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트호벤에서 본 히딩크의 知性(지성)

나의 맞은편 자리에 있던 히딩크 감독은 책을 펴놓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만년필로 한 문장을 써서 돌려주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귀하가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역사의 아주 심각한 부분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입니다」였다.
2004년 3월 나는 尙美會(상미회) 여행단과 함께 전자회사 필립스의 고향인 네덜란드의 공업도시 아인트호벤에 가서 이 도시 축구팀 감독이던 히딩크 부부를 만나 점심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아인트호벤은 필립스의 본사가 있던 곳인데 人力(인력)조달이 어려워지자 본사를 암스테르담으로 옮겼다. 연구소가 아인트호벤에 남았다. 인구가 약 20만 명인 공업도시인데 훌륭한 현대 미술관이 있다. 필립스는 미국의 에디슨이 발명한 電球(전구)를 유럽에서 맨 처음 대량 생산한 회사이다. 히딩크 감독은 우리 일행을 축구팀의 홈 스태디움 식당으로 초대했다.

일행중 20명 정도가 미리 준비하여 온 축구 공과 티 셔츠 등에 히딩크의 사인을 받았다. 일행중 한 분은 암스테르담의 안네 프랑크 기념관에서 산 책을 내밀면서 사인을 부탁했다. 맞은편 자리에 있던 히딩크 감독은 책을 펴놓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만년필로 한 문장을 써서 돌려주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귀하가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역사의 아주 심각한 부분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입니다」였다. 안네 프랑크 가족 등 많은 유대인들이 네덜란드 사람들의 密告(밀고) 또는 협조에 의해 나치에 끌려가 희생되었다는 점에 대한 이 나라 사람으로서의 반성이 담긴 글이었다. 그냥 습관적으로 사인을 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깊이 한 다음 의미 있는 글을 써주는 히딩크 감독의 人格(인격)에 새삼 느끼는 바가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이다. 표현이 절제되고 정확하다. 실용적인 네덜란드사람처럼 속이기 어려운 민족도 없을 것이다. 반면 명분론이 강한 한국사람처럼 속이기 쉬운 민족도 드물 것이다. 이성적인 민족과 감성적인 민족의 차이라고나 할까.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단을 맡아보니 한국인들의 本性(본성)을 알 수 있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잘할 때와 못할 때의 격차가 매우 커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날 히딩크 감독은 우리 여행단을 아인트호벤 축구장으로 안내해주고 다음날 경기에 초대까지 해주었다. 그는 '내일 게임엔 여러분을 위해서 박지성과 이영표를 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아인트호벤에서 잠을 잔 뒤 전용버스편으로 독일의 아헨으로 건너가서 예약해둔 호텔에 들러 저녁을 먹고 다시 아인트호벤으로 와서 경기를 구경했다. 히딩크 감독이 경비원들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주어 늦었지만 입장도 쉽게 할 수 있었다. 프랑스 팀과 한 경기였는데 두 한국 선수가 맹활약한 덕분에 아인트호벤이 3-0으로 이겼다. 히딩크 감독의 배려가 고마웠다. 17세기는 '네덜란드의 세기'로 불리는데 이 나라 선원들이 한국에 표착하여 韓民族(한민족)과 처음 접촉한 서양인이 되었다. 이런 좋은 인연이 히딩크로 이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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