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전 충격패의 정밀분석, 그리고 代案!

그러나 어떠한 비판과 실망이 있더라도, 대표팀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월드컵은 국가를 대표해 싸우는 무대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는 선수들이 반드시 보여줘야 할 책임이다.
남아공전 충격패

대한민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0대 1로 패했다. 단순히 한 경기에서 진 것이 아니다. 반드시 결과를 가져와야 했던 경기에서, 상대보다 더 절박해야 했던 경기에서, 한국은 끝내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패배 그 자체보다 패배의 방식이었다. 상대에게 압도당한 것도 아니고, 不運한 한 장면에 무너진 것도 아니었다. 한국은 경기 내내 자신들이 무엇을 하려는 팀인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남아공전은 단순히 컨디션이 나빴던 하루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번 패배는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체코전에서 드러난 불안함, 멕시코전에서 확인된 공격의 단조로움, 그리고 대회 전부터 반복되던 '3백 운용'의 문제들이 결국 남아공전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 내내 비슷한 문제를 반복했다. 상대가 라인을 올리고 뒷공간을 내주면 빠른 공격수들의 침투와 전방 압박으로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내려앉아 중앙을 막고 기다리면 공격은 급격히 답답해졌다. 남아공은 바로 이 약점을 정확히 파악했다. 승리가 필요했던 쪽은 오히려 남아공이었지만, 그들은 무리하게 올라오지 않았다. 대신 자기 진영을 지키며 한국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은 끝내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이 경기를 가장 날카롭게 설명한 말은 프랑스와 아스날FC의 레전드 티에리 앙리의 평가였다. 그는 남아공전을 본 뒤 한국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이기려는 축구를 한 것이 아니라, 지지 않으려는 축구를 했다."

한국은 승리를 향해 달려든 팀이 아니었다. 失點하지 않으려 했고, 형태를 유지하려 했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그런 태도는 결국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한다.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지지 않으려는 축구를 했고, 그 결과는 패배였다. 남아공전은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라 한국 축구가 외면해 온 문제들이 만들어낸 예고된 참사였다.

남아공전 리뷰

경기 초반부터 분위기는 불안했다. 한국은 공을 점유하는 듯 보였지만, 실질적으로 경기를 지배하지 못했다. 후방에서는 볼을 돌렸지만 전방으로 연결되는 패스는 부족했고, 중원과 공격진 사이의 간격은 계속 벌어졌다. 남아공은 무리하게 압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진영을 단단하게 지키며 한국이 실수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한국은 그 기다림에 정확히 말려들었다.

전반전 한국은 몇 차례 뒷 공간을 노리는 움직임을 시도했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상대 수비가 라인을 내리고 중앙을 막자 공격은 곧바로 답답해졌다. 이강인이 내려와 공을 받았지만 주변의 움직임은 부족했고, 윙백들은 높은 위치에 고정되어 있었으며, 박스 안에는 충분한 숫자가 들어가지 못했다. 공은 돌았지만 위협은 없었다. 반대로 남아공은 공을 빼앗을 때마다 빠르게 전환하며 한국 수비 뒤의 공간을 노렸다. 전반전부터 이미 어느 팀이 더 명확한 계획을 가지고 나왔는지는 분명해 보였다.

후반전에도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은 더 공격적으로 나서야 했지만, 경기 구조는 여전히 靜的이었다. 후방에는 많은 숫자가 남아 있었고, 전방에서는 조급한 침투와 단순한 크로스가 반복됐다. 교체가 이루어졌지만 경기의 방향을 바꾸는 변화라기보다는 같은 틀 안에서 선수만 바뀌는 교체에 가까웠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지만, 한국의 플레이에서는 승리를 향한 과감함이 잘 보이지 않았다.

실점 장면은 이러한 경기 흐름의 결과였다. 한국은 공격 과정에서 충분한 위협을 만들지 못했고, 오히려 볼을 잃은 뒤 남아공의 빠른 전환에 흔들렸다. 상대는 경기 내내 노렸던 방식대로 한국팀의 간격이 벌어진 순간을 공략했고, 결국 그 한 장면이 승부를 갈랐다. 실점 이후에도 한국은 뚜렷한 반격을 만들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격은 더 급해졌지만, 더 날카로워지지는 않았다.

결국 남아공전은 한국이 경기 내내 주도권을 잃은 경기였다. 점유율이나 이름값의 문제가 아니었다. 남아공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한국은 끝내 그것을 깨뜨릴 방법을 찾지 못했다. 상대는 기다렸고, 한국은 막혔다. 상대는 전환했고, 한국은 흔들렸다. 그래서 이 패배는 더 뼈아프다. 한국은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주도하지 못했고, 주도하지 못한 팀은 결국 결과도 가져오지 못했다.

