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세계 수영선수권 대회에서 無敵의 마이클 펠프스(미국. 북경올림픽 8개 금메달)도 물을 먹었다. 200m 자유형에서 독일의 폴 비더만이 우승, 펠프스가 2등을 차지하였다. 비더만은 北京올림픽 200m 자유형에선 1분46초로 5등을 했는데, 이번엔 4초를 단축시켜 1분42초였다. 1년 사이에 4초 단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 수영부문이다. 비더만이 입은 폴리우레탄 수영복이 마찰을 줄여 속도를 높인다고 한다. 세계수영협회는 이 수영복 착용을 금지시키기로 했으나 기간은 정하지 않았다.
마이클 펠프스도 2005년 세계수영대회 400m 자유형에서 예선 탈락한 적이 있다. 미국 언론이 그때 펠프스에게 뭇매를 가하였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승부의 세계에서 지고 이기는 것은 兵家常事이다. 박태환 선수가 경쟁이 극심한 400m, 200m 부문에서 예선탈락하였다고 한국의 스포츠 기자들이 비난성 기사를 쏟아낸다. 박태환 선수를 둘러싼 관계자들의 갈등을 신나게 보도한다. 北京올림픽의 영웅을 순식간에 동네북으로 만든다.
스포츠까지도 政治부문의 권력투쟁처럼 다루는 게 한국 기자들이다. 대표팀이 지면 감독을 바꾸라고 소리지르는 게 기자들이다. 객관보도에도 힘이 붙이는 기자들이 人事에까지 개입하는 꼴이다. 스포츠의 政治化를 先導하는 한국 기자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런 스포츠 기자들의 존재가 한국 스포츠 정신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지는 것을 나쁜 짓 한 것, 부끄러운 일과 동일시한다. '치욕의 완패'라는 제목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풍토에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 한다. 이기는 것은 무조건 잘하는 것, 좋은 것이 되는 나라이다. 깨끗하게 이기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기자들이 민주주의의 방해물이다.
1998년 프랑스에서 열렸던 월드 컵 대회 때 한국 팀이 不振하자 차범근 감독을 중도하차, 귀국시키는 데 공을 세웠던 것도 기자들이었다. 과도한 영웅만들기와 과도한 역적 만들기는 같다. 한국의 일부 글쟁이들은, 인간 존재의 장점과 약점을 두루 살피면서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할 줄 모른다. 때로는 좋은 점만 부각시키고 때로는 나쁜 점만 강조한다. 성숙한 인간관은 성숙한 민주주의의 기초이다.
기자들은 제발 박태환 선수를 내버려 두라! 때론 무관심이 최선의 치료이다. 박태환 선수는 작년 北京 올림픽의 두 개 메달로 한국인으로 태어난 의무를 다하였다. 그에게 뭘 더 바라는가? 百戰百勝하기를 바라는 인간이 있다면 그런 완벽주의가 자신의 子女와 이 사회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펠프스도 예선 탈락한 적이 있었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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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7-29, 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