한 그녀의 친어머니는 양아버지가 있던 교회의 교구민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도로시라는 여자 형제가 있었으며, 프랜시스와 같이 그녀도 친자식이 없는 맥도먼드 부부에게 입양된 자녀였다.
그녀의 가족은 아버지의 직업 특성 상 자주 이사를 다녔다. 그들은 일리노이, 조지아, 켄터키, 테네시 등을 거치다가 펜실베이니아 주 모네센이라는 곳에 정착하였다. 그녀는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베서니 칼리지에서 예술 학사 학위를 얻었다. 1982년 맥도먼드는 예일 대학교에서 예술 석사 학위를 얻었다.
'노매드랜드'를 보고 미국인의 강인함과 외로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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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27, 23: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