전술 분석

남아공전의 패배를 단순히 “선수들이 못 뛰었다” 혹은 “컨디션이 나빴다” 정도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물론 선수들의 경기력도 좋지 않았다. 볼 터치, 패스 정확도, 오프더볼 움직임, 세컨볼 반응 모두 아쉬웠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선수들이 자신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구조 안에서 뛰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이 사용한 '3백'은 공격에서도 수비에서도 뚜렷한 장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은 이번 경기에서도 3백을 유지했다. 문제는 3백 자체가 아니라, 그 3백이 지나치게 靜的으로 운영되었다는 점이다. 현대 축구에서 3백은 단순히 센터백 세 명을 뒤에 세워두는 전술이 아니다. 좌우 스토퍼가 상황에 따라 전진하고, 미드필더처럼 공을 운반하며, 상대 수비를 끌어내야 한다. 그래야 윙백이 높게 올라갔을 때 생기는 중원 공백을 메울 수 있고, 공격 숫자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하지만 남아공전의 한국은 달랐다. 센터백 세 명은 대부분 후방에 고정되어 있었다. 상대가 강하게 전방 압박을 걸지 않았는데도 스토퍼가 과감하게 올라가는 장면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러면 문제가 생긴다. 후방에는 사람이 많은데, 정작 공격 지역에는 숫자가 부족해진다. 상대는 열 명 가까이 내려앉아 수비하는데, 한국은 실질적으로 일곱 명 정도만으로 그 수비를 뚫어야 했다. 이 구조에서 공격이 답답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 이한범과 이기혁 같은 좌우 스토퍼의 전진이 부족했던 점은 아쉬웠다.

물론 수비 안정성을 의식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내려앉아 있고, 한국이 반드시 득점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스토퍼 중 한 명은 한 칸 더 올라가야 했다. 그래야 상대 미드필더가 끌려 나오고, 그 뒤 공간에 이강인이나 손흥민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후방 세 명이 계속 같은 라인에 머물면서 남아공 수비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이번 경기에서 가장 눈에 띄게 답답했던 포지션은 양쪽 윙백이었다. 설영우와 이태석 모두 활동량은 있었지만, 공격적으로 상대를 흔드는 장면은 부족했다. 물론 이들을 무작정 비판하기는 어렵다. 두 선수 모두 본래 공격형 윙어처럼 상대를 일대일로 무너뜨리는 유형은 아니다. 설영우는 안정적인 수비와 빌드업 지원에 강점이 있는 선수이고, 이태석 역시 풀백 성향이 강한 선수다. 그런데 대표팀 전술 안에서는 두 선수가 사실상 공격수처럼 높은 위치에 고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설영우의 경우 특히 아쉬웠다. 설영우는 공을 받았을 때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접고 들어가거나, 빠르게 크로스를 올리거나, 상대 풀백을 일대일로 흔드는 장면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대 수비가 내려앉은 상황에서 윙백이 높은 위치에만 서 있으면, 공을 받아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제한된다. 결국 뒤로 돌리거나, 무리한 크로스를 시도하거나, 공격 템포가 끊기는 장면이 반복됐다. 이태석도 비슷했다.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그 위치에서 상대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플레이는 부족했다. 측면에서 공을 받았을 때 상대 수비를 끌어내거나, 하프스페이스로 침투하는 동료와 연계하거나, 박스 근처까지 들어가는 장면이 많지 않았다.

단순히 넓게 벌려 서 있는 것만으로는 상대 수비를 무너뜨릴 수 없다. 윙백이 공격에서 의미를 가지려면 높이 올라가는 것뿐만 아니라, 언제 내려와 받아줄지, 언제 안쪽으로 들어갈지, 언제 뒷 공간을 침투할지에 대한 세부 움직임이 필요하다. 이번 월드컵에서 비판적인 여론이 다분한 설영우 이지만, 설영우는 세르비아 리그 즈베즈다의 주전 풀백이며, 리그 베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선수이다. 이런 선수의 장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기용해야 선수의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 한 감독의 잘못이다.

양쪽 윙백은 공격 숫자를 늘리기 위해 높게 배치되었지만, 실제로는 공격의 질을 높이지 못했다. 오히려 윙백이 너무 높게 고정되면서 후방과 전방 사이의 간격이 벌어졌다. 중앙 미드필더가 공을 잡았을 때 가까운 패스 옵션이 부족했고, 이강인이 계속 아래로 내려와야 했다. 이는 윙백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 보면 전술 구조의 문제다. 설영우와 이태석에게 맞지 않는 역할을 부여하고, 그들이 고립되었을 때 도와주는 움직임도 부족했다. 두 윙백의 크로스를 주 득점 플랜으로 삼고싶었다면, 오현규의 선발 출전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조규성을 선발 출전 시켰거나, 조금 더 일찍 교체 투입했다면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건지 ‘억지로라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옌스 카스트로프 기용도 연결된다. 후반에 투입된 옌스 카스트로프는 필드 위에서 누구보다 더 열심히 뛰고, 드리블 돌파, 패스, 크로스, 아웃프런트 등등 다양한 공격 툴을 활용하며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다 못해 엄지성을 기용했다면 공격상황에서 더 다양한 공격이 가능했을 것이다.

한국 공격의 또 다른 문제는 움직임의 부족이었다. 공을 가진 선수를 도와주는 동료의 움직임이 적었다. 이강인이 공을 잡으면 주변 선수들이 패스 길을 만들어주기보다 각자 위치에서 기다리는 장면이 많았다. 황인범이 공을 잡아도 전방과의 거리가 멀었고, 백승호 역시 전진 패스를 넣을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교체 투입된 손흥민도 고립되는 장면이 많았다. 손흥민의 가장 큰 장점은 뒷 공간 침투와 빠른 마무리지만, 남아공처럼 라인을 내리는 팀을 상대로는 그 장점이 쉽게 살아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손흥민 주변에서 누군가가 내려와 공을 받아주거나, 반대로 손흥민이 내려왔을 때 다른 선수가 그 공간으로 침투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연쇄 움직임이 부족했다. 손흥민이 움직여도 그 움직임이 팀 전체의 패턴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후에 인터뷰에서 이르길, 홍명보 감독이 손흥민 교체 투입 당시 특별히 지시한 역할이 없었다고 한다. 손흥민이 전반을 벤치에서 보낸 이유가 티끌만큼도 없었단 것이다. 오현규도 아쉬웠다. 오현규는 피지컬과 門前 마무리에 강점이 있는 선수다. 하지만 남아공전에서는 그 장점이 거의 살아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현규에게 공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트라이커가 박스 안에서 힘을 발휘하려면 측면에서 질 좋은 크로스가 들어오거나, 2선에서 빠른 패스가 공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파이널 서드 진입 자체가 불안정했고, 박스 안으로 연결되는 패스도 부족했다. 결국 오현규는 경기에서 지워진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강인의 역할도 문제였다. 이강인은 가장 창의적인 선수지만, 너무 낮은 위치까지 내려와야 했다. 원래 이강인이 가장 위협적인 위치는 상대 미드필더와 수비 라인 사이, 즉 포켓 공간이다. 그곳에서 공을 받으면 전진 패스, 슈팅, 드리블, 크로스를 모두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남아공전에서는 빌드업이 막히자 이강인이 계속 후방으로 내려와 공을 받았다. 그러면 공은 조금 더 안정적으로 돌 수 있지만, 정작 공격 지역에서 결정적인 패스를 넣어줄 선수가 사라진다. 한국 공격이 이강인에게 의존하면서도, 동시에 이강인을 가장 위험한 위치에서 멀어지게 만든 셈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뒷 공간 공략에 상당히 의존했다. 한국은 황희찬, 오현규 같은 선수들의 기동력을 활용해 상대 뒷 공간을 노렸고, 그 과정에서 좋은 장면을 만들었다. 하지만 멕시코전부터 문제가 드러났다. 멕시코는 한국의 뒷 공간 공격을 의식해 수비 라인을 더 신중하게 운영했고, 한국은 급격히 답답해졌다. 그리고 남아공전에서는 이 문제가 완전히 노출되었다. 남아공은 애초부터 라인을 올리지 않았다. 한국이 잘하는 공간을 주지 않았고, 중앙도 촘촘하게 막았다. 한국은 상대가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남아공은 끝까지 기다렸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다른 공격 루트다.

상대가 내려앉으면 하프스페이스를 공략하거나, 스토퍼가 전진해 상대 미드필더를 끌어내거나, 3자 패스 조합으로 수비 라인 사이를 깨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뒷 공간이 막혔을 때 사용할 두 번째, 세 번째 해법이 부족했다. 결국 공격은 측면으로 돌리고, 크로스를 올리고, 다시 막히는 패턴으로 반복됐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한국의 공격이 너무 쉽게 예측 가능했다는 점이다. 후방에서 공을 돌리고, 이강인이 내려와 받고, 측면으로 전환하고, 윙백이 크로스를 시도한다. 이 패턴이 반복되자 남아공은 복잡한 대응을 할 필요가 없었다. 중앙을 막고, 측면 크로스만 대비하면 됐다. 현대 축구에서는 이런 방식만으로 내려앉은 수비를 뚫기 어렵다. 맨체스터 시티나 아스널 같은 팀들이 낮은 블록을 상대할 때 단순히 측면으로 공을 돌리기만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하프스페이스에 선수를 배치하고, 풀백이나 센터백이 안쪽으로 들어오며, 세 번째 선수가 침투하는 패턴을 반복한다. 공을 가진 선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을 받지 않는 선수들의 움직임이 수비를 무너뜨린다. 한국에는 그런 세부 패턴이 부족했다.

설영우와 이태석이 높이 올라가도 그 뒤를 받쳐주는 스토퍼 움직임이 없었고, 미드필더가 전진하면 그 공간을 메우는 움직임도 부족했다. 공격수는 박스 안에 고립되었고, 이강인은 후방으로 내려왔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공을 소유하고도 상대를 무너뜨리는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

남아공전의 전술적 문제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한국은 포메이션은 있었지만, 그 포메이션 안에서 공간을 만드는 움직임은 없었다. 3백을 썼지만 스토퍼를 활용하지 못했고, 윙백을 높게 올렸지만 공격적으로 살리지 못했으며, 이강인을 보유했지만 그를 가장 위협적인 위치에 두지 못했다. 결국 남아공전은 선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선수들의 장점을 하나의 구조 안에서 연결하지 못한 전술적 실패였다.

이번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역시 홍명보 감독의 경기 운영에 있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는 "비기는 경기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실제 경기 운영은 정반대였다. 승리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수비적인 구조를 유지했고, 공격적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순간에도 후방 숫자를 줄이지 않았다. 교체 운영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실점 이후에는 더욱 과감한 승부수가 필요했지만 김민재의 부상으로 생긴 교체 카드에는 공격수가 아닌 박진섭이 투입되었다.

이후 조규성이 들어왔지만 오현규와의 단순 교체에 그쳤고, 3백 구조는 끝까지 유지되었다. 공격 숫자를 늘려야 할 시점에도 후방 안정성을 우선한 선택이었다. 상대가 수비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센터백 한 명을 줄이고 공격 숫자를 늘리는 선택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었지만, 끝내 그런 변화는 나오지 않았다. 감독은 경기 중 흐름을 읽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경기에서 홍명보 감독은 패배를 뒤집기 위한 모험보다 균형을 유지하는 데 더 집중했고, 그 결과 경기의 주도권을 되찾을 기회를 스스로 놓쳤다.

물론 선수들의 경기력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다. 볼 컨트롤은 평소보다 불안했고, 패스의 정확도도 떨어졌다. 공격에서는 자신감 있는 드리블이나 과감한 일대일 돌파를 보기 어려웠으며, 수비 전환 역시 이전 경기들보다 느렸다. 하지만 이번 패배를 특정 선수 한 명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경기 후 설영우, 이태석, 오현규 등 일부 선수들에게 비판이 집중되었지만, 이들이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뛰었다는 점 역시 함께 봐야 한다. 설영우와 이태석은 본래 왕성한 활동량과 오버래핑이 장점인 풀백이다. 그러나 이번 경기에서는 높은 위치에서 폭만 유지하거나 단순히 침투를 반복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뒤에서 공을 연결해 줄 스토퍼가 올라오지 않으면서 윙백들은 고립됐고, 결국 공을 받지 못한 채 상대 수비와 싸우는 장면이 반복됐다. 오현규 역시 비슷했다. 그는 박스 안에서의 움직임과 마무리 능력이 뛰어난 스트라이커지만, 경기 내내 제대로 된 크로스나 컷백을 거의 공급받지 못했다. 스트라이커가 공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은 개인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 체계의 문제다.

이번 경기에서는 체력적인 문제 역시 뚜렷하게 드러났다. 후반으로 갈수록 선수들의 활동량은 눈에 띄게 감소했고, 공을 가진 선수를 도와주기 위한 오프더볼 움직임도 크게 줄어들었다. 현대 축구에서는 공을 가진 선수보다 공이 없는 선수의 움직임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패스 길은 공을 가진 선수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변 선수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만들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아공전에서 한국은 이러한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강인이 공을 잡아도 주변에서 새로운 패스 옵션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는 선수가 적었고, 대부분 자신의 위치를 유지한 채 공이 오기만 기다렸다. 결국 선택지가 사라진 이강인은 다시 뒤로 패스를 돌리거나 무리한 전진 패스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의 세세한 지시가 없으니 선수들의 동선이 안 맞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강인이 공을 가지고 있을 때 누구는 침투를 하고, 누구는 패스를 받아주고, 누구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하는 지시가 있어야 선수들이 확신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다.

남아공전에서는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의 시작점인 전방 압박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현대 축구에서 전방 압박은 단순히 공격수 한 명이 상대 골키퍼나 센터백을 향해 뛰어가는 것이 아니다. 1선과 2선의 선수들이 사전에 약속된 방식으로 동시에 움직이며 상대의 패스 경로를 차단하고, 특정 방향으로 유도한 뒤 수적 우위를 만들어 공을 탈취하는 조직적인 움직임이다. 압박은 개인의 활동량이 아니라 팀 전체의 구조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남아공전에서 한국의 전방 압박은 이러한 조직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현규가 상대 센터백을 향해 압박을 시도하면 황희찬과 이강인은 뒤에서 이를 따라 올라오지 못했고, 중원 역시 압박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결국 오현규 혼자 상대 수비를 향해 뛰어드는 장면이 반복되었지만, 주변에서 압박을 지원해 주는 선수가 없었기 때문에 남아공은 간단한 패스 한두 번으로 압박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오현규 역시 무의미한 압박을 계속하기보다 체력을 아끼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는 선수 개인의 의지 부족이라기보다, 혼자 뛰어봐야 효과가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결과에 가까웠다. 압박은 한 명이 아니라 최소 세 명 이상이 동시에 움직여야 성공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답답함을 느낀 이강인이 직접 전방까지 올라가 압박을 시도하는 장면도 여러 차례 나왔다. 하지만 이 역시 효과는 거의 없었다. 이강인이 앞으로 뛰어나가도 뒤따라오는 선수가 없었고, 남아공은 여유롭게 반대편으로 공을 전환하며 압박을 벗어났다.

오히려 한국은 가장 창의적인 선수인 이강인의 체력만 불필요하게 소모하는 결과를 낳았다. 공격에서 결정적인 패스를 공급해야 할 선수가 의미 없는 압박에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이강인의 영향력도 자연스럽게 감소했다. 이는 벤투 감독 시절과도 대비되는 부분이다. 당시 한국은 압박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최소한 압박의 기준과 타이밍은 명확했다. 최전방 공격수가 압박을 시작하면 측면 공격수와 중앙 미드필더가 함께 전진하며 상대를 한쪽으로 몰아넣었고, 공을 탈취하지 못하더라도 상대가 쉽게 전진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반면 남아공전에서는 누가 압박을 시작하고, 누가 패스 길을 차단하며, 누가 세컨드볼을 회수할 것인지에 대한 공통된 약속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전방 압박은 상대를 괴롭히는 무기가 아니라 선수들의 체력만 소모시키는 비효율적인 움직임으로 전락했고, 이는 경기 내내 한국이 주도권을 되찾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경기 운영 역시 아쉬웠다. 남아공은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팀이었지만 오히려 한국보다 더 침착했다. 급하게 공격하지 않았고, 한국의 약점을 기다렸다가 역습으로 공략했다. 반대로 한국은 비기기만 해도 유리한 상황이었음에도 경기를 통제하지 못했다. 상대가 내려앉으면 공을 오래 소유하며 상대를 끌어내야 했지만, 조급하게 전진 패스를 시도하거나 무리한 크로스를 반복했다. 실점 이후에도 경기 양상을 바꿀 만한 변화는 거의 없었고, 시간만 흘러갔다. 좋은 팀은 경기를 자신의 리듬으로 끌고 간다. 그러나 이번 경기에서 한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아공이 원하는 경기 흐름 속에서 경기를 치렀다.

심리적인 부분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비기기만 해도 토너먼트 진출 가능성이 남아 있었던 상황은 오히려 선수들을 더욱 소극적으로 만들고. 적극적으로 압박하기보다 자리를 지키려 했고, 과감한 돌파보다 안전한 패스를 선택하는 장면이 많았다. 홍명보 감독 역시 이러한 심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격적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상황에서도 수비 숫자를 유지했고,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실점을 막는 데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보수적인 선택은 결국 공격도 살리지 못했고 수비도 지키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남아공전 패배는 단순히 한 경기의 실패가 아니라, 대표팀이 안고 있던 구조적인 문제들이 동시에 드러난 경기였다. 선수들의 경기력도 분명 아쉬웠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선수들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전술과, 변화가 필요한 순간에도 변화를 선택하지 못한 경기 운영이었다.

감독 홍명보

“축구는 결국 감독놀음이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감독은 단순히 선발 명단을 짜고 교체 카드를 쓰는 사람이 아니다. 한 팀의 방향성을 정하고, 선수들의 역할을 설계하며, 경기 중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사령탑이다. 팀이 흔들릴 때 기준을 잡아주는 리더이자, 선수들이 가진 장점을 하나의 구조 안에서 최대한 끌어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아공전의 가장 큰 책임추궁은 홍명보 감독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 홍명보 감독의 가장 큰 문제는 3백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3백을 제대로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대 축구에서 3백은 단순히 수비수를 한 명 더 세우는 전술이 아니다. 좌우 스토퍼가 전진하고, 윙백이 폭과 깊이를 제공하며, 미드필더와 공격수가 유기적으로 위치를 바꾸면서 상대 수비를 흔드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번 대표팀의 3백에서는 그런 장점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3백의 단점만 반복해서 드러났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선수들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설영우와 이태석처럼 수비적인 성향이 강한 풀백들을 윙백으로 기용했다면, 그들이 공격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구조를 만들어줘야 했다. 하지만 두 선수는 높은 위치에 세워졌을 뿐, 주변의 연계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수비적인 윙백을 쓰면서도 그들을 안정적으로 활용하지 못했고, 공격적인 윙백처럼 상대를 흔들게 만들지도 못했다.

결과적으로 윙백은 높이 올라가 있었지만 위협적이지 않았고, 후방과 전방 사이의 간격만 더 벌어졌다. 센터백 활용도 마찬가지였다. 이한범이나 이기혁처럼 빌드업과 전진 패스에 장점이 있는 수비수를 기용했다면, 그들이 공을 운반하거나 한 칸 앞으로 올라가 상대를 끌어내는 장면이 나와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후방에 고정되어 있었다. 상대가 강하게 압박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스토퍼가 전진하지 않으니, 한국은 계속 뒤에서만 공을 돌렸다. 빌드업 능력이 있는 센터백을 쓰면서도 그 능력을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오현규의 활용 역시 아쉬웠다. 오현규는 힘과 박스 안 마무리에 강점이 있는 공격수다. 그렇다면 그에게 공이 도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했다. 측면에서 질 좋은 크로스가 들어가거나, 2선에서 빠른 침투 패스가 공급되어야 했다. 하지만 남아공전에서 오현규는 거의 고립됐다. 공은 제대로 오지 않았고, 주변에서 연계해주는 선수도 부족했다.

공격수의 장점을 살릴 수 없는 구조 속에 세워 놓고, 존재감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이강인 문제는 더 심각했다. 이강인은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창의적인 선수다. 상대가 내려앉았을 때 좁은 공간을 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원이다. 그런데 남아공전에서 이강인이 공을 잡으면 상대 수비가 두세 명씩 달라붙었다. 그럴수록 감독은 이강인이 빠져나올 수 있는 패스 옵션을 만들어줘야 했다. 누군가는 가까이 내려와 받아줘야 했고, 누군가는 반대편 공간으로 침투해야 했으며, 누군가는 상대 수비를 끌고 나가야 했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강인은 공을 잡을 때마다 혼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의미 없는 압박까지 하느라 체력만 소모했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손흥민의 활용이다. 손흥민은 단순히 득점력만 가진 선수가 아니다. 상대 수비 라인을 뒤로 물러나게 만들고, 이강인에게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는 선수다. 그런데 중요한 경기에서 손흥민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았다.
결국 문제는 단순한 전술 선택이 아니라 선수 활용의 실패였다. 좋은 선수들을 뽑아놓고도 그 선수들이 왜 좋은 선수인지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 수비적인 윙백을 공격적으로 쓰려 했지만 위협을 만들지 못했고, 빌드업이 가능한 센터백을 뒤에 묶어두었으며, 마무리에 강한 공격수를 고립시켰고, 창의적인 미드필더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겼다. 그리고 정작 상대 수비를 흔들 수 있는 손흥민과 옌스는 충분히 활용하지 않았다.

구조적 문제

남아공전의 패배를 홍명보 감독 한 명의 문제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 물론 홍명보 감독의 전술 선택과 경기 운영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보면 홍명보 감독은 한국 축구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가장 먼저 대한축구협회의 문제가 크다. 한국 축구의 가장 큰 문제는 장기적인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팀이 어떤 축구를 해야 하는지, 연령별 대표팀은 어떤 방향으로 선수를 키워야 하는지, K리그와 유소년 시스템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큰 그림이 없다. 감독이 바뀔 때마다 축구가 바뀌고, 대회가 끝날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것은 단순한 시행착오가 아니라 협회의 무능한 행정이 반복해서 만들어낸 결과다. 특히 감독 선임 과정은 한국 축구계의 가장 큰 병폐를 보여준다. 제시 마치, 거스 포옛, 에르베 르나르, 다비드 바그너, 혹은 마르셀로 비엘사급 감독들은 여러 차례 후보군으로 거론되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협회는 전술적으로 맞지 않는다, 연봉이 비싸다, 협상이 어렵다, 한국 축구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식의 이유를 내세웠다. 문제는 그 변명이 일관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말 돈이 문제였다면 클린스만 감독에게 막대한 연봉과 위약금을 감수한 선택은 설명하기 어렵다. 정말 전술적 적합성이 문제였다면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은 더더욱 설명하기 어렵다.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 대표팀에서 뚜렷한 전술적 구조를 보여주지 못했고 손흥민과 이강인에게 기대는, 일명 ‘해줘 축구’로 논란이 있었다.결국 아시안컵 실패 이후 경질되었다. 그런데도 한국 축구는 그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을 치렀다. 보도에 따르면 클린스만 감독의 연봉은 약 29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고, 경질 이후 위약금 역시 수십억 원에서 100억 원 안팎까지 거론되었다.

이후 홍명보 감독 역시 연봉 약 2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보다 높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결국 돈이 없어서 좋은 감독을 못 데려왔다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한 것이다. 더 답답한 것은 협회가 선임하지 않았던 감독들이 이후 각자의 자리에서 성과를 냈다는 점이다. 제시 마치는 캐나다 대표팀을 맡아 2024 코파 아메리카 4위라는 성과를 냈고, 이후 캐나다와 장기 계약을 맺으며 2030년 월드컵까지 팀을 이끌게 되었다.

캐나다는 한국보다 축구 인프라가 압도적으로 강한 나라도 아니지만, 마치 감독 체제에서 명확한 압박과 전환 축구를 구축해가고 있다. 전술적 방향성이 뚜렷한 감독을 데려왔을 때 대표팀이 어떤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거스 포옛도 마찬가지다. 한국 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결국 선임되지 않았고, 이후 전북 현대를 맡았다. 그리고 전북에서 K리그 우승과 코리아컵 우승을 동시에 달성하며 국내 더블을 이끌었다. 2024년에 부진했던 전북을 단기간에 다시 정상권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이런 감독을 두고도 협회가 대표팀 감독으로 확신을 갖지 못했다면, 문제는 감독의 능력이 아니라 그 능력을 평가하는 협회의 안목에 있다고 봐야 한다.

에르베 르나르는 이미 국제무대에서 검증된 감독이다. 잠비아와 코트디부아르를 이끌고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을 우승했고,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을 이끌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꺾는 이변을 만들었다. 이후 프랑스 여자 대표팀과 사우디를 거쳐 최근 튀니지 대표팀까지 맡았다. 물론 모든 팀에서 성공한 것은 아니고, 튀니지에서는 월드컵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아쉬운 결과도 있었다.

그러나 르나르의 장점은 분명하다. 짧은 시간 안에 팀을 조직하고, 국제대회에서 약팀이 강팀을 상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감독이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필요로 했던 것도 바로 그런 현실적이고 명확한 경기 운영이었다.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의 이름도 거론되었다면 그 자체로 협회의 감독 선임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비엘사는 우루과이 대표팀을 이끌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인상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2026 월드컵 본선 진출까지 이끌었다. 물론 비엘사의 방식은 극단적이고 팀 내부 갈등을 만들 수 있다는 위험도 있지만, 적어도 그의 팀은 무엇을 하려는지 분명하다.

한국 축구가 가장 부족했던 것도 바로 그 분명함이었다. 결국 문제는 좋은 감독 후보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좋은 감독을 알아보고 설득하고 데려올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협회는 후보들을 두고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제외했지만, 정작 선택한 감독들에게는 더 큰 돈을 지불했고 더 큰 실패를 경험했다. 이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반복되면 구조적 문제이고, 구조적 문제라면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정몽규 회장 체제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많은 축구 팬들이 대한축구협회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성적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협회가 오랫동안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실패가 반복되어도 구조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몽규 회장은 여러 논란과 비판 속에서도 2025년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서 85%가 넘는 득표율로 4연임에 성공했다. 팬들의 여론과 축구계 내부의 표심이 이렇게까지 다르게 움직인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축구 행정의 폐쇄성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많은 팬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협회 내부의 인사 구조, 감독 선임 과정, 책임 소재, 회장 선거 방식까지 모두 투명하지 않다면 팬들은 계속해서 같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축구가 먼저 개혁해야 할 지점이다. 따라서 한국 축구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감독 교체가 아니다. 대한축구협회의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감독 선임 과정은 투명해야 하고, 戰力강화위원회는 실질적인 전문성을 갖춘 인물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전직 선수뿐만 아니라 전술 분석가, 데이터 전문가, 스포츠 과학자, 협상 전문가, 유럽 축구 전문가, 행정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 현대 축구는 더 이상 경험과 감으로만 운영되는 시대가 아니다. 시스템이 있어야 하고, 기준이 있어야 하며, 실패했을 때 책임지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
대표팀 철학도 새로 정립해야 한다.

한국 축구가 어떤 축구를 할 것인지에 대한 공통된 기준이 필요하다. 압박을 할 것인지, 점유를 할 것인지, 빠른 전환을 중심으로 할 것인지, 세대별 대표팀은 어떤 방식으로 연결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지금처럼 감독이 바뀔 때마다 전술과 방향성이 바뀌면 선수들은 매번 새로운 축구를 배워야 한다. 그러면 소집 기간이 짧은 대표팀에서 조직력을 만들기 어렵다. 일본이 강해진 이유는 감독 한 명 때문이 아니라, 유소년부터 성인 대표팀까지 이어지는 공통된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더 이상 스타 선수 한두 명에게 기대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소년 시스템도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한국은 어린 나이대에서는 좋은 재능을 많이 배출하지만, 중고등학교와 대학 단계로 갈수록 성장 속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성적과 진학 중심의 구조 속에서 선수들은 이기는 축구에 익숙해지고, 창의적인 판단과 전술 이해를 충분히 배우지 못한다. 좋은 선수를 많이 만들고 싶다면 더 많은 아이들이 축구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유소년 지도자들에게도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재능 있는 선수를 우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재능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K리그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다.

自國 리그가 튼튼해야 좋은 선수가 꾸준히 나오고, 좋은 지도자와 행정가도 성장할 수 있다. K리그는 단순히 대표팀 선수를 공급하는 무대가 아니라 한국 축구 생태계의 중심이다. 리그의 경쟁력, 마케팅, 유소년 클럽 시스템, 지역 연고 문화, 구단 운영 수준이 모두 올라가야 한다. 동시에 유럽 진출 전략도 더 체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본처럼 벨기에,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 중소 리그를 발판으로 삼아 선수들이 꾸준히 출전하며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도자 육성과 축구 행정가 육성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축구는 좋은 선수를 배출하는 데 비해 좋은 지도자와 행정가를 체계적으로 키우는 데에는 부족했다. 현대 축구는 전술, 데이터, 피지컬, 심리, 영양, 스카우팅, 협상, 미디어 대응까지 수많은 전문 영역이 결합된 산업이다. 그런데 여전히 한국 축구계는 과거의 인맥과 경력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선수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중요한 자리에 앉히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능력과 전문성을 기준으로 사람을 뽑아야 한다. 결국 한국 축구의 문제는 경기장 안에서만 벌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남아공전에서 보인 무기력한 경기력은 협회의 무능한 행정, 불투명한 감독 선임, 부재한 장기 철학, 허약한 유소년 구조, 부족한 지도자 육성, 그리고 自國 리그에 대한 부족한 투자까지 모두 연결된 결과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축구 팬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압박도 필요하다. 월드컵 때만 분노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협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누가 책임지고 있는지, 어떤 기준으로 인사가 이루어지는지 국민들이 계속 지켜봐야 한다.

한국 축구는 더 이상 몇몇 스타 선수에게 기대어 버티는 방식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같은 선수들이 계속 나와도 그들을 제대로 활용할 시스템이 없다면 같은 실패는 반복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독 한 명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한국 축구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대한축구협회의 개혁, 투명한 인사 과정, 장기적인 축구 철학, 유소년과 K리그에 대한 투자, 지도자와 행정가 육성까지 모두 함께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남아공전은 한 번의 참사가 아니라, 앞으로도 반복될 한국 축구의 미래가 될 것이다.

이집트가 G조 최종전에서 이란과 1대1로 비기면서 한국의 32강 진출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한국은 이집트가 이란을 이겨야 G조 3위 이란을 앞설 수 있었지만, 이란이 승점 3과 골득실 0을 확보하면서 A조 3위 한국은 12개 조 3위 순위에서 8위까지 밀렸다. 이집트는 조 1위를 노렸으나 벨기에가 뉴질랜드를 5대1로 꺾으며 G조 1위로 올라섰고, 이집트는 조 2위가 되어 32강에서 호주를 만나게 됐다.

한국이 기적적으로 32강에 오르기 위해서는 남은 세 가지 조건 중 두 가지가 충족돼야 한다. 가나가 크로아티아를 이기고, 우즈베키스탄이 콩고민주공화국에 패하지 않으며, 오스트리아가 승리하거나 알제리가 2골 차 이상으로 이기는 시나리오 중 두 개가 필요하다. 즉, 한국의 운명은 이제 스스로가 아니라 다른 조 경기 결과에 달리게 됐다. 만약 32강전에 진출한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경기력과 전술적 운영을 돌아보면,

단기간에 근본적인 전술 보완이나 명확한 대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많은 축구 팬들은 이번 월드컵에서의 실패를 계기로 한국 축구가 대대적인 쇄신에 나서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비판과 실망이 있더라도, 대표팀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월드컵은 국가를 대표해 싸우는 무대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는 선수들이 반드시 보여줘야 할 책임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드러난 문제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그 위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축구가 앞으로 어떤 축구를 지향하고, 어떤 철학을 바탕으로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지를 증명하는 일이다. 부디 32강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이번 실패가 한국 축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출발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